청바지는 이제 더이상 아무렇게나 입는 옷이 아니다.
사실 티셔츠에 운동화가 청바지 코디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이힐이나 정장 재킷과 멋스럽게 어울린다. 사무실에서도, 파티장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 바로 청바지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같은 해외 톱디자이너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진 라인을 따로 출시할 정도로 패션가의 청바지 사랑은 각별하다.
청바지가 태어난 지 어느덧 150여년. 흘러온 세월만큼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청바지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패션잡지 등은 청바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을 뽑기도 하고, 유명인이 입은 청바지는 매우 비싼 값에 팔리기도 한다. 청바지에 얽힌 독특한 기록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 부르는 게 값
2001년 5월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청바지 경매에서 낡아빠진 청바지 한장이 4만6천5백32달러, 당시 우리돈으로 약 5천5백80만원에 팔렸다. 이 청바지는 미국 네바다주 미닝타운의 한 광산 진흙 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리바이스사의 초기 청바지였다. 사들인 곳은 이 바지를 팔았던 리바이스. 약 120년 전 이 바지는 단돈 1달러에 팔렸다. 리바이스는 이 청바지를 복제한 ‘네바다진’을 500장 한정으로 400달러에 선보이기도 했다.
# 드레스보다 비싼 청바지
매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구치의 ‘지니어스 진(genius jeans). 1998년 밀라노의 구치 매장에서 약 3,134달러(당시 3백80만원)씩에 팔렸다. 아프리카 스타일의 구슬 장식과 깃털, 그리고 기하학적으로 배열된 여러 무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색 메탈 장식이 달려 있는 이 제품은 약 2주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
# 유명인이 입은 옷도 유명해
1954년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마릴린 먼로가 입었던 청바지 3벌은 경매를 통해 3만7천달러에 팔렸다. 원래 가격은 한 벌에 2달러99센트. 낙찰받은 디자이너 토미 힐피거는 한 벌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선물했다. 경매회사 소더비를 통해 판매된 마돈나의 재킷 역시 화제가 됐다.
# 세상에서 가장 큰 청바지
리바이스사가 2001년 캐나다에서 제작한 청바지. 속칭 ‘빅진(Big Jean)’으로 불린다. 이 청바지는 허리 사이즈 19m, 허리에서 다리까지의 길이가 29m로 약 10층 건물 높이에 육박한다. 무게는 226㎏. 지퍼의 길이는 4m이고 허리 단추는 자동차 바퀴보다 더 크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35명이 9일 동안 작업하였으며 바느질에만 30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청바지 역사
청바지의 시작은 ‘옷’이 아니었다.
황금의 희망을 품고 다들 서부로 향하던 1850년대의 미국. 독일에서 이민온 청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천막이나 포장마차 덮개로 사용되는 조크 천을 팔 요량으로 캘리포니아에 갔다. 그러나 험하게 일하는 광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천막이 아니라 질긴 옷이었다. 그는 천막 천으로 작업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리바이는 금광 채굴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이후 조크 천 대신 더 질기고 멋스러운 데님(denim)을 작업복 재료로 개발, 호주머니에 구리못을 박은 튼튼한 작업복을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진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시작이자, 청바지의 시작이었다.
〈글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진에는 나이가 없거든요”
‘청바지’를 통해 ‘젊음’이나 ‘청춘’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면 시대착오. 최근에는 젊은이들은 물론 ‘아줌마’ ‘아저씨’들도 진의 매력에 시선을 꽂고 있다.
지난 2월말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패션쇼장도 중년들의 청바지 사랑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이날 패션쇼의 주제는 ‘35~45세를 겨냥한 진(Jean)’. 중장년층 대상의 진 전문 편집매장 ‘스튜디오 블루’의 오픈을 기념한 패션쇼였다. 행사에는 진태옥, 루비나, 최연옥, 신장경, 심설화, 노승은, 앤디 앤 댑, 김연주씨 등 국내 중견 디자이너 8명이 참여했다.
쇼장에서 디자이너 루비나씨(58)를 만났다. 그는 “진은 루비나부티크에서도 종종 다뤄왔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며 “평소에도 많이 입는 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청재킷에 검은 가죽바지를 매치시켰고 허리에 살짝 돌려 묶은 청벨트가 세련됐다. 진을 전문적으로 다루어볼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 스튜디오 블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의 장점은 ‘4무(無)’. 남녀 구분, 지위 상하, 나이 고저, 빈부 차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진을 활용하는 법도 매우 고급스러워졌다. 예전같으면 티셔츠와 운동화에 매치시킬 만한 스포티한 청바지가 대부분. 그러나 요즘은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스왈로브스키 스톤이나 자수로 장식하고 레이스, 시폰 등과 매치하는 로맨틱한 진까지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진은 특정한 트렌드가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더라도 유행 따져가며 입을 일이 없어요.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재킷과 셔츠, 바지까지 입을 수 있고요. 게다가 젊어 보이기까지 하니 이만한 소재가 없죠.”
루비나씨는 “진을 예쁘게 입고 싶은 욕심은 커져 가는데 막상 40대 전후의 여성들이 입을 만한 옷은 없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프리미엄진, 패션진은 10~20대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밑위가 짧고 패턴이 체형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 따라서 그는 “중년 여성이 입어도 편안한, 그러면서도 좀 더 세련된 진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리선이 살짝 올라가 편안하면서 니트와 함께 매치해 보다 세련된 느낌이다. 또 소재는 물론 섬세한 디테일까지 꼼꼼히 챙겨 훨씬 우아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스튜디오 블루에 오픈한 브랜드의 이름은 ‘지비진스(G. B. Jeans)’, 신이 축복하는 진(God Blessing Jeans)이라는 뜻이다. 신의 은총으로 고객은 맵시있게 진을 즐기고, 브랜드는 명품으로 우뚝 서는 것, 그것이 그가 목표한 지비진스의 미래이다.
〈글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청바지, 변신은 계속된다
한 광고에서 ‘청바지와 넥타이는 동등하다’고 외쳤듯이 패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청바지. 1850년대 미국 광부들이 일할 때 입으려고 천막으로 만들던 청바지는 이제 파티복으로 사랑받고 있다. 세상 참 재미있다. 광부들의 작업복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이 되어버렸다. 기발하고 톡톡 튀는 디자이너들의 패션 아이디어가 청바지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미래세계에는 어떤 형태의 청바지가 우리에게 나타날까. 지금 청바지의 변신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다.
# 청바지 역사
누가 알았을까. 미국에 이민간 독일 청년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천막 천으로 작업복을 만들어 돈을 긁어 모을 줄이야. 데님(denim)을 작업복 재료로 개발해 청바지를 탄생시킬 줄이야. 1920년대를 넘어서며 카우보이와 웨스턴 무비의 영향으로 청바지는 작업복에서 일반인의 평상복으로 변화했다. 특히 60년대에는 청바지가 히피문화의 저항정신, 로큰롤문화의 자유로운 정신과 결합한 청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스크린 속 반항적인 눈빛의 제임스 딘, 무대 위 흥겨운 몸짓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고 싶은 청년들이 너도나도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이렇게 청바지는 점차 활동적인 젊은이들의 옷이 되었다.
70년대 로큰롤과 함께 우리나라에 수입된 청바지는 통기타와 함께 젊음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80년대 후반 교복 자율화가 이뤄진 후부터 젊은이들은 리바이스, 게스, 리 등의 수입 진에 열광했다. 이후 90년대 초중반 닉스, GV2, 스톰 등 국내 브랜드들이 10만원대,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청바지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정통 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 터프·발랄·섹시 진
잠시 트렌드 리더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청바지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2000년 이후.
진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로 라이즈 진(Low Rise Jean)’이었다. 로 라이즈 진이란 허리선에서 가랑이까지의 밑위길이가 짧은 진. 로 라이즈 진의 밑위길이는 평균 5~7인치이지만 브랜드에 따라 밑위길이가 고작 3~4인치에 불과한 제품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2003년 기네스 펠트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 등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들이 로 라이즈 진을 입으면서 전세계적 유행을 몰고 왔다. 웬만한 여성이라면 한벌쯤 갖출 만한 아이템이 된 것. 이에 따라 디젤, 세븐진, 얼진, 프랭키 비 등 프리미엄진 브랜드들은 ‘프리미엄진=로 라이즈 진’이라할 만큼 앞다투어 로 라이즈 진을 선보이고 있다.
로 라이즈 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건 섹시한 느낌과 슬림한 몸매를 추구하는 최근의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배꼽은 물론 골반뼈까지 드러나는데다 피트된 실루엣으로 섹시한 느낌을 준다. 또 다리가 골반뼈에서 시작되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나 다리가 더욱 길어 보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기 때문에 수트나 시폰 원피스 등과 매치하면 사무실이나 파티장에서도 전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청바지 시장도 점차 커졌다. 웬만한 프리미엄진의 값은 30만원 내외. 바지 한벌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cK진은 한 백화점 행사에서 1억2천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디젤은 월평균 2억여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소위 ‘럭셔리 진’이라고 불리는 80만원대 이상의 명품 진도 선보이고 있다. ‘DKNY 진’ ‘아르마니 진’ ‘D&G’ 등 수입 명품 브랜드의 진이 그것이다. 지난해 봄, D&G는 스왈로브스키 스톤을 장식한 1백80만원대 청바지를 내놓기도 했다.
젊은이의 상징에서 세련된 스타일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청바지. 청바지에 대한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박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