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벌초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고 나니 장딴지에 알이 배겼습니다. 안동, 영주 산소를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벌초한다고 돌아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나 얼른 몽돌이를 종아리에 밑에 대고 다리를 상하로 움직이며 한참동안 알을 풀려하였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방법이 잘못되었다며 교정을 해주더군요. 장딴지 근육은 두 개인데 근육의 결과 직각방향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며 장딴지를 몽돌이 위에 올리고 좌우로 흔들어 주어야 한답니다. 일러준 대로 하니 금방 풀리더군요. 역시 운동은 정확한 부위에 제대로 된 운동법으로 해야 함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아내의 근육공부가 일가를 이루었음도 재삼 느꼈습니다.
지난 9월 4일 아내의 봉화 출장교육 4회차 강의가 끝났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서 열린 ’힐빙스테이‘는 봉화군청 산림녹지과에서 주관하고 경상북도환경연수원에서 수탁하여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목공예 체험, 산림치유 특강, 우드음악회, 삼림욕테라피, 춘양목골든벨, 힐빙레크레이션, 캠프파이어 등으로 구성된 1박2일 과정인데 아내는 2일차 마지막 시간에 힐빙요가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하기 전에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을 미리 받아보고 프로그램을 조금씩 변형하여 참석자 수준에 맞추어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명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강의를 해야 하였고 강의 시간도 30분에서 1시간까지 유동적이었으므로 1시간 정도 전에 가서 날씨와 기온, 참석자의 연령대, 집중도, 에너지 등을 파악한 후 프로그램 내용을 가감하고 도입부분을 조정하여야 했습니다. 아내는 만 10년이 넘은 베테랑답게, 4회차의 강의 내용을 참석자 수준에 맞추어 조금씩 다르게 진행하였고 참석자들의 집중과 만족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어떤 때는 풍선을 이용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춤을, 혹은 아이들 장기 풀어주기 등 다양하게 풀어내며 요가 자세도 쉽게 접근하였습니다. 3세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30대에서 70대까지의 부모, 할머니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하였지만 모두가 열심이었습니다. 부모와 아이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직원들과는 내년을 기약하였습니다.
아내는 어릴 때 중병을 앓은 후 허약한 상태를 이어왔습니다. 결혼 후 아내가 취미생활을 하고 건강을 증진시켰으면 하는 생각에 운동을 권유하였고, 볼링, 밸리 댄스, 테니스, 살사 댄스 등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웠는데 요가와 명상이 가장 맘에 들고 몸에 맞는 것 같다고 하여 꾸준히 해오다 스승의 안내로 출강을 시작한 게 벌써 만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덕에 몸도 건강해졌고 심지도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랍고 고마운 것은 아내가 요가 자세를 뛰어넘어 꾸준히 공부를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자세 교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더니 인체 뼈의 구조, 근육학 공부를 어느 정도 마스터하고 이젠 림프순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광주, 밀양, 경산, 부산, 대구 등 필요한 교육과정이 있는 곳에는 멀다 않고 달려갔습니다. 가까운 곳은 아내가 혼자 다녔지만 광주, 밀양 같은 먼 곳은 제가 운전기사를 자처하여 따라나섰습니다. 아내가 수업을 듣는 동안 저는 자연과 문화재를 돌아보며 힐링을 하였습니다. 필요한 책 정보를 입수하면 인터넷을 뒤져 중고책이라도 사 주었습니다. 품절된 어떤 책은 판매가가 6만원이었는데 절판 된 후 30만원을 호가하기도 하였습니다만 필요하다니 주문해 주었습니다.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신간 중 아내 관심분야가 눈에 띄면 바로 대출하여 전해 주었습니다. 임산부, 초등생, 가족, 사오십 대 공무원,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층과 유형에 강의를 하다 보니, 이론과 실기가 겸비되었다보니 이젠 어디 가도 인정받는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아내나 저나 11월 중순 이후이면 다음해 초까지 일이 없습니다. 프리랜서이기에 자연스럽게 안식월을 보내는 겁니다. 예전에 연수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년에 대구지역본부 직원을 대상으로 사무실에서 하는 몸풀기 동작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밤늦게까지 근무하고 운전하는 일이 많아 근육이 뭉치고 자세가 틀어진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는 동부, 대구, 경북 등 제게 일을 주신 분들 사무실에서 아내의 재능기부를 할 계획입니다. 담당자분들께 얘기해 두었으니 그들이 덜 바쁜 일정을 잡아주겠지요.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특히 도움 받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일이 줄어 격무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최상이겠지만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질 않으니 몸이 망가지지 않게 도와주는 일만이라도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인들 중 공무원은 모르겠습니다만 정부부처의 하부기관은 매일 열시까지 일은 기본입니다. 주말도 몇 시간은 나와야 일주일의 일이 정리가 됩니다. 그들의 일이 예전처럼, 가급적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분량으로 줄어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크지만 그 전에 건강이라도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퇴근 이후 차 한 잔을 마시고 최소한의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오려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많이 변해야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신영복님의 글 중 ‘콜럼부스의 달걀’이 생각남은 왜일까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깨진 달걀이 넘쳐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잠시 가을 풍정을 즐기며 현실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주에 내린 가을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848287298
금오산 올레길에도 초가을의 정취가...
http://blog.naver.com/bornfreelee/220845750648
도개 문수사에도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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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의 달걀(모셔온 글)===================================
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인 일화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결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메시지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지만
콜럼부스는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림으로써 쉽게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둥근 모양인 것은 그 속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角지지 않고 둥글어야
어미가 가슴에 품고 굴리면서 골고루 체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원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멀리 굴러가지 않도록 하거나,
혹시 멀리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한 것 모두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산물입니다. 그러한 달걀을 차마 깨트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서슴없이 깨트려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발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성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콜럼부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을 천재적인 발상전환이라고 예찬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콜럼부스가 대륙에 도착한 이후, 대륙에는 과연 무수한 생명이 깨트려지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소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서부터 오늘날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신영복의 《처음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