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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것 없는 명동성당, 부드럽게 깊어지는 사제 | ||||||||||||||||||||||||
성당에서 모멸감 느끼며 절제와 용기 배우는 사제, 문정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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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말미암은 방사능 비가 내린다는 소식으로 경기도 내 수십 개 학교가 휴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서울 명동대성당에서는 240일 째 계속된 문정현 신부의 기도가 여전히 이어졌다. 이날 내린 비 탓인지, 성심수녀회 수녀들과 몇몇 평신도만이 모여서 문정현 신부와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십자가의 길이 새겨진 명동성당 내부는 어두컴컴한 채로 벽면의 유리화에서 새어드는 빛으로 간신히 몸을 밝히고, 조촐한 순례객이 성당 내부를 돌고 있었다. 문정현 신부는 14처를 도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서 기도에 여념이 없었다. 십자가의 길 순례객들은 기도를 마치고 비를 피해 지하성당 앞 성모동산 옆에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다. 좁은 비가림 천정 탓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돌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이 튀어 신발을 적셨다.
문정현 신부는 지난 4월 1일 저녁 신도림 성당(주임 최부식 신부)에서 사순특강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문 신부는 "예수님은 높게 솟은 교회의 화려한 성전에 계신 것이 아니라 거리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곳은 스승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곳입니다”라고 말했다. 문 신부가 명동성당에 그토록 오래 머물게 된 사연도 그러하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 곁에 있기를 갈망하는 탓이다. "예수님이야말로 길에서 사신 분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병자들, 사람 취급 못 받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 길에서 만나셨잖아요.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돈이 많았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함께 해준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 만나서 얘길 나누고 위로해주고, 사람대접 못 받는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러주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이르셨잖아요." "미사를 하려면 로만칼라를 벗고 하라"던 관리국 직원들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영업방해'라는 말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 같아서 아프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날 사순특강에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 희망이 되기보다 권력과 자본에 더 가까워지고 있고, 교회 스스로 권력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처럼 권력의 우상이 되어가는 상징이 '명동성당'이라면 문정현 신부의 기도는 명동성당을 자신의 십자가로 삼아 지난 240일 동안 몸으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심경으로 비 맞는 성모동산 앞에서 문 신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필요한 사추덕(四樞德)에 관해 말을 건넸다. 지혜와 용기, 정의와 절제다. 이야기는 절제와 용기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번졌다. 문 신부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할 때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듯이, 절제의 덕도 어느 수준까지라고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꼭 해야 할 것은 자제하고, 절제해야 할 것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전 대표가 "빨갱이 소리 들어가면서도 길을 나서고 외치시는 신부님은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하자, 문정현 신부는 "용기에 한도가 있나?"하면서, 자신은 할복이나 분신 수준으로는 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창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할 때, 예전에 장난삼아 수경 스님한테, 당신 다비식 해…. 장작은 내가 쌓아줄 테니. 나도 따라서 장작더미에 올라갈 게, 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문수 스님이 분신하는 바람에 마음이 아팠다"고 전하면서, 고 조성만 열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조성만이 민족 통일을 외치면서 저기 보이는 명동성당 문화관 위에서 투신자살했지. 교회는 이걸 자살이라고 했어. 그래서 조성만의 시신은 성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교회는 사회적 이목이 있으니까 성당 앞에서 사도예절만 해 주었지. 한 번은 조성만의 모교인 전주 해성고등학교에 기도회를 하러 갔는데, 주교한테서 전갈이 온 거야, 기도회 참여하지 말라고. 명동성당 평신도 위원회는 정 하려면 옷 벗고 하라고 하더군. 그래서 얼마나 열딱지가 나던지 그냥 웃통을 벗어버렸지. 웃통을 벗었다고 내가 신부 아닌가. 그날 기도회를 하긴 했지만 얼마나 위축은 되던지. 조성만의 죽음을 놓고 보는 안목이 그렇게 다르더라고. 우리가 볼 때 조성만은 열사인데, 교회 장상 눈에는 그저 자살자로만 보였던 거겠지." 이 자리에서 다른 참석자가 "신부님의 존재가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정현 신부는 도리질했다. "아니지. 명동성당에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미운털이 박혔는지 여기서 견디기 어려웠어. 이렇게 긴 시간동안 모멸감 속에서 살아 본 적이 없지. 어디 대추리나 용산에서는 큰소리치면서 지냈는데, 여기서는 능멸을 당하는 느낌이었어. 성당에 있다가 보면, 젊은 신부들이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갈 때마다, 속으로 '저 사람은 안 늙으려나' 싶고. 그럴 때마다 모욕감이 들지. 진짜야"
이날 문정현 신부의 목소리는 자신과 교회의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 떨리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하느님의 불꽃을 삼키고 있었다. 문정현 신부가 240일 동안 명동을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명동성당은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바뀐 것이 있다면 문정현 신부의 마음이 좀 더 깊어지고 가슴이 좀 더 넓어졌다는 것일 테다. 한때는 '깡패 신부'라는 별명도 붙었던 문 신부지만, 세월이 그의 격정을 삭여주고, 기도가 그의 가슴을 데워주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날 마침 사순 제5주일 강론 원고가 나왔다. 그 강론원고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에 대한 예언의 목소리다. "교회에는 참다운 소통이 없습니다.
이어진 것은 교회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평화를 비는 마음이었다. 문정현 신부와 함께 걷는 명동성당 십자가의 길은 오는 4월 20일 수요일에 마친다. 별도의 마무리 미사는 없고 오후 2시에 공동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미처 고해성사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문정현 신부와 좀 더 개인적 담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오전 9시 이후에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하는 문정현 신부에게 찾아가면 된다. 또한 오는 4월 23(토)일부터 25일(월)까지 서울 정동에 있는 품사랑 갤러리에서 그동안 문 신부가 서각한 작품 7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