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8월28일(일)맑음
오전에 하산, 연경과 함께 가야산 백운동 심원사를 탐방하다. 무문관으로 쓰이는 상왕선원을 둘러보다. 오는 길에 초계시장에 들러 송기떡을 사다. 진주선원으로 돌아와 하산거사가 싱크대 배관누수현상을 점검하다.
사유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제3 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자기 생각을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그러면 자기 생각에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정관념 혹은 신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신념 체계나 한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조차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알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가령 인간은 왜 다른 생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인간은 자연을 제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2022년8월29일(월)흐림
<수행하여 체험한 것을 남에게 언어 문자로 설명할 수 있어야 사회적 의미를 띤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다.
두 번째 지식만 진짜 지식이며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다.”
그런데 불교에 말하는 소위 “깨달음”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기가 체험하여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남에 설명할 수 없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남들에게도 설명한 수 있는 경우이다. 두 번째 경우에도 그 설명하는 방식이 부처님의 전도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여러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동정하여, 인간과 천신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와 문장을 갖춘 법을 설하라. 아주 원만하고 청정한 행行을 드러내 보여라.”
오전 9시경에 배관수리공들이 와서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4:30 작업 끝내고 돌아가다. 5:30 작업책임자가 작업완료를 확인하고 돌아가다. 저녁에 강의하다. 초유보살이 최현숙 불자를 데려오다.
出離我想 只今解脫 출리아상, 지금해탈
‘나’라는 생각을 떠나면 지금 곧 이대로 해탈
2022년8월30일(화)흐림, 비
오전 9시 혜광거사와 함께 거창 유재상 선생님을 찾아뵙다. 10:20 도착. 선생님에게는 교직 발령 후 처음 맡은 국어교사로서 내가 첫 번째로 기억나는 제자이다. 나를 존경하는 제자라면서 1977년 12월 11일에 보낸 카드를 아직도 가보로 소장하고 있다고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신다. <붓다프로젝트>와 도라지 전과를 선물로 드렸다.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다. 11:30에 남하면 대야리에 있는 베지나랑 채식 식당에서 점심 공양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산색이 운무에 감싸이면서 수묵 경계로 들어간다. 선생님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다. 고향이었던 거창의 옛 정취를 느껴보려고 강변을 드라이브하였으나 옛 모습 간 곳 없고 신 조성된 블록 타일로 이뤄진 각진 건물 덩어리만 보인다. 물론 건물 중간 중간에 충치 먹은 이빨 모양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옛집도 끼어있지만. 거창국민학교를 오갈 때면 항상 지나치던 고목은 아직도 길 가운데 서 있는데 늙은 몸을 부지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진주로 돌아오다. 비가 세차게 내린다.
2022년8월31일(수)흐림
아침 일찍 유재상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오다. 어제 드린 붓다프로젝트을 읽다가 의문이 생긴 것을 물어보신다. 자기는 불교에 초심자라 자처하시며 제자가 쓴 책이라도 정성스레 읽으신다. 선생님의 거실에 걸린 편액이 <坐月芳樽傾竹葉 좌월방준경죽엽>이었음을 상기하고 그 문장이 나오는 시를 찾아보다.
憶江南李處士居-崔匡裕
억강남이처사거-최광유
江南曾過戴公家, 강남증과대공가
門對空江浸曉霞; 문대공간침효하
坐月芳樽傾竹葉, 좌월방준경죽엽
遊春蘭舸泛桃花; 유춘난하범도화
庭前露藕紅侵砌, 정전로우홍침체
窓外晴山翠入紗; 창외청산취입사
徒憶舊遊頻結夢, 도억구유빈결몽
東風憔悴泣京華. 동풍초췌읍경화
강남 이 처사의 집을 회상하며-최광유
강남에 살 때 대공의 집을 방문했는데
문 앞의 공강은 새벽 놀에 잠겨있었지
달밤에 술통 앞에 놓고 죽엽주도 따르고
배 타고 봄 놀이할 때 복숭아꽃도 떴었지
뜰 안의 이슬 머금은 연꽃 섬돌에 비치고,
집 밖의 비 갠 산의 푸르름이 창안에 들어왔지
옛날 놀던 일들 공연히 꿈속에 자주 떠올라
봄바람 불 때마다 초췌한 몰골로 도성을 그리네
최광유는 신라말의 문인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왔다. 최치원과 잘 아는 사이이다. 그의 시가 동문선에 실려 있다.
연경보살은 공양주 소임을 당분간 쉬겠다고 했다.
자기가 바로 시간이다. 자기 이외에 따로 시간이란 없다. 자기가 질문이며 자기가 답이다. 자신이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게 살아가라. 자기의 삶이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味知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다. 모든 아는 것은 이윽고 흩어지고 시들어진다.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가면 어김없이 ‘알 수 없음’으로 스며들고 만다. 그러나 알 수 없음은 불가지론도 아니고 신비도 아니다. 그냥 겸허함이며 말-없음이며 깊은-쉼이다. 그러기에 알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며 선물이다.
2022년9월1일(목)흐림
오후에 혜진스님 와서 대견스님과 불조사 선원에서 하안거 지낸 이야기 하다. 불교의 사회적 대응과 전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2022년9월2일(금)흐림
오후에 아미화네 아파트를 방문하다. 약간 몸살 기운이 들어 약을 먹고, 동방호텔 사우나를 하고 쉬다.
2022년9월3일(토)흐림
태풍 힌남노 온다고 뉴스가 떠들썩한데 아직도 조용한 편이다. 저녁 7시. 밤에 보슬비가 내린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분석을 끝내다.
첫댓글 알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며 선물이다!
마 하 반 야 바 라 밀 _()_
깨달은 성자도 어릴때 자란 고향에서는 무시당하고 대접받지 못한다고 들었는데요.
스님은 학창시절 선생님에게도 존경받는 제자였다니.. 진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