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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하지만 3월 23일부터 4월 13일까지 지난 3주 동안의 봄날은 참으로 행복했다. 살다 보니 생애 첫 초대사진전을 열었다. 꽃피는 남도 바닷가 여수 해안통 갤러리에서의 ‘몽유운무화’ 전시회에 수많은 선후배 벗들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축하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 ▲ 매화꽃이 피는 봄밤에 비가 내리고 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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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몇몇 친구들은 뒤풀이 술값과 밥값 등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 지리산행복학교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동갑내기 친구들인 대전의 설산 김영기, 여수의 한우물 김현대, ‘여수 회천사’ 오종문, 하동 일자르디노 펜션의 이상주·장숙남 부부 등과 ‘지리산 카페’ 젊은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많은 분들이 기꺼이 사진작품을 구매하는가 하면, 3월 28일의 음악회 및 육필시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출판기념회에는 많은 분들이 찾아와 갤러리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뒤풀이 참석자 40명 정도를 예상하고 횟집을 예약했는데 80여 명이 넘게 참석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직접 오지 못하고 성원을 보내 주신 분들이나 그 모두가 고맙고 고마울 뿐이니, 이 환한 봄날에 베풀기는커녕 잔뜩 신세만 지고 말았다.
피아니스트 이혜란 관장이 운영하는 여수의 해안통 갤러리는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 사실 이혜란 관장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꽃피는 봄날, 여수에서 사진전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덜컥 전시회를 시작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 ▲ (위) 매화꽃이 만발해 환한 터널을 만들고 있다. 이런 길이라면 지구 끝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래) 구례군 산동의 산수유꽃이 폭포와 더불어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저녁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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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 관장은 예고와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독일 유학파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음악인의 길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남편의 고향인 여수로 내려와 20여 년을 살았다. 고향 여수에서 정치의 뜻을 펴려던 남편은 세 번의 도전 모두 안타깝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역에서의 ‘착한 선거’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뒤늦게 깨달으면서 깊은 내상을 입은 나머지 불행하게도 3년 전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여수에 홀로 남게 된 이혜란 관장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남편의 유지인 ‘남해안발전연구소’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마침내 어릴 때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그곳이 바로 여수산물도매시장 2층을 빌려 지난해 문을 연 문화곳간 ‘해안통 갤러리’였다. 돈이 되지 않는 이곳을 운영하기 위해 서울의 집마저 팔아야만 했다. 문화의 불모지인 여수에서 그림과 사진, 피아노 연주와 시낭송 등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2층 갤러리 창가에는 그녀의 꿈인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너머로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과 돌산대교, 그리고 여수 중앙동 1번지인 장군도 위로 갈매기들이 날고 있다. 이른 아침마다 해무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보며 홀로 피아노를 치는 이혜란 관장의 심사를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생애 첫 사진전 작품 20개에 주문 30개 이상
지난 봄날들을 돌이켜보니 꽃피는 남도 여수에서 첫 사진전을 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 아래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고, 커피향 속으로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갤러리, 바로 이곳에 나의 몽유운무화 사진들이 걸려 있으니 참으로 꿈만 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다 마침내 나의 생애 첫 사진전은 완판을 넘어섰다. 서울의 인사동을 마다하고 첫 사진전을 남도의 끝 여수에서 열었지만, 의외로 엄청난 호응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해안통 갤러리에서 여러 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막바지에 부랴부랴 사진 추가 인화를 하고 액자를 더 주문해야 했다. 작품 20개를 내다 걸었는데 30개 이상의 사진들이 나의 품을 떠나 고맙고 고마운 이들의 집으로 갔다. 그 덕분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던 6만 원짜리 삼각대를 34만 원짜리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초대사진전과 더불어 마침내 생전(生前)의 육필시집(肉筆詩集)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출간됐다. 죽지도 않고, 아직 새파란 나이에 자선 육필시집이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문단활동 30년 만에 펴낸 다섯 권의 시집 중에서 내 나이에 맞게 53편을 골라 괴발개발 손글씨로 쓴 것이다. 본문을 보지 못하도록 비닐포장을 해놓았는데, 디자인은 소박하면서도 고급지를 쓴 것 같다.
그런데 초판을 300부만 찍었다고 한다. 처음엔 “아니, 그것밖에?” 하고 반문하려다 생각해 보니 아예 한정판 300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애장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침체된 출판경기를 벗어나려는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미리 많이 찍어봐야 안 팔리면 그게 다 적자일 것이고, 주문 들어온 뒤에 다시 찍어도 그리 늦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많은 분들이 구매를 하다 보니 단 며칠 만에 2쇄를 찍었다고 한다. 저자본으로 딱 10권만 보내 주니 이것을 누구 코에 붙이나 은근히 걱정도 됐다. 동료 선후배 시인들에게 지금까지 받아온 시집만도 수백 권인데,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사실 4년간 미뤄왔던 육필시집 출간 때문에 사진전시회를 동시에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7년 만에 신작시집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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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봄날은 속도전이었다. 갤러리와 시낭송 콘서트 등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야생 모드’로 돌아가 야생화를 찾아 산속을 헤매었다. 옛 어른들의 말씀 중에서 ‘화무십일홍’, ‘새옹지마’, ‘호사다마’라는 말을 깊이 새길 때가 되었다. 자꾸 상승기류를 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강원도 그곳의 석회암 벼랑 ‘뼝대’ 위에 피어난 동강할미꽃처럼, 납작 엎드려 막 피어난 산자고처럼 말이다.
그 와중에도 모터사이클 안전기원제만은 빠질 수 없어 경북 상주에 다녀왔다. 이름하여 ‘BMW 모토라드 시즌 오프닝 투어 및 안전기원제’였다. 봄빛 완연하다 못해 더운 날, 상춘객이 밀리는 섬진강을 벗어나 경북 상주를 달리는 길은 나비처럼 한층 가벼웠다. 전주와 공주, 그리고 충주, 진주, 상주 등 한때는 부족국가 이상의 도읍이었을 주(州)자 돌림의 아름다운, 너무 크지 않은 도시들은 아름다웠다. 지방도를 따라 구례-남원 실상사-함양-거창-김천-상주, 그리고 다시 상주-황간-영동-무주-장수-남원-구례-하동의 꽃길들을 나의 흑마를 타고 달리고 달렸다. 카메라를 메고 솔로 투어링만 하다가 모처럼 바이크 대열에 합류해 꽃길을 달리니 내내 행복했다.
- ▲ 1 평사리 부부송을 카메라에 모시고 다니다 다중촬영으로 바닷가 갈매기들과 어울리게 했다. 2 경북 상주서 열린 모터사이클 안전기원제. 올해도 라이더 대표로 안전기원문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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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 낙동강변 도남서원 앞에서 전국의 라이더 1,000여 명이 모여 안전기원제를 지냈다. 글쟁이 중에는 내가 유일한 셈이니 해마다 안전기원문을 낭독해 왔다. 올해는 행여나 종교적 갈등 등의 이유로 돼지머리 고사상을 차리지 않고 안전을 기원하는 시낭송 형태로 했다. 그 보답으로 BMW 본사에서 그 비싼 앞뒤 타이어와 엔진오일을 무료 교환해 주기로 했다. 가난한 시인 라이더에게 해마다 이 정도라도 후원해 주니 고마울 수밖에.
사실 바이크 1,000대 이상이 모인 상주는 그 자체로도 장관이지만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얼굴만 봐도 반가운 전국의 라이더들, 일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길 위에서 만나면 수신호만으로도 동지가 되는 두 바퀴 위의 낭만파 인생들이 아닌가.
올해도 한국에 사는 외국인 라이더들, 그리고 이지혜 선수와 더불어 여성라이더들도 많이 참가했다. 라이더의 최고수, 절대고수는 더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더 멀리, 더 멋지게, 더 오래 달리며 길 위에서 물처럼 흐르며 바람과 한 몸이 될 줄 아는 사람이다. 상주에 사는 금산여자 황구하 시인도 잠깐 들러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커피도 한 잔했다.
아무쪼록 올 한 해도 안전 라이딩을 다짐했다. 전주의 한 라이더가 낭독 중인 나의 뒷모습을 찍어 주기도 했다. 살다 보면 자리이타 행은 못하더라도 남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는 삶이 이어지기를 다짐하는 날이었다.
‘바람난 여인’ 얼레지꽃들이 서서히 져
먼 길을 돌아와 그 산 그 숲속에 들어가니 ‘바람난 여인’ 얼레지 꽃들이 봄나들이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덜컥 생애 첫 사진전을 벌여 놓고 여수 해안통 갤러리에서 고마운 이들에게 참으로 뻘쭘하게 감사의 인사를 하다가 다시 홀로 깊은 산중에 들어서니 고요하고 고요했다. 한참을 계곡 바위 위에 누웠다가 얼레지 꽃무리들에게 다가갔다. 그래, 이런 봄날에는 ‘발정난 수캐’보다는 ‘바람난 여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며칠 뒤 다시 가보니 어느새 얼레지 꽃들이 지고 있었다. 전시회다 뭐다 정신없이 쏘다니다 봄비 오시는 그 숲속에 다시 들어가니 색이 바랜 채 거의 다 지고 있다. 그나마 겨우 몇 송이 얼레지 꽃들도 빗속에 연보라 치마를 모두 내리고 있었다. 복수초나 얼레지 등은 밤새 꽃잎을 오므렸다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꽃잎을 펴는 늦잠꾸러기들이다.
그나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하루 종일 꽃의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 질 무렵이면, 그러니까 늙은 꽃들은 빗속에서도 꽃잎을 다 오므리지 못하고 최후의 춤을 춘다. 우중의 계곡에서 치마를 반쯤 걷어 올린 얼레지 꽃 두 송이를 만났다. 빗방울을 한껏 머금고 살짝 빛바랜 얼굴로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회자정리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틀 동안 우중 안개 속의 산을 헤매다 천만다행으로 몽유운무화 사진을 찍었다. 비로소 이른 봄부터 꿈꾸던 얼레지를 짙은 안개 속에서 만난 것이다.
하동의 화개장터 벚꽃 축제가 열리는 주말엔 내내 봄비가 내렸다. 벚꽃을 피우던 봄비가 그 환한 벚꽃들을 순식간에 지우고 말았다. 피우고 지우는 꽃비, 그날은 주말인데도 사진전시 중인 해안통 갤러리에는 못 가고 창원 KBS 녹화 때문에 들렀다가 삼천포의 시노래 콘서트에 다녀왔다. 폭우를 맞으며 모터사이클을 타고 벚꽃이 지는 19번국도를 달렸다. 한번 젖은 나무는 더 이상 젖지 않는 법, 피할 수 없다면 ‘먹구름 우산’을 덮어쓰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2박3일 동안 주독을 뺄 겸 카메라를 들고 틈틈이 고분과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 남해 바닷가 파도 위에 평사리 부부송을 올리고 막 떨어지는 동백꽃, 그 나무둥치에 부부송을 새겼다. 경남 고성 송학동의 고분, 소가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분 잔디밭에는 민들레가 피고 지고 있었다. 민들레 하얀 홑씨들이 거대한 고분을, 그 가볍고 여린 것들이 지구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날마다 실험 중인 다소 복잡한 계산의 다중촬영 사진들을 미리 공개할 수는 없으니, 아직은 다만 기본적인 다중촬영 기법의 사진들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보이는 그대로 찍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데, 조금 더 생각하게 하는 ‘그림’ 사진을 시도하려니 하면 할수록 허기가 진다. 하지만 그래서 또 덤벼보는 재미도 솔찮다.
마침내 섬진강 벚꽃들이 꽃비를 뿌리기 시작하자 3년 전 지리산에서 70년 만에 되찾아낸 조선 남바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하얀 꽃잎 뒤에 분홍빛 붓칠을 한 듯한 모습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꽃들이 저마다 다른 붓칠의 분홍빛을 담고 있으니 ‘다양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를 인정해 주는 ‘따로 또 같이’를 증명해 주는 생명평화의 진경이 아닐 수 없다.
어여쁜 자란 304송이 사진으로나마 선물하고파
지난 4월 11일에는 북상하는 벚꽃을 따라 경기도 용인에 다녀왔다. 금요일 새벽에 길을 나서 전주-서울-광화문-용인-여수를 돌아 4박5일 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다. 전주에서 본사로부터 후원 받은 모터사이클 타이어를 갈고, 서울 목동 방송국에 들렀다가 인사동에서 김주대 시인의 문인화전을 잠시 보고,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벗들과 저녁을 보냈다. 다시 용인으로 달려가 방송인 김미화의 ‘호미카페’에서 지리산행복학교 출연 한마당 잔치를 벌이고는 곧바로 여수로 내려와 사진전 마무리 작업을 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으며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힘이 났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고맙고도 고마운 내 생의 첫 봄날들이 이렇게 지나갔다. 용인 가는 길에 잠시 산속에 들어갔더니 진달래꽃들이 산등성이 밤나무들 사이로 환하게 피어 있었다. 이제 조용히 진도의 팽목항에 다녀와야겠다. 진도와 해남의 바닷가 기슭에는 아이들이 환생한 것처럼 자란(紫蘭) 꽃이 필 때가 되었다. 어여쁜 자란 304송이를 사진으로나마 곱게 담아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슬프고도 환한 이 봄날에 아이들의 영정 사진 옆에 진도의 토종 꽃사진이라도 바치고 싶다.
[한 편의 시]
- ▲ 비 내리는 봄밤의 현호색이 푸른 기운의 안개 속에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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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이원규
울먹울먹
산중 오지마을의 논골 습지에 먹을 갈아놓고
남몰래 보랏빛 붓으로 한 획을 긋는데
각시여, 나의 각시여 일 년이 걸린다
해마다 제자리에서 자음 모음 열흘을 망설이다
마침내 꽃잎 하나 지우며 겨우 한 획의 편지를 쓰다 말고
내년 이맘때에야 다시 붓을 들리라
아무래도 나는 너무 자주 흘림체로 휘갈겼다
이 산 저 산 앉은뱅이 각시붓꽃들을 이어보면 무슨 글자가 될까
삼만 리를 걸어도 해독할 수 없다
그대 또한 깊은 봄밤의 두더지처럼
이불 속에서 돌아누우며 끄응 쉼표를 찍고
나 또한 지리산하 섬진강변에서 별똥별처럼
털썩 무릎을 꿇으며 한 획을 긋는다
각시여, 나의 각시여 대체 이 무슨 상형문자인가
고향 밖으로 떠돌며 이승 내내 울먹울먹 먹을 갈아도
끝끝내 못다 쓸 나의 족필(足筆) 한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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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호는 좀 늦게 올라와 있네요.
고맙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어요^^
슬프고도 환한 봄날..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
밤 사진과 매화꽃 터널 사진 좋아요
올려주셔서 덕분에 글 잘 봤습니다^^
시인님 글이 너무 훌륭해서 감탄스럽습니다.
글은 이렇게 쓰는거구나..싶어요.
이 시인님은 시만 좋은 게 아니라
산문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요안나님 잘 읽었습니다~언제 얼굴 뵈야 할텐데요...
이시인님 행복한 봄날을 보내셨네요~
자란 304송이 사진으로 선물 하고 싶은 그마음 알것 같아요..
그러게요.
한 번 내려가야 할텐데.
보내주신
레미제라블 잘읽고 있습니다
정말 대작이네요
다음 읽을사람 예약받았어요
약속 지켰죠. 늦었지만
예약자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힘들고 허기지지만 덤벼볼만 하다는 말씀에 공감되네요. 저도 가끔은 힘든일때는 덤벼불거든요. ㅋ
너무 감동되는 글 ..잘보고 있습니다. 요안나님 어떻게 생기셨는지 궁금하기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