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항복한 우크라이나 군인을 최소 15명 이상 현장에서 즉결 처분(처형, 사살)했다고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가 2일 주장했다. 이 기간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 요새를 함락시키며 점령 지역을 넓혀간 시기다.
유엔도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후 2023년 초까지 1년간 최소 29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가 러시아군에 의해, 최소 25명의 러시아군 포로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처형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HWR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전쟁 관련 각종 영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최소 15명의 우크라이나군 포로가 현장에서 숨졌다"면서 "추가로 6명이 더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항복 직후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병사/텔레그램 캡처
HWR에 의해 확인된 사례는 모두 5건이다. 지난 2월 25일 도네츠크 전선에서 참호에서 손을 들고 나와 방탄조끼를 벗고 바닥에 엎드린 우크라이나 군인 최소 7명을 향해 러시아군이 총격을 가했다. 또 같은 달 19일 SNS에 유포된 영상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항복한 비무장 상태의 우크라이나 군인 3명을 총살하는 모습이 담겼다. 작년 12월 2일과 12월 27일에 올라온 영상에서도 유사한 총격 장면이 포착됐다.
HRW는 지난 2월 16일 게시된 또다른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6명이 총살된 것으로 판단되나, 아직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 영상이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군 희생자는 21명으로 늘어난다. 이 단체는 "항복하거나 부상한 군인들을 총격 등으로 사살하는 것은 국제인도법상 명백히 금지된 것"이라며 "러시아의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강경 무장세력도 실제로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쟁사태 직후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맞서 싸운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네오나치' 단체인 '루시치(Rusich)'는 계속 우크라이나 포로들의 처형을 주장해왔다. 실제로 처형 비디오를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HRW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측에 전쟁 포로 처형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는데,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자국군 포로 총 54명이 불법 처형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고, 러시아 국방부 측은 답변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앞서 우크라이나 포로 처형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옴부즈맨 드미트리 루비네츠 전 최고 라다(의회) 의원은 지난 4월 초 러시아군의 자국군 전쟁포로 처형 사실과 관련,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에 공식 서한을 보내 "전쟁 포로 살해는 제네바 협약 위반이자 심각한 국제 범죄"이라며 "국제사회는 전쟁 범죄의 흔적은 감출 수 없고, 공소시효도 없다는 명확한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의 러-우크라 포로처형 보고서 발표/영상 캡처
그러나 유엔은 우크라이나군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엔은 지난 3월 러-우크라 모두 상대국 포로의 처형및 부당한 대우를 폭로하고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소 29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가 러시아군에 의해 처형됐다고 밝혔다. 또 석방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은 수감중 러시아 군인이나 관리들로부터 구타와 전기 충격, 살해 위협, 모의 처형 등 각종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가족과의 접촉, 적절한 음식 및 의료 지원이 거부되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뎌야 했다고 분개했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군도 비슷한 규모(25명)의 러시아 군인을 2022년과 2023년 초에 처형했다고 폭로했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44명을 대상으로 한 유엔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고문이나 학대에 대해 신뢰할 만한 진술을 했으며, 이중 13명은 심문 중에 나무 망치와 몽둥이로 구타당하거나 전기 충격을 받았고 모의 처형 위협은 물론, 성폭력 위협도 2건이 있었다.
러시아군 포로의 피살 장면/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당국은 또 탈환한 지역에서 (러시아 부역자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을 감금, 학대했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민간인들을 자의적으로 구금하고, 성폭력을 포함한 고문과 학대를 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 당국은 우크라이나군과 보안군에 의해 저질러진 5건의 민간인 폭력 사건을 수사한다고 발표했으나, 진전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