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 언어생활 속에 ‘같다’라는 말이 끼어들었습니다.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합니다. 60년 전쯤 국어 선생님께서 “같으면 같고 아니면 아니지 ‘같습니다’라니…그게 무슨 말이냐?”고 지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한 말을 선생님께서 소견을 확실하게 밝히라는 의미로 꾸짖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친구를 불러내어 장난삼아 풋 꿀밤을 한 대 먹이셨습니다.
요즘은 ‘같다’라는 말이 대화의 중심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확실하게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는 경우보다는 ‘같다’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어학자가 아니라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 경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하나는 ‘내 생각은 그런데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확신했다고 하더라도 ‘겸손하게 혹은 조심성 있게 말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어 보입니다.
실제 대화하는 문장과 글을 쓰는 문장은 구어체나 대화체로 나누기는 해도 단어를 달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같다’라는 단어는 어떤 것의 모양이나 성질이 같아서 쓸 때를 제외하고는 문장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문학인들의 문장에서 이 단어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이 말이 좀 더 단어나 문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문학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도 의미거니와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애매(曖昧)하고 모호(模糊)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독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데 단호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문장을 다루는 전문가가 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간혹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격의 없는 사이라면 “같다는 것이야, 다르다는 것이야? 자네 생각이 뭐야?”라고 말해 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습관입니다. 물론 대화 중에 그런 말을 들으면 지레짐작해 그렇다는 말이겠구나, 하고 말지만 바른 언어 습관은 아니어서 자칫 경우마다 간에 붙기도 하고 쓸개에 붙기도 하는 성격은 아닌가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나중에라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그럴 것 같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었노라고 둘러대도 그만입니다.
나는 ‘같다’라는 말이 ‘동일하다’라는 의미가 아닌 바에는 그런 애매한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는 대답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림으로써 농담쯤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장난삼아 쓰기는 합니다. 이내 나의 확실한 의견을 말합니다. 그러니 내 기준으로서의 ‘같다’라는 말은 책임을 피해 보겠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확실치 않을 때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편이지 결과에 따라 나도 그 결과에 편승하겠다는 의미로 ‘같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한 마디 때문입니다. 언어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임으로 표리부동한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그 선생님의 언어 철학을 따른 결과입니다. ‘같다’라는 언어문화는 사회에 만연해 그 어떤 백신으로도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이유는 두루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틀린 언어는 배척되는 것이 맞는 데 줄곧 사용된다는 것은 언어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그 의미가 대화 당사자 혹은 사회에 갈등을 조장하는 단어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그 단어로 인해 문제가 된 바는 없지만 그러는 가운데서 갈등을 조장하는 단어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때는 그런 단어를 들었을 때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고 내심 반심을 갖은 적이 있는 사람은 내 말의 의미를 무심히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먹과 말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어서 이 둘은 틀림없는 감정표현 수단입니다. 자기는 어떻게 행동하는 습관을 지녔건 상대방은 언제나 예의 바르고 어떤 것에 관해 분명하기를 바랍니다. ‘같다’라는 말이야말로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본능을 숨기고 입에 물고 우물거리다가 ‘쓰고 닮’에 무관하게 시류에 따르는 간교함에 비견할 만합니다.
'같다'는 해와 같이 하늘에 있지만 구름과 같은 말이어서 바람에 쫓기거나 비가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하늘이나 해처럼 본성을 가리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성을 숨겼으므로 장차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군가가 '같다'라고 말할 때 유심히 듣는 버룻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