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마음이 분주해진다. 유난히 축축하던 지난여름, 화창한 가을날에 하고 싶은 일을 끄적거렸다. 아직 실천하지 못한 섬 여행을 계획한다. 긴 여행이 조심스러운 요즘, 육지에서 가깝고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만한 섬을 찾아본다. 11월 운치와도 어울려야 한다. 이렇게 고른 목적지는 죽도다.
죽도의 자연미를 최대한 보존한 상화원
충남 보령에 속한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 대섬이라고 불렸으며, 원래 해안에서 떨어진 섬인데 1990년대 후반 남포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죽도는 한국식 전통 정원 ‘상화원’으로 유명하다. 죽도의 자연미를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 아래 섬 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꾸몄다. 상화원은 4~11월 금·토·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에 개방한다.
상화원 입구에서 만난 의곡당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령 200년 된 팽나무와 고풍스러운 한옥이 반긴다. 의곡당은
고려 후기나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화성 관아의 정자다. 화성시에 있던 건물을 이곳으로 이건했다. 정자를 옮겨 지을 때 낡아서 사용하지 못했으나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큰 기둥과 보는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회랑 중간중간에 전시 중이다.
지붕 있는 회랑은 상화원의 상징과도 같다.
상화원을 돌아보는 방법은 단순하다. 섬 둘레를 따라 조성한 회랑이 중심 탐방로다. 2km에 이르는
회랑은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데, 지붕을 설치해 볕이 강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편안히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회랑을 따라 걸어보자.
청정한 기운이 가득한 회랑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자.
회랑 옆으로 해송과 죽림이 우거져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다. 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 풍광이 웅장하고, 스며드는 바닷바람이 청량하다. 회랑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회랑 입구와 출구 쪽에 우리나라 정원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을 전시한다. 입구 쪽에 취당
장운봉, 출구 쪽에 소치 허련의 후손인 임전 허문의 작품이 있다.
다양한 조형물이 바다를 배경으로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자연과 어우러진 조형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언덕길 풀밭에 사슴 가족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표현한 ‘행복한 사슴 가족 옥돌상’,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한 ‘반가사유상’, 사슴들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관음보살상과 열두 사슴들’ 등 예상치 않은 길목에서 만나는 조형물이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모든 입장객에게 떡과 음료를 제공한다.
자연의 멋을 그대로 지키고자 한 상화원에는 그 흔한 카페 하나 없다. 대신 입장객에게 떡과 음료를
제공한다. 회랑 입구와 약 450m 떨어진 방문객센터에서 입장료 영수증을 보여주면 된다. 방문객센터 주변에 앉을 곳이 있다. 해송 아래 앉아 졸졸 흐르는 연못과 그 너머 바다를 바라본다. 이런 경치에서 맛보는 떡과 커피는 단연 꿀맛일 수밖에.
바다와 가까운 석양정원
가벼운 휴식 후 다시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하나는 종전 회랑으로 가는 길, 다른 하나는 아래쪽 석양정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석양정원은 종전 회랑 시작점에서 500~800m에 해당하는 구간 아래쪽에 추가한 길이 350m 회랑이다. 이곳 회랑은 바다와 가까워 넘실거리는 파도, 각양각색의 갯바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마련된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쉬자. 상화원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노을 질 무렵에는 만족도가 극에 달한다.
바닷바람을 느끼며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는 명상관
석양정원 일대에는 바다를 벗 삼아 책을 읽는 해변독서실과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는 명상관이
있다. 해변독서실에는 의자와 책상, 전기스탠드를 비치했다. 미처 책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무인 판매대를 이용하자. 단편 〈목걸이〉 〈크리스마스 선물〉 〈세월 속 삶의 무늬들〉을 실은 문고판 책자를 판매한다. 명상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잠시 눈을 감고 바닷바람을 느끼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보존 가치가 있는 전국의 한옥을 이건·복원한 상화원 내 한옥마을
석양정원 회랑이 끝나는 지점에 한옥마을이 자리한다. 산언덕에 고풍스러운 한옥이 층층이 앉았다. 일반 가옥부터 동헌이나 객사까지 보존 가치가 있는 전국의 한옥을 이건·복원했다. 섬의 자연미를 살리고 정자와 연못을 더해 한국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한옥이 계단식으로 배치돼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산과 한옥,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한옥이 수려하게 어우러진다. 한옥 지붕의 고운 선을 따라 바다가 이어지는 풍광이 그만이다.
야간 조명이 운치를 더하는 대천해수욕장
상화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보령9경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대천해수욕장이 있다. 조개껍데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잘게 부서진 패각분 해변이 특별하다. 곳곳에 다채로운 조형물과 포토 존을 설치했으며, 야간에는 조명이 운치를 더한다. 서해안 낙조를 볼 수 있고 야간 경관도 매력적이라 저녁에 찾는 이들도 많다. 대천해수욕장은 스카이바이크와 짚트랙, 카트 등 체험할 거리가 다양하고, 숙박 시설과 음식점, 카페 같은 편의 시설을 갖춰 사계절 관광지로 사랑받는다.
보령 충청수영성에서 전망이 근사한 영보정
보령 충청수영성(사적 501호)도 상화원에서 멀지 않다. 조선 시대에 설치한 석성으로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고, 서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는 역할을 했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해 예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성내 정자인 영보정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근사하다. 충청수영성은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 주목받았다.
우유를 테마로 꾸민 체험장 겸 카페 ‘우유창고’
‘우유창고’는 최근 보령에서 뜨는 명소다. 유기농 우유 생산업체 보령우유가 운영하는 체험장 겸 카페로, 우유를 먹고 보고 즐기는 공간이다. 목장과 우유 가공 공장 한쪽에 우유갑 모양으로 꾸민 우유창고가 눈길을 끈다. 목장 견학, 유기농 치즈와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우유를 활용한 음료와 빵도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