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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장례미사 때는 시작예식의 성호경, 인사, 참회를 생략하나요?
생략하지 않습니다. 장례미사는 다른 모든 미사와 같은 방식으로 거행합니다.(주교예절서 832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전에 나온 1962년 로마 미사 경본에는 장례미사가 입당 후에 바로 본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주례사제와 교우들이 이미 죽은 이의 집에서부터 모여 출관예식을 거행하고 함께 성당으로 행렬하였기에 장례미사를 시작하면서 성호경, 인사, 참회 등의 예식을 다시 거행하는 것은 부당한 ‘중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우들은 출관예식에 참여하지 않고 성당에 모여 있으며, ‘죽은 이의 집에서 하는 예식을 거행하지 않았을 경우 성당 입구에서 대신 거행하는 예식’(장례예식 36항)에도 참여하지 않고 신자석에서 기다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당 입구에서 거행하는 예식은 미사와 이어지는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장례미사는 시작예식 일부를 생략하지 않고 다른 모든 미사처럼 거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모든 교우들이 처음부터 함께 모여서 행렬에 온전히 참여하는 성지주일 미사와 부활성야 미사의 경우는 ‘미사에 합당하게 참여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성호경, 인사, 참회 예식을 반복하지 않도록 생략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신앙의 신비여!”의 세 가지 양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성체성혈 축성 직후에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하면 교우들은 다음의 양식문 가운데 하나를 골라 ‘환호’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가 양식),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나 양식), “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다 양식).
교우들이 함께 외치는 이 환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개혁의 결실인 1970년 『로마미사경본』에 새로 도입되었는데, 세 가지 양식 모두,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주님의 명에 따라 파스카 사건을 기억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파스카의 구원을 선포한다는 내용의 응답입니다.
가 양식은 이러한 내용을 표현하는 기본 양식이며 나 양식은 가 양식이 반영하는 1코린 11,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일 뿐입니다.
(나 양식에서 “주님의 죽음”은 사실상 가 양식의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며 파스카 사건을 가리킵니다.)
다 양식은 중세 이후 기도서나 성가책에 자주 나오는 라틴어 경문으로서, 파스카 사건을 가리키는 “십자가와 부활”, “구원”을 영광송으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결국, 가벼운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세 양식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전례시기나 축제일에 따라 선택한다는 규정도 따로 없습니다. 오히려, 전례문 양식을 빈번히 바꾸면 교우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며, 여러 양식에 붙은 선율들을 교우들이 모두 기억하여 이 ‘환호’를 노래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전례력 돋보기] 보편 전례력과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9월 20일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하 대축일)입니다. 이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로마 가톨릭 전례를 거행하는 곳에서 한국의 순교 성인들의 모범을 기억하며 전구를 청합니다. 바로 이날이 보편 전례력에 의무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유학 중에 9월 20일이 되면 다른 나라 신부님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으며 으쓱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호에서는 9월 20일 대축일을 통해 전례력의 몇 가지 원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보편 전례력과 고유 전례력
로마 전례력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름 그대로 보편 교회에서 통용되는 ‘보편 전례력’과 어떤 지역 교회나 수도 가족이 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성인들을 특별히 공경하는데 사용하는 ‘고유 전례력’이 있습니다. 고유 전례력은 지역 교회에서 작성하여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고유 전례력 거행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고유 전례력에 포함되었다가 교황청의 권고로 지내지 않게 된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들 수 있습니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지침」(이하 지침)에 따르면 “고유 전례 거행들은 고유 전례력이 과중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 성인의 축제는 전례주년 안에서 한 번만 지내야 한다.”(50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9월 20일에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전 세계 교회가 기억하기 때문이죠.
등급의 변경과 경축 이동
9월 20일 대축일은 사실 보편 전례력에는 대축일이 아닌 의무 기념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의무 기념일이란 그 성인의 보편적인 중요성 때문에 모든 교회가 기념해야 하는 날이고 선택 기념일은 말 그대로 그 성인을 기념하는 전례를 선택할 수 있는 날입니다. 매일미사 책에 보면 어떤 기념일에는 ‘성 ○○○ 기념일’로 그 성인을 위한 전례가 안내되어 있고, 어떤 날에는 그날의 성인의 이름만 작게 소개되어 있는데 이것이 의무 기념일과 선택 기념일의 차이입니다.
아무튼 9월 20일은 본래 의무 기념일인데 우리나라의 고유 전례력에서는 이날을 대축일로 거행합니다. 이는 “필요하다면 거행의 등급은 변경할수 있다.”는 56항의 지침에서 허용한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이날을 가까운 주일로 경축 이동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따른 것입니다. “‘전례일의 등급과 순위표’에서 연중 시기 주일보다 등급이 높고 신자들의 신심에도 잘 맞는 전례 거행이 주간 평일에 오면 신자들의 사목적 선익을 위하여 연중 시기 주일로 옮겨 지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는 모두 그 전례의 미사로 거행할 수 있다.”(58항) 올해는 9월 20일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이 지침에 의해서 9월 22일 주일로 대축일을 옮겨 많은 신자들이 함께 순교 성인들을 기리게 하는 것입니다.
9월 26일 대신 9월 20일
왜 우리는 9월 20일을 한국 성인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낼까요? 예전에 이분들이 복자였을 때는 9월 26일이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이었습니다. 먼저 시복되신 79위 중에 9위의 순교일이 9월 26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시성되시면서 9월 20일로 대축일 날짜가 옮겨졌는데 그 이유도 전례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순교자 축일을 보편 전례력에 포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미 보편 전례력의 9월 26일은 초대 교회의 순교자이신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우리 성인 순교자들 대축일을 수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많았던 7위가 순교한 날인 9월 20일로 날짜를 옮기게 되었고, 직접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청을 드려 9월 20일에 우리나라 순교 성인들을 모든 교회가 공경하도록 보편 전례력에 포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순교자는 단순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다 함께 칭송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기쁘게 맞이하며,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도 이것저것 재거나 핑계 대지 말고, 조금 더 뜨겁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조금 더 단순하게 그분의 가르침을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36) 미사보 착용은 남녀차별이다?
하느님 앞 겸손의 뜻... 의무 아니라 자유
미사 시간만을 위한 특별한 복식들이 있지요. 주로 신부님이나 전례 봉사자의 복식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직자나 전례 봉사자 외의 신자들도 미사 때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있습니다. 미사 등의 전례 중에 세례를 받은 여성 신자들이 쓰는 베일, 바로 미사보입니다.
교회가 전례 중 미사보를 사용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씀(1코린 11,2-16)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1,5) 전례 때 여성은 베일을 써서 머리를 가리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11,9)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구절들만 봐서는 남녀를 차별하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정말 미사보로 남녀를 차별한 것일까요? 사실 바오로 사도는 오히려 교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한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성의 머리를 가리는 것에 관해 언급한 후에 바로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온다”(11,11-12)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편지에서도 성별, 출신 모두 관계없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갈라 3,27-28)라며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이 당시 그리스도교 풍습을 말한 것일 뿐, 절대적인 규칙이나 본질적인 신앙의 행위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코린토 1서 강해」를 집필하신 이영헌 신부님(마리오·광주대교구 성사전담)은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시 코린토의 문화 안에서 예의였다”면서 “바오로 사도가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은 기도할 때 예의를 지키도록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살던 시대의 문화에서 시작된 미사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사보에는 더 큰 의미가 담기게 됐습니다. 세례 받은 신자가 입는 ‘흰옷’을 나타내게 된 것이지요. 세례성사에서 흰옷은 세례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입었다”(갈라 3,27)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상징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43항) 이런 이유로 세례성사의 흰옷을 입는 예식에서 미사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미사보는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도 뜻합니다.
미사보 착용은 의무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쓰고 싶은 분만 쓰시면 되지요. 미사보에 있어서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권한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합니다.
혹시 ‘예수님을 입고’ 더 깊이 예수님의 성찬례에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미사보를 쓰고 미사에 참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남성분들은 미사보를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8) 전례 거행과 표징
전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거행합니다. 이 거행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의 신비로 초대하는 전례는 거룩한 표징을 통해서 거행됩니다. 이는 교회가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며,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비를 소유한 성사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이루고 세상에 드러내는 성사인 교회를 보여주는 가장 탁월한 도구가 바로 전례입니다(전례 헌장 2항 참조).
구원의 성사라는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전례가 표징을 통해 거행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합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 - 이성적 차원을 포함하는 - 입니다. 인간의 이성적이고 영적인 특성은 육체를 통해서 표현되고, 육체의 움직임은 영적인 것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표징과 상징은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징과 상징 - 대표적인 도구로 언어가 있습니다 - 을 통해 드러내고 동시에 그 표징과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실체를 만나기도 합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전례 예식이 지닌 성사적이고 상징적인 구조는 이러한 인간의 실존을 수용하신 하느님의 사랑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참조). 이러한 사실을 바오로 사도는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다.”(콜로 1,15)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신앙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원성사(原聖事)’이시며 모든 전례 표징의 첫째이며 근본이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계시 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육을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근원적인 표징이며 성사이신 것처럼, 그분의 몸이며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모든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의 표징이며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례 거행은 외적으로 보이는 형식만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전례 헌장 7항).”
따라서 교회의 전례 거행은 인간의 감각을 요구합니다. 즉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표징은 인간의 오감 - 후각, 미각, 촉각, 시각, 청각 - 을 통해 우리를 신비로 인도합니다. 또한 전례에 사용되는 표징은 언어라는 상징 체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언어 더 원초적으로, 말은 우리가 다른 감각을 통해 만나는 표징의 의미를 좀 더 쉽게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인간의 말을 통해 다가오십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로 하느님께 응답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따라서 말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효력을 내게 하고, 인간이 응답할 수 있게 하는 자발적인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표현, expression), 그 말씀을 들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 안에 새깁니다(인상, impression).
이처럼 파스카 신비는 전례 거행의 중심을 이루고, 강생의 신비는 그 전례가 존재하는 근거가 됩니다. 전례는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 곧 구원의 신비와 만나도록 인도합니다. 물론 구원을 현재화하는 전례는 늘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만나고 이해할수록 전례는 구원을 살아가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전례 안에서 온몸으로 구원의 신비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명절(설, 한가위)에 거행하는 합동위령미사 때 제대 앞에 차례상을 차려도 되나요?
명절 합동위령미사를 거행할 때, 제대 앞에 차례상을 마련하거나, 제대 주위에 예물봉헌자의 조상 이름을 써서 ‘지방’처럼 붙여두거나, 미사 중에 조상에 대한 분향 예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사를 차례나 제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제대와 제사상(차례상)을 혼동하게 하는 그 어떤 방법도 피해야 합니다.
제사(차례)는 조상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분을 위로하는 예식인 반면에, 미사는 성자 그리스도의 파스카 구원사건을 기억하고 그 은총에 감사하며 찬미하는 성사입니다. 조상에게 드리는 음식이 죽은 조상의 현존을 의미하지 않지만, 미사 때 축성된 성체와 성혈 안에는 주님께서 항상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미사와 제사는 비교할 수 없으며 혼동해서도 안됩니다.
조상을 위한 지향으로 명절 미사를 봉헌할 수는 있지만, ‘제례 예식’을 미사 중에 삽입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도 “설이나 한가위 등의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 의식을 거행함이 바람직하다.”(제135조 2항)고 명시합니다. 미사 중에는 ‘상제례의 분향 예식’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례에서 분향은 ‘봉헌 또는 존경’의 의미를 지니지만 한국 전통의 분향은 죽은 이를 애도하는 의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절 미사는 보편지향기도를 바칠 때 다함께 위령기도를 바치며 조상을 위해 기도하면 좋습니다. 추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일과 곡식으로 제대 주위를 꾸미는 것은 좋으며, 본당 상황에 따라 성당 입구나 다른 적당한 곳에 기도소를 설치하여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들의 이름을 써서 놓아둘 수 있으며 거기서 분향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13) 미사 중 침묵에 대해서 - 미사 중 “침묵”은 왜 필요한가요?
“거룩한 침묵은 거행의 한 부분이므로 제때에 지켜야 한다. 침묵은 각각의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그 성격이 다르다. 참회 행위와 기도의 초대 다음에 하는 침묵은 저마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도록 도와주고, 독서와 강론 다음에 하는 침묵은 들은 것을 잠깐 묵상하게 하며,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 거룩한 예식을 경건하고 합당하게 거행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전례 거행에 앞서 성당이나 제기실, 제의실이나 그 주위에서 미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5항).
미사 중 이루어지는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침묵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거룩한 침묵”입니다. 실제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거룩한 침묵은 … 제때에 지켜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나와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사 중 다른 때의 “침묵”의 시간이 허용되지만, 특별히 집중하는 침묵의 시간들은 분명하게 제시되고, “제때에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기도를 올리며, 주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전례는 외적으로 행해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완전한 기도가 미사라고 말하듯, 분명한 것은 전례를 통해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적인 것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기도의 시간을 놓치거나, 또는 다른 이들의 기도를 방해한다면, 전례의 정신에는 분명 어긋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사 중 침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제때에 지켜야 하고, 침묵의 시간을 미사를 봉헌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미사 중에 “침묵”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사 시간뿐만 아니라, 미사 전후로 거룩한 예식이 거행될 성전 안에서 “침묵”의 시간이 잘 지켜지는 공동체인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전례 중에, 그리고 성전 안에서 침묵이 잘 지켜진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는 주님과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고, 나아가 그 만남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우리들이 되는 데 거룩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전례는 말하고 찬미하고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침묵 속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거룩한 전례에 스며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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