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보다 내 인생이 더 소중하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이 인생에 봉사해야지 어떻게 인생이 예술에 봉사해야 하느냐.”
내가 ‘서예 인생사’를 서술하면서 보니 내 인생이 서예라는 예술 속에 묻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두렵습니다. 짧지만은 않았는 칠순의 세월 동안 내 인생을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 서예만을 위한 삶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서예는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결혼을 하여, 한옥의 모퉁이에 있는 단칸 방에서 신혼생활을 꾸렸습니다. 부엌은 한옥의 처마와 담 위를 스레트 판으로 연결하여 지붕을 만든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연탄 부엌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탁한 냄새가 피어올랐습니다. 방이 너무 좁아 집에서 결혼선물로 해준 가구들을 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밥상은 남편의 책상을 겸하였습니다. 나의 진짜 인생을 쓰려고 하니 불현듯이 그때의 생각이 납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안동으로, 구미로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 아들 둘, 딸 하나의 세 자녀를 낳아서 키웠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쯤에 집도 마련하였고, 예전의 미련도 남아 있어서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그때가 눈코 뜰 새 없이 제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딸 아이가, ‘엄마, 그때 도시락을 몇 개나 쌌어?’ 했습니다. 꼽아보니 여섯 개를 쌌었나 봅니다. 그날을 가만히 되새겨보니까 서예 때문에 가정살이를 소홀히 한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가정일이 바쁠 때는 서예의 스케쥴을 지키지 못한 일은 있어도, 서예 때문에 가정의 일을 접어 둔 일은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엄마가 붓글씨를 쓸 때 엄마 밥을 줘, 하면,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 라고 했어.’ 아마도 그런 일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곱게 기다려 준 우리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 인생에는 언제나 가족이 중심이었지 서예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 모두가 나의 서예활동을 인정해주고, 도와주었던 일들이 고맙고, 고맙습니다. 더군다난 남편은 취미로 미술사를 공부하였습니다. 미술사에는 서예사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남편과 서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아침 산책은 일상과 같았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남편은 미술사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서예는 나도 공부도 했고, 스승님들 한테 들은 것도 있어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서양미술사나 중국미술사는 주로 들으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주장이 사람이란 생업의 틈틈이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고,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고, 노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준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예는 내 인생의 틈새에서 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준 윤활유였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이 서예를 위해서 희생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들도 탈 없이 잘 자라 준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기 때문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내 인생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만약에 아이들아 잘 자라지 못하였다면 행여 내가 잘못 살았나 하는 자책감에 빠질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는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되었고, 모두들 가정을 꾸려서 우리 곁은 떠나갔습니다. 아이들이 험한 바람이 치는 사회에서 터를 잡고 잘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내 아이들은 미술분야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술은 아이들의 취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모두 자기들이 선택한 일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내가 잘못된 인생을 꾸려오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줍니다. 전시회를 할 때도 남편이 와서 거들어주고, 우리 아이들이 자기의 가족과 와서 축하를 해 줄 때가 제일 흐뭇합니다.
이제는 훌쩍 자란 손자-손녀들이 대구의 할머니 집에 오면 할머니의 서실인 담미헌에 가자고 조르곤 합니다. 담미헌에 오면 아직은 조막손 같은데, 붓을 쥐고 화선지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내 인생이 만들어 낸 한 폭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나는 서예작품보다 내 인생이 만들어 낸 이 작품을 더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서예보다 내 인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