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스쳐지나가고 난
들녘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불타버린 삶의 흔적들
그렇게 한 평생 일궈낸 삶의 흔적들
그렇게 한 평생 쌓아놓은 삶의 열매들
그렇게 한 평생 걸어온 삶의 걸음들이
한 순간에
큰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일어서야 한다.
그래서 우선 먹기 힘들어도
먹어야 하고,
물을 삼켜야 한다.
쌀 한 톨 밥 한 톨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꼭 꼭 씹어 삼켜야 한다.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눈물로도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살고,
살려면 먹어야 한다.
비정한 삶의 공식
우리가 뭐 하늘 만큼 땅만큼
크게 보여도
작은 밥 한 톨을 삼켜야 살 수 있는
쌀 한 톨에 의지해 사는 쌀벌레이다.
쌀 한 톨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하늘 땅의 정기를 다 담은 종합 에너지이다.
"오늘은 퀴즈로 수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빛이 돌고, 귀가 쫑긋해진다.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두 손을 내밀라고 한 뒤,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위에 쌀 한 톨을 올려준다.
그러고는 눈을 뜨기 전에 촉각 등을 이용해서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게 하고, 눈을 뜬 다음에는 그 무게를 맞혀보라고 한다.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무게를 가늠하던 아이들이 앞 다투어 손을 든다.
“1 그램요."
"2 그램요."
선생님 표정이 신통치 않은 것을 보고는, 아이들은 소수점까지 동원하여 더 아래로 내려가 보거나 자릿수까지 바꿔가면서 무게를 한껏 낮춰 발표한다.
"0.23 그램요."
“0.45그램요."
“0.001그램요."
하지만 이번에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정답을 얘기하지 않은 채 다음 문제를 또 낸다.
“쌀 한 톨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밥", "씨앗", "원자", "생명"... 다양한 대답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아이가
"저요 저요!"
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손을 들더니 순서가 되자
"탄수화물요"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듯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무게부터 성분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답변을 모두 듣고 나서, 홍순관 님의 '쌀 한 톨의 무게'라는 음악을 함께 듣는다.
https://youtu.be/UVL2VTkZTVU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사랑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정성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하늘의 무게
쌀 한 톨은 우리를 향한 하늘 땅의 온갖 정성과 사랑이
소복히 담겨있는 종합영양제이다.
그제야 아이들은 "아~" 하면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차원에서 쌀 한 톨을 다시 바라본다.
집중해서 마지막까지 노래를 감상하던 한 아이는 쌀 한 톨을 들고 있던 손바닥을 책상 아래 바닥까지 툭 떨어뜨리며 말한다.
"와, 우주 무겁다! 갑자기 쌀이 무거워졌어요!“
하나의 숫자를 골라 시험지에 정답을 쓰고, 숫자로 된 성적과 등수를 받으면서 어느 샌가 숫자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모든 것들까지도 숫자로 가늠하게 된다. 물론 숫자는 중요하다. 숫자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여러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그런데 숫자에만 빠지게 되면, 어른이 된 후에는 수치화하고 비
교하는 것만 남을 수도 있다. 연봉이나 아파트 평수, 자동차 크기 등의 숫자로 자신과 서로를 비교 평가하게 된다면 그건 숫자에 갇혀버린 삶이다. 행복과는 동떨어져 있다.
선생님은 아직은 유연한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느끼며 말한다.
"숫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고 아주 중요해. 그런데 그것에 갇힌다면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숫자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걸 놓치지 말자."
그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정현종 시인의 시 '비스듬히'를 읽는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시를 읽고 난 뒤에는 여기 나온 '비스듬히'라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해 본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사람인' 자처럼 서로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모양새를 움직임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어깨나 등을 맞댄 아이들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마치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힘 겨루기할 때처럼 서로 이마를 맞대고서 깔깔거리기도 한다.
이렇게 두 명씩 활동을 한 뒤에는 서로 어딘가를 기댄 모습으로 네 명, 여덟 명 등으로 인원을 죽 늘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로가 완전히 붙어있는 한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움직이세요"라고 새로운 안내를 한다. 평소보다 불편하고 낯선 움직임이 재미있는지, 교실 여기저기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 다음에는 다시 두 명이 짝을 짓게 하고서 두 명에 하나씩 1미터 정도 길이의 붉은 털실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엄마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을 때처럼 붉은 실을 잡고서 서로의 연결을 느끼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뒤에는 몇 개의 실을 더 나눠 주어 모두가 양손에 실을 잡을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붉은 실로 연결되면, 잠시 자기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연결된 전체 안에서의 나를 느껴보며 호흡을 하도록 한다. 커다란 연결망 안에서의 나를 느껴보는 이 순간에는 고요하고 깊은 숨이 교실을 채운다.
그 상태에서 잠시 머무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양손에 실을 쥐고 서 있는 상태에서 한 명의 친구만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한 친구가 움직여서 실이 당겨지면 나도 따라 움직이게 되는 활동을 통해, 한 존재의 움직임이 어떻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지 느껴본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우리가 아주 정교하게 짜인 천의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共同體)'라는 말처럼, 내가 거대한 한 몸의 일부로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개인의 행복은 결코 세상의 행복과 분리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돌고 도는 것은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맛을 깊이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세요.
신나게 맘껏 춤을 추세요.
하루하루를 정성스레 살아가세요.
그리고 사랑할 때는 마음껏 사랑하세요.
설령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 해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먼저 당신이 사랑하세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아이들과 십 수 년째 매해 읽는 그림책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으로 수업을 마무리하다 보면, 홍수가 나도 휩쓸려 가지 않도록 서로의 몸통을 끈으로 묶듯이, 사랑이라는 끈으로 아이들과 나의 마음을 동여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선생님은 세상의 파도에도 흔들림 없이 우리를 지켜줄 이 끈의 힘을 믿는다. 교실에서부터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배운 아이들이, 쌀 한 톨에서 우주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거라 믿으며, 오늘도 더 깊이 닻을 내리며 중심을 잡는다.
쌀 한 톨 속에 담겨 있는 사랑
돌멩이 하나에 담겨 있는 사랑
풀 한포기에 기록되어져 있는 사랑
바람 한 점에 녹아 있는 사랑
물 한 방울에 담겨있는 사랑
그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맛보고 사는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이 사랑 안에서 강하여지고, 또 깊게 뿌리내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도 높은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느 누가 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랑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충만함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엡 3:17-19, 쉬운)
탄호이저 서곡 카라얀 - https://youtube.com/watch?v=mSdKgUFvH_g&si=ChAcQZSX73hoi5Af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 - 김봄소리 - https://youtube.com/watch?v=Qf9FKZicwL4&si=ZpesRM8RAi5jD3kt
https://youtu.be/1zMnSRjT_Z0
https://youtu.be/y9ZY-4YTUUs
https://youtu.be/SAWyfQeMf_E?list=PLIiS6SHbut0olXNFUlf8clSOpwK4RGF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