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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와 이데올로기적 주체
왜 알튀세르인가
루이 알튀세르(1918-90)라는 이름이 맑스주의 논쟁의 한복판에서 한 때 큰 영향력을 끼쳤던 적이 있었다.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위한 조사’[각주:1]에서 말한 것 처럼, 그는 맑스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테제를 프랑스철학사에 남긴
철학자이며, 맑스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서 프랑스철학이 중심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만든 공로자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그의 이름은 거의 잊혀진 듯 보이지만, 오늘에도 그의 철학적 유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맑스주의가 스탈린식 사회주의 실패 이후 포스트구조주의의 변화 안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방황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맑스주의를 관념론적으로 수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과감히 분리시키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내었다는 점에서, 그의 노력은 학문적 완결성을 떠나 오늘날 맑스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모든 시도
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굳이 열렬한 알튀세리앵이 아니더라도 우리 시대에 맑스를 말하려면 알튀세르는 한번 쯤은 넘어야할 할 관문같은
것이면서 동시에 관문을 통과시켜주는 열쇠와 같은 존재이다.
이 글은 알튀세르가 이해하는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주체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의 전체 철학의 내용을 조망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알튀세르가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구별시켜내기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발전시켰으며,
이를 위해 정신분석학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알튀세르는 주체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지, ‘다양한 해석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철학’이라는 맑스
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에 얼마만큼 충실하였는지를 평가해 보려고 한다.
맑스를 위한 자본론 읽기
알튀세르의 철학적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논의는 그의 두 권의 논문집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첫번째는 ‘맑스를 위하여Pour Marx (1965)’이고 두번째는 ‘자본론을 읽는다 Lire le Capital(1965)’이다.
이 두권의 논문집을 통해서 알튀세르라는 이름은 맑스주의 철학자로서 주목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저술들은 무엇보다 책의 제목 자체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맑스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드러내 준다는 점
에서 주목할 이유가있다.
제목 그대로, 그의 철학은 ‘맑스를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맑스를 위한’ 그의 실천전략은 다시 ‘자본론을 읽자’는 제안으로 전개된다.
‘맑스를 위한, 자본론 읽기’가 겨냥하는 일차적인 목표는 제일 먼저 맑스주의를 이데올로기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들로
부터 경계짓는 것이다.
스탈린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스탈린식의 교조적 적용에 대해 돌파구를 찾고 있던 때에, 맑스주의를
옹호하려는 운동의 일환으로 나타난 손쉬운 반응은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 해석이었다.[각주:2]
이 휴머니즘적 해석은 맑스의 청년기 저작에 근거하는데, 특히 ‘경제철학수고(1844)’에서 재발견된 ‘소외’의 개념은
그간 무시되었거나 간과되었던 인간의 윤리적 심리적 차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 맑스의 재발견은 그동안 스탈린의 교조주의를 통해서만 맑스주의의 저작을 해석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으로 경험되었다.
이 해방감은 다시 ‘자유주의’적이고 윤리적이며 휴머니즘적인 맑스주의를 진보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 자유, 소외와 같은 휴머니즘적인 개념들로 맑스주의를 재해석하려는 흐름에 대해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오염시키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대신에,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과학적 독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과학적 독해라는 것은, 맑스주의를 비판하거나 혹은 옹호하기 위해 맑스의 저작들을 이데올로기적 읽기
방법으로 체계화시키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해석방식을 말한다.
말하자면, 맑스를 순수하게 읽어야 하지, 다른 의도를 숨겨둔채 읽지 말것을 주문하는 것이다.[각주:3]
알튀세르가 보기에,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 해석은 청년 맑스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을 맑스
전체를 해석하는 틀로 오해한 나머지, 맑스 성숙기의 저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비판한다.[각주:4]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알튀세르가 내세운 ‘맑스를 위한’ 읽기 방법은 맑스주의 이론을 다른 이데올로기적 해석
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맑스를 훗설로, 맑스를 헤겔로, 맑스를 윤리적이거나 휴머니스트적인 청년 맑스로 위장”[각주:5] 시키려는
시도들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과제로 보았다.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일차적으로 맑스 청년기 저술 안에 보여지는 휴머니즘적인 경향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를 위해서, 알튀세르는 이론적 형성의 특수한 차이를 드러내는 선별 지점을 지시하기위해 자끄 마르땡에게서 ‘문제틀’
이라는 개념을,
그리고 과학적 학문의 토대에 대한 이론적 문제들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가스통 바슐라르로부터 ‘인식
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먼저, ‘문제틀’이라는 것은, 개별 저자가 제시하는 “대답들을 주재하는 질문들의 체계”[각주:6]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과의 연관성/일관성을 벗어나서 답해지지 않고, 반드시 질문의 체계안에서 대답
되어진다는 말이다.
모든 이론과 철학은 그 자체가 일관성 있는 연속적 개념들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문제와 답은 항상 서로 연관된 틀안
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우물가서 숭늉을 찾을 수 없는 것 처럼, 헤겔식의 관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맑스적인 유물론적 대답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질문은 이미 대답이 발견될 범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틀’이라는 개념은 청년 맑스와 성숙한 맑스의 차이를 분별해 줄 수 있는 방법이론으로 차용되었다.
이 개념을 통해 알튀세르는 청년맑스의 ‘경-철수고’는 포이에르바하의 문제틀이지 맑스적 문제틀이 될 수 없다고
분석하며,청년 맑스와 성숙한 맑스를 분시시켜놓는다.
‘인식론적 단절’[각주:7]이라는 개념 역시 사적유물론의 주창자로서 성숙한 맑스를 이데올로기적 관념에서 발견되는 맑스를
분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말은 앞선 ‘문제틀’이라는말과 연관되어 있는데, 과학 이전의 사고양식이라는 문제틀에서 과학적
사고양식이라는 문제틀로의 급격한 인식론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 전환은 서로 유착관계에서 일어나는 순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환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서로 모순되고 단절
되며 불연속적인 대립속에서 벌어지는 적대적인 전환을 말한다.
알튀세르는 청년 맑스와 성숙기의 맑스안에서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났다고 보는데, 그 기점은 ‘독일이데올로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독일이데올로기’[각주:8]에서 비로소 맑스가 목적론적 사고방식, 실증주의적 역사관, 휴머니즘적인 태도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방식과 완전히 결별하고 그의 독창적인 ‘사적유물론’을 전개하기에 이르렀으며, ‘자본론’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진보하는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았다.
이제, ‘문제틀’과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들을 통해서 맑스주의를 다른 이데올로기적 체계(틀)과 분리시키고, 서구
부즈조아적인 휴머니즘으로부터 성숙한 맑스를 되돌려 놓기위한 알튀세르의 기획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로 진입한다.
알튀세르는 이 목적을 보다 현실적으로 가시화시키기 위해 맑스의 초기 저작들 안에서 나타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을 뒤집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알튀세르의 대답은 이데올로기론에서 다뤄진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문제삼는 글은 그의 논문집 ‘레닌과 철학(1969)’에 실린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논문에서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이미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중층결정’이라는 글에서
먼저 다뤄진바 있다.
‘모순의 중층결정론’이 함의하는 바는, 다양하고 상이한 여러 층위들로 구성되는 사회와 역사는 경제라는 ‘기본모순’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로 구성되는 복합적 총체이고, 각 실천들은 제 각각 특수한 자질들을 갖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실천이 본질적 영역이 될 수 없고, 모순 또한 사회구성체의 다양한 층위와 심급들에 의해 결정되어
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구성체는 서로 보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모순은 원리에 있어서 중층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이라는 것이다.[각주:9]
맑스주의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가 결정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수용되었다면, 알튀세르에게서, 상부와 하부란 고정
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자리를 맞바꿈 하는 중층관계라는 변칙적인 관계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하부토대를 이루는 자본과 노동의 경제적 모순이 가지는 상부구조에 대한 일방적인 결정구조를 비판하면서,
하부구조에 의해 파악될 수밖에 없는 상부구조라고 믿어왔던 요소들은 동시에 하부구조 안에서 ‘중층결정’[각주:10]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보아 왔고 과학적 사고와 대립시켜왔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속에서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는 실제적인 물리적 성질에 주목한다.
알튀세르는, 대체로 오류나 환상, 왜곡된 의식, 관념적인 현상이라는 받아들여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데
올로기는 사실 개인들의 실제적 존재 조건들에 대한 그들의 ‘상상적인 관계’를 나타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실제적 관계의 표현은 아니지만, 실제적 관계처럼 보여지는 개인
들의 ‘상상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론, 이론적 실천 그리고 이론적 형성(1966)’에서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인 실제에 관해서 ‘환영illusion’’을 구성함과 동시에, 역사적 실제를 ‘암시’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는 기독교에서 발견된다.
크리스챤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상상적인 관계를 표상한다.
오늘 한국의 현실을 빗대자면, 열혈 친박-수구세력은 자신들을 국가와의 관계에서, 좌파를 청산하는 국가의 수호자
라는 ‘상상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관계는 상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려는 속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상상적인 관계로서 이데올로기는 단지 허위나 왜곡이 아닌 실제로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물적존재’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에서 맴도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과 관계맺는 물리적 성격을 가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는 인간 욕망의 투영일 뿐이라면서 종교를 실체없는 허상으로 간주
하였지만, 알튀세르식으로 보면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토대에 구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물적 형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적인 관계에서 개인이 부여받은 의식은 단순히 관계를 인지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이 관계에 부합하는 실질
적인 실천을 수반한다.
마치, 신의 자녀로 상상적인 관계를 맺는 자는 그에 걸맞는 종교의식, 종교적 규율과 의무를 하게 되는 것 처럼, 또는
친박-수구 단체 회원이 좌파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상상적인 관계속에 지나치게 몰입하였을
때에,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행동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인간 개인들은 상상적인 관계와 실천의 상호작용 안에서 점차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의 호명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는 부르조아 국가에서 사회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국가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가 유지 재생산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두가지 수단이 동원된다고 본다. 하나는 정부, 행정, 군대, 경찰, 감옥과 같은 ‘억압적 국가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교육, 가족, 언론, 문화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
전자가 폭력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작동하는 차이점을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고 강화하는 근본적 수단이며, 이데올로기 장치안에서 개인은 이데올로기에 지배력을 장악당하는 주체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구성하는 관련성을 정리하자면, 개별자가 가지는 믿음, 신념의 존재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물화된 형태로 주어지는데, 왜냐면 개인의 주어진 관념은 물질적 실천들 속에 삽입되어 있는 물질적 행위이기 때문
이다.
그 물질적 실천은 물질적 의식에 지배되며, 그 물질적 의식은 물질적 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해 정의되고, 그 물질적 이데
올로기 장치로부터 주체 관념은 파생된다.
여기서, 우리는 주체와 이데올로기의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있다.
이데올로기는 주체의 산물이 아니다.
반대로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유사하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개별자들에 선행한다.
신념이 있기에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있음으로 해서 개별자들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알튀세르에게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 개념이 ‘호명interpellate’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마지막에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출/호명 한다’고 규정
하는데, 이 말로서 알튀세르는 인간의 주체성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이데올로기의 기본 기능은 개인들을 생산관계에 적합한 주체를 생산해 내는 것인데, 이는 호명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즉, ‘이봐 거기 당신’이라는 작은 말 하나만으로도 상상될 수 있는 매우 세밀한 상상적 관계의 조작을 통해 모든 개인들을 주체로 구성하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젝은 ‘까다로운 주체’에서 호명과 관련된 슬로보니아의 농담을 적절한 예로 든다.
극장에 늦게 들어온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가 연극을 방해한 죄책감에 싸여 있을 때에, 때 마침 배우가 내 뱉은 ‘누가
내 침묵을 방해하는가?’라는 대사를 부자 자신을 향한 말로 오인하였고, 결국 그는 극장 안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배우의 호명이 부자관객으로 하여금 큰 소리로 대답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배우에 의해 주체로 호명되는 사건은 이처럼 뚜렷한 인과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호명은 상상적 관계를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유발하는 데 이 모든 과정은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오인’된 호출에서 이뤄
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알튀세르에게서 ‘호명’이 이데올로기와 주체간의 관계에 대한 열쇠로 되는 이유는 개인을 주체로 되게하는 과정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의 환영/오인과 자기 암시에 의한 것임을 말해주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환영으로 존재하는 상상적 관계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호명한 것으로 오인했다면, 그것은 개별자를 주체로 불러
내는 것이며, 복종의 강요와 억압이 아닌 순주히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과 행동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도록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 주체가 되었다는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국가장치에 의해 호출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을 파악하는 알튀세르의 입장이 드러난다.
‘인간’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구성물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로 구성하기 때문에 주체는
이데올로기 없이 불가능하며, 이데올로기 없이 사회는 존재할 수없다고 본다.
사회적 재생산은 자신을 인식하는 자발적인 주체에 의해 수행되기보다 인간의 배후에 있는 장치구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없으며, 모순의 중증결정 구조에서 경제적인 최종심급으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효과만이 나타날 뿐이다.
이렇게 인간에게서 어떤 본질적인 행위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해 자본론을 다시 읽기를 제안했던 의도이다.
알튀세르는, 자본론을 소외된 주체의 복권과정으로 읽어내는 주체 중심적인 독법을 신화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대신 ‘주체없는 과정’이라는 역사 개념을 등장시킨다.
역사는 주체가 없는 과정이다.
“역사속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은 그것이 절대자이든 인간이든 그 어떤 주체의 활동도 아니며, 역사의 기원은 언제나
이미 역사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따라서 역사에는 철학적 기원도 철학적 주체도 없다”[각주:11]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을 보는 알튀세르의 입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신화일 뿐이다.
때문에 맑스주의는 인간의 주체로부터 출발할 수없다.
때문에, 계급투쟁도 역시 자유로운 인간주체들의 인식과 실천행위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의 생산관계를
구성하는 관계들 차이들, 대립들로 이루어진 체계와 구조의 반영물일 뿐이다.
이렇게 알튀세르는 맑스에게서 인간의 제거하고 과학만을 남겨놓았다.
알튀세르가 남긴 것들
맑스의 관점에서 모든 계급적 모순과 대립, 그리고 계급투쟁은 경제적인 동기에서 발생하여 경제적인 목적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맑스주의 경제적 환원주의는 정치적 변혁과 계급투쟁의 개념들을 지극히 좁은 영역으로 제한하며 정치적 주체성이 발현되는 공간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고 만다.
이러한 맑스주의의 당면한 한계에 스탈린적인 교조주의로 응답해온 맑스주의 진영에 대해 알튀세르는 새로운 맑스주의
독법을 제시한다.
알튀세르가 주목하는 것은, 모순은 경제적 토대에서 결정되기보다 상부구조의 존재와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계급적 모순은 경제라는 단선적인 층위로만 제기되지 않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국가장치들이라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계기를 통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맑스적인 계급투쟁의 협소한 개념은 알튀세르에 의해 넓은 외연으로 확장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계급적 모순의 문제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구조의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실천의 차원에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도 이데올로기적인 해석 또한 분리시켜내어, 맑스주의를 오늘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사고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반휴머니즘으로 드러난 이데올로기의 실체와 그로 인해 구성되는 인간은 역사에 대한 인간의 무능함을 넘어 회의감마저 들게 만든다.
인간은 역사를 구성하는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라는 점은 인간의 주체에 덧붙여진 환상과 오인을 제거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것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반휴머니즘은 모순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전망해 주기보다 인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승리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만든다.
마치 푸코가 지식과 담론이 구성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내놓았으나, ‘그러면 인간의 해방의 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는 정작 궁색해지는 것처럼, 알튀세르 역시 이 점으로부터 인간주체에 대한 회의주의적 물음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또다시 문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 조차도 인간주체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어하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진정한 변혁은 현상을 현상대로 직시하는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이러한 물음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알튀세르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튀세르는 말년에 정신병을 앓던 중 아내를 살해한 비극적인 인생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보다 더 큰 비극은 그가 평생을 붙들고 온 철학자로서의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며 자신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 맑스와 프로이트를 결코 완독하지 못했고 따라서 둘을 결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기꾼이라고 털어놓는다.
그가 맑스와 프로이트를 완독하지 못했다는 말이 그들의 책을 섭렵하지 못했다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맑스를 위하여, 맑스를 다시 읽기’를 ‘해석이 아닌 변혁을 위한’ 철학자로서의 절대 사명으로 여겼던 그에게도 ‘맑스적인 주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겨진 풀지 못한 숙제였다는 자기 고백이 아니었을까.
ⓒ 웹진 <제3시대>
다.” (맑스를 위하여, 24) 여기서 맑스의 청년기 저작은 ‘유대인의 문제’, ‘경제 철학 수고’, ‘신성가족’ 등을 말하며, 정확히는 ‘독일이데올로기(1845-46)’ 이전의 맑스철학과 저술들을 의미한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청년기와 성숙기의 분기점을 ‘독일이데올로기’로 구분한다.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후기구조주의와 해체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믿음을 깨뜨리고, 인간의 주체성은 구조에 의해 구성된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파헤친 것은 구조주의의 성과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시작되는데, 그는 ‘언어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며, 기의란 기표의 차이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라 말한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어가 실체와 조우할 수 없는 한계내에서 발생하는 언어들의 차이라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각주:1]를 분석함으로서 실체를 로고스에서 발견해왔던 기존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거부하는 대신, 언어의 차이와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명증한 사실로 여겨진 자아 혹은 의식을 실재의 출발로 보았던 자아중심주의에 균열을 가하였다.
이같은 구조주의적 관심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사에서 실존주의가 봉착했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
하였다.
그러면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후기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푸코, 라캉,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와 같은 이들은 구조주의의 업적을 고스란히 계승하면
서도, 한편으로 구조주의가 간과하였던 문제를 니체, 프로이트, 맑스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에 기반하여 전개
한다.
말하자면, 라캉은 프로이트를,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를, 푸코와 들뢰즈는 니체에 대한 다시읽기를 주장하는데, 물론 이들의 시도 조차도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시작된 구조주의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실체적 형이상학의 철학사를 뒤집기 위해 다른 경로를 채택했지만, 지향했던 지점은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표현대로 하자면, 기원과 중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중심이나 기원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당위적인 것으로 여겨진 시뮬라르크에 대한 위계질서와 그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일시에 무효화 된다.
그러나 그들은 한발 더나아가 구조주의의 노력으로 그나마 밝혀진 차이의 구조마저 의미관계의 본질은 아니라고 부정
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후기구조주의를 이해하는데 좋은 예가 된다.
구조주의는 영화에서처럼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가상 인식체계가 지배하는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통제시스템에 의해 컨트롤 당하고 있음을 구조주의는 드러냈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는 매트릭스의 실체를 밝혀낸 구조주의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매트릭스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로 한 발 더 나간다.
말하자면, 매트릭스 조차도 가상적인 조작물일 뿐이지, 인간은 매트릭스에 의해 구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트릭스에 장악되지 않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시온이라는 구역이야말로 매트릭스의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일정한 규칙성과 폐쇄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 철학은 형이상학적
로고스 중심의 철학사가 걸어온 길로 되돌아갈 위험에 빠질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였다.
따라서, 모든 중심과 기원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의 존재를 직시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네오와 같이 매트릭스의 감시를 빠져나오는 탈주하고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현상을 바로 인식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가 넘어서려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푸코는 성(sexuality)이 구조적으로 억압되어 왔다는 가설을 깨고 성에 대한 지식과 담론은 오히려 확산되어왔음을,
들뢰즈는 영토화/코드화된 억압적 체계를 인정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영토를 가로지르는 노마딕한 탈주선을 제시하였고, 라캉은 구조화된 무의식의 세계를 정신분석학의 주제로 등장시켰지만 동시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며, 알튀세르는 자본의 착쥐구조를 넘어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라는 중층적 관계를 인식론적 틀로 제시하
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는 실체론적 철학에 저항하기 위한 구조주의의 기초위에
세워졌지만 구조주의적 인식체계 마저 넘어서려는 탈구조적인 사유행위를 함축해 놓은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매트릭스라는 형이상학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완벽할 것 처럼 보이는 구조 안에서도 네오처럼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놈이 반드시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에 의해 매트릭스조차 마침내 부정되고 해체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치밀한 관계망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는 송곳 같은 현상이야말로 매트릭스로 구조화된 사회를 인식
하는 본질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주목하는 것은 메타적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전복시키는 미시적인 차이와 차이들 사이의 관계들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던 태도에서 벗어나서, 안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 일탈하는 작은
변화들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질적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데리다에게서 후기구조주의는 전통적 사유방식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해체된 빈 공간
위에 아무것도 다시 구축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무엇을 해체하려고 했으며, 해체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해체를 허무주의의 유포라고 비판하는 우려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해체론 안에서 주체의 윤리적 실천의 계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이 이글이 관심하는 주제인데, 그의 핵심적인 개념들 몇가지로 제한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
데리다는 로고스중심주의 철학을 현존(presence)의 형이상학, 음성중심주의, 남근 중심주의로 파악하며, 이를 해체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전통적인 이성중심의 형이상학을 타겟으로 삼는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어떠한 기원이나 중심위에 세워진 사유
체계도 아님을 증명하는데 초점을 둔다.
형이상학의 근거지가 부정될 때에 순수성의 신화는 궤멸하게 되고, 비로소 본질과 현상, 선과 악,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음성과 문자 등과 같이 이항대립의 관계로 놓고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정당화
시켜왔던 근거들이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불가할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Of Grammatology)’에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였던 니체와 존재의 복구를 통해 근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하이데거, 그리고 소쉬르의 반실체적인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성과를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리다가 보기에 소쉬르의 구조주의는 차이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관계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기원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조를 유한하고 폐쇄된 총체성으로 이해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소쉬르에게서 문자에 대한 음성의 우월적 지위는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였다는 것이 데리다의 진단이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타난 음성우월주의는 소쉬르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문자는 언어를 표상하는 유일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텍스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시킴으로서 로고스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소쉬르적인 구조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음성 대신 텍스트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일까?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항목들을 복권시키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로고스중심주의로 파생된 폭력적인 위계질서는 해체될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또다른 형태의 이항대립구조의 탄생에 의해 좌초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의도한 것은 매트릭스를 대체할 다른 구조물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총체적인 구조로 실체를 파악해야한다는
어떠한 형태의 시도도 출현하지 않을 만큼의 해체로 까지 밀고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단순히 형이상학의 근거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에게, 해체란 부수고 무너뜨리는 과격한 파괴운동(destruction)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어떠한 위계지배질서의
출현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에 대한 지향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차연(difference)’이라는 개념은 탈-구조화를 위한 그의 의도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차연
데리다는 탈-구조화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 소쉬르가 주장했던 ‘기표 사이의 차이에 의해 기의가 구성된다’는 주장을 기원의 개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신화를 완전히 제거하기에 나선다.
다시말해서, 기의는 기표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기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표들의 차이가 반드시 기원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렇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 안에서 보면, 기원은 더 이상 실체적인 것,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데, 기원이라는 것 역시 기원에 선행하고 우선하는 다른 하위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보다 더 앞선 기원도 텍스트에 의해 차이화된 것에 불과하다.
데리다의 표현 그대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기존의 사유체계를 철저하게 전복시킨다.
기표(문자)는 로고스철학에서 원본과는 무관한 열등한 것으로 배제되어 왔지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를 기원으로까지 확대적용시킬 때에 문자(기표)는 말(기의, 로고스)에 우선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로써 기원의 기원으로서 적용된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는 기원이 가지는 말의 모순성을 폭로하며 마침내 기원의 기원
으로서의 자격을 박탈시킨다.
기표들의 차이를 기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데리다는 순수한 기원이란 말 자체가 가지는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음성중심의 기원의 신화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곧 말에 대한 텍스트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탈-구조화(de-construction)는 재-구조화
(re-construction)로 퇴색하고 말 것이다.
텍스트는 기원적이지만 결코 기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텍스트는 대상을 지시하는 ‘대리보충(supplement)’으로서의 기능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문자는 그 자체로 대상을 의미하지 못하고 단지 대리적인 보충물로서 문자들간의 차이를 통해 대상의 존재를 흔적으로
남길 뿐이다.
그러므로 흔적은 이미 시간적으로 항상 뒤에서서 대상을 쫓아가는 지연된 관계에 놓여 있다.
흔적으로서 텍스트는 대상을 은유적으로 지시할 수는 있지만 대상과 동일성을 가질수는 없다.
대상은 텍스트에 의한 ‘차이’와 ‘지연’이라는 시공간적 방식을 통해서만 식별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공간성의 차이와 함께, 시간성의 지연이라는 이중적인 운동을 통해서 기원은 파악될 수 없는 흔적으로만 남겨지게 된다. 이렇게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인 지연을 통칭하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데리다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의미의 효과가 사실은 무의미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렇게, ‘차연’은 소쉬르의 기표가 드러내는 공간성의 차이만으로는 형이상학의 인식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주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이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하는 근거가 되어온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뒤섞어 버림으로서 끊임없이 기원을 재생산해 내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봉쇄해 버리려는 해체와 탈-구조화의 이중적인 전략을 수행하는 데리다의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유령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철학하기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에 따른다면, 철학이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기 위해 텍스트를 동원할수록 지시하려는 대상은 자꾸만 멀어져 갈 뿐이기 때문이다.
흔적으로서 글쓰기가 증명하는 것은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의 분위기에서 지식인들에게 보다 날카롭고 급진적인 정치철학의 태도가 요구되었던 것을 감안하자면, 데리다의 해체는 한가한 지식인의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투항주의적인 태도로 비춰진다.
데리다의 비판론자들이 그를 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허무주의로, 심지어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동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위선자로 낙인하는 이유는 이점에 있다.
그러나, 데리다의 초기에 거침없이 써내려간 해체적 입장이 의미하는 정치 윤리적 실천의 면모는 그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전개된 유령론에서 드러난다.
데리다에게 차연은 전통적 시공간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개념인데, 전통적인 입장에서 현존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단절되
었으며 미래와는 연결되지 않은 ‘지금’이라는 정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안에서만 파악되는 것이지만, 차연의 운동은 현존의 대상을 끊임없이 과거로 밀어내고 다시 미래를 향해 달아나며 남기는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통시적인 시간속에서 파악
된다.
차연의 통시적 효과는 과거,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들이 일직선상위에 차례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안에서 현존은 과거에 의해 부정되며, 미래에 의해서만 유추될 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따라서 현존하는 것은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모호한 것이다.
그는 이를 유령(specter)으로 표현한다.
유령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존재의 부재와 더불어 부재의 존재를 지칭하기에 매우 적절한 은유로 채택된다.
유령과 결부된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의 현존을 일자의 동일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한다.
유령은 그것과는 무관한 개방적이고 불투명한 절대적인 타자성이다.
데리다는, 철학이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자아와 현존의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을 유령으로 존재하는 비현존의
존재론으로 뒤집어 놓는다.
인식의 근거는 자아의 의식, 혹은 기원이 아니라 유령과 같이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흔적으로 등장하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유령으로서 존재하는 타자는 자아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 포섭되지 않으며 단지 무조건적으로 환대(hospitality)해야할
관계일 뿐이다.
데리다에게서 해체의 정치적 급진성은 바로 이 유령의 존재에서 발견된다.
유령은 자아중심적인 시공간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예측된 미래를 추구하는 일체의 목적론적 실천행위를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착취의 현실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 역시 공산주의의 필연성을 낙관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맑스의 공산주의라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 구조위에서 공산주의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자본가를 위협하는 유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데리다는, 맑스를 넘어 계급, 국가, 제도의 경계를 허물고 도래하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새로운 형태의 타자들과의 연대를 요구한다.
경계를 넘어선 개방적인 연대 안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오늘의 불의한 착취의 구조안에서 다시 소환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실체론적 존재론은 자본주의와의 공모관계안에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로 계층화하고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시켜 왔다면, 맑스의 공산주의는 같은 방식으로 가시적인 현존을 인간사회의 진보 가치로 삼아왔다.
그러나 데리다는 그 양쪽 모두가 믿어온 현존의 공간과 시간적인 경계를 넘어서 출몰하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정치윤리를 제안한다.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구축해 놓은 확고부동한 존재를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유령으로 대체시켜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하다. 존재가 아닌 유령을 실재하는 것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데리다는 주체의 구성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데리다의 의도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정관념 하나를 지워버릴 필요가 있다.
데리다의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에 대한 비판은 주체를 부정하느냐 긍정하느냐는 식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추궁하는 것은 유령론이 지시하는 정치윤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주체는 존재하는가, 부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익숙해 왔던 전통적인 접근법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고흐의 그림 “끈이 달린 낡은 구두”를 소재로 사용한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샤피로의 입장에서 이 그림에 대한 감상법을 재구성하는데, 샤피로는 구두 그림의 제작자인 화가가 누구인지를, 하이데거는 이 구두의 소유자에게 관심을 둔다고 본다.
두 사람의 감상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구두그림의 귀속관계가 그림을 그린 화가에 있든지, 아니면 실제
구두를 신었던 한 노동자로 보든지 간에 그들은 구두의 주체를 발견해 내려는 노력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동일한
감상법을 취한다고 보았다.
반면, 이 그림을 보는 데리다는, 이 두 감상법이 모두 적절치 않다고 본다.
왜냐면, 이 구두의 그림은 신고 있는 상태가 아닐 뿐 아니라, 그림은 이미 화가의 화실에서 떠나 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두의 주인은 화가도, 실제 신었을 법한 누군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구두의 주인는 부재할 뿐이다.
그러나 구두의 주인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구두는 누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폐쇄적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주체의 부재를 통해 주장하려는 바는 대상을 특정 주체에 귀속시키는 것으로는 사물의 실재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유령과 같이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실재는
드러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데리다가 유령론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자기 동일적인 주체를 해체하려는 것이며, 자기 동일성이 현존의 근거로 왜곡
되어온 형이상학전통을 차이와 반복, 흔적으로 치환하려는 것에 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말해왔던 전통을 해체하고, 역으로 절대적인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윤리적 태도를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말하려는 철학의 시도는 가능해 진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환대의 윤리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행동규범을 도덕적 감성에 기대어 호소하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유령론은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해체작업이며 차이와 흔적을 통해서 출현하게 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경계없이 예측불가능하게 도래하게 되는 선물과 같은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며, 기존의 사고방식과 틀을 넘어서는 낯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데리다는 묻는다.
유령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유령을 축출할 것인가? 윤리적 주체로 설 것인지 말것인지는 그 물음에 달려 있다.
ⓒ 웹진 <제3시대>
지젝 (1) : 까다로운 주체
주체의 문제
탈근대 철학의 이론의 장에서 벌어진 논쟁의 화두는 ‘주체의 죽음’을 중심으로 벌어져 왔다.
인식론적 전환점을 찍은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와 헤겔을 넘어 후설의 현상학까지 경험의 주체를 실체론적인 형이상학에
의해 탈역사적으로 구성해온 부르주아 철학은 실존주의 철학(실존주의 역시 존재론적 시도의 한 형태이지만, 보편적
이고 본질적인 관념 체계를 탈피한다는 점에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비판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맑스주의, 구조주의에 이어 이마저도 한발 더 넘어서려는 탈구조주의에 의해 반박되어져 왔다.
이들 철학이론들의 지형은 엄연히 자기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의미에서 지지되어온 ‘주체’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전복적인 태도에서 만큼은 일치된 입장에 있다.
이로써, ‘주체의 죽음’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처럼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주체의 죽음이라는 탈근대를 향한 급진성이 유행처럼 지나간 이후에, 주체의 죽음이 인간의 자유를 위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지에 대한 물음은 모호한채 남겨졌다.
물론, 이성이 되었든 존재가 되었든 주체를 최종 판단의 결정권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한 결과, 그로 인해 구성된 세계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배구조를 초래하였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체가 제거된 이후의 세계는 달라졌을까?
주체가 사라졌으니 마음 놓고 자유를 만끽하라고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주체의 죽음을 확신케 함으로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향유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바디우는 오늘날의 차이와 다양성의 문화가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가를 강조한다.
즉 차이와 타자성이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이들 용어들은 자본주의의 탐욕만을 충족시켜줄 뿐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바디우는 주체의 죽음이라는 급진적 현상이 다양성과 차이만을 강조한 채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포스트모던의 풍토
안으로 일시에 흡수해 버리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자와 차이의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주장을 앞세워 헤게모니를 영속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지배전략이
주체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되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인식 위에서, 이 글은 먼저 지젝의 주체이론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칸트적 헤겔 또는 헤겔적 칸트의
이해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지 않고 오히려 근대철학의 주체성 논의에서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번째는, 데카르트부터 칸트, 헤겔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연결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라캉의 이론적인 토대로 기능하게 되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이 라캉의 실재개념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현실 정치의 변혁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이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데카르트의 유령
지젝의 철학적 사유는 주체의 죽음이 공언된 이 시대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체를 부정함으로서 혁명의 가능성마저 제거해 버린 탈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뒤에는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묵인하고 존속시키는 탈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경계한다. 따라서, 지젝에게 철학적 문제는 근대적인 주체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혁명의 주체의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주체의 가능성을 찾는 데 있다.
지젝이 선택한 길은 두가지 방향에서 파악될 수 있는데, 하나는 맑스-레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분석학이다.
맑스-레닌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은 생소하게 보일진 몰라도, 맑스주의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에 맑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이론적 보완을 시도했던 경험은 역사적 선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맑스주의에 도입한 경우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 운동이 왜곡되어 국가사회주의라는 파시즘으로 흘러간 경위를 프로이드를 통해 밝혀내고자 하였다.
한편으로, 맑스주의를 실존주의적으로 수용하면서 맑스주의가 휴머니즘적으로 탈바꿈 할 때에, 알튀세르는 이러한 시도들을 수정주의로 파악하고 인식론적인 개입을 제거한 순수한 맑스주의 해석을 들고 나온 사례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젝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철학의 결합은 형식의 측면에서는 전혀 새로운 시도라고 보기 어렵다.
지젝의 프로젝트를 이전의 사례들과 구별짓는 데에는 형식적인 특별함이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에서 결여되었던 주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라캉의 정신분석철학의 관점에서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온다는 점에 있다.
이 글이 지젝에게 주목하는 점도 여기에 있다.
지젝의 철학은 주체 문제와 연관된 탈근대적인 해체주의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근대적 주체를 해방적인
역량으로 전유할 수 있는 이론적 시도를 과감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근대와 탈근대의 단절을 그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특색은,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1999)’의 서문에서 쉽게 발견된다.
지젝은 주체를 재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뉴에이지 반계몽주의자, 해체주의자, 하이데거적 지지자, 생태론자, 비판적 맑스주의자와 여성주의자까지 이어져온 ‘데카르트적 주체라는 유령’의 ‘성스러운 사냥’을 위한 ‘학술권력’들의 동맹에서 찾는다.
지젝은 주체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데카르트의 주체가 여전히 유령처럼 출몰해 왔음에
주목하며, 주체의 유령에 대한 반 데카르트적 동맹이 지시하는 바는 역설적으로 데카르트적 주체성이 강력한 지적 전통
으로 인정받아 왔음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이처럼 지젝은 대세가 되어버린 주체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 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데카르트의 주체를 저마다 희생양으로 삼아 학술권력을 지배해왔던 진보적 담론들과 대결을 벌인다.
초월론적 주체
그러나 지젝이 부활시키고자 한 주체는 실체론적-존재론적인 데카르트식 주체 개념이 아니다.
지젝은 코기토를 시점으로 칸트로부터 인간의 이해에 적용되었던 초월적(선험적) 관념주의 철학에 의해 확인되는 것은, 사유하는 ‘나’는 인정되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나’를 보증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다.
즉, 칸트는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전환으로서 코기토를 자기 초월론적 철학의 출발점으로 수용하지만, 세계를 인식하는
투명한 자기확증적인 주체로서 인간을 규정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식되어진 현상과 객관적인 대상(물 자체 thing-in-itself)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사유와 존재, 지각과
대상, 표상과 실재는 일치하지 않으며 양극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서 자기 동일적인 주체성이 설 여지는 없다.
이성이 알 수 있는 지식의 범위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의 이성이 알 수 없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영역이다.
칸트가 설정한 ‘물자체’는 우리의 경험을 초월한 영역, 초월적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비대상성에 속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현상이지 물자체가 아니다. 현상은 실재의 그림자이다.
실재로부터 유출되어 나오지만, 실재의 모사일 뿐이다.
칸트의 초월론적 인식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두가지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하나는 한계로서 이성의 지위이다. 이성은 객관을 직시할 수 없다. 언어, 표상, 감각, 기호, 말 등은 실재 즉 객관적인
대상, 본질 그 자체를 지향할 뿐,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계는 현상과 본질의 질적 차이를 의미한다 .
그러나 이성의 한계가 실재와의 완전한 단절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는 사고로서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의미를 요구하기 마련인데, 그 의미는반드시 초월적인 로고스와 관계를 맺기 때문
이다.
이 사실은 두번째로 지적되어야 할 점과 연관 되어 있다.
현상은 실재와 반성적(reflective)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성에 의해 파악된 세계는 실재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말이 된다.
물자체는 지각에 의해 경험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재하다고 할 수 없다.
실재가 없이는 상징계의 질서 또한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계로서의 이성은 이처럼 실재와 현상의 불일치 뿐 아니라, 실재의 존재를 확증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이처럼, 한계와 초월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칸트의 초월론에는 이성과 실재사이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실재의 영역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져 있지 않다는 특징 또한 포함하고 있다.
까다로운 주체
칸트의 초월론적 방식은 인간의 인식이 도달할 수 없는 물자체를 상정해야만 성립할 수 있었다.
인식은 단지 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객관와 주관 사이의 메워질 수 없는 간격을 말한다.
주관은 객관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상 칸트의 핵심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렇게 잠정적으로 가정된 초월적 통각 영역 너머의 물자체를 진리로서 수용할 수 없었다.
헤겔이 보기에 철학이 객관적 진리를 알 수없고 한계안에서 제약된 상대적 현상만을 파악할 수있다는 것은 철학의 무능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헤겔은 칸트의 초월철학에 손질을 가한다.
헤겔은 칸트와 달리 이성을 객관적인 것으로 본다.
객관성을 갖는 칸트의 오성 또는 초월적 통각은 이미 헤겔에서 이성으로 동일시된다.
헤겔은 칸트가 분리한 오성과 이성을 다시 이성안으로 통합시킨다.
이렇게 통합된 이성은 객관을 타당하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실체론적으로 긍정하는 칸트와 달리 헤겔은 가정된 초월적 물자체를 부정한다.
칸트에게서 있을 것으로 가정된 물자체는 매우 약한 고리로 이성과 잠정적인 관계로 남아있었지만, 헤겔은 물자체를
가시적인 이성의 현실 영역으로 끌어온다.
현상은 객관에 대립하는 주관의 구성물이 아니라 바로 사물자체의 규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체로서 현상의 피안으로 분리시키지 않고, 오히려 현상계의 끝을 물자체라고 본 것이다.
물자체란 현상 세계의 너머에 있는 실체가 아닌, 현상계의 종착점이 바로 물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헤겔은 칸트가 끝까지 남겨 놓은 물자체마저도 주관의 영역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절대적 주체성을 복원한다.
이로써 현상과 실재 사이의 거리는 제거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잠정적이었던 틈새는 보다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지젝에게 있어서 헤겔은 칸트철학의 극복자라기보다는 현상계와 물자체의 갈라진 틈새를 보다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가시화시킨 장본인으로 이해되는 이유이다.
이점은 헤겔이 칸트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며 전통적인 이성과 그로 인한 결과인 형이상학을 복권하는 것으로 해석
되어온 일반적인 헤겔에 대한 해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젝의 헤겔에 대한 독창적 해석법은 여기에 있다. 지젝은 ‘나눌수 없는 잔여(1996)’에서, 헤겔이 효과적으로 수행한 것은 “주체는 알수 없다는 칸트의 생각을 사변적으로 역전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물자체로서 “주체의 ‘알 수 없음’은 주체가 비실정적 공백이라는 사실을 오성이 잘못 인지하는 방식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칸트가 주체는 알 수 없는 텅빈 X라고 말하는 곳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런 인식론적 규정에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즉 주체는 순수 자기정립적인 ‘없음nothing’이라는 것이다.
초월적 통각의 너머에 물자체를 인정하는 칸트와 달리, 헤겔에게 주체는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성의 담지자이며, 지젝은 이러한 부정성의 담지자를 “까다로운 주체”라고 부른다.
부정성에는 주체뿐 아니라, 대타자로 기능해온 물자체역시 부정성의 대상이 된다.
언제나 감각 너머이 있을 것으로 가정되어 온 물자체는 ‘그곳’에 없다.
이로써 대타자도 역시 ‘그 곳’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헤겔이 물자체를 이성의 범주로 소환하였듯이, 지젝에게 대타자는
상징계 안으로 진입한다.
여기에서 지젝은 헤겔의 부정의 변증법에 대한 해석을 칸트주의와 연결시킨다. 칸트에게 확인되는 것은 초월적 통각에
의해 종합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 아니라, 이성과 물자체 사이가 서로 대립과 긴장 속에서 근본적인 상호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듯이, 헤겔의 변증법은 정과 반의 긍정적 종합으로서 합이 아니라, 부정의 근본화, 즉 부정을 더욱 철저히 부정하는 변증법이다. 변증법을 부정의 부정이라는 운동을 부정의 근본화시키는 것으로 읽어내고 그로부터 ‘비어 있는
텅 빈 무’로서의 주체를 발견하려고 하는지젝은 헤겔을 반칸트주의가 아닌, 반대로 급진적인 칸트주의자로 해석한다.
라캉과의 만남
지젝의 해겔에 대한 독특한 독법은 헤겔의 철학을 타자를 주체로 환원시키고 차이를 동일성으로 통합시킨 형이상학적
철학의 토대로 이해해왔던 기존의 통념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시각에서 주체를 재구성할 여지를 남겨준다.
그러나 지젝이 다시 읽어낸 헤겔과 칸트만으로는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을 논하고, 현실정치 안에서 주체를 재구성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아직 이르다.
칸트와 헤겔의 해석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만나야 한다.
지젝은 칸트의 초월적 통각과 물자체의 개념을 라캉의 인식체계를 선취하는 모형으로 보았다.
라캉은 이를 상징계와 실재계로 구분하였다.
지젝이 데카르트로부터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을 읽어가는 관점은 이처럼 라캉의 개념과 맞물려 있는데, 이제 우리는
지젝이 해석한 칸트와 헤겔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되는지 볼 차례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지젝이 그의 주체 이론이 현실적으로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검토하기로 한다.
ⓒ 웹진 <제3시대>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