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학소대를 배경으로 새로 만든 교량에서 자연을 즐기는 牛步, 德山, 海山, 樂山, 野草의 모습...11:24:28
속리산국립공원(화양동) 입구의 숲 터널과 등산객들의 모습...09:40:19
화양동이라 불리는 유래 ....09:44:03
우암 송시열이 원래 황양나무(회양목)가 많아서 황양동이라 불렀으나, 선생이 거처를 옮겨와서는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華(화)와 一陽來復(일양래복)의 陽(양)을 따서 화양동으로 고쳤다.
* 一陽來復: 해가 다시 돌아온다.
화양2교 위쪽의 작은 댐에 요즘 내린 비로 떨어지는 물이 눈송이처럼 벽을 타고 하얗게 내린다...09:52:02
하늘과 산과 바위기둥과 물이 어울리며,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雲影潭) ...09:54:37
괴산 송시열 유적 (槐山 宋時烈 遺蹟) ....09:57:30
우암(우암) 송시열(1607~1689)이 말년을 지낸 곳으로,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있던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선생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소, 조선 효종(1649~1659년 재위)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 유적은 송시열 선생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으로, 일제가 파괴하였으나 2006년까지 만동묘 7동과 화양서원 2동을 복원하였다. 유적 주변에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巖棲齋), 읍궁암(泣弓巖) 외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비례부동(非禮不動)’ 등 바위에 새긴 글자(암각자)가 많이 남아 있다.
1.만동묘(萬東廟 : 만동묘는 효종 · 숙종대 노론 영수인 송시열(宋時烈)이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 준 중국 명나라의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라는 유명(遺命)을 남김에 따라 그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주도로 1703년(숙종 29)에 세워지고 1776년 사액되었으나, 1865년(고종 2)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지되었다. 1874년에 제향이 재개되었으나, 1907년 일제에 의해 다시 폐지되었다. 1937년 일제는 유림들이 몰래 제향을 드린 것을 빌미삼아 묘정비를 징으로 쪼아 훼손하였고, 1942년에는 다시 건물을 불사르고 묘정비를 땅에 파묻었다. 1983년 홍수로 묘정비가 출토되어 괴산군에서 유지를 정화하고 옛 자리에 다시 세웠다.
*만동묘라는 이름은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겨진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모본하여 화양리 바위에 새겨놓은 것을 그 첫 글자와 끝 글자에서 취해 지은 것이다.
2.성공문: 만동묘의 입구로, 방문객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곳.
3.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 : 비석은 본래 1747년(영조 23) 이재(李縡)가 비문을 짓고 유척기(兪拓基)가 전액(篆額)을 쓰고 안진경자(安眞卿字)를 집자(集字)하여 세웠는데, 중도에 훼손되어 1814년(순조 14)에 다시 세웠다.
4.양추문 : 만동묘의 두 번째 문으로, 양추문을 통과하면 만동묘 정비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배울 수 있는 공간.
5.증반청: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곳.
6.송사자(화양서원): 송시열의 유적과 관련된 공간으로, 송시열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 화양서원에 걸린 글의 내용은 惟琅城(유랑성)에 있는 華陽書院과 商山에 있는 興巖書院은 賜額서원이다.
* 賜額(사액 : 임금이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림)
7.승삼문: 만동묘의 중요한 문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들이 활동했던 곳.
8.존사청 : 제향하기 위해 예복을 갖추어 입던 곳.
9.풍천재 : 제향하거나 참배하러 온 선비가 잠시 머물던 곳.
만동묘 내부의 전경이 제초를하여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밝은 햇살에 역사가 숨쉰다.
화양서원 1박2일 선비체험 2026 ....10:01:58
1박2일 선비체험과 풍류. 화양구곡5곡 첨성대 별관찰 체험. 3월부터 11월 7일까지 10회 운영한고. 화양서원 풍천재와 화양구곡, 지역 숙소를 오가며 가족 단위 체험 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참가비 1인3만원. 4km도보 가능해야하고, 밤길 걷는 행사가 산행되므로 유모차, 거동 불편한 분은 어렵다.
깨끗한 상가 도로에 등산객들이 지나간 뒤 옥상 공사로 소음이 있고 그 외는 한적하다...10:03:55
제5곡 첨성대 암벽에 있는 선조(昭敬大王)의 글씨인 만절필동(萬折必東)과 숙종(元孝대왕)의 글씨인 화양서원(華陽書院) 암각문이다.(2019.05.31.사진)
제5곡과 6곡 사이 절벽에 있는 암각이다. 좌측 비례부동(非禮不動)은 명나라 숭정황제(16대의종)의 어필이고, 우측 대명천지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은 우암의 글씨이다...10:21:02
암서재를 배경으로 화양1교에서 가을바람 같은 시원함을 느낀다...10:27:22
제5곡인 첨성대((瞻星臺)를 배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이 가득하다...10:29:38
도로변의 그늘진 숲속에서 茶啖을 나누며 한 시간 만에 휴식을 갖는다...10:42:43
화양천의 풀 사이로 바위가 크게 들어나고, 높이 솟은 가령산의 암벽이 아름답다...10:51:54
지난날 철제 다리 앞에 있던 詩碑가 제8곡 학소대를 건너편 도로변에 옮겨져 검게 변한 도명산을 노래한 搞心(詩)...11:01:02
太古의 神秘를 안고 季節 따라 몸단장하며 님 기다리는 道明山 나는 그녀가 뿜어주는 山香氣 개울 바람 마시며 수정알 같은 냇물에 발 담고 서서 그의 님 기다린다. 아 그래서 내 마음 두렵구나. 누가 이 길을 건너갈까
저 청순한 여인의 품 같은 계곡 속으로 행인아 고이 다녀오소. 흰 구름 산허리 스쳐가듯 봄 향기 여인의 옷자락 스쳐가듯
새로 설치한 교량에서 학소대를 배경으로 초록물이 들도록 자연을 즐긴다...11:22:53
학소대의 巖壁이 바닥으로 내려와서 푸른 물을 담고 흐르며, 오른쪽은 도명산, 왼쪽은 가령산이 산객을 부른다...11:25:43
도명산(2017.09.20.)산행이 무척 오래되었다. 松崗이 송이 한 개를 구하여 6명(松崗, 범여울, 동천, 野草, 樂山, 海山)이 나누어 먹던 일이 그립다.(학소대 도로변에서 도명산 2.8km)
일부가 도로에 묻힌 꿈틀거리는 용을 닮은 7곡 와룡암(臥龍巖)를 지나서 부담 없이 내려간다...11:33:21
와룡암(臥龍巖) 위쪽으로 쌍봉 모양의 도명산과 건너편 가령산에 흰 암벽이 솟아 있다...11:35:49
화양동 계곡 국립공원 내 절벽 위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울창한 노송과 맑은 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암서재(巖棲齋)가 밝게 빛나고 앞으로 푸른 물이 고여 가며 흐른다...11:48:56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성리 학자였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66년 화양구곡 제4곡 금사담 물가의 큰 바위 위에 세운 서재. 원래 이름은 '암재(巖齋)'였으나, 후에 제자 권상하가 '암서재'라고 명명하였다. 송시열은 이곳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만년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역사적으로 송시열은 암서재에서 2년 남짓 거주하다가 정치적 사건으로 제주 유배길에 올랐고, 결국 사약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이후 1715년 김진옥이 서재를 중건하고, 권상하가 '암서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암서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었고, 1999년에는 사적 제417호 '괴산 우암 송시열유적'에 편입되었다.
제초 작업으로 말끔한 만동묘를 배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억을 남긴다...11:52:46
화양동 가게의 손수건이 재방문을 기다리고, 운영담(雲影潭)이 있는 데크 난간 길을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간다...11:54:14
운영담(雲影潭)에서 화양동관리인의 도움으로 풍경을 즐기는 海山의 모습...11:56:31
묘하게 생긴 바위가 마치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12:06:59
제목 A walker 규격 107×225×77 FRP 2007 작가 설총식 ...12:09:19
탐험_핸드폰 보는 현대인의 미지에 대한 탐험욕구를 한 곳(남극)에서 정착하여 사는 펭귄에 비유해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듬직한 모습의 곰으로 비유해 표현했다. 이 작품은 4인으로 구성된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FRP : 섬유강화 플라스틱(경량성, 높은 강도를 유지)
주차장의 주차료 징수 (승용 5000월, 경차 2000원, 비정기버스 6000원) ...12:11:43
* 카페솔.. 매점... 식당.. 운영
주차장에서 데워진 차문을 열어서 열기를 식히고 산행을 마감한다...12:13:34
제1곡인 경천벽(擎天壁)에 내려서 잠시 停車하고, 기암괴석이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으로 웅장한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12:17:43
버스 정거장의 이정표에 ‘하관평←관평(홍주막)→상관평’을 보고 조금 올라가니, 받침돌 위에 평평한 자연석에 ‘여기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홍주막)입니다’라는 표지석이 무척 반가웠다...12:36:33
빛이나게 자주 닦고 청결을 유지하는 진남휴게소에서 주문 음식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눈다...13:17:31
첫댓글 夏至를 지났지만 소슬바람 한가하게 불어오는 가을같은 날씨이다.짜증날 만큼 不快한 華陽駐車場을 벗어나니 槐山이란 地名을 確認해 주듯 槐木이 줄지어 나타난다.全國에서 老巨樹가 420그루로 가장 많다는 風景이 연이어 出沒한다.화양2교 위의 보는 넘실대는 물줄기를 밀어내고 雲影潭은 沈默으로 一行을 맞는다.華陽洞의 核心인 華陽書院은 朝鮮 中期 老論勢力의 本據地였고 興宣大院君은 이들의 悖惡질을 더는 볼수 없다고 불태웠는데 近年에 復元하여 그때의 事大主義를 되뇌이게 한다.읍궁암 金砂潭 암서재의 絶景地를 돌아서 道明山 進入路인 華陽3橋에서 瞻星臺와 溪谷에서 萬折必東,非禮不動의 힘찬 筆致를 感想했다.陵雲臺는 예와 다름없고 마지막 酒幕은 20餘個의 車線을 그어놓곤 接近嚴禁 하고 있었다.臥龍巖을 지나 학소대에 到着하니 鐵橋도 改築했고 橋心 바위도 位置가 옮겨져 있었다.가령산,道明山의 延陵이 가물거리는 남녘을 보니 5年前 追憶이 새롭다.通行人 제로인 길 섶 椅子에서 中食과 茶談을 나누는데 소슬바람에 옷 깃을 여민다.海山님은 名勝 한곳도 남기지 않기 위하여 東奔西走하고 尤庵 宋時烈의 痕迹 찾기에 汨沒한다.저런 努力이 있었기에 우린 소중했던 오늘의 追憶을 남기고 카페는 華麗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