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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 마르세이유, 명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 ]
마르세이유라면 한때 세계의 마도로스들에겐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항구의 이름이었습니다. 지중해 연안 최고의 항구로서 또 유럽의 문호(門戶)로서 뿐만 아니라 그 뛰어난 해항 풍정(海港 風情)은 마르세이유를 만국선(萬國船)의 모항(母港)이게 했고 유명한 라 카느비에르 대로(大路)는 온 선원들이 동경하는 꿈의 부둣가였습니다.
마르세이유가 이름을 떨친 것은 또 하나 이 항구에 들어서는 배는 반드시 그 앞을 지나야하는 하얀 성채(城砦)의 섬 샤토 디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섬이 전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이야기는 4해(四海)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은 어느 새 전설로 화하여 마르세이유를 떠나는 배에 실려 세계 각처로 나갔던 것입니다.
지금 마르세이유에는 배들이 신항(新港)에 정박하고 왕년의 라 카느비에르 대로(大路) 앞 구항(舊港)은 샤토 디프로 가는 유람선들의 선착장이 되었습니다. 유람선은 15분마다 떠납니다. 마르세이유 앞바다는 관광객들을 가득 태우고 뻔질나게 내왕하는 이 배들로 물길이 어지럽습니다.
육지에서 1.5km 떨어진 샤토 디프는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길이 200m가량의 바위 섬입니다. 16세기 때 항구를 지키는 요새로 세워져 한동안 감옥으로 쓰여 오다가 1926년부터는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의 유명했던 웅변가 미라보(1)도 한 때 여기 갇혀 있었습니다.
* 샤토 디프 섬
섬의 한쪽 끝 절벽 가까이의 바위에 선 감옥 건물은 중정(中庭)을 둘러싸고 감방들이 층층이 나 있습니다. 맨 아래층 정면이 <에드몽 당테스의 방>, 그 왼쪽이 <파리아 신부의 방>, 에드몽 당테스는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이요, 파리아 신부는 이 소설에서 에드몽 당테스에게 보물섬을 가리켜 주고 이 감옥에서 죽는 괴인입니다.
두 방의 입구에는 이들이 실제로 갇혀 있었듯이 각 각 문패가 붙어 있습니다.이런 시치미 때문에 샤토 디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작중 인물을 실재(實在) 인물로 착각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작가인 알렉상드로 뒤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그랬고 이에 당혹한 것은 누구보다도 뒤마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 영화에서...에드몽 당테스(왼쪽)와 괴인 파리아 신부(오른쪽)
“때때로 나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내가 그들은 심은 땅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주인공들이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 것처럼 믿는다. 심지어는 그 사람을 직접 안다는 사람까지 나온다. 샤토 디프의 어떤 안내인은 파리아 신부가 감방에서 만든 것이라면서 생선뼈로 된 펜대를 팔고 있었다고 한다. 에드몽 당테스는 이 섬의 절벽에서 떨어뜨려지지도 않았고 파리아 신부는 펜대를 만들지도 않았다.”
파리아 신부의 펜대를 파는 사람은 없어졌으나 감방 안에 들어가 보면 <에드몽 당테스의 방>과 <파리아 신부의 방> 사이의 벽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소설에서 파리아 신부가 굴을 파서 당테스의 방과 연결시키는 것을 실감시키자는 선의(善意)의 고의(故意)인 것입니다.
* 샤토 디프 감옥소의 입구
샤토 디프와 마찬가지로 소설에 등장하는 몽테크리스토 섬 자체는 유령의 섬이 아니라 지리상의 섬입니다. 지중해에서도 이탈리아 땅에 가까운 코르시카 섬, 엘바 섬은 나폴레옹의 탄생지, 유배지로서 역사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엘바 섬의 40km 남쪽에 면적 10평방킬로미터 정도의 이탈리아령(領)인 몽테크리스토 섬이 실재(實在)합니다.
이 섬에는 13세기 때의 승원(僧院)터가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 터키 군이 이 섬에 침공했을 때 승려들이 달아나면서 섬 어딘가에 보물을 감추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뒤마가 이 섬을 보물섬으로 만든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 몽테크르스토 섬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나오기 3년 전인 1842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망명 중이던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뒤마는 제롬의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엘바 섬에 갔다 오는 길에 괴상한 바위섬을 목격했습니다. 뱃사람에게 섬 이름을 물으니 <몽테크리스토 섬>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 몽테크리스토 섬의 선착장
뒤마는 제롬의 아들에게 같이 여행한 기념으로 <몽테크리스토 섬>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한편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뒤마는 프랑스로 돌아와 약속대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썼습니다.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손을 댕 무렵 파리의 혼잡을 피해 한적한 곳에 글을 쓸 집을 하나 지을 생각을 하고 마땅한 장소를 찾다가 파리에서 20km 떨어진 마를르 르 르와 마을에 아늑한 숲을 발견했습니다.
* 몽테크르스토 성관
땅을 한 뼘씩 사들여 1844년 기공한 건물은 갈수록 계획보다 한 간씩 늘어나 184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착공을 하기 전 뒤마는 집 설 자리에 친구들을 불러 전축(前祝)의 파티를 열었습니다. 배우 하나가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로 마을에 내려 삯마차를 불러서는 마부에게 “몽테크리스토의 집으로!” 하고 외쳤습니다.
집을 짓기 시작도 하기 전인데 마차는 두말 않고 제 자리를 찾아와 멎었습니다. 뒤마는 이 말을 듣고 이 건물을 <몽테크리스토 관(舘)>이라 이름 짓기로 했습니다. 당시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신문에 연재가 되어 그야말로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리던 때였습니다. 시골의 한 마부조차 훤히 알만큼 인기가 대단했던 것이죠.
소설의 연재가 끝나면서 완성된 몽테크리스토관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기념비같은 건물이 되었습니다. 호탕한 생활로 <파리의 임금님>이라 불리던 뒤마는 많이 써서 많이 벌어 많이도 탕진한 낭비가이기도 해서 몽테크리스토 관은 지은 지 2년 만에 팔아 버려야 했습니다. 인기 작가로서 그의 성명(盛名)에 값할 만큼 호사(豪奢)가 극(極)했던 이 3층짜리 저택은 지금 텅 빈 채 쓸쓸합니다.
* 별관, 샤토 디프
곁에 서재용으로 따로 지은 별관은 뒤마 스스로가 에드몽 당테스의 감옥을 기념하여 <샤토 디프>라고 부르던 곳입니다. 뒤마는 북프랑스의 소촌(小村) 퓌 마을에서 죽어 2년 뒤인 1872년 향리 빌레르 코트레로 유해가 이장되었다가 지난 2002년 탄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위인들의 묘소인 팡테옹으로 옮겨졌습니다.
* 파리의 팡테옹
(1) 미라보
미라보(1749~1791)는 머리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몸집은 크면서 땅딸막한데다가 3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추하고 인상이 강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그는 국민의회를 이끄는 핵심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된다.
미라보는 말이 날카롭고 형이상학적이었으며 친절하고 신중한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항상 호감 가는 말씨와 목소리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미라보는 출중한 재능과 풍채, 언변으로 국민의회를 간단히 휘어잡았다.그는 혁명을 온건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으며 영국을 모델로 하는 입헌군주국을 만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1791년 4월 2일 극진파의 거두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혁명의 광기에 대응할 인물이 사라지자 프랑스 혁명은 걷잡을 수 없이 유혈혁명으로 내달았다.
단두대에서 미라보는 이렇게 외쳤다.
“이 더러운 로베스피에르야, 단두대가 너를 부르고 있다. 내 다음에는 네 차례다!” 이어서 “내 목을 민중들에게 보여주어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니라”
그의 과오, 공적, 회한 이 모든 것이 거인에게 적합한 것이었다. 얼마 안 있어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에 올랐다.
[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와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 ]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세계에서 가장 재미나는 소설입니다. 평생 3백편이 넘는 소설과 희곡 등을 써낸 정력가이자 호걸이자 열혈한(熱血漢)이던 뒤마는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화술(話術)로 독자들을 열광시켜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신출귀몰, 변화무쌍한 줄거리는 모든 시대를 두고 인기를 모아 왔습니다.
이 작품은 에드몽 당테스라는 마르세이유의 선원이 샤토 디프 섬의 감옥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탈출하여 몽테크리스토라는 섬에서 보물을 찾아낸 후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수시로 변신(變身)하면서 자기에게 무고한 죄를 씌운 원수들에게 차례로 복수를 한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래성의 번안인 <진주탑>으로 널리 소개되었고 소년, 소녀들에게는 <암굴왕>으로 애독되었습니다.
[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
마르세이유, 프로방스 지방의 매력적인 중심지이며 지중해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 돛대가 즐비하게 열을 맞춰 빼곡히 정박해 있는 항구 그리고 그 위에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몇 점이 떠 있는 그림 같은 곳이 바로 마르세이유입니다.
*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마르세이유는 고풍스럽지만 약간은 거친 면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로 통하는 프랑스 관문인 까닭이겠지만 파리와는 달리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생활하고 있어 이국적 냄새가 왕창 풍기고 있습니다. 알제리계 이민인 축구선수 지단도 여기서 자라면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쪽 언덕 위에는 한 눈에 마르세이유 사방을 볼 수 있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있는데, 바다 사람들의 수호신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한 폭의 그림 같은 도시를 가슴에 담노라면 시공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짙은 바다 내음을 품은 기분 좋은 바람과 푸른 항구, 줄지어 하늘을 향해 서있는 돛대들, 여유와 동시에 항구의 분주함을 느끼며 항구 연안을 따라 돌다 보면 그날 잡은 생선을 파는 작은 좌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생선 좌판이 열리면 사람들도 모여들지만 새들도 모여들어 사람과 새가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는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인심 좋은 어부의 아내는 너무 작거나 못 파는 생선은 새들에게 적선을 하지만 먹을 것을 두고 인간과 새가 마치 경쟁하는 것 같아 재미있는 미소가 지어집니다. 생선이야기가 나왔으니 부이야베스라는 생선 수프를 한 번 드셔 보길 권합니다. 한국인 입맛에도 크게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마르세이유 대표적 요리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해장식으로 주로 이용한다는데, 숙취해소에 국물이 최고인 건 동서양이 같은 것 같습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탈출한 것으로 유명한 샤토 디프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나오면, 흰 석회암 절벽들이 연안에 걸쳐 투명한 바다위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배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에스프레소 한잔의 향기에 마르세이유 정취를 한껏 맛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 샤토 디프 섬
* 마르세이유의 명물 스튜요리, 브이야베스
마르세이유 지방에서 특히 유명한 프랑스식 해물 스튜. 서양식 해물잡탕이라고도 표현되기도 합니다.일단 아낌없이 해산물을 쏟아 넣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들어가는 해산물의 면면도 모시조개, 새우 십 수 마리, 꽃게, 오징어, 아귀 혹은 대구 혹은 붕장어 혹은 숭어 같은 큰 놈 통째로 한 마리씩…. 재료 하나하나가 메인 디시로 써도 손색없는 상당한 스펙의 식재료입니다. 이걸 몽땅 써서 확 끓여버립니다.
거기에 토마토, 고추, 마늘, 양파를 듬뿍 넣고 월계수 잎, 타임, 오렌지 껍질 등으로 향을 더합니다. 그 다음 조개육수와 토마토 소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끓여 먹으면 됩니다. 국물은 바께트를 곁들여 먹고 냄비에 남은 삶아진 해산물은 마늘을 듬뿍 넣은 마요네즈 등을 발라 먹습니다.
요리의 기원은 어부들이 잡은 고기를 내다 판 뒤에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고기나 잡어 정도만 남을 뿐이라서, 어차피 팔지 못한 물고기니 신나게 먹어나 보자고 몽땅 냄비에 넣고서 끓인 것입니다. 즉 서민 요리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어엿이 신분상승한 요리입니다.
파리 식과 마르세유 식의 재료가 약간 다른데, 파리 식은 위에서 언급한 해물 외에도 가재나 홍합 등도 사용되고 마르세유 식은 주로 생선으로 승부를 보는 편입니다. 이는 파리 식이 이후 부르주아 계층들에 의해 비싼 재료를 넣고 호화롭게 즐기는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해물 고유의 비릿하고 짭조름한 맛을 좋아하는 일부 해물 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의 맛이라고들 합니다.
* 항구의 레스토랑
* 밤의 항구 풍경
[ 마르세이유를 배경으로 한 영화 <볼사리노> ]
* 당시 포스터
프랑스의 전설적인 국민배우 2명을 뽑으라고 하면 당연히 들어가는 배우가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드일 것입니다. 이 두 명의 배우가 같이 출연한 영화가 6편이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그들이 무명시절에 같이 출연한 영화였지만 영화 <볼사리노>는 두 배우가 최고의 전성기 시절에 같이 찍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배경으로 의기투합한 두 주인공 알랭 드롱과 장 폴 벨몽드가 암흑가의 거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미국영화 <스팅>과 비슷한 분위기일 것 같지만 <볼사리노>는 내용이 더 폭력적이고 어두운 느와르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볼사리노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품 모자 메이커로 영화 속에서 알랭 들롱의 간지를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클로드 볼링이 연주하는 경쾌한 영화음악은 지금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알랭 들롱이 제작에 참여하고 알랭 들롱과 많은 영화를 함께 한 쟈크 드레이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볼사리노>, 당대 프랑스 최고의 두 배우인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드가 함께 공연한 이 영화는 30년대 초 프랑스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당시 특유의 암울한 프랑스 범죄영화 답지 않게 살짝 유쾌한 분위기가 묻어나옵니다.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드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습니다. 물론 이 작품 이전에도 몇몇 작품에서 함께 공연을 했었지만 <볼사리노>를 통해 이 두 배우의 앙상블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배우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연기, 탄탄한 스토리, 클로드 볼링의 경쾌한 음악이 이 영화의 몰입도를 한층 더 올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1930년대 마르세이유 항구도시, 범죄조직 신디케이트가 유행처럼 확산되고 도시에는 거대한 암흑 조직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갓 출옥한 로크 카펠라(알랭 들롱 분)는 옛 애인 로라를 되찾아 오고자 프랑소와 시프레디(장 폴 벨몽드 분)와 주먹싸움을 벌입니다.
* 볼사리노 모자를 쓴 두 사람
그러다가 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권투 경기를 개최하는 등 작은 돈벌이를 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암흑조직의 보스인 폴리의 정육창고에 불을 지르면서 조직과 정면대결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시장 후보자인 리날디의 저격사건으로 범죄조직의 거두인 마레오와 숙명의 한판을 벌이게 됩니다.
세력을 잡기 위한 조직간의 피 터지는 대결. 아랑 드롱과 장폴 벨몽드의 멋진 액션, 종반부에 프랑소와가 살해되면서 씁쓸한 뒷맛이 남기는 여운 등은 진정한 영화팬이면 놓칠 수 없는 뛰어난 액션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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