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845)
■ 3부 일통 천하 (168)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9장 여불위의 이상한 투자 (2)
다음날이었다.
여불위(呂不韋)는 1백 금의 황금과 함께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물건을 싸들고 왕손
이인(異人)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이인(異人)에게 선물을 바치고 나서 말했다.
"저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입니다.
제가 이번에 천하에 보기드문 기화(奇貨)를 발견했는데, 저는 그것을 사러 왔습니다."
이인(異人)은 여불위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 기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기에 나를 찾아온 것이오?"
여불위(呂不韋)는 빙긋 웃었다.
"그 기화(奇貨)는 여기에 있으며, 바로 공자이십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려."
"저는 장차 공자의 힘을 빌려 제 집에 천하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커다란 대문을 세울 작정입니다.
공자께서는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이인(異人)은 오랫동안 볼모 생활을 하며 궁핍한 생활을 영위해왔다.
더욱이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단(邯鄲)에서의 생활은 고달프고 치욕스럽기만 했다.
이런 수모와 모욕에 젖어 있는 이인의 귀에 여불위라는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방금 전의 말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천하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는 대문 운운하며 자기를 도와달라는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여보시오, 여불위(呂不韋)라고 했습니까? 당신이 크게 번성하여 나를 도와준다면 모를까,
내가 어찌 당신 집에 큰 대문을 세워줄 수 있겠소? 그대는 불쌍한 이 사람을 조롱하지 마시오."
그러나 여불위(呂不韋)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신있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습니다. 저의 집은 공자의 집이 커진 후에야만 덩달아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공자께서 저에게 운명을 맡기시면 저는 공자의 집에 천하 제일의 대문을 세워드리겠습니다.
부디 제게 공자를 살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그제야 이인(異人)은 여불위의 말뜻을 알아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쉿! 여기는 나를 감시하는 조(趙)나라 사람들이 많소. 후일 조용할 때 다시 찾아오시오."
여불위(呂不韋)는 이인이 장차의 일에 마음이 있음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황금 1백 금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것으로 공자를 감시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사십시오. 저는 내일 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첫날의 대면은 이렇게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자 여불위의 아버지가 험악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금고에 놔두었던 돈 중 1백 금이 사라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대뜸 여불위의 멱살을 틀어잡고 다그쳤다.
"이놈, 장사한다는 놈이 돈 아까운 줄 모르다니! 대체 1백 금을 어디다 쓰고 왔느냐?"
여불위(呂不韋)가 겨우 아버지를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가축을 길러 내다팔면 몇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야 열 배 정도의 이익을 보겠지."
"그렇다면 보화나 진귀한 골동품을 싸게 사서 대도시에 내다팔면 몇 배의 이익을 봅니까?"
"적어도 백 배의 이익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여불위(呂不韋)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만일 사람 하나를 사서 일국의 왕(王)으로 세운 후 그 나라 재상에 오른다면 그 이익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는 주춤하는가 싶더니 곧 대답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 이익은 가히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여불위(呂不韋)가 큰 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방금 전 그렇게 될 만한 사람을 하나 샀습니다.
우리는 이제 조만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이익을 챙기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저녁이었다.
인적이 끊기기를 기다렸다가 여불위(呂不韋)는 다시 왕손 이인의 저택으로 갔다.
이인(異人)도 여불위가 오기를 기다렸음인지 작은 문을 통해 들어오게 한 후 후원 밀실로 그를 데려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무엇으로써 나의 집에 천하 제일의 문을 세워주겠다고 장담하는 것이오?"
여불위(呂不韋)는 하루 종일 그 방법에 대해서 강구했던 터라 주저없이 자신의 포부와 계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가 없는 법이지요. 진왕(秦王)께서도 조만간 세상을 뜨실 날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
"공자께서도 아시다시피 공자의 아버지는 진(秦)나라 세자이십니다. 지금의 왕이 돌아가시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공자의 아버지께서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세자 안국군의 부인은 세상에도 잘 알려진
화양(華陽) 부인이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화양(華陽)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다.
반면 측실인 후궁 소생의 아들은 이인(異人)을 비롯해 20여 명이나 된다.
왕위에 오르게 되면 후계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과연 20여 명의 후궁 소생 중 누구를 세자로 삼을 것인가.
여불위(呂不韋)가 착안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후계자를 정함에 있어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은 소생이 보기에 바로 화양(華陽) 부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화양 부인의 양자로 들어가는 사람이 안국군(安國君)의 뒤를 이을 다음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오?"
이인(異人)은 아직도 여불위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여불위(呂不韋)는 전혀 초조해하거나 답답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게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제가 공자를 위해 지금부터 할 일이란 다름이 아닙니다.
저는 내일이라도 당장 함양(咸陽)으로 달려가 공자를 화양 부인의 양자가 되게끔 애를 쓸 작정입니다."
"만일 그렇게만 되면 공자는 후일 공자의 집에 어찌 천하 제일의 대문을 세우지 못하겠습니까?"
"아...............!"
이인(異人)은 비로소 여불위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경탄어린 눈으로 여불위를 바라보던 이인(異人)은, 그러나 이내 다시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대가 아무리 뛰어난 상인이라 해도 어찌 화양(華陽) 부인의 마음을 내게로 돌릴 수 있을 것이며,
나 또한 볼모의 몸인데 무슨 수로 이 조(趙)나라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소? 그대의 뜻이 크고 좋기는 하나
현실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듯싶소."
여불위(呂不韋)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슨 유능한 상인이겠습니까? 저는 천하 제일의 대상(大商)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공자께서 소생에게 일신만 맡겨 놓으신다면 그 나머지 일은 모두 소생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자, 이제 공자께서는 답을 주십시오. 저에게 공자의 앞날을 파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만두시겠습니까?"
이인(異人)은 잠시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자신이 진나라 왕위에 오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로서는 볼모 신분에서 벗어나 함양(咸陽)으로 돌아가 자유로이 생활하기만 해도 대만족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내가 과연 자신에게 그런 행운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이인(異人)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여불위(呂不韋)는 그런 이인의 마음을 짐작하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말했다.
"우리 상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일은 공자에게 있어서는 밑져야 본전입니다."
- 밑져야 본전.
그랬다.
지금의 상황보다 더 나빠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여불위(呂不韋)의 말은 이인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새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이인(異人)은 고개를 쳐들었다.
두 손을 내밀어 여불위의 두툼한 손을 잡았다.
"그대가 정녕 나를 귀한 몸으로 만들어준다면 내 그대와 함께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겠소!"
이것으로 두 사람간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남은 일은 이제 실천뿐이었다.
이인의 결심을 확인한 여불위(呂不韋)는 품속에서 5백 금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인(異人)이 놀라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계약금입니다."
"계약금?"
"하하하. 농담입니다. 공자께서는 이 곳에서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후일을 위해 이 돈으로 좌우 사람들을 매수하고 여러 빈객(賓客)들과 교류하십시오."
"나중에 이 곳 한단(邯鄲)을 탈출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소생은 내일 함양(咸陽)으로
떠날 작정입니다. 당분간 이 곳에 들르지 못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여불위(呂不韋)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