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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
가수
출생 1977년 9월 20일 (일본)
학력 오키나와엑터즈스쿨
데뷔 1992년 슈퍼 몽키즈 [ 戀のキュ-トビ-ト]
수상 일본 2년연속 레코드 대상
경력 1992년 그룹 슈퍼 몽키즈 멤버
키 158
체중 40
8.5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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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 최초 4대돔 최연소 투어를 성공
전성기시절에는 일본문부과학성장관이 정부대변 브리핑에서 아무로 나미에 패션 공식적으로 금했음
통굽으로인한사고증가
일본 경제사전과 교과서에 아무로나미에 효과가 정식기록
여가수 최초 4대돔 최연소 투어를 성공
일본건국후 최초 여중고생 몸무게 2Kg 감소 정부공식통계 인정
결혼기자회견때 입은 바바리 치마 일본내 단독매장설치
혼전임신으로 인해 19세 여고생들 미혼모증가
치바마린스타디움 여가수 단독공연 최연소 7만명기록
최연소 최단기간 2000만장앨범판매 1위 (아무로나미에 2.1년 하마사키아유미 2.2년 우타다히카루2.4년)
그리고 하마사키가 오리콘공식인터뷰서 "아무로 나미에는 내가 손을 뻗어도 만질수없는그런존재"
현 보아소속사 에이벡스 일본내 매출1위를만든장본인이 아무로 나미에
오오츠카 아이 공식인터뷰 "아무로 나미에를 가장존경합니다"
보아 공식인터뷰"아무로 나미에 같은 가수가되고싶어요"
아무로는 일본내에서도 기부많이하기로 유명하죠
우리나라에 1억원(우리나라 내한콘서트때)기부
수마트라 스나미 복구에 1억원 기부
일본 레코드대상 2년연속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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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J-pop의 여신이라 일컫는 아무로 나미에.
160cm도 안되는 아담한 키의 소유자지만,
8.5등신을 넘기는 환상적인 신체 비율에
그에 걸맞는 작은 사이즈의 얼굴.
또 31세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그녀의 탱탱한 피부와 탄력있는 몸매는,
많은 여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실제로 90년대의 일본 열도는
아무로에 대한 여성들, 일명 '아무러'의 지지가 엄청났다.
아무로 나미에가 입는 옷이라면,
아무로 나미에가 다는 악세서리라면,
아무로 나미에가 하는 헤어라면
일본 여성들은 무조건적으로 카피했다.
(높은 통굽, 검은 부츠, 긴 갈색 생머리, 짧은 미니스커트 등등)
실제로 통굽 붐의 영향으로 일본 내 통굽 운전사고가 거의 매일같이 발생했고,
이에 일본 정부는 통굽 운전 금지령까지 내리게 된다
아무로 나미에의 구릿빛 피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여성은 아무로 나미에 구릿빛 피부 톤 조차 탐나했고
결국 온 몸을 검게 선탠하는 유행이 번진다.
(이것은 후에 고갸루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아담한 키에도 불구하고 8등신의 비율을 자랑하는
아무로 나미에의 작은 머리와 긴 팔다리의 날씬한 몸매 또한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 했고,
그 결과 일본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3kg이나 하락해버린 기현상도 벌어졌다
아무로의 등장과 후폭풍은 사회적 현상에 가까웠고,
이 모든 신드롬은 '아무라 현상'이라는 신조어로 정리되며,
이 '아무라 현상'은 일본 경제 사전에 등재되기 까지 한다.
(실제로 아무라의 등장은 일본 문화 시장을 쥐락펴락할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데뷔 싱글부터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던 아무로 나미에는,
이후 발표하는 싱글 마다 기본적으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일본 음반 시장 사상 유례없는 승승장구를 한다.
특히 96년 발표된 2번째 앨범인 'Sweet 19 blues'는 480만장을 판매고를 올리며
최연소 최다판매 앨범으로 기록돼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고,
그해 일본 레코드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은 일본 음반계가 초호황을 누리던 시절로,
아무로는 이 시기와 맞물려 일본의 음악 역사를 모두 갈아치웠고,
이때부터 아무로 나미에는 'J-pop 여신'이란 수식어를 달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7년 10월,
아무로 나미에는 돌연 임신 사실과 함께 결혼 의사를 밝힌다.
상대자는 역시 당시 일본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TRF의 멤버 SAM.
데뷔 2년만에 단일 앨범 최다 음반 판매량인 2000만장 돌파와
당시 새 싱글이었던 'Can You Celebrate'의 200만장 돌파란 어마어마한 기록과 함께,
사상 유례없던 독보적인 인기를 구사하던 아무로 나미에의 갑작스런 결혼 발표는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으며,
아무로 나미에가 결혼 소식을 발표할 때 입고 나왔던
블루라벨 버버리 미니스커트는 당일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또한 아무로가 결혼 소식을 발표하기 전,
소속사 AVEX는 아무로의 결혼 발표를 강경하게 반대하지만,
아무로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단발로 싹뚝 자르는
매우 강렬한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이같은 아무로의 사연있는 단발헤어는 또 한번 일본 내 여성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켰고
아무로의 '속도위반' 결혼 조차 일본 사회 내에서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97년 말,
출산 준비를 위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자신의 가수 생활을 잠정 중단하고
1년간 휴식에 들어갔던 아무로 나미에는
98년 홍백 가합전에서 자신의 컴백 무대를 갖는다.
홍백 가합적은 아무로 나미에에게 무려 6분 가량의 시간을 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감행했다. (보통은 2~3분)
그러나 당시 아무로에겐
다시 돌아온 자신을 대중이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97년 자신의 최고 히트싱글이었던 'Can You Celebrate?'를 부르며
1년만에 다시 찾아온 아무로 나미에를 향해
객석은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고,
아무로 나미에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자
급기야 벅찬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98년 아무로 나미에의 홍백 가합전 무대는
60%란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아무로 나미에는 그렇게 성공적인 컴백을 치룬 듯 했다.
하지만
아무로의 복귀 후
2번째 싱글이었던 'Respect The Power Of Love'가 발매 되던
1999년 3월.
아무로는 일생일대의 끔찍한 폭격을 맞는다.
바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 받는데,
새남편의 남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부고였다.
아무로의 숙부는
도끼로 수차례 내려찍는 잔인한 수법으로 아무로의 어머니를 죽였다.
아무로의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돈을 주지 않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모습 하나하나는 빠짐없이 유행화 됐고,
그것은 그녀를 절대적으로 동경하던 '아무러'들로 인해 가능했다.
환상적인 몸매와
시원시원한 마스크.
센스있는 패션감각하며,
뛰어난 춤솜씨와 노래실력까지
모두가 동경하는 혹은 동경했던,
그저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서 슬픈 이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그녀의 그리 유쾌하지만은 못한 성장기가 있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고
부모님의 잦은 싸움과, 이혼을 지켜봤으며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아무로는 무척이나 떨었다고 한다.)
몇푼의 차비조차없을만큼 가난하여
왕복 3시간 거리의 액터즈 스쿨을 매일마다 걸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단둘이 생활해왔던 어머니에게
아무로 나미에는 아주 각별한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의 살해 사망 소식은
그녀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고,
그녀는 자신의 가수 생활에 까지 크나큰 회의를 느낀다.
은퇴를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맘을 고쳐먹고,
무리한다 싶을 만큼 곧장 가수 활동을 재기한다.
주변의 만류도 만류였겠지만,
아무로는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을 가장 행복하게 바라보실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끔찍하게 살해되던 날
일본에 발매되었던
'Respect The Power Of Love'로 홍백가합전에 출장한다.
너무나도 밝은 멜로디의 발랄한 안무.
다소 그늘진 얼굴이었지만,
아무로 나미에는 안타깝게 애써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열의에도 불구,
2000년대에 들어선
아무로 나미에는 샘과의 이혼과 맞물려
판매량의 하락세 등,
'J-pop'의 여신으로 불리던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너무도 부진한 활동을 이어간다.
아무로 나미에의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도 '부진'을 초래한 근원 중 하나였다
또한 일본내 인기그룹 'v6'의 미야케 켄과의 열애설이 터지며
아무로 나미에는 한차례 곤혼을 치뤄야 했다.
실제로 그들은 2년 동안 연인의 관계 였지만,
일본 잡지 '프라이데이'의 열애설이 보도가 터지자,
미야케 켄은 "결혼을 위한 만남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존경하는 선배이다."
(아마 쟈니스라는 거대 소속사의 말을 미야케 켄이 대신한 듯 하다.)
라는 말로 일축해 아무로 나미에가 크게 상처를 얻었다.
또한번 '탑 연예인'이란 틀이 한 연인을 이별하게 한 것이다.
끊임없는 사건 사고와
추락해가는 인기..
하지만 아무로 나미에는 이에 개의치 않고
힙합이 가미된 자신의 독창적 음악 스타일을 꾸준히 고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7월,
통산 일곱번째 정규 앨범에 해당하는
'Play'가 첫주 25만장을 기록, 오리콘 정상을 차지한다.
2000년 3집 앨범 이후 무려 7년 6개월만의 값진 성과였다.
「‘인기 회복’보다 의미가 더 깊은 것은
7년간 그녀가 추구해 왔던 아무로 표 힙합이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 中
2002년.
아무로는 자신의 오른쪽 팔에 원형의 문신을 새겼다.
어머니 다이라 에미코의 생년 월일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애틋한 맘을 표현한 메시지였다
JUN.30.in 1950
My mothers love live with me
Eternally in my heart
R.I.P
1950년 6월 30일
어머니의 사랑은 저와 함께 살고 있어요.
저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평온하게 잠드시길..
p.s:잘못된지식하나..
아무로 어머님은 이탈리아 혼혈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혼혈이지만은 어디혼혈인지는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암튼 백인 혼혈은 맞으심.참고로 아무로 아버지는 오키나와인
출처:몇개사진 인터넷&일본티비 "야마삐랑일낸년"님 &네이년지식즐
첫댓글 슬프다....먼가ㅠㅠ 걍 사진이나 볼라구 들어왔는뎅ㅠㅠㅠㅠㅠㅠㅠㅠㅠ 멋져부러
키는 나랑똑같은데 왜 몸무게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진짜 다 읽어봤는데..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막 찡하기도하고..
진짜 부츠 좋아하나봐요 ~ 그런데 어머니 이야기는 첨알았어요 너무가슴아플듯..ㅠㅠ
아무로나미에 어머님이 쓰신 자서전 읽어보세요.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일본 연예인 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분임
제가쓴글이 아니라서 호호호
키커보이는데 ㅠㅠㅠ 158이래 ㅠㅠㅠ
얼굴비율너무 부럽따 ㅠ
기미가요 부르길 거부한 가수 ....그래서 더 이뻐보임 ^^
워낙에 좋아햇는데 이런 일들이 있었을 줄이야,.....슬프네요....,..저기결혼발표 전신샷은 정말 키 180은 되보임...;;
글하나하나 다 읽었음...너무존경스럽네요...근데 몸매도 진짜 부럽다....저 작은키가 비율이8.5등신?헉..
나두 말라야지 픽
노래 정말 좋은데..ㅠㅠ 너무 안타까워요 아들도20살에 낳아서 지금 무지 컸죠..남편도 참 대단한 사람인데...지금은 그냥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고..........
일본에서 대단한 가수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굴곡진 삶을 살아왔을 줄은 몰랐네요... 외모며 실력이며 진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가수 같아요. 전 근데 여기서 비율이 제일 부럽다는ㅠㅠ 저 작은 키에 비율이 8.5등신... 나도 얼굴이 작았으면...ㅠㅠ
진짜 모든면에서 본받고싶어요. 말그대로 여신임.- _ㅜ 내 인생의 우상
이정도로 대단한줄은 몰랐네요 ..우와,,.
진짜 여신이군요 ㅠㅠ 인생담도....포장된게 아니라면 정말 대단한듯... 작은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박수!!!!!
멋있는 사람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진보니 아무로 나미에 정말 부츠 좋아하는구나..
비율 쩔어요...인간이 아니야~
아무로나미에.. 되게 힘들게 자랐다고 들었어요.. 벌써 초등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임!~~
나도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와
저게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형이다 인형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키 작은데.. 아무로랑 비교되는 비율 어쩔거니?ㅠㅠㅠ 얼굴 정말 작어 신기해~
몸무게가 40이여도 아무로나미에 같이 못된다는 생각 때문에 ........ 아 의욕 상 실 되려해 ㅜ ㅜ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