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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운하섭수(云何攝受)-1
척신명은 진회하에 있던 온유원이 화마(火魔)에 휩쓸려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는 순
간 만면에 희색이 가득해졌다. 척금방은 부친이 기뻐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곤
혹해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느냐?"
"네, 아버지."
"당연하겠지. 진회하에 있는 온유원은 환희궁의 총단이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저가 궁금한 것은 환희궁에 재앙이 닥친 것과 아버지의
기쁨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거예요."
척금방은 툴툴거렸다. 부친이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당연히 기쁘지 않겠느냐. 환희궁이 총단을 게을리 관리해 불이 났겠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환희궁에서 총단을 제외하고 가장 큰 세력인 소주와 항주
의 분단도 공격을 받아 괴멸됐어요. 게다가 천하에 산재한 기루나 주점 중 크다고
알려진 곳은 하나같이 재앙을 당했어요. 물론 그곳은 하나같이 환희궁의 분타였어
요.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죠. 누군가 환희궁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그렇단다. 그럼 누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환희궁을 공격했겠느냐?"
척신명의 질문은 척금방을 곤혹하게 만들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파는 환희궁은 공
격 대상이 될 이유가 많았다. 게다가 환희궁을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방
파도 그 수가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존재했다.
"모르겠어요. 아버지. 환희궁이 망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너무 많아요."
"그럼 환희궁을 괴멸시킬 수 있는 방파나 세력은 어디 어디냐?"
"일단 팔마당과 사해방의 네 세력, 녹림칠십이로채, 개방, 장강수로연맹, 혈방, 황하
수로채, 그리고 우리 운문상회가 소속된 오악맹이죠."
"대충 맞았다. 그러나 혈방과 황하수로채는 환희궁과 동맹관계이니 제외할 수 있
다."
"그럼 답이 나오는군요. 오악맹은 아니고, 녹림이나 개방이 움직였다면 소문이 퍼졌
을 건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아니지요. 남아 있는 팔마당이나 사해방이 저질렀겠
죠."
척금방이 분석내용을 듣고 있는 척신명의 만면에 기쁨이 가득 피어났다.
"그들도 너처럼 분석을 내릴 것이다."
"네! 그럼... 팔마당이나 사해방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라는 게 정확하다."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는군요."
척금방은 부친이 속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궁은 혈방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다. 즉 누군가 환희궁을 괴멸시켰다면 그 목
표물은 혈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군요. 환희궁을 먼저 쳐서 정보망을 교란시킨 뒤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것이군
요."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지. 하지만 오악맹의 주축인 혈방이 무너지면 손해를 보는
내가 기뻐할 일이 있겠느냐."
"점점 오리무중이군요. 아버지 속시원하게 말해주세요."
척신명의 설명은 짜증이 나게 했다. 척금방은 부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환희궁 괴멸에 숨은 뜻을 모르는 것에 화가 났다. 자기 머리가 이 정도에 불
과한가 싶어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알았다. 내 자세히 말해주마. 환희궁을 공격한 세력은 이원의 명령을 받은 구류방
이다."
"네! 구류방이요! 게다가 이원의 명령을 받아요?"
"구류방은 이원의 하부조직이다. 이원의 상부는 사해방을 제어하기 위해 구류방을
팔마당에 위장투항 시켰다."
"그, 그럴 리가..."
이원은 송자헌이나 서문종이라는 초강자들이 산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마을
이라는 게 척금방의 생각이었다. 또한 기예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특성과
당 현종이 창설했던 이원과 명칭이 같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척금방은 크게 생
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구류방의 상부조직이 이원이라는 부친의 말을 듣는 순간 척금방은 자기 안
목에 대해 비관을 느끼고 말았다. 진룡거사 송자헌과 산창 서문종이라는 화려한
명성에 시선을 뺏겨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구류방이 환희궁을 친 가장 큰 이유는 두 마리 호랑이를 싸움을 붙이려는 것이
다."
"팔마당과 혈방이 전쟁을 치르게 만든다는 것이군요. 어부지리를 노리는 거군요."
"그렇다. 하지만 이원이 노리는 것은 팔마당과 혈방이 아니다."
"최종 목표는 사해방이겠죠."
"그건 아니다. 사해방은 이원의 목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절대로 최종목표
는 아니다. 게다가 이원이 노리는 목표에 오악맹과 운문상회까지 포함돼 있다."
이원의 표적 중에 운문상회와 오악맹도 있다는 척신명의 말은 척금방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어, 어떻게 이원이 오악맹을 알고 있죠? 게다가 우리 상회를 노릴 이유는 더욱 없
을 건데...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원은 오래 전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놀랍군요... 혹시 아버지가 무객 척소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나요?"
이원이 부친을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척금방의 뇌리에 떠오른 의문
이었다.
"과연 내 딸은 총명하구나."
"알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이원이야말로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세력이라는 결
론이 나오는군요."
척금방은 이원의 실체를 알게되자 두려움이 생겼는지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이원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방법과 역공을 가할 방법을 나름대로 고민하
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급하게 뛰는 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문밖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회주님. 긴급연락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와라."
문을 여고 들어온 척신명의 부하는 십여장에 달하는 문서를 올리며 보고했다.
"혈방과 공령문에서 동시에 연락이 왔습니다."
"알았다. 그만 나가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부하가 나가자 척신명은 긴급연락 문서를 쳐다보았다.
"점점 재미있어 지는구나."
"무슨 내용이에요?"
"환희궁 총단에 홍면금살군의 아들인 사마진양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죽었겠군요."
"맞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홍면금살군에게 사마진양의 수급을 보냈다는 것이다."
구류방의 대담함은 척금방을 흥분케 했다.
"놀랍군요."
"이제 혈방이 팔마당을 공격하는 건 시간문제이군."
"그렇겠죠. 그런데 공령문에서 온 연락은 뭐예요?"
"환희궁이 괴멸해 정보를 수집하는데 어렵다며 공령문이 그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
을 혈방을 했다는 것이다."
혈방의 부탁은 당연한 것 같았지만 이면에 다른 뜻이 포함된 것 같다는 느낌을 척
금방은 받았다.
"뭔가 좀 이상해요..."
척신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해주었다.
"당연하다. 사마경덕은 공령문을 제 2의 환희궁으로 삼고 싶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언봉운이 내게 연락한 것은 그도 그걸 느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홍면금살군은 오악맹을 자신의 수족으로 삼을 생각도 가지고 있겠군요."
"그건 사마경덕뿐만 아니라 다른 네 사람이 모두 같은 심정이다."
"이제 겨우 씨를 뿌렸는데 벌써 소유권을 주장하는군요."
"열매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씨앗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란다."
척신명의 대답은 오악맹의 현주소였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원이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데 혈방과 팔마당은 넘어간 상태이다. 그렇다면 우
리가 선택할 길은 하나란다."
"무엇이죠?"
"혼수막어(混水莫魚)와 가치부전(假痴不癲)이다."
척금방은 병법36계 중에 두 가지 계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부친의 생각을 나름대
로 계산했다.
"강호를 더욱 혼란에 빠트려 이원이 어부지리를 얻지 못하게 하고, 혈방의 요청을
따라 움직이면서 그들의 속셈을 모르는 척 행동해 어리석게 보이게 만든다는 건가
요?"
"그렇단다. 그 때문에 내가 즐거웠던 것이다."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는 거군요."
"당연하지 않느냐. 지금까지 오악맹을 비롯해 강호의 여러 사업에 투자한 것은 수
십 배의 이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오랜 시간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한꺼번에 수거할 수 있는 길이 보였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척신명은 기쁨을 참지 못해 희희낙락했다. 그런데 척금방은 부친이 말한 가치부전
의 계를 공령문주인 언봉운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찜찜한 기
분이 들었다. 게다가 척신명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척금방은 기
묘한 우월감에 젖어버렸다.
"혼수막어와 가치부전의 계략을 사용한 뒤 어떻게 이익을 얻겠다는 건가요?"
"적아(敵我)가 혼동될 때 유리한 부분을 취해 새로이 조직을 구성하며 유연하게 움
직여 끝까지 살아 남으면 된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될 거
니까."
"무엇을 취하느냐가 관건이군요."
"그렇단다."
"정확한 정보를 가진 자가 가장 유리하겠군요."
척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척금방의 의견이 정확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정보를 관장하는 조직들을 괴멸시키는 것이다."
"환희궁은 괴멸됐으니 구류방과 공령문만 없어지면 되겠군요."
"물론이다. 또한 개방과 이원 역시 사라져야한다. 그들 역시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
하는 조직들이니까."
"호호호, 그렇군요."
척금방이 교활한 웃음을 터트리자 척신명의 눈동자에 음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이
원이 만든 혼란을 더욱 배가시켜 사익을 챙기겠다는 부녀의 모습은 사악하기 그지
없었다. 척씨 부녀가 있다는 것은 강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재앙이었다.
악 부인 일행이 산동악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비천도(飛天刀) 육자성
은 당혹했다. 게다가 아우인 시랑도 육자환은 나타나지 않아 그의 속을 더욱 뒤집
어버렸다.
"악가의 전력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데...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육자성의 고뇌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능풍 이놈도 믿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지 에미의 손가락이라도 잘라 보내야 고분
고분해 지려나."
분노의 화살은 육능풍에게 돌려졌다.
"악가의 무공을 내놓으라고 했으면 즉각 받쳐야지. 감히 반항을 해."
육자환에게 받은 보고를 떠올리자 노기가 더욱 솟구친 육자성은 씩씩거렸다.
"가주. 능풍은 다음에 처리해도 늦지 않아요. 어차피 그 녀석 에미를 억류하고 있는
이상 언제든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마의(麻衣)를 입은 노인이 걸어오며 육자성에게 말했다. 육자성은 마의를 입은 노
인에게 목례를 했다.
"오셨습니까. 숙부님."
"지금은 본 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대사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이번에 악가를 섬멸
하지 못하면 본 가의 앞날은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현재 본 가의 전력은 악가의 백영대와 격돌하면 팽팽한 승부를 벌일 수 있다고 들
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백영대가 아닙니다."
육자성은 숙부가 말하는 내용의 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산동악가를 공격하려고
해도 백영대가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판국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듯 말했
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악가의 별동대인 십오야를 말씀하시는 겁니
까?"
"가주. 그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숙부님."
"후우~. 내가 급히 본가로 달려온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이오."
"개방의 정보는 천하가 인정할 정도로 정확합니다. 그런데 무슨 정보이기에 믿을
수 없다고 하시는지..."
육자성의 숙부는 일로음살(鎰勞飮薩) 육궁지였다. 한때 개방 산동 총타의 총타주로
재직할 때 산동악가의 정보를 빼내 육가문에게 전해주었던 인물이다. 산동악가의
몰락과 산동육가문의 급부상에는 그의 힘이 컸다.
현재는 개방의 장로가 되어 개방의 총단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별호 그대로 받은 만
큼 일하고 보살도 마신다는 성격이 문제가 되어 위와 아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
고 있었다. 육궁지는 한마디로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 불만이 가득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무실하다해도 장로의 신분이다 보니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었
다. 육궁지는 개방에서 정리한 자료 중에 충격적인 내용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동육가문을 향했다.
그런데 육가문에 도착한 육궁지는 가문 전체가 악가의 백영대조차 버거워 하는 상
황에 당황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려운 육가문의 처지에 폭탄 같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어 육궁지는 정보를 언제 전해야 할지 며칠째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가문의 주인인 육자성이 정원을 거닐며 답답한 소리를 해대고 있자 육궁지
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개방에서 빼온 정보를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개방의 기무전(機務殿)은 천하에 산재한 정보를 수집해 정리하는 부서올시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개방의 정보가 정확성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인정받는
것은 기무전 때문이라 알고 있습니다."
"나는 기무전에서 한 인물에 관한 정보가 정리된 보고서를 우연히 볼 수 있었소."
"누구인데 그렇게 충격적인 거라는 겁니까?"
육자성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제 22세의 청년에 관한 것입니다."
"스물 두 살 먹은 어린 아해를 개방 기무전에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겁니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육자성의 의문은 당연했다. 강호에서 22세의 청년이라면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그
런 햇병아리를 개방이 눈 여겨 보고있다는 것은 당연히 의문이 가는 일이었다.
"그 청년의 손에 잔마가 반항조차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면 이해가 가시겠소."
"자, 잔마라니요? 팔마당의 잔마 말입니까?"
육궁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일이군요. 잔마를 해치울 정도라면 저 보다 강자이군요."
육자성은 놀라움과 함께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 정도가 아니오. 잔마는 반항조차 못했소이다. 기무전은 그 청년의 역량을 십대
고수에 버금간다고 결론을 지었소."
"허! 이십대 청년이 십대고수의 문턱을 두들긴단 말입니까? 정말 놀랍군요."
"놀랍지요. 하지만 더 놀랄 일은 그 청년의 이름과 출신입니다."
육궁지의 안색이 침중(沈重)하게 변하자 육자성은 무거운 어조로 질문했다.
"도대체 누구인데 그러십니까?"
"이름은 악삼이고, 산동악가 출신입니다."
"뭐라고요!"
육자성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했다. 육자성은 불안한 눈빛을 비추며 이
리저리 서성이다 육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숙부님."
육자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육궁지에게 부탁했다.
"가주도 궁륭산 태을궁을 기억하실 겁니다."
"산동악가에서 인재를 키운 장소지요. 거기서 수련한 자들이 백영대와 십오야의 구
성원들이니까요."
"그럼 그들 중에 여덟 명이 남아 오년 간 더 수련을 했다는 것도 알고 계시오."
"능풍이 그들 중에 한 명이니 잘 알고 있습니다."
"악삼은 그 여덟 사람 중에 하나요."
육자성의 안색은 무겁게 변해버렸다. 악삼이 그 정도 무력을 소유했다면 다른 일
곱 명도 절대로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결론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능풍의 무공이 높을 수 있겠군요."
"그럴 것이오. 또한 남은 여섯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악삼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
했다는 보장도 없소이다."
육자환은 육궁지의 추측을 듣다가 최악의 결론을 생각했다.
"십대고수 중에 두 사람이 악가의 백영대를 이끌고 본 가를 공격한다면 멸망밖에
없습니다. 본 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할 수가 없지요."
"우리는 그저 악삼만한 인물이 더 없기를 빌 수밖에 없소."
"허허... 육년 전 봉문을 푼 악가를 공격했어야 했습니다. 아니 16년 전 누가 뭐라고
하던 악가를 멸망시켜야 했습니다."
"봉문을 결정한 문파를 공격하면 강호의 공분(共忿)을 받아 협공을 당하게 되지요.
그 당시 우리가 봉문한 악가를 공격했다간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에게 공격당해 멸문
을 당했을 것이오. 그들은 아직도 물산이 풍부한 산동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소이
다."
산동육가문이 16년 전 산동악가의 명줄을 끊지 못한 이유는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의
존재 때문이었으니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었다.
"그들의 힘을 이용해 악가를 누르는데는 성공했지만 화근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힘이 약해서 그런 것이외다. 본가의 힘만으로 악가를 눌렀다면 산동성의 북부를
하북팽가에게 내주고, 남부는 남궁세가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가주는 이 사실
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숙부님. 그 당시 본가에 힘이 있었다면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의 도
움으로 육문칠가에 오르는 편법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산동육가문이 명실상부한 산동의 패자가 되려면 그에 맞는 힘이 필요합니다."
육궁지는 강하게 외쳤다.
"숙부님의 말씀은 당연합니다. 저 역시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가문의 역량을 부단히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본가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은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의 방해 덕분에 현 상태를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소이다. 가주. 그들의 방해로 인해 세력확장을 못한 결과 본가는 악가의
공격을 두려워 해야할 처지로 전락한 것을 이 늙은이가 왜 모르겠습니까."
"16년 만에 이런 처지로 전락할 줄 알았다면 결코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을 겁니다."
"후회는 때늦은 겁니다. 가주. 그리고 후회는 우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육궁지의 눈동자에 음흉한 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악가의 칼은 본 가에만 향한 게 아닙니다."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에게도 향했겠죠."
"두 가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은 악삼이란 강자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까요."
육궁지는 교활한 웃음을 짓자 육자환도 그제 서야 무슨 뜻인지 눈치채고 음흉한 미
소를 지었다.
"악가의 칼날을 먼저 남궁세가나 하북팽가에게 겨누게 하자는 것이군요."
"그렇소이다. 가주."
"그렇다면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두 가문과 다시 한번 동맹을 맺어야겠군요."
"당연하지요. 그들이 먼저 악가를 공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많은 양
보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악가의 전력으로 봤을 때 두 가문은 절대로 무사하지 못
합니다."
"물론 그동안 본 가는 힘을 비축해 두어야겠지요."
육자성의 눈동자에 교활한 빛이 가득했다.
"옳습니다. 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웃는 법입니다. 그리고 산동성의 진정한 패자가
될 수 있어요. 저들이 달라고 하면 모두 주시구려. 결코 주는 게 아니라 잠시 맡겨
놓은 거니까."
말을 마친 육궁지는 싸늘하게 웃어버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척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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