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나무를 베다
詩 안갑선
아파트 관리원 최씨가 나뭇가지를 베었다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그것은
그늘을 잘랐고 하늘을 뚫었고 바람을 베어낸 것이다
모과나무도 몸통을 잘랐다
아파트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그것은
아름드리 허공이 송두리째 잘려진 것이다
사정없이 낫질과 톱질을 했다, 그것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독기 품은 섬뜩한 나무의 뿔이 되었다
최씨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떡이며
베어낸 잡목을 질질 끌어다 버리고 갔다, 그것은
그늘과 하늘과 바람을 버린 것이었다
화를 폭발하려는 나무와 눈을 맞췄다
내 팔 내 눈 내 귀 내 다리였어요
나무는 흉물스러워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듯
환삼넝쿨을 힘겹게 걸쳐 입고 하염잆이 침묵했다
무대를 잃은 새와
하루아침에 처자식 잃고 집 잃은 곤충도 있었다
첫댓글 그렇지요, 저도 참 화가 난 개나리를 시로 적어 볼려고 하고 있지요
아니, 웬 화풀이를 나무에게 해 대는 것처럼 싹둑싹둑 잘라 버리는지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어쩌지요 제가 먼저 올렸습니다. 다음에 개나리에 대한 시를 감상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관리인 최씨가 그렇게 하지않으면 주민들이 최씨를 자를겁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시각, 나무를 베다" 입니다. 최씨는 열심히 최선을 다 했지요..
자연이란 그대로 있을 때 자연으로서 가치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시각'이 문제겠지요.
가을마다 팔다리 다 잘린 가로수가 몽둥이처럼 서 있는 꼴불견인 광경이 떠오릅니다.
잘 읽었습니다.
5연 2행의 '다리었어요'에서 '었'을 '였'으로 해서 '다리였어요'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나무들도 무성하면 허공을 점령하는 폭군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일조권을 독점하게 되면 그 밑의 수많은 다른 생명들은 생존권을 위협 받게도 되지요.
그래서 손이 있는 사람들은 창을 막는 나무의 가지를 잘라냅니다.
잘라야 하느냐, 그대로 두어야 하느냐----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네 문제 풀기가 힘듭니다
나무를 자르고 도량을 가꾸면서도 항상 양심과의 싸움이 잦습니다, 더욱이 다른 생명체의 생존문제에 직면할때면 더욱 괴로움을 느낌니다, 숱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자르더라도 나무를 좀 아는, 조경을 좀 아는 사람이 자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지요. 오직 노동인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잘라내는 나무, 피를 철철 흘리며 울고있는 나무와 같이 울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시인이십니다
나무뿐아니라 우리의 감정도 필요에 따라 잘려나가지요 제도에 속해 오랜 생활을 한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저도 회사에서 잘렸어요 ㅎㅎㅎ
저도 언젠가 산문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채 단풍도 들지 않은 나무를 관리원이 무참히 잘라버렸을 때.
아침마다 부엌창으로 신선한 인사 나누던 나무와 한 마디 인사도 없이 헤어졌을 때 그 아쉽던 마음.
그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겠지요..
나무도 때를 모르고 욕심 사납게 옷을 겹쳐입고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햇살, 바람, 하늘을 그리며,
마구잡이 전지하는 모습을 보면 제 팔다리가 잘리는 듯 전율이 느껴져요.
고운 글 잘 감상했어요.
욕심많은 나무에게 최씨는 적당히 옷을 입혀 갈아 입혀 줬으면 합니다
이제는 함부로 나무를 베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대를 잃은 새와 하루 아침에 처자식 잃고 집 잃은 곤충을 언제나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
말썽많은 재개발 구역을 보는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