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애리얼리의 책 『경제심리학』에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소개되어 있다. 이른바 ‘레고 만들기’ 실험. 대학 학생회관 게시판에 “레고 만들고 돈 버세요!”라는 전단지를 붙여놓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레고 모형을 하나 만드는데 자그마치(?) 2달러를 주겠단다. 당연히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든다.
지원자 - 학문용어로는 ‘피실험자’가 되겠다 - 는 레고 블록과 설계도를 건네받는다. 설계대로 로봇을 만들고 나면, 실험자는 레고 블록을 하나 더 만들겠냐고 묻는다. 피실험자가 좋다고 하면 조립은 계속 이어진다. 대신 매번 블록을 만들 때마다 급여는 11센트씩 줄어든다. 두 번째 레고는 1달러 89센트, 세 번째 레고는 1달러 78센트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산술적으로는 18개의 레고까지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설마 0원이 되었는데도 만들겠다는 사람은 없겠지?), 실험자는 최대 18달러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평균 몇 개의 레고를 만들었을까? 평균 10.6개였다. 아마도 제작 단가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지니까 의욕도 한층 떨어졌을 것이다.
◆ 인정의 조건, 무시의 조건, 파기의 조건
이 실험은 노동단가나 급여의 적절성 같은 것을 살펴보는 실험이 아니다. 또 다른 실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앞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실험은 이어지는데, 피실험자가 레고를 다 만들면 완성품을 그의 눈앞에서 ‘분해’해 버리고 다시 만들겠냐고 물어보는 방식으로 실험이 변형된다. 얼핏 생각해보아도 허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그것을 곧바로 부셔버리고는 천연덕스럽게 다시 만들겠냐고 묻고 있으니 “쟤는 뭐하는 놈이야?”하는 시선으로 실험자를 바라볼 것이다.
이 실험은 바로 인간의 ‘노동의욕’과 관련된 실험이다. 사람이 자신의 노동성과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와 무시당한다고 생각했을 때에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을 경제심리학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실험결과, 눈앞에서 자신의 결과물이 파기되었던 사람들의 레고 제작 건수는 평균 7.2개였다. 앞의 실험보다 3.5개가 줄어든 수치로, 무려 68%가 감소하였다.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사소한 로봇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땀흘려 만든 것을 부셔버리고 다시 만들라고 하니, 비록 실험 주최 측이 돈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의 멱살을 틀어잡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또 하나 있다. 이번에도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강의실 안에 모아놓고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준다. 종이에는 의미 없는 알파벳이 잔뜩 적혀 있는데, 그중에서 ‘S’자가 연달아 나오는 경우, 즉 ‘SS’인 조합 10개를 찾아내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10개를 다 찾으면 다시 실험에 참여하겠느냐고 묻고, 피실험자가 동의하면 또 다른 종이를 내어놓는다. 역시 10개의 ‘SS’를 찾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첫 종이에는 55센트, 다음번에는 50센트, 그 다음에는 45센트 식으로 보상금은 줄어든다.
이 실험은 대비되는 3개의 비교실험군으로 나누어 실험이 진행되었다. 한쪽 강의실에서는 피실험자들이 문제를 다 풀면 실험자가 만족한 듯 결과물을 바라보고 흠뻑 미소를 지으며 다음 시험지를 건네주고, 다른 강의실에서는 10개를 다 찾았는지 결과를 확인해보지도 않은채 심드렁하게 다음 시험지를 건네주고, 또 다른 강의실에서는 10개를 다 찾았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데다가 결과물을 곧바로 분쇄기에 집어넣어 학생들의 눈앞에서 산산조각 찢어버렸다.
첫 번째는 ‘인정’의 조건, 두 번째는 ‘무시’의 조건, 세 번째는 ‘파기’의 조건이라고 부른다. 사실 세 번째는 ‘모멸’의 조건이라도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 실험자들이 가장 노동의욕이 높았을까? 당연히 첫 번째 ‘인정’의 조건이었다. 다른 조건들보다 50% 가까이 성과가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이다. 파기의 조건보다 무시의 조건에 있었던 사람들의 노동의욕이 약간 더 높기는 하였지만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무시당하는 것이나 파기당하는 것이나 사람들은 비슷하게 체감하는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은 무시”
댄 애리얼리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부하직원들의 의욕을 꺾고 싶다면 그들이 수행한 업무를 눈앞에서 파기하라. 또는 조금 교묘한 방법으로 부하직원들의 의욕을 꺾고자 한다면 그들이 수행한 업무를 무시하라. 반면에 부하직원들의 의욕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들의 노력과 결과물에 관심을 보이고 인정을 하라.” 이제는 다들 아는 유명한 경구가 되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런 경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제 딴에는 정성들여 보고서를 준비했는데 상사가 “어쩌지? 그 프로젝트 취소해야겠는데……”라며 밤을 새워 일한 보람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고생했다”는 립서비스조차 없다. 살의(殺意)가 치밀어오를 지경이다. 혹은 자신이 보낸 메일을 며칠동안 열어보지도 않는다. ‘수신확인’에 내내 ‘미확인’의 빨간불만 켜져 있다. ‘왜 그럴까’ 조마조마 초조하기도 하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벌개지기도 한다. 중국에서 최고경영자로 20년 넘게 활약하다 은퇴하신 분에게 ‘사람 다루는 법’에 대해 여쭤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은 ‘무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서슬퍼런 인간경영학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정과 칭찬은 좋은 리더십의 기본이지만 무시와 파기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 또한 변증법적인 통합의 리더십이다. 모순의 이론, 부정의 부정 법칙으로 양날의 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이 ‘마오쩌둥(毛泽东)식’ 경영의 기법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불똥이 왜 마오쩌둥으로 옮겨가느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겠지만, 전통적인 맑스-레닌주의에 마오가 첨가한 몇 가지 양념은 동양의 유가와 노장(老莊)사상에 한비자(韓非子)류의 현실주의가 버무려지고, 손자(孫子)의 전략과 병법까지 뒤섞여진 잡탕(?) 이론이라 부를만 한데, 이것은 현대에 사람과 기업을 경영하는 데에도 적절히 이용해볼 만하다. 사실 그것은 무슨 거창한 논리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좋게 될 수도 있다. 이 정도의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요점은 그 무엇이든 터부(taboo)에 휘말리지 말라는 것이다.
◆ 모순론, 실천론을 알아두어야 하는 이유
그 무엇이든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다. 중국인들과 사업을 하다보면 그 유연함에 감탄을 할 때가 있는데, 서양적인 시각으로 그것이 허술해보이고 원칙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다. 나는 그것을 ‘마오쩌둥의 경영학’이라고 부른다. 천하의 저우언라이(周恩来)나 덩샤오핑(邓小平), 펑더화이(彭德怀)나 류샤오치(刘小奇), 주더(朱德), 린뱌오(林彪), 리셴녠(李先念), 양상쿤(杨尚昆)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왜 마오쩌둥 앞에서는 벌벌 떨었는지, 그것을 단순히 마오의 잔인함이나 냉혹함에서만 찾는다면 20점짜리 답안에 불과하다.
경제심리학 실험의 결과에 ‘인정과 칭찬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직원들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기업이 성공한다? 그것은 절반짜리 정답이다. 마오는 그것을 역이용한다. 무시하고 파기함으로써 사람을 휘어잡고, 어르고 달래면서 다시 끌어안는다. 마오가 댄 애리얼리의 실험결과를 보고받았다면 십중팔구 “거기서 주목할 대목은 오히려 무시와 파기”라고 말하며 그런 식으로 이용해먹었을 것이다. 그렇게 안아줬다가 밀어냈다가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자기 앞에 꼼짝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마오의 리더십이다. 이런 점에서 마오는 정말 천재적인 조직가이자 지략가이다.
물론 마오의 실정(失政)과 폭압을 생각하면 나 역시 피가 끓고 그에 대한 모든 정나미가 다 떨어지지만, 마오를 모르면 오늘의 중국, 그리고 중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걸 이해못한 채 중국을 꺾어보겠다고 줄곧 뛰어봤자 ‘마오님 손바닥 안’ 신세일 수밖에 없다. 중국 사회주의 이론의 ‘모순론’이나 ‘실천론’ 같은 것을 지금도 꼭 알아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심리학 이야기를 하다가 마오로 건너뛰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분들일 것이다. 자, 오늘은 유쾌하게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을 칭찬해주자. 늘 다독이고 인정해주자. 그리고 ‘마오의 눈빛’을 잊지 말자. 여러분의 ‘대륙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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