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복지랍니다. 맞춤형이라... 아주 그럴싸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워째 진실성이라고는
구데기 장 속에 기생충만큼이나 없어 보이는지...
어린 시절 경찰아찌를 보면 섬짓 놀라던 유신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관형사 붙은 이데올로기를
보면 그 진실성에 극도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군요. 왕년,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먹물 선글라스에 개구리복 입고 돌아다니는
초로의 신사들이 외치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지면 복지지 무슨 말
라 비틀어질 “맞춤형” 복지인가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아니 우리의 어르신들-연령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닌, 재산을 기준으로 한 어르신-이 보기에 아주 이상적인 복지시스
템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맞춤형 복지라는 것이 바로 “분수”와 “염치”의 복지가 아닐까 싶군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복지라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선수들이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서는 잔디구장이나 부드러운 흙바
닥이 필수입니다. 누가 살 다 까지게 콘크리트 바닥에서 슬라이딩을 하겠습니까?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본주의적인 모험을 감행할 수 있도록 하는 쿠션인 것이지요. 하다못해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반발을 최소화시키
면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거 다, 장하준 교수의 최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의 진실”에 다 나와있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훨씬 그 이전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던 사실입니다.
이러한 복지시스템이라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고마워할 이유가 전혀 없고, 또 자신이 복지시스템의 수혜를 받게 된다고 해서 특별히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워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물론 실업상태에서 유쾌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일을 하고 월급
을 받고 세금을 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또 실업상태에 처하게 되면 사회로부터 부조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는 것이지요.
또한 교육이나 각종 공공재가 충분히 공급됨으로써 절대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을 충분히 누리는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시스템이라는 것은 예방적 성격이 대단히 강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하고, 소비를 하도록 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업은 기업대로 마음놓고 모험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복지시스템은 기업 역시 수혜의 대상
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어버스가 목에 힘주고 보조금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것은, 자신들 또한 군소리없이(불만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세금을 내고 있기에 모험에 필요한 자본을 국가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에 대해서
원성이 자자한 미국하고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이렇듯 복지라는 것은 나는 나대로 일하면서 세금을 내고, 또 그에 대해서 요구할 권리를 갖는, 우리네 재벌회장님들이 오매불망 동
경하는 이상세계, 공짜점심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실업자라고 해서 즐거울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쪽팔릴 일도 없는 사회. 바로 그거지요.
그러나 소위 맞춤형 복지라는 것은, 지금 불거져 나오는 무상급식 문제로 미루어 볼 때, 가난한 사람에게 굴욕감을 안겨줘야 자기 직
성이 풀릴 것이라는 아주 저급하고 못된 심성에 기반한 것 같군요.
왜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까? 소위 보수우익,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라는 사람들도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급식한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학생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통해서 그 어린 가슴에 기어이 대못질
을 하고야 말겠다는 그 더럽고 돼지똥 냄새가 풀풀 나는 사고방식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률적인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192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의 교회에서는 반드시 기도를 하고 나서야 부랑자들에게 급식을 해줬다는 식으로 영화에서도 나오더군
요.(그 영화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인데 제목이...) 혹시 맞춤형 복지라는 것이 바로 그런 복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히 망한 다
음에 죽 한 그릇 주는 거... 가난한 이를 더욱 가난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거. 그리고 그들에게 죽 한 그릇 나눠주면서 자신이 성스럽다
는-사실 가진 것은 돈 밖에 없다는-것을 자랑하는 거... 바로 그걸 것 같군요.
예전에 결식 아동들에게 지급되었던 도시락의 내용물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당 아동들은 분개하기는 커
녕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더라구요.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지... 그 어린 것들에
게 그런 대접을 해주고 감사합니다 소리를 꼭 들어야 하는 것인지... 네가 가난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고 얻어먹는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더 나아가 무슨 빌어먹을 학교냐, 빨리 생활전선에 뛰어들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이른바 맞춤형 복지라는 것인지....
3년 내내 인터넷만 접속하면 쌍씨옷이 저절로 터져나오는데 2011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전혀 없네요. 뭐, 기대한 바 역
시 전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초니까 조용히 넘어가려니 싶었는데... 부지런한 것만큼은 인정해 주지 않을 수가 없군요.
우리가 언제 너꺼들 바라보고 살았더냐... 제발 이민 좀 가주라. 우리는 우리대로 그냥 살께... 입에 거칠어도 잡곡밥에 간장 뿌려 먹
으면서 그냥 살께...
정초 벽두에 그들에게 하고픈 소립니다....
첫댓글 맞춤형 적선이네요...부자들의 입맛에 맞춘...
쉽게 얘기해서 가난뱅이가 복지 믿고 게기는거 보고 있지 않겠다는 말이지....
뜯어 가지나 말라고 하지!
한 마디로 꽥 소리하다 짤리면 밥 굶는다.
그러니 군 소리하지 말고 시키는데로 해라 그거네요.
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박정희라지요.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텐데요. 80년대 윤리 교과서였나? 그 인간도 한국적 민주주의 외쳤는데 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한국적 민주주의는 또 뭡니까.. 복지면 복지지 맞춤형 복지는 또 뭔가요.. 도대체가 목표가 세계사에 길이 남아 모두를 실소하게 만드는 뭔가를 만드는게 아닌지.. 솔직히 북한 김정일 이나 남한 이명박이나 그넘이 그넘이지요..
말한마디는 뭔들 못하겠나요. 전두환도 정의사회가 어쩌고 했는판에.
그리고 맞춤형 복지라는것도 일리가 아예없는건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된장심리를 가진 자들이 무수합니다. 이런 작자들(복지믿고 개기는 면도 있음)한테는 복지가 필요한가 싶네요. 즉, 필요이상으로 잘만 써지르는자한테는 맞춤형도 나쁜건 아니지요.
그런 자들이 무수히 많다고는 하는데, 그 비율은 어느 정도이고, 그 수는 어느 정도인지요... 복지라는 말 자체에 온몸에 닭살 돋을 사람이라면 100명만 있어도 그 수가 엄청날 것이고, 복지에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이라면 1만명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소수로 여겨질 것입니다. ... 또 그런 자들을 무슨 재주로 선별합니까? 현 상태에서 맞춤형 운운하는 것은 그냥 하지 말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안 그런가요...?
그 비율은 대략 절반은 넘습니다. 즉, 사람들 개개인들도 자신들도 자기를 돌아볼줄 알아야되지요. 공산품은 얼마나쓰는지, 기름값이 비싼데도 어머어마하게 소비해대고 있지요. 그리고 저는 맞춤형 복지가 일리가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요즘같이 사회안전망(복지보다 더 정확한 표현인 듯)이 포퓰리즘이니, 좌익이네 매도 당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님이 생각하시는 선의의 "맞춤형"복지라는 것은 설 땅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실업에 대한 대책, 교육, 의료 같은 것은, 본인의 수준에서 벗어난 소비행태하고는 좀 무관해 보이는군요. 자기 분수에 벗어난 과소비로 파산한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것이 사회안전망의 의의는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너무나 뻔한 것이라 아무도 지적하지 않을 뿐입니다-그 좋은 북구라파 나라들도 파산한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보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비여부와 관계없이 앞서 언급한 부분에 있어서는 모든 이들이 당
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소비(편의상 과소비라고 합시다)를 한다고 해도 탈세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하는 이들도 당연히 있겠지만-과소비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과소비를 해서 돈이 없어 받아야 할 교육을 못 받고, 병이나 부상을 당해도 병원에 갈 돈이 없는 것과, 죽어라 일을 해도 그럴 돈이 없는 것을 차이를 둔다는 것도 저로서는 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요컨대 평소에 얄미운 인간도, 평소에 이뻐 보이는 인간도, 그 존엄함과 권리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다신 분들, 모두 저랑 같은 기분인 것 같군요... 왕짜증!!!!!!!!!!!!!
,,, 복지에 대한 기본개념도 이해 못하시는 분이니 선거성구호 막 갖다 부치는 거겠죠,, 에혀,, 독재의 망령이 언제까지 갈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