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 3
곽효환
밤새 시울던 별들도 얼굴을 흐릴 무렵 열차는 마침내 러시아의 변방 국경도시
나우슈키를 떠난다 멀리 바이칼이 유일하게 흘려보내는 앙가라강이 보이는 듯
하고 나를 닮은 또 다른 내가 아직 무리를 이루고 산다는 울란우데를 지난다
나는 잠들지 않는 시간을 생각한다
눈보라에 숨어 국경을 넘나든 사람의
시퍼렇게 얼어간 시름의 시간을 떠올린다
모진 바람이 실어 오는 국경 건너의 소문에
귀 기울이던 유령의 시간에 눈을 감는다
흐린 등잔불 아래 혹은 십오 촉 전등 아래
웅크려 떨던 기억은 흐리고 아득하다
북북서로 대륙을 종단하던 열차는 드디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거대한 시베리아 평원
을 가로질러 달린다 강줄기는 어디로 갔나 어느새 차창 오른편으로 바이칼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빽빽한 자작나무와 전나무와 이깔나무 숲, 들과 구릉과 지붕 낮은
집들, 거대한 호수에 깃들어 사는 물고기들 새들 짐승들 그리고 사람들
이 강을 이 산을 이 황야를 그리고 이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넘었을까
수흐바타르나 하얼빈 혹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우슈키 울란우데 슬루지얀카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우랄산맥 혹은 그 너머까지
하늘 아래 가장 광활한 평원 시베리아
녹슨 철로에 몸을 실은 사람들
그 붉은 이름들이 흘러간다
징용이었을까 독립이었을까 혹은 혁명이었을까
눈부신 아침 햇살이 산란하는 바이칼을 따라 열차는 쉼 없이 내달리고 화장실 변기는 침목
위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물을 쏟아낸다 벌목장이었을 듯한 침엽수림 주변에 야생화 가득
하다
오늘밤 나는 지평선 끝에서 목 놓아 울 것이다
ㅡ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문학과지성사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