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월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오늘도 우리에게 "다시 한번"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이사야 14장
얼마 전 어떤 분이 나에게 어떻게 묵상을 그렇게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냐고 물어왔다.
자신도 "묵상방"을 운영(?)해 보는데 사람들은 묵상을 올리라는 방에서 묵상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있는 그대로를 글로 쓰지 않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어서 "묵상방"에서의 공유가 가식적(?)이 될 때가 많이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나의 묵상의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나의 일상사를 일기처럼 그렇게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인 것 같다.
나는 그 물음에 일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는 내 일상사가 그다지 감추어야(?) 할 것이 없어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뭘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떤 분은 내 묵상을 읽기 시작했을 그때는 "이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그야말로 까발리듯이 그렇게 이야기할까?" 의아해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한 내 묵상의 글들이 "담장 안 식구"들에게도 들어가서 그 안에서 "변화를 받는 수용자"들이 있다고 하니
자신이 처음에 내 묵상을 읽으면서 가졌던 "판단의 마음"을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이전에 내가 올린 어떤 묵상으로 시험(?)을 받았다는 어떤 사람과의 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이 일은 아마 20년이 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내가 내 묵상에 내 삶에 죄를 지었던 어떤 이야기를 올렸다.
그 묵상을 읽은 사람과 어느 날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어떻게 그런 글을 묵상에 올리냐고 하면서 사람들 읽으면서 시험받지 않겠냐고 한다.
그 이야기는
내가 "술"을 마셨던
이야기였다.
그러니 나에게 목회자가 그런 이야기를 묵상에 오픈하여 쓰면 그 일로 인하여 자기처럼 시험받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해 준 답을 이전 내 묵상에 한 번 쓴 기억이 난다.
20년가량 된 이야기이니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더듬어서 다시 한번 적어 본다.
"내가 쓴 그 이야기가 그대에게 시험이 되었다 하니 일단은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글을 썼기 때문에 정죄 의식에 묶여 있던 어떤 사람은 자유함을 입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그런 글에 시험을 받은 그대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올바로 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즉슨 내 글에 시험을 받았다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시험받은 것이 아니니 그대는 내 글과 별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술, 담배 이런 것으로 계속 정죄 의식에 잡혀 있는 어떤 한 사람은 나의 오픈된 죄에 대한 글을 읽음으로써
아!! 나도 지금은 묶여 있지만, 앞으로는 선교사님처럼 "자유함"을 입고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에 소망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한사람"을 위해서 그날 묵상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대는 내 글에 시험받았고 나에 대해 실망했지만, 그대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난 그 묵상을 쓴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묵상에 대한 후기가 참으로 다양하다고 하겠다.
30년 동안 내가 묵상을 글로 써서 공유했고 지금은 10만 명이 넘는 "묵상 식구"가 있다고 한다면 내가 들은 묵상 후기의 카테고리가 모두 동일하게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 말로는 "아!! 놔!!" 이런 심정 나에게 없었을 리가 있겠는가? ^^
나는 묵상의 소재도 정말 다양하다.
어떤 일을 내 묵상 일기에 올릴까? 기도한다.
묵상 글을 써서 공유한 뒤 많은 사람이 공유한 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심"을 깨닫는 통로가 되게 해 주십사 기도한다.
내가 공유하는 나의 묵상 글 외에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좋은 글들과 좋은 설교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많은 좋은 글들이 있음에도
내 글을 읽고 마음에 힘과 격려가 된다는 말들을 듣게 될 때
나는 그러한 말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고맙다.
그러나 내 글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내 글이 읽히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나는 담장 안 식구들이 이전보다 더 소중한 나의 "묵상 식구"들이 되어 주어서 감사하다.
그들은 내가 보내는 묵상 외에 다른 글들을 쉽게 접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내 묵상의 "희소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담장 안"에서 내 묵상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가 간절히 사모하는 글을 내가 쓰고 있다는 생각은 글을 쓰는 나로서는 감사한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묵상을 읽고 시험(?)받는다는 사람들은
내 글 아니고 다른 많은 글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이 새벽 나는 어떤 글을 내 묵상 일기에 올려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마음 깊이 벌써 와닿은 사람들도
사랑하시고
아직 그 사랑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마음이 답답하다는 사람도 사랑하시고
어느 누군가가 내 묵상을 보내 주어서 마지못해 읽어 보는 사람도 그 사람이 행여나 어느 날 나의 묵상 어느 글에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며 이 글을 보내는 사람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게 될 그 사람도 하나님은 일찌감치 사랑하신다.
아무쪼록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을 쓰는 나의 어떤 연약함보다는
그 연약함을 긍휼히 보아주시는 하나님의 따스한 눈매가 느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긴 시간
나의 묵상을 공유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주님이 언제 이 땅에 다시 오실는지!!
"녹슬어서 없어지는 못이 되느니 닳아서 없어지는 못"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묵상은 올라가니 감사 감사 왕감사 ^^
그러니까 감사
그러면서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것까지 감사
우리말성경 이사야 14장
1. 여호와께서 야곱을 불쌍히 여기셔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땅에 평안히 자리 잡게 하실 것이다. 나그네들이 그들과 어울리고 야곱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The LORD will have compassion on Jacob;
once again he will choose Israel
and will settle them in their own land.
Foreigners will join them
and unite with the descendants of Jacob.
"다시 한번"이라는 이 말에 마음이 닿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다시 한번"이라는 이 말씀이 나의 삶에도 허락된 "복된 말씀"이었음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나에게
"다시 한번" 허락하셨던 은혜의 자리가 한 두 번이었겠는가?
내가 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거니와!" 이 말씀을 그렇게도 좋아했을까?
이 말씀이 넘어질 때마다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새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이 말씀을 그렇게 나 자신에게 자주 사용하는 말씀은 아니다.
설교할 때 "용서"를 강조해서 이야기할 때 꼬옥 사용하는 성경 구절이다.
내 나이 61세이다.
젊었(?)을 때 젊기 때문에 한편 갖게 되는 많은 유혹 거리는 나에게 없다고 하겠다.
돈과 명예?? 그런 것에 대한 유혹도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이 되겠지만
그다지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유혹의 손길들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내 나이가 사실 참 좋다.
이전보다는 "줄 수 있는 자리"라서 그것도 감사하다.
이전보다 세상 걱정 없이 하나님만 더 바라보고 섬길 수 있는 자리라서 그것도 감사하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다시 한번"이라는 은혜를 내 삶에 끊임없이 주신 분이 아닌가 한다.
그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요즘 그다지 "후회할 것 없는 삶"을 부지런히 살고 있다.
이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100세 넘게 사셨는지.. 아주 오래 장수하셨는데 어떤 기자가 와서 인터뷰하면서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사시면서 그동안 모함받은 일들, 비판받은 일들, 오해받은 일들도 많았을 터인데 어떻게 그런 일들을 다 이겨내셨어요?"
그 질문에 할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안 했더니 다들 나보다 먼저 가고 없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 하 하 하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다시 한번"의 기회의 은혜를 한두 번 입은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까지도 입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넘어지는 숫자가 이전보다는 확실히 줄었고
이제는 손으로 꼽을까 말까 한 "넘어짐"이라 그것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프레이즈게더링"이라는 수양회에 갑니다. 2박 3일입니다.
짐 싸야 하는 새벽입니다. ^^
우리 한국의 많은 "문화 사역자"들이 함께 하는 수양회인데
저는 상담/세미나/ 내일 아침 설교를 맡았습니다.
오랜만에 유기성 목사님과 김동호 목사님도 만나게 되는데 모든 강사님이 시간 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들을 선포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찬양사역자 협회 회장인 송정미 사모님과 모든 진행팀에게 필요한 힘과 지혜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이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개역한글 잠언 24장
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 사랑하는 그대여 💕
2025. 2. 17.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내 딸
사랑하는 내 아들
정직하거라.
정직하거라.
정직하거라.
정직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나니
사랑하는 나의 아들
사랑하는 나의 딸
어저께 거짓말하였느냐?
오늘은 정직해야지.
다시 한번 너에게
정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정직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정직을 사랑하고
공의를 사랑하고
공평을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너에게는 나의
DNA가 있으니
너도 정직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도
기억하고 오늘
너는 정직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너를 향한 명령이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