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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포전인옥(抛傳引玉)-3
약재를 구하려 이른 새벽에 시장에 나간 갈운영과 악삼이 집에 돌아오자 갈운지는 봉투를
내밀었다.
"무엇이니?"
"악 가가에게 온 편지야."
"뭐라고?"
갈운영은 깜짝 놀래 반문했다. 그러나 갈운지는 언니의 반문에 일체의 대꾸 없이 악삼에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누가 가지고 왔지?"
"어떤 얼뜨기 표사에요."
"어서 다오."
악삼은 갈운지에게서 봉투를 받은 후 개봉하려고 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악 가가."
갈운영은 악삼의 손에서 봉투를 빼앗더니 코에 댔다.
"독은 없군요. 그리고 다른 위험한 물건은 없는 것으로 보여요. 남아있는 묵향(墨香)을 보니
단순한 편지이군요. 그리고 묵향으로 보건 데 안휘성(安徽省) 흡현( 縣)에서 나온 명묵(明
墨)이에요."
"안휘성 흡현에서 제작된 명묵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일텐데..."
"네. 그만큼 돈이 많은 집에서 보냈다는 증거지요. 게다가 이사한지 얼마 안된 이 집의 소재
와 악 가가를 찾아내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큰 세력가로 볼 수 있어요."
갈운영은 파악한 정보를 알려주며 들고 있던 봉투를 악삼에게 되돌려주었다. 악삼은 봉인
된 봉투를 열어 서찰을 꺼내 읽었다.
"음... 영매 말대로 돈도 많고 대단한 정보력과 세력을 가진 곳에서 보냈구나."
"어디에서 보낸 건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갈운지는 궁금함을 참지 못해 질문했다.
"사해방의 총사가 보냈다."
"네! 그들이 어떻게 여기를... 가만 사해방의 총사라면 장씨 성의 20대 초반의 여인이었죠."
"태을궁의 지하미로에서 만났던 혁 선배가 말한 것이 정확하다면 20대 초반의 여인이지."
"이상한 일이군요. 정말 이상해요... 악 가가 서찰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어요?"
비록 직접적인 대면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악삼과 장소군은 적이었다. 악삼이 현재
있는 장소를 파악했다면 정예고수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서찰을 보냈으니 갈
운지의 의문은 몇 배로 증폭됐다.
"환객, 그러니까 내 사부님을 죽인 원수가 있는 장소가 적혀 있다."
"뭐라고요!"
갈운지는 악삼의 손에 들려 있는 서찰을 빼앗더니 펼쳐 보았다.
"사해방의 집법원에 환객이 있다고... 이건 악 가가를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원수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는데 이대로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악 가가. 그건 기름을 안고 불 속에 뛰어드는 거나 다름없어요."
"상관없다. 그자가 설령 명부(冥府)에 있다해도 갈 생각인데 고작 사해방 총단에 가지 못하
겠느냐."
복수를 위해서라면 저승이라도 개의치 않다는 악삼의 결심에 갈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좋아요. 악 가가의 결심이 굳었다면 어쩔 수 없죠. 언제 떠날 생각이세요."
"내일 떠날 생각이다."
"너무 급하지 않아요. 여러 가지 준비할 것도 많은데다... 사해방 총단이 있는 절강성을 가는
여정은 머나먼 길이에요. 게다가 숙모님은 계속 치료를 받으셔야해요."
갈운지는 내일 당장 떠나는 건 문제가 있다며 반대의사를 드러냈다.
"알고 있다. 그래서 영매와 지매에게 숙모님과 소미를 부탁한다."
"뭐라고요? 그럼 혼자 떠나겠다는 거예요?"
악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생사를 보장 못하는 위험한 곳에 혼자 가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 혼자 가려는 것이야. 그리고 내가 있는 장소를 안다는 것은 숙모님과 소미에 관
해서도 파악했다고 봐야 한다."
악삼과 갈운지의 대화를 경청만 하고 있던 갈운영이 나섰다.
"숙모님과 소미의 안전을 염두에 두어야겠군요"
"그렇단다."
"인질만큼 편한 것은 없으니까."
"그럼 집을 옮기면 되잖아요."
"미안하지만 지매의 생각처럼 쉽지 않단다."
장소를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겠냐는 갈운지의 의견에 악삼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집을 알아냈으니 다른 장소로 옮겨도 사해방의 장 총사는 금방 찾아낼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장 총사의 계략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되잖아요."
"사해방에 가지 마라는 것이냐?"
"네."
갈운지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악삼은 흔들리는 갈운
지의 눈동자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갈운지가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악삼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악 가가. 부탁해요."
"운지야. 그만 하렴.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악 가가를 힘들게 한단다."
악삼이 곤혹해하자 갈운영이 보다못해 중간에 끼어 들었다. 그러나 갈운영의 설득은 갈운
지에게 먹히지 않았다. 갈운지는 악삼 면전에 무릎을 끓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싫어요. 악 가가 다시 한번 부탁드려요. 저는 더 이상 위험 속에 사는 게 싫어요. 더 이상
피를 보는 것도 싫고 악 가가의 손에 피가 묻는 것도 싫어요."
"지매..."
"그냥 이대로 살아요. 저랑 언니, 숙모님과 함께 소미를 데리고 평화롭게 살면 안 돼요. 가
끔 여행도 하면서 평범한 사람처럼 살자고요."
갈운지는 태을궁에서 오독문의 식구들의 죽음을 본 뒤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살육의 장을 지
나치면서 피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했다. 이원과 산동성에서 짧은 평화를 맛보면서 주변
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며 피와 죽음,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강호에 대해 느꼈
던 염증이 몇 배로 증가했던 것이다.
"흠..."
악삼의 탄식은 깊었다. 갈운지의 심정을 알지만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는 악삼은 어떻
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피의 무게에 짓눌려 더 이상 강호인이라 보기에 힘들어
진 갈운지를 볼 때마다 스승인 악풍의 말이 절실히 다가왔다.
'강호의 유수한 문파나 가문의 젊은이들이 처음 강호를 겪으면서 얻는 피의 무게에 짓눌려
살인마가 되거나 도망자가 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구나.'
갈운지의 약한 모습을 보는 악삼의 마음은 답답했다. 또한 갈운지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리
는 눈물은 맑은 이슬을 연상시켜 악삼의 마음을 뒤흔들기도 했다.
"운지야. 그만 하렴."
갈운영은 무릎을 끓고 애원하는 갈운지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악 가가. 저희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영매..."
"대신 무사히 돌아오신다는 약속만 해주세요."
"내 꼭 무사히 돌아오마."
"믿어요."
갈운지는 미소지었다. 미소 속에 악삼에 대한 믿음과 내일부터 한동안은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이 주는 슬픔이 배여 있었다.
요마 모용혜의 합류는 밀고 밀리는 장강의 전투에 지쳐있던 팔마당에 작은 활력이었다. 물
경 오백이 넘는 정예를 끌고 온 덕분에 각 전선(戰線)에 전체적으로 부하(負荷)가 줄어들었
고 그만큼 패전보다 승전이 많아졌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강남 전역에 깔려 있던 팔마당과 남해방의 세력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전선은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함도 한순간이었다. 팔마당에 합류하는 병
력의 수만큼 강북에 적을 둔 흑도 세력들이 혈방에 합류하면서 팽팽한 전선을 만들었다.
강북 흑도의 움직임은 강남 흑도에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나서던
강남 흑도의 세력들은 일제히 팔마당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전선은 더욱 커져갔다. 이젠 혈
방과 팔마당의 전투가 아니라 남북 흑도의 전쟁으로 확산됐다.
모용혜가 장강전선을 누비고 다닌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갑자기 전령이 도착했다. 전령이
보낸 서찰에는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필히 참석을 하라는 심마의 전언이 있었다. 모용혜는
전투를 끝내자마자 바로 임시본부로 향했다.
"둘째 오라버니."
"어서 오너라. 팔매. 근 열흘만에 보는구나."
"벌써 그렇게 됐나요?"
전선의 길이가 넓어지면 각 부대를 통솔하는 지휘관들은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 덕분에
남달리 친분을 자랑했던 취마와 요마도 개인적으로 만나볼 여유가 없었다.
"하하하. 네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겠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네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더냐?"
"좀... 아뇨. 좋은 일이 있었어요."
모용혜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허! 무슨 일이려나? 팔매가 좋은 일이라고 할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텐데... 혹시 고향
에 가보니 멋진 정혼자라도 있었더냐?"
"아니에요. 그런 건 없어요. 단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증오와 어둠이 사라
졌을 뿐이에요. 물론 나름대로 복수라는 명제가 있으니 마음이 무척 홀가분하고요."
취마의 농지거리를 모용혜는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지하감옥이 무너지면서 증오하던 아버
지가 사망하자 역겹게 느껴지던 가문의 부활을 비롯해 온몸을 칭칭 감았던 수많은 사슬들이
일시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모용혜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모용혜의 눈에는 장강전선의 처절한 전투마저 일종의 놀이로 느껴질 정도로 자유롭고 행복
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직 마음 속 깊은 곳에 연화와 악삼이라는 마지막 사슬만이 꽈리를
틀고 있을 뿐이었다.
"허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게 행복해 하니 나도 기쁘구나."
"고마워요. 둘째 오라버니."
"고맙기는 무슨 고마움이냐.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그것보다 오늘 갑자기 소집을 한 이유를
모르겠구나."
"들어가 보면 알겠죠."
"허! 네가 낙천적으로 나올 때도 있느냐?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하더니... 허어! 참."
평소의 모용혜와 다른 모습에 취마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습보다
낮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웃어넘겨 버렸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죠. 그것보다 늦은 것 같은데 어서 들어가도록 하지요."
모용혜는 밝은 표정을 하고서 가볍게 넘겼다. 취마는 가슴 깊은 곳에 난 상처에 신음하면
서도 누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겉으로는 요사하게 행동했던 모용혜을 가련하게 보고 있었
다. 그런데 모용혜가 과거의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린 듯 밝게 행동하자 취마는 기뻐했다.
"그래. 어서 가보자꾸나."
취마와 요마는 임시본부가 있는 대형 천막 안으로 걸어갔다. 천막 안에 놓여진 원형탁자에
는 먼저 도착한 온마와 수마, 심마가 앉아 있었다.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던 온마와 심마는
취마와 요마가 들어오자 표정이 어느 정도 풀렸고 수마는 탁자에 고개를 박고 하염없이 잠
에 취해 있었다.
"대형. 부르셨습니까."
"잘 왔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거참, 성질한번 급하구먼. 일단 자리에 앉게. 팔매. 너도 앉거라."
온마는 취마와 요마에게 착석을 권했다.
"죄송합니다. 대형."
"알았어요. 큰 오라버니."
취마와 요마가 착석하자 온마는 심마에게 눈짓을 했다. 온마의 신호를 받은 심마는 자리에
서 일어나 천막 벽에 걸려 있는 중원전도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 소집은 제가 대형께 부탁을 드려 마련했습니다."
"자네가 부탁했다고?"
"그렇습니다. 둘째 형님."
"무엇 때문인가?"
취마는 심마에게 갑자기 모두 모이게 한 이유를 질문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니?"
"현재 혈방과 본 당의 전쟁은 많은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장강과 대운하의 연결점이 주요전선이라는 겁니다."
"중원남북의 교류를 막고 있다는 점을 말씀하려는 건가요?"
모용혜는 심마가 제기한 문제를 한 눈에 파악했다.
"역시 팔매로군."
"그렇구나. 남북의 인적 및 물산교류(物産交流)를 막았으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겠구나. 그
동안 전쟁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중요한 것을 간과(看過)했구나."
취마도 모용혜와 심마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래요. 둘째 오라버니 말씀대로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중원남북의
교통을 막는 바람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어요. 이는 국가
가 우리를 토벌을 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줬음에도 말이에요."
"더 큰 문제는 수군이 토벌을 시작하면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혈방과 치른 전
투로 인해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손실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당해야 할지 모른
다는 것이다."
심마는 모용혜에게 부가적으로 설명했다.
"그렇군요. 진정으로 큰 문제는 혈방과의 전쟁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날 사태로군요."
"맞다. 혈방과 치르는 전쟁에서 이긴다해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토
벌군과의 두 번째 전쟁이다."
"나라의 군대와 싸운다... 전혀 승률이 없군요."
모용혜는 암담한 미래에 낯빛이 변해버렸다.
"일곱째 아우."
"네. 말씀하십시오. 대형."
"자네가 회의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함이라면 나는 실망할걸세."
온마는 심마에게 타개책을 준비했는지 물었다.
"우리는 먼저 남북의 물산교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더 이상 장강과 대운하를
막아 각 지방의 특산품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렸다가는 당장이라도 토벌군이 쳐들어올지 모
릅니다."
"혈방이 후퇴할 리는 없네. 그럼 우리가 철수해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형."
실질적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후퇴하자는 말을 하면서도 당당한 심마의 태도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온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동안 침묵하다가 심마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직 패하지도 않은 싸움에서 등을 돌리자는 것인가? 아니 그걸 떠나서 이곳에서 밀리면
곧 우리의 패망이네."
"후퇴하자는 것도, 패배를 인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소제의 뜻은 전선(戰線)을 다른 곳으
로 이동해 장강과 대운하의 뱃길을 다시 개통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전선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그렇습니다. 대형."
심마는 중원전도가 걸려 있는 벽으로 향했다.
"우리는 전체 전력과 선단을 두 개로 나눈 뒤 하나는 동해로 향하고 남은 하나로 장강을 타
고 서쪽으로 향하게 하는 겁니다."
"혈방과 황하수로채의 선단이 따라올까?"
"따라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전력을 둘로 나누어 목
적지를 향해 이동만 하면 됩니다."
심마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역력했다.
"일곱째 오라버니. 만약에 우리가 선단을 나누고 움직이며 혈방에서 추적하지 않고 대대적
인 상륙작전을 펼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홍면금살군이 눈앞에 이익만 보고 훗날 닥칠 환란을 모를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만약 우
리가 하고 있는 고민을 모를 정도라면 쉽게 이길 수 있겠지. 또한 저들이 상륙을 감행한다
면 우리는 선단을 돌려 공격하면 그 날 전쟁은 끝나버린다."
"그렇군요. 상륙을 위해 강가에 배를 대는 순간 전투선은 화물선에 불과한 셈이군요."
심마가 선단을 둘로 나누는 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게된 모용혜는 탄복하며 고개
를 끄덕였다.
"동쪽으로 향한 선단은 숭명도에서, 서쪽을 향한 선단은 파양호에서 승부를 내면 됩니다. 선
단을 둘로 나누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니 승리는 따 논 셈입니다."
"우리에게 유리하다?"
취마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째 오라버니. 우리는 머리가 다섯이잖아요. 하지만 혈방은 오직 홍면금살군 하나지요."
"그렇구나. 머리가 없는 몸통이야 가지고 놀 장난감에 불과하지."
취마가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치며 감탄해하자 모용혜는 심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곱째 오라버니. 승리는 맡아 논 셈이니 차후에 벌어질 문제를 논하는 게 어떨까요?"
"쯧쯧. 팔매. 너무 성급하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향방이 유
리하게 적용된다고 했지 절대적으로 승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일곱째의 말이 맞다. 산중대왕인 호랑이도 토끼를 입에 물기 전까지는 방심을 하지 않는다
고 했다. 하물며 혈방을 어디 토끼에 비유할 수 있겠느냐."
심마의 의견에 취마도 동조했다.
"됐다. 그것보다 자세하게 작전을 수립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대형."
"일곱째. 네가 구상한 작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작전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해 보거라."
온마는 전력을 둘로 나누자는 심마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숭명도 전투는 소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대형은 파양호 전투를 지휘하십시오."
"파양호 전투를 책임져 달라는 것이군. 그런데 숭명도에 가겠다는 것을 보니 특별한 전술이
라도 있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소제 나름대로 필승의 전술을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좋도록 하게... 그런데 남은 세 아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온마의 질문은 취마와 모용혜는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자신이 가야할 진로가 선택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마는 그런 것조차 모르는지 하염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소제는 취마 형님과 움직이겠습니다."
"그럼 넷째와 막내는 나와 동행해야겠군."
"넷째 형님은 이미 상륙한 혈방의 병력을 막아야 합니다."
"그렇군. 내가 그만 이미 상륙한 혈방의 전단을 잊었구먼. 그럼 팔매가 나와 동행하는구나."
온마의 시선이 모용혜에게 향했다.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만드는 온마의 시선을 모용혜는
방글거리며 받았다.
"오랜만에 대형과 같이 움직이는군요."
"크크크. 그렇구나."
"팔매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대형."
두 사람의 대화를 심마는 중간에 잘라버렸다.
"그건 무슨 소리냐?"
"팔매는 강북에 가야합니다."
"강북?"
"그렇습니다. 혈방의 본거지를 공격할 부대를 팔매가 지휘해야 합니다."
갑작스런 심마의 계획에 세 사람은 어리둥절해 버렸다. 심마는 의아해하는 세 사람을 바라
보며 말을 이었다.
"대형도 알다시피 현재 비어있는 혈방의 주요거점들을 공격해 달라는 남해방의 부탁을 북해
방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흠... 북해방이 강북에 위치한 혈방의 거점들을 공략했다면 이 전쟁은 한 달도 채 되지 않
아 끝났지. 누가 이기던 말이네... 그런데 자네의 의견은 북해방이 움직이지 않으니 우리가
혈방의 본거지와 주요거점을 쳐야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심마의 대답은 무거웠다. 북해방이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혈방을 멸망시키고 흑도 제일세력
으로 부상해 강북 일대마저 장악한다는 원대한 꿈은 산산이 부셔지고 토벌군에 대해 고민하
는 암담한 미래가 닥치자 괴로운 심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일곱째 오라버니. 혈방의 본거지를 공략하는 큰일을 제가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
하군요. 기습공격이나 단위전투 능력이라면 저보다 둘째 오라버니나 넷째 오라버니가 더 뛰
어나잖아요."
"물론 둘째 형님이나 넷째 형님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이 장강전투에서 두 형님은 빠질 수
가 없다. 너도 알다시피 장강수로연맹을 통제는 둘째 형님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강가
에 포진한 혈방의 주전세력을 막으려면 넷째 형님이 계셔야한다."
심마는 조목조목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저밖에 없군요. 그럼 별동대의 조직은 어떻게 할까요?"
"기동성과 각 개인의 전투력이 높은 정예를 뽑아야지."
"셋째 오라버니의 잔영대를 말하는군요."
"잔영대도 포함되지만... 그 정도로는 힘들다. 최소 삼백이 필요하다."
"삼백이요! 그럼 잔영대로는 부족하군요."
잔영대와 함께 어떤 부대를 데리고 가야할지 난감해진 모용혜는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대형의 친위부대인 마영대(魔影隊)와 네가 비밀리에 키운 부대라면 충분할 거다."
심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강력한 폭발력을 가졌다. 온마의 입장에서 수족과 같은 친위
부대를 내주어야 했고 모용혜는 비밀리에 움직이는 자신을 심마가 파악하고 있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형. 마영대의 지휘권을 팔매에게 주시겠습니까?"
심마의 시선은 굳어버린 모용혜의 안색을 슬쩍 지나가더니 얼음장처럼 싸늘해진 온마의 얼
굴에 고정되었다.
"필요하다면."
온마의 대답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팔매."
"네."
"너는 대형의 결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심마의 질문은 모용혜에게 비밀리에 결성한 부대를 사용하라는 압력이 실려 있었다.
"대형께서 친위부대를 아끼지 않는데 제가 어찌 그냥 있겠어요. 게다가 비밀리에 전투부대
를 만든 이유는 이럴 때를 위해서였어요."
"고맙구나. 그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별동대를 편성하거라."
"알았어요. 별동대의 편성이 끝나자마자 바로 혈방의 본거지를 향해 움직이겠어요."
"빠를수록 좋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심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되는 인력과 자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모용혜에게 주지시켰
다. 혈방과 치르는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암담한 현실이 심마
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북해방의 이상한 움직임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남하(南下)
를 강행할 수 있었던 혈방의 배경이 심마의 두뇌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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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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