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렵다 하나 그 때도 어려웠다. 다만 다른 점은 그 때는 내일을 기다릴만 하였고, 지금은 내일은 불안한 예감이다.
내 나이 서른 둘, 아내가 스물아홉이었다.
결혼 한지 1년 뒤,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되어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셋집에 사는 우리 부부에게는 미래를 위해 나는 다만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국내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면 봉급이 배가 되고 일은 그만큼 힘들고 고달팠다. 나는 젊었고 떠나야 했다.
그 때 글씨가 지워져 가고 있었다.
이 기록은 나의 기록이며 그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던 젊은 날의 우리 모습이다.
내가 남기지 않으면 누구 남기랴.
이런 작은 기록들이 모여서 힘들여 살았던 지난날의 초상을 그릴 수 있으리니.
이제 나는 추억할 나이가 되었다.
여기 써 내려갈 이야기는 1978년 7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의 나의 기록이며 건설 회사 사원의 현장 기록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이름들은 실명이다. 모두 이별한 사우들, 그리운 이름들이나 사막의 모래 위에 쓰여진 이름처럼 지워저 가고 있다.
선발대로 간 그들은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일터는 다란의 미사일 발사대 공사장이었다.
담만의 연락사무소에 임시로 머물고 현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그들은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내가 떠나기 전에 관리부의 직원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이 사연들은 사실 평범한 편지글에 불과하다.
편지에 실린 사연들이 무슨 역사의 증언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삶이 담겨 있고, 우리 시대에 경제 분수령을 달렸던 청년들의 글이기에 여기 옮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기 전에 내가 속한 부서였던 관리부 직원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안부와 부탁을 담겨있다.
관리 사원 이영흡이 쓴 편지이다.
그는 나중에 극동건설의 총무부장과 계열사의 사장을 지낸다.
황 형
소식 늦어 미안합니다.
황형이 눈에 정말 선합니다. 이주임, 김 주임, 이재형씨도 잘 있겠죠. 엊그제 김충환 주임을 제가 마중을 공항으로 나가 모셔왔죠. 심재극씨도 잘 있습니다. 최돈식씨도. 더위는 견딜만하고 우리 관리부 일은 거의 안돼있는 상태이어서 정신 없이 바쁘고 깨집니다. 황 형도 빨리 오셔야 할 텐데-. 현장에는 우리 관리부 요원이 1인도 없습니다.
모든 게 시작 이전이니 신경이 굉장히 갑니다.
곧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언제쯤 오실 지 궁금합니다.
본사에서 만들어온 양식은 이제 거의 쓸모 없어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흑 표지 몇 개 가지고 오시고 정신 차리고 오셔야겠습니다. 최 형에게 준200불을 제가 보관하고 있고요. 아직 담만 시는 구경도 못했고, 현장에는 11.12사이트 각각 1번씩 다녀왔을 뿐입니다. 높은 분들이 자주 오셔 그것도 신경 쓰이고 비행기는 반드시 다란 직행 비행기를 타도록 하십시오. 공항에서 9-24466을 걸면 (무료임) 제가 나가겠습니다. 신문지 좀 가지고 오시고, 그 밖에는 준비할 것 같습니다. 개인 사물도 많이 가져 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모든 것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바쁘니 이만 줄이죠.
모든 것 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1978년 7월 李榮洽
관리부의 막내이며 타자수 이재형이 보낸 편지이다.
그는 나중에 극동요업의 영업부장을 하고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세탁소를 하고 있다.
황종원 전상서
이곳 사우디 아라비아에 도착한 시간은 7월12일 저녁10 시경(한국 시간 7월13일 새벽 4시경)에 장장15시간의 비행을 했으니, 좀 피로도 하였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실감 있는 더위가 반겨주는 군요.
곧바로 공항에서 20분 정도를 지나 극동 빌라에서 취식과 근무지를 정하고, 식사는 한국에서 보다 낫고 실내 근무는 시원하지만 현장 근무는 좀 더운 악조건에서 건설하는 한국인의 얼이 이곳 중동 지역에도 굳센 의지와 자랑스런 기술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로는 거의가 8차선으로 되어있고, 시속130-150킬로로 질주하며 외제 최신형 차들이 많다는 점, 여학교 담장은 매우 높아 형무소 같은 느낌을 주었고, 연중 비가 안 와 하수도가 없다는 점, 술집, 다방, 살롱, 음악 감상실, 극장, 기타 오락 시설 등은 없으나 컬러 텔레비전이 방송되고 있다는 점, 순경과 군인은 외국인이 많다는 점, 여자라곤 가끔씩 길가에 검은 보자기를 쓰고 있다는 점, 물이 귀한 나라이라 샤워하는 물이건, 먹는 물이건 모두 사고 특히 먹는 물은 스페인에서 수입한 전부가 1. 5리터 물통에 있는 것으로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샤워하는 물은 충분히 쓸 수가 있으나, 물이 맞지 않아 비누 거품이 잘 안 일어 세탁은 거의 외제 하이타이(각자 세탁기를 사용함 )로 세탁을 하여야 하며, 머리도 샴푸로만 감아야 머리가 빳빳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는 5시에 기상하여 6시부터 오전 일과가 시작하고 12시에서 2시까지는 점심 시간과 오수 시간이며, 19 :00에 모두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휴일은 금요일이고, 이곳은 모든 풍습, 문화, 정치, 경제까지도 종교에 의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 옆에는 조그만 구멍가게와 그 옆에는 슈퍼마켓이 있는데 모두가 외국산이며 물건은 좋으나 값이 비싼 편이고 싼 것은 담배(거북선, 선, 인삼 담배 약200원)와 전기 제품뿐이며 모든 것이 영어면 다 통합니다.
아직 모든 것이 초창기라 좀 바쁩니다.
더욱 이 다란 현장은 서독의 필립홀쯔만과 합작이라 서독 사람이 상주하다시피 하고 또 미국인 사우디인 기타 여러 외국인이 내방이나 전화 연락이 많아 애로가 많지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영어면 통합니다.
그럼 고국 소식 기다리며......
안녕히 계십시오......
1978년 7월 17일 재형 올림
추신: 근무 배정은 이곳 빌라에서 침식과 근무지를 정하고 있으며 김 차장님, 정 차장님, 방 주임님, 이영흡씨, 그리고 저 , 이렇게 사무실에 있으며 심재극씨는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모든 업무를 거의가 이영흡씨가 하고 있으며 분주합니다.
그리고 올 때는 황 형과 김 주임 모두 한증탕에서 조금씩 연습하십시요.
그럼 만나는 날을 기약하며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내 작업복 2벌이 도착 안되었습니다. 알아봐 주십시오.
이재형은 타자수로 채용된 나보다 어린 사원이다.
안전직원 심재극의 편지이다.
그는 나와 나중에 늘 호흡을 맞추고 귀국 후에 위생용품가게를 하고는 손들고 소식 없는지 20여년이 된다.
황종원씨,
오늘도 더위 속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었다오.
회사 여러분들 모두 안녕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더위와 모래 위에 극동의 꿈을 실현하느라 이곳 현장 여러분들 모두 수고가 많다오. 두 분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빕니다.
재극 올림
동봉하는 편지,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어 주시던 지 전화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1978. 7
첫댓글현재는 우리 아버지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금은 그 아버지들의 피와 땀을 너무 쉽게 잊으려 하나 봅니다. 그 피와 땀을 계승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우리의 아들 딸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사명감이 필요한데,......정치가는 보이지 않고 위정자만 가득하니 답답합니다......
첫댓글 현재는 우리 아버지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금은 그 아버지들의 피와 땀을 너무 쉽게 잊으려 하나 봅니다. 그 피와 땀을 계승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우리의 아들 딸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사명감이 필요한데,......정치가는 보이지 않고 위정자만 가득하니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