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타이 푸껫에 가서 번지 점프하기. : 타이 푸껫은 나에게 떠남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곳이다. 스물여덟 그 낯선 땅에서 한 달을 보낸 나는 달라졌다. 바로 천국을 봤기 때문이다. ㅎㅎ. 푸껫에는 호수 위의 번지점프대가 있다. 허리를 묶는 일반적인 번지점프와는 달리 거기에서는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리고 호수 위에 있기 때문에 제법 몸집이 나가는 사람이라면 낙하하면서 호수물에 얼굴을 담글 수도 있다. 무척 겁이 많긴 하지만 그곳에서 번지점프를 꼭 하고 싶다. 그때 퀸의 'I was born to love you'가 흘러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둘. 홍대 앞 까페에서 아메리카노와 프렌치 토스트로 브런치 먹기. : 해가 질 무렵 창이 넓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 읽기. 금요일 밤이면 물 좋은 클럽에서 미친 듯이 놀기. 홍대는 이런 로망이 있는 곳이었다. 내가 실제로 그곳에서 살기 전까지는. 그런데 이걸 어쩌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카페와 술집이 즐비한데도 집 밖을 나가는 게 영 쉽지 않다. 이른바 귀차니즘. ㅡㅡ;; 물 좋은 클럽에 가봤자 출입금지 당할 테니 죽음을 앞둔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페에서 우아~하게 브런치 먹기. 하드 커버의 손바닥만한 책을 한쪽 손에 펼쳐 들고 맛난 코오~피를 마실 테다(완전 된장녀군).
셋. 교보문고 가서 책 마구마구 사버리기. : 난 책에 참 욕심이 많다. 이사올 때도 책은 구입한 순서대로 박스에 싼 후 번호를 매기고 순서대로 풀어서 책장에 꽂았다. 물론 나의 독서 연대기가 완벽하게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시작해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김승희의 <산타페로 가는 사람> 등등. 나를 사로잡았던 책들. 다 읽기 전에 죽는다고 해도 난 새 책을 사고 싶다. 그 책들이 나와 함께 순장된다고 해도...
넷. 나에게 나쁘게 한 사람에게 가서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하나하나 싸그리 몽땅 말해 주기. : 영화 속 스물셋의 앤과 내가 일치한 부분. 역시 사람은 소심한 존재인가 보다. 아니, 난 소심하다. 난 그 상황에서는 너무나 당황·황당해서 아무말도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내가 그때 그랬었었었~~~어야 했어'라며 후회한다. 다 지난 다음 바락바락 대들어 봤자 인간 취급 못 받으니 '가슴앓이는 내 운명'. 그 수많은 나쁜 놈(성별 구분 없음)들에게 가서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싸그리 몽땅 말해 주리라. 절대 울지 않고(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왜 눈물부터 나오는지 모르겠다. 촌스럽게. ㅠㅠ).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지. "나비의 이름으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ㅋㅋ
다섯. 아빠에게는 보신탕, 엄마에게는 멋진 정장 해드리기. : 마지막 순간에는 나도 착한 딸이고 싶다. 아버지에게 보신탕 사드린 지 어언 몇 년이던가. 엄마에게는 정장은커녕 귀고리로 면피해 왔다. 환갑을 넘기시고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일을 하시는 아버지와 십 년 넘게 자식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계시는 엄마(그 최고는 단연 나였다. ㅡㅡ;;)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다. 보신탕과 정장 한 벌 안겨 드린 다음... 예쁜 옷 사달라고 해야지. ㅋㅋ
여섯. 클럽데이에 미친 듯이 춤추고 놀다가 멋진 남자와 사랑하기. : 춤추는 사람은 아름답다. 춤추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무척이나 유쾌해진다(물론 과다한 노출을 하면 좀 대략난감이지만). 그런데 아쉽게도 난 몸치다.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건 날 둘러싸고 있는 벽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 시선, 시선, 시선(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ㅠㅠ)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금요일 밤 홍대 클럽데이에서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출 테다. 소리도 지르고, 테이블 위에도 올라가고(야릇한 분위기~~ ㅋㅋ),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면 낯선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일곱. 장동건과 데이트. : 티브이에서 장동건 얼굴이 비치기만 하면 내 얼굴에는 빙그레(실제로는 헤벌레~~) 웃음이 생긴다. 이른바 장동건 효과.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완소(완전소중)남이다. 눈가에 주름이 지고 살이 너무 많이 빠지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장동건과 데이트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그를 만난다면 그의 왼쪽에서 걸을 것이다. 왜냐면 장동건의 옆 얼굴은 너무 예술이니까. ^^* 정말 그와 데이트를 하고 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여덟.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하기. : 지금껏 난 "사랑한다"고 말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항상 상대방이 "사랑한다"고하면 "나도"라고 응수했을 뿐. 그 놈의 사랑이 이 세상에는 없는 그 무슨 고귀한 것이길래 그토록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던 걸까?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사랑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셈하지 않고, 그들이 먼저 말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난 말하리라. 사랑한다고... 설마 몇 달 못 산다는 사람이 사랑한다는데 야멸차게 돌아서겠는가. 그 돌아섬은 내 묘비 앞에서 해도 충분하다.
아홉. 부안 내소사에 가서 풍경 소리 듣기. : 내소사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절이다. 전나무 숲길과 그 고즈넉한 터.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둘이었지만 그 후로는 항상 혼자였다. 그래도 좋았다. 부안의 중고등학생들이 놀러와 시끌럽게 떠들다 어느샌가 사라지고 그 순간의 고요 사이로 들리는 풍경 소리. 그걸 듣기 위해 난 그곳에 간다.
열. 신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하기. : 완전 굴욕 모드. 죽음 앞에서 의연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멋지게 자기 인생을 정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 세상에 미련이 너무 많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던가? 앞의 아홉가지를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더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할 테다. 영화 속 스물셋 앤은 몰라도 서른한 살 여자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신은 내 기도를 들어줄까? 역시 삼십 대가 되면 비굴해진다. ㅋㅋ
쨍쨍한 젊음이 너무 버거운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당신, 혹은 이젠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면 무언가를 정리해야만 하는 당신... 당신이라면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첫댓글 있는 돈 몽땅 긁어 하늘에서 뿌리기....
난 네번째를 생각중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