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의 《정의론》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 복지주의를 적합 시키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롤스는 사회제도의 제 1덕목이 정의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의 이론을 전개한다. 롤스는 정의의 개념을 한 사회제도 안에서 모든 개인이 완전하게 평등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정의론은 사회 구성원 간의 이익의 충돌과 갈등을 제도적 원리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스는 근대의 사회계약론을 새롭게 변형한다.
롤스에 따르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 1덕목으로서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로크의 사회계약설처럼 사회는 개인들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사회 없이 개인만으로는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기에 사회란 그 구성원간의 구속력을 갖는 어떤 행동 규칙을 인정하고 사회적 협동은 필연적이다. 사회적 협동 과정은 분명히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이익으로 인해 충돌을 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얻을 수 있는 빵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함께 협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최대한 빵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 분배의 원칙에 합의를 해야 한다. 만약 그런 합의가 아니라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지배가 되며 그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롤스가 제시한 큰 두 가지 원칙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할당에 있어 평등을 요구하는 것과 사회적 경제적인 불평등, 예를 들면 재산과 권력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그것이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한 것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소수자의 노고가 전체의 보다 큰 선에 의해 보상된다는 이유로 어떤 제도를 정당화하는 일을 배제한다. 이렇게 정의의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선 사회계약론의 ‘자연 상태’에 해당하는 ‘원초적 입장’을 설정하고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사회를 지배하는 공정한 법칙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모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기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그 사회에 태어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뒤에 가려진 ‘초기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무지의 베일’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계약을 하려한다면 능력이 있는 자라면 성공하는 자가 최대한 많이 얻도록 합의를 하려고 할 것이며 능력이 없는 자라면 약자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이 올 수 있도록 합의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성공 여부, 지위, 권력 등을 모르는 ‘무지의 베일’을 통과하게 되면 누구나 자기가 사회적 약자에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능력이 있을 때의 상태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모두 고려하게 되고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차등의 원칙’이다.
그의 정의관은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 우연성이 최대한 배제시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회는 역사적인 맥락이든, 여러 가지 선천적인 조건들로 인해 누군가는 이미 시작 지점부터 너무나 앞서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나 뒤에 서 있다. 만약 이러한 상태에서 그대로 경쟁을 시킨다면 뒤쳐진 사람은 계속해서 뒤쳐질 수밖에 없고, 앞서 있는 자는 앞서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 계급의 상하 이동은 불가능해지며 가난은 대물림되어 진다. 롤스에 의하면 이런 우연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정의가 부재한 사회다. 따라서 적어도 경쟁의 시작은 최대한 같게 만들어 주는 것, 기회의 평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도 충분히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우연성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권력을 가진 강자들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사회이며 진정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를 이뤄낸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차등의 원칙’과 관련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할당제’다. 미국에서 1970년대에 소수인종 특례입학과 관련해서 인종 할당제가 논란이 되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된 흑인 및 소수인종을 위한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의 일환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정 수 이상을 뽑아 소수인종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할당제로 인해 탈락된 백인들이 늘어나자 이것이 역차별이라며 이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대가 지방 아이들을 위한 할당제를 시행하자 이것이 역차별이라며 소송이 일어났다.
만약 롤스의 이야기를 따른다면 이런 할당제는 찬성을 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회의 평등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보듯이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은 비싼 사교육을 받지만 가난한 집안의 자식의 경우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수능을 치게 될 경우 당연히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은 경쟁의 시작점에서 이미 저만치 앞 서 있다. 더군다나 지방의 경우는 기본적인 사교육 시설마저도 부족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흑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노예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신분적인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할당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보상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인종이나 집안의 부유함, 출생지에 의한 사회적 우연성을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써 불평등한 자연적 자산에 대해 보상의 원칙을 적절하게 적용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존 롤스(John Rawls, 1921. 2. 21 - 2002. 11. 24)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 철학 교수를 지냈고 《정의론》(1971년)과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쓴 미국의 철학자이다. 그는 20세기 영어권에서 정치철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자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