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텐트 치고 주무셨으면 ‘비박’이 아닌데요?]
산을 즐기는 멋진 수단… 야영과 비박의 차이점
산을 즐기는 사람은 산에서 자는 것도 좋아하기 마련이다.
높은 곳을 오른 성취감과 쾌감을 조금 더 깊고 진하게 맛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산꼭대기에 올라 야영을 즐기는 등산인들도 많다.
요즘에는 야영 그 자체가 목적인 백패킹backpacking도 유행하고 있다.
자연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으로 야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야영(野營)은 텐트나 임시로 지은 움막 등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야외에서 머무르는 활동을 의미한다.
요즘에는 ‘캠핑capming’이라는 영어 단어를 야영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야영은 사용 장비와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알파인캠핑, 오토캠핑, 캐러밴캠핑, 글램핑, 오지캠핑, 솔로캠핑, 미니멀캠핑, 감성캠핑 등
스타일이 다양해지며 그 종류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텐트치고 잠자는 근본적인 행위 자체는 동일하다.
최근 모든 장비를 등짐으로 짊어지고 가는 백패킹의 캠핑을 ‘비박’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 된 표현이다.
‘비박(bivouac)’은 텐트를 사용하지 않는 임시 야영을 뜻하는 등산 용어다.
조난 등의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생존 방법이다.
산꼭대기 전망데크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절대 ‘비박’이 아니다.
일부 고수들은 ‘비박’을 산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산에서 텐트 없이 잠을 자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선택하고,
최소한의 장비와 지형지물을 이용해 안락한 잠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성능 좋은 장비를 이용하면 불편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비박은 고통이 수반된다.
이제 등산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야영은 ‘알파인캠핑’ 혹은 ‘등산야영’이라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백패킹의 캠핑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파인캠핑용 장비는 효율성을 위해 2~3인용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배낭에 꾸리기 쉬운 작고 가벼운 장비를 쓰는 게 원칙이다.
잠자리가 좁고 취사가 불편해도 짐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산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알파인캠핑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바로 등산의 효율성이다.
[특집 야영 vs 비박ㅣ역사] 야영과 비박을 발전시킨 것은 전쟁이었다
인류와 운명을 함께해 온 야영과 비박 이야기, 그 미묘한 차이
야영은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야영도 발전했고,
식량을 찾아 이동하며 살던 유목시대에 와서 보편화되었다.
그 뒤 농경생활이 보편화되며 한 곳에 정착하는 방식으로 바뀌며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야영의 의미가 지금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은 근대 이후다.
심신수련과 자연극복을 위한 의도적인 목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야영을 발달시킨 것은 전쟁이었다.
인류는 지역을 막론하고 부족이나 국가의 틀을 형성한 후부터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 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 번 시작된 전쟁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아 장기간의 야영은 필수였다.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유럽을 정복하던 시절이나
칭기즈칸이 세계를 손아귀에 넣던 중세에는 전쟁이 몇 년에 걸쳐 지속됐다.
병사들은 텐트를 집 삼아 야전에서 생활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캠핑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쟁과 캠핑은 지금도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군대에서 받는 교육 가운데 캠핑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군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사를 주둔시키는 곳을 캠프라 부른다.
군인들의 개인장비 가운데 총을 비롯한 무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야영에 필요한 장비라는 것도 전쟁과 캠핑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말해 준다.
분위기 좋은 잣나무숲에서 야영하는 백패커들.
상인들도 캠핑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행렬은 사막과 산과 평야에서 숱한 밤을 보내야 했다.
이들에게 야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낙타와 말의 등에는 언제나 텐트를 비롯한 장비들이 실려 있었다.
또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도구도 가지고 다녔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캠핑을 발전시켰다.
사냥꾼들은 며칠씩 숲에 머무르면서 사냥감을 쫓았다. 약초를 캐러 나선 이들도 마찬가지다.
선교에 나선 수도사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면 야영을 해야 했고,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가들도 낯선 밀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불편한 밤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야영은 정착 생활을 한 이후에도 인류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인류는 경제활동이나 군사 활동을 위해 캠핑을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선택해 왔다.
현대적인 의미의 야영(캠핑)은 1896년 독일 베를린에서
피셔Fisher, C.라는 고등학교 학생이 국토순례를 하면서부터다.
학생들은 국토를 순례하면서 조국의 장래와 자신들의 포부에 대한 토론을 하며 자연 속에서 야영을 했다.
이것이 ‘철새’라는 뜻의 반더포겔Wander Vogel이라 불리면서 전국에 확산되었다.
교육적 의미를 지닌 캠핑은 미국 남북전쟁 무렵 워싱턴의 거너리학교 교장이었던 F.W.건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이들이 캠핑을 통해 야외에서 공동체 생활을 배울 수 있게 했다.
그후 자연을 배우고 즐기는 레저로서 캠핑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1901년에는 미국 최초의 캠핑클럽이 창설됐고,
1907년 영국에서 보이스카우트Boy Scouts가 결성되어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야영이 본격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현대적인 캠핑문화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33년에는 최초의 국제캠핑회의가 개최된다.
현대에 와서는 야영이 세분화되어 캠핑, 오토캠핑, 미니멀캠핑,
알파인캠핑, 글램핑, 백패킹 등 유사하면서 다른 의미로 불린다.
비박은 전쟁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독일어 비바크Biwak에서 유래한 비박의 어원은 Bi주변+Wache감시의 합성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군인들이 주변을 감시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복병처럼 숨어서 감시해야 했기에 텐트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적의 습격 가능성이 있는 밤에는 텐트를 치지 않고 교대로 잠을 자며 감시해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비박은 산에서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하룻밤 보내는 것을 뜻한다.
비박은 영어와 프랑스어에서도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뜻한다.
등산에서 비박은 원래 긴급 상황에서 텐트 없이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절벽 상의 좁은 턱에 걸터앉거나 혹은 눈밭에 쪼그리고 앉든지
혹은 설동을 파고 들어가 하룻밤을 견디는 등의 험악한 상황을 연상케 마련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지금은 그런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텐트를 치지 않고 산에서 잠을 자는 것을 뜻한다.
1976년 데날리 남벽에서 비박하는 듀걸 해스턴.
영국 산악인 듀걸 해스턴과 더그 스코트는 혹독한 거벽에서 5일간의 비박을 통해 데날리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했다.
아이거 북벽의 ‘죽음의 비박지’
비박은 산악인들의 등반사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알피니즘이 시작된 알프스 등반에서 비박은 실과 바늘처럼 함께할 정도로 밀접한 것이다.
알피니즘은 유럽 알프스에서 시작되었는데
알프스의 대표적인 험봉 아이거(3,970m) 북벽에도 그 유명한 ‘죽음의 비박지’가 있다.
아이거 북벽은 바위와 얼음과 눈으로 구성된 높이 1,800m인 거벽이다.
아이거 북벽은 산악인들의 도전의 표상으로 손꼽혀,
인간의 생사가 순식간에 갈리는 무시무시한 드라마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때문에 ‘죽음의 벽’이란 뜻의 ‘모르트반트Mordwand’라고도 불린다.
그 이름에 걸맞게 1990년대 말까지 이 벽을 등반하다가 목숨을 잃은 산악인 수는 50명을 넘는다.
'죽음의 비박지’는 아이거 북벽의 최초 희생자들에 의해 생겨났다.
독일 청년 막스 제틀마이어(당시 24세)와 칼 메링거(당시 26세)는 1935년 아이거 북벽의 직등루트로 등반했다.
두 사람은 ‘플랫아이언’ 마루의 상부에 위치한 오버행 바위 밑에 도달했다.
아이거 북벽의 3분의 2 지점을 돌파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폭풍설을 만나 조난당했다.
이들이 조난당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밤을 지새웠던 장소는 후에 ‘죽음의 비박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밖에도 히말라야를 비롯한 고산에서 비박은
산악인들에게 죽음을 각오한 극한 등반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지금은 비박이 텐트를 치지 않는 야영 정도로 통용되며
심지어 텐트를 사용하는 야영까지 비박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지만,
이런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안락한 백패킹을 비박이라 지칭하면 잘못 된 생각이다.
야영과 비박, 모두 인류의 전쟁으로 인해 발전한 것들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취미의 한 분야, 여가 수단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물질문명이 발전하고 경쟁사회가 심해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야영·비박이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야영·비박 동호인들은 최신 장비에 민감하고 산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이 많은 반면,
자연과의 진정성 있는 교감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세계적인 캠핑의 흐름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안에서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것인 만큼,
우리의 야영 문화도 장비 자랑이 아닌 ‘자연’에 집중하는 형태로 바뀌어 가야 할 때다.
전국 유명계곡
강원도 삼척 무건리 오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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