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는 무상 대도(無上大道)라 그 진리와 방편이 호대하므로 여러 선지식(善知識)이 이에 근원하여 각종 각파로 분립하고 포교문을 열어 많은 사람을 가르쳐 왔으며,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이나, 교문을 별립하여 오랫동안 제도와 방편을 달리하여 온 만큼 교파들 사이에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일이 없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다 모든 종교와 종파의 근본 원리를 알지 못하는 소치라 이 어찌 제불 제성의 본의시리요. 그 중에도, 과거의 불교는 그 제도가 출세간(出世間) 생활하는 승려를 본위하여 조직이 되었는지라, 세간 생활하는 일반 사람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서로 맞지 아니하였으므로, 누구나 불교의 참다운 신자가 되기로 하면 세간 생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며 직업 까지라도 불고하게 되었나니, 이와 같이 되고 보면 아무리 불법이 좋다 할지라도 너른 세상의 많은 생령이 다 불은(佛恩)을 입기 어려울지라, 이 어찌 원만한 대도라 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 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四恩)과 수양·연구·취사의 삼학(三學)으로써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정하였으며,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니라. |
오늘 <교법의 총설>을 다룹니다. 교법의 총설에서 첫 마디는 “불교는”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은, 불교의 역사에 관하여 설명드리려 합니다.
[싯다르타 탄생 이전]
시 기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B.C 3000-2000 |
|
| 인더스문명 |
|
2000년 경 |
|
| 아리아인 이동 아리아인의 서북부 인더스강 유역 펀잡 지방 유입 | 원주민은 문다인 드라비다인 |
1200 - 1000 | 마가다국, 코살라국 아반티, 밤사 |
| 아리아인의 종교문화(베다 문명)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 (브라흐마나, 아라냐카, 우파니샤드 포함하기도 함) | 중국문화권 -은주문명 |
1000 - 600 |
|
| 초기 힌두교 성립 |
|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서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요, 그 전의 인도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도는 기원전 3000~2000년경 인더스 문명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곳에 기원전 2000년경에 아리아인들이 서남아시아에서 이동해오면서 베다 문명을 가지고 왔고, 기원전 1000~600년경 초기 힌두교가 성립합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이지요.
[고타마 싯다르타]
시 기 (기원전)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624(-544) | 카필라 왕국 (현재 네팔) 샤카족 | 고타마 싯다르타 | 고타마 싯다르타 탄생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샤카족의 왕자(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 룸비니 | |
607 | 아쇼다라와 결혼 16세, 골리왕국의 아쇼다라와 혼인 아들을 낳았으나 수행에 방해된다 하여 ‘라훌라’라 명 | |||
596 | 출가 -29세, 사문유관(생로병사에 의문) - 무상고無常苦 | |||
596-590 | 인도 | 단식과 고행 5명의 수도자와 함께 /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선정에 듬 | ||
590 | 깨달음 - 연기설, 4제 8정도 35세, 12월8일 이른 새벽, 생로병사 의문 해결 | |||
590-544 | 전법(45년간) 녹야원에서 5명의 비구에게 초전법륜 설법 사위성에 ‘기원정사’ 세우고 사부중 완성 | |||
544 | 입멸 80세, 2월 15일, 발제하(쿠시나가라)에서 임종. 자등명(自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 법등명(法燈明: 법을 등불로 삼으라) 는 유훈 남김. 유골과 사리는 왕후,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의 나라에 탑파를 세움. |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기원전 624년경 오늘날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서 네팔쪽으로 살짝 인도 북쪽에 있는 ‘룸비니 동산’이라는 곳에서 나셨지요. 부처님께서는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습니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출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싯다르타를 일찍 결혼시켰는데요. 아들이 태어나서, ‘라훌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요.
결국, 그러나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문 밖을 나가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는 경험을 한 뒤, 생로병사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시자를 데리고 말을 몰아 성 밖으로 나가서 출가하셨지요. 당시에는 ‘육사외도’라 하여, 다양한 수행자들이 많았습니다. 육사외도는 선정주의, 고행주의, 쾌락주의였어요. 그런데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수행을 해보니, 고행주의나 선정주의는 양극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두 스승을 모셨다가, 같이 수행하던 5명과 함께 스승을 나와 따로 수행을 시작했지요. 6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수행하셨습니다. 서가모니께서 갈비뼈가 다 보일정도로 고생하는 모습을 다들 보셨을 것입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렇게 고행하던 중 어느날 ‘수자타’라는 여인에게 우유죽을 얻어먹고 기력을 찾으셨어요. 그러자 서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교진여 등 5인이 서가모니 부처님을 떠났어요. 서가모니 부처님이 죽을 얻어먹었던 수자타가 불가촉천민이었거든요. 부처님 홀로 죽을 먹고 기력을 찾은 뒤 선을 하다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의 깨달은 것은 ‘중도의 길’입니다. 고행주의·선정주의를 포함하면서도 초월하는 길이지요. 선정을 아무리 잘하든, 고행을 아무리 하든, 생멸법(生滅法)에 불과하거든요. 아무리 해도 생멸법이에요. 자이나교라고 아시나요? 지금도 있는데요. 이를테면 일생동안 팔을 들고 있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어요.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뒤, 같이 수행했던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곳이 ‘녹야원(鹿野苑)’입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은 뒤 고진여 등 5인에게 최초법문을 설한 곳이지요. 초전법륜이라 합니다. 제가 녹야원에도 가봤는데요. 부처님께서 깨달은 곳과 ‘녹야원’은 멀지 않은 곳이에요. 차로 20분쯤 가면 됩니다. ‘녹야원’은 ‘사슴 록’자를 써서 녹야원인데, 지금도 사슴이 있더라고요.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법문이 ‘사제(四諦)’입니다. 사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 ‘①고 : 우리 인생은 고통이다. ②집: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③멸: 고통을 멸하기 위해서는, ④도: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제 법문 안 팔정도가 들어가 있지요. 팔정도는 원불교로 말하자면 삼학입니다.
그후 부처님께서 45년간 수많은 법문을 하시다가, 발제하에서 80세 때 돌아가셨습니다. 원불교 의두요목 중 “ 세존이 열반(涅槃)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찌기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라는 의두가 있는데, 녹야원은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교진여 등 5인에게 최초로 설법한 곳이고 발제하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곳이지요.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부처님께서 왕족의 신분을 갖고 있던 것이 불교를 활성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뒤 포교하신 곳이 갠지스강 유역이었는데요. 갠지스강 지역도 인더스강 지역만큼 대단한 곡창지대였어요. 문명이나 종교가 발달한 곳은 곡창지대로서 농업이 발달한 곳이거나, 상업이 발달한 곳이지요. 즉, 경제가 활성화한 곳에서 종교가 나타나고 성장한다는 말씀입니다. 원불교가 ‘영육쌍전(靈肉雙全)’을 말하잖아요. 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공부만 얘기하는 사람은 갑갑한 사람입니다. 나라도, 경제와 안보가 뒷받침되어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에요.
[1차 결집]
시 기 (기워전)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544 |
|
| 544년 - 불교의 시작 (남방불교국가에서 채택된 연대) 부처와 함께하지 못한 안거의 해를 기점으로 삼음 |
|
545-444 |
| 마하가섭 아난 우바리 | 원시불교 (초기, 근본) 1차 결집 - 라자가하, 500명 - 붓다 입멸의 해 마하가섭-사회, 아난-독송(암송), 우바리-율 송출 | <아함경> |
원불교 원기는 대종사님 대각하신 때로부터 시작하지만, 불교의 불기는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때부터 시작합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언제 태어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그 연도가 사실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남방불교에서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기원전 544년 돌아가신 것으로 잡아서, 이때부터 불기를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성립하려면 3요소가 필요합니다. ①교조, ②교법, ③교단입니다. 불교에서는 불(佛)/법(法)/승(僧)이라 합니다. ‘불’은 서가모님 부처님이지요. ‘법’은 교법이고, ‘승’은 승단(승려들)이지요.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제자들이 경전을 모았어요. 그런데 이때 경전은 입으로 외는 경전이었습니다. 마하가섭이 사회를 보고, 아난이 독송하고, 우바리가 율을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여시아문)이라 하면서 경전을 모았어요. 그러면 제자들이 모두 그 경전을 외는 것이었지요.
원불교는 얼마나 편합니까. 대종사님께서 직접 정전을 쓰고 가셨잖아요. 그러나 서가모니 부처님 당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다보니, 그런 식으로 경전이 생긴 것이지요.
[2차 결집]
시 기 (기원전)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383년경 |
| 야사 (아난의 제자) | 계율에 대한 해석 차이 - 부파불교 형성 2차 결집 - 베사리, 700명 - 불멸 후 100년 (계율에 대한 새로운 열 가지 안(十事) 주장) | 경(經) 율(律) 중시 |
| 마하데바 스님 | 다섯가지 주장 상좌부와 대중부로 (근본)분열 (1세기에는 20여개로 분열) |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100년 쯤 지난 뒤, ‘2차 결집’이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당대제자들은 다 돌아가신 상황이고, 시대가 달라지다보니, 서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계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졌습니다. 정치에 진보와 보수가 있듯, 2차 결집 당시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보수는 ‘부처님 계문을 그대로 지키자’는 입장이고, 진보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융통성 있게 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진보 쪽이 계문해석에 관하여 10가지의 새로운 제안을 냈는데, 이를 십사(十事)라 합니다. ‘①소금을 비축해두자’ : 진보파는 전날 공양에서 소금을 받으면, 이걸 비축했다가 다음날 사용해도 된다고 보았습니다. 당시는 소금이 귀한 시대였잖아요. 보수파는 입장에서는 소금을 비축하는 것은 곧 재산을 비축하는 것이었지요. 보수파는 소금을 비축하는 것은 욕심이 들어서라고 생각해서 이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다른 제안도 대부분 먹는 문제에 관한 것인데요. ②점심을 먹은 뒤에도 해가 두 뼘 가량 남았으면 식사를 더 할 수 있다. ③식사를 마친 뒤에도 배가 고프면 식사를 더 할 수 있다. ④한 곳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다른 곳에 가서 또 식사를 할 수 있다. ⑤발효된 우유를 마실 수 있다. ⑥술이 되기 전 단계의 발효된 과즙은 마실 수 있다. ⑦좌복의 사이즈를 사람마다 다르게 하자. ⑧앞선 사람이 하던 행동을 따라 하면 계율에 위반되지 않는다. ⑨죄를 지은 뒤 용서를 구하는 것은 허용된다. ⑩보시를 받을 때, 금과 은을 시주받을 수 있다‘는 제안이었습니다.
2차 결집 당시 700여 명이 모였는데, 결국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진보측의 10가지 제안은 거부되었지요.
남방불교에서는 아라한에 관하여 다섯 가지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진보측의 주장은 ‘①아라한도 성욕이 일어난다. ②아라한은 무지가 아직 남아 있다. ③아라한은 의심이 남아있다. ④아라한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깨칠 수 있다. ⑤아라한은 소리를 통해 불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보 측은 아라한의 기준을 낮추려 한 것이지요. 그러나 보수는 ‘그러면 아라한이 아니다’라고 하며, 진보의 주장을 반대했지요.
결국, 진보와 보수가 갈렸습니다. 소수파였던 진보가 다수파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지요. 이를 ‘근본분열’이라 합니다. 다수를 차지했던 보수파는 ‘상좌부’라 부르고, 소수였던 진보파는 ‘대중부’라 합니다. 이 두 파에서 각종각파로 분열이 이루어지는데, 이 시대에 불교를 ‘부파불교’라 합니다.
[3차 결집]
시 기 (기원전)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327-325 |
| 알렉산더 대왕 |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으로 인도 지역 혼란 |
|
317-180 | 마우리아 왕조 | 찬드라 굽타 | 찬드라굽타가 (마가다국 멸망시키고) 마우랴 왕조 건국 |
|
아쇼카 왕 (BC 269년 추정~232년) | 외국과 인도 여러 지역에 불교 전파 불교의 확장 - 포교의 거점이 됨(스리랑카, 헬레니즘 문화권) - 부파를 형성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함. |
| ||
214 | 3차 결집 (1천 결집, 파탈리푸트라 결집)- 삼장 편찬 |
| ||
187-75 | 쑹가 왕조 | 푸샤미트라 | 브라만적인 성격을 부활한 복고적 정책 폄 그러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불교 정서 뿌리내림. |
|
155 | 박트리아 왕조 | 매난드로스왕 | 쑹가 왕조 공격, 매나드로스왕은 나가세나 장로와 만남 이후 불교에 귀의. |
|
28 | 안드리아왕조 |
| 남인도의 안드리아 왕조가 인도 중앙으로 진출 불교와 바라문교가 나란히 발전(불교와 바라문교 모두 문화적으로 우세한 북인도에서 수입한 것이었기 때문에) |
|
B.C 1세기 | 스리랑카 |
| 세일론 상좌부 - 삼장(경·율·논) 편찬 |
|
B.C 1세기 | 인도 |
| 바라문교가 부족, 민속 신앙을 베다 성전의 권위에 포괄 흡수하며, 힌두교의 모습으로 정립되어감.(18~20부파분열) |
|
그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북부까지 정복해오면서, 인도가 새로운 민족과 문명을 만나게 되고, 혼란의 과정 속에서 마우리아 왕조가 세워집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이 온갖 전쟁을 하며 왕조의 영토를 확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잘하는 것일까’ 회의하다가, 불교에 눈을 뜨게 됩니다.
기원전 3세기 초, 아소카 왕이 엄청나게 많은 불사를 했는데요, 불사의 일환으로 ‘3차 결집’을 했습니다.
3차 결집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비로소 문자로 적힌 경전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3차 결집에서 경(經), 율(律), 론(論) 3장이 편찬되었습니다.
[소승불교]
인도 아쇼카왕이 아들을 스리랑카에 보냈는데, 그때 불교는 상좌부 불교였습니다. 상좌부 불교를 소승불교라고도 부르는데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이 소승불교가 강한 곳이지요. 소승불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 목표인데요, 소승불교는 서가모니 당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려는 문화가 강합니다. 소승불교 스님들은 ‘일종식(一鍾食)’이라 해서, 한끼만 먹어요. 계율도 아주 엄격하고요.
[4차 결집]
시 기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AD 1세기 중 | 쿠샨 왕조 (月支國,c 60~375) | 쿠샤나 | 흉노족에 쫒겨온 월지족이 박트리아 왕조를 무너뜨림. | 불교 수용 |
2세기 | 카니시카왕 파르스바 | 카니시카왕이 설일체유부의 장로인 파르스바를 만나 귀의 카니시카 가람을 세우는 등 불교 융성시킴. |
| |
|
| 아스바고샤 | 산스크리트어로 편찬한 찬불송 중 백미인 붇다짜리따 (붇다의 일생을 기록한 책) 편찬 | <붇다 짜리따> |
|
| 카니시카왕 (73~103) | 4차 결집 - 오랫동안 해오던 작업이 카니시카왕에 와서 완성됨.(내용-방대함)-불멸후 400년 후, 500명 비구 | <아비달마대비바사론> |
| 간다라 지역 (파키스탄 페샤와르) | 불교 미술 발전(간다라 미술) - 불상과 보살상 제작 불상 예배로 붇다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짐. |
|
기원후 1세기 경, 쿠샨왕국이 생깁니다. 한자로는 ‘월지국’입니다. 지금의 파키스탄과 북인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쿠샨왕국에서는 ‘카니시카왕’이 유명한데요, 불사를 많이 했지요. 불상도 많이 제작되고요. 이때 4차 결집이 일어났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 돌아가시고 약 600년 뒤의 일이지요. 여기서 헬레니즘 문명이 생기고, ‘간다라 미술’이 발전합니다.
[대승불교 – 중관 사상, 유식 사상]
시 기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2세기 초 |
| 나가르주나 (용수150-250) | 대승불교의 출현 - 대중 구원, 붇다의 근본 가르침 회귀 보상행과 이타행 사상 나가르주나가 출현함으로 인해 대중화 됨. | <중론송> 중관 |
|
| 무착300-370 세친(320~400경) | 간다라국 출신 - 유식학 대승불교의 개척자이며 주류가 되게하였다. | (유가행파) <섭대승론> |
300-500 | 굽타 왕조 | 찬드라 굽타 1세 | 마우랴 왕조 이래, 인도인에 의한 대제국 수립 불교가 힌두교의 신관과 신앙에 흡수됨. | 바라문 중시 |
| 바수반두 | 대승의 새로운 교리체계 확립. 대승불교의 주류가 됨. | <구사론> | |
400 초 | 굽타왕 | 날란다 사원을 지음(427지음~ 1197이슬람 침입으로 폐사)으로 인해 불교의 중심이 마가다로 이동 됨. 소승불교 - 유부계와 정량계 중심 대승불교 - 중관계와 유식계 중심 (8세기 이후 중관·유가파가 중심이 됨 - 밀교사) |
|
2세기 초 인도에서 대단한 천재가 나왔습니다. 나가르주나, 일명 ‘용수 보살’입니다. 이분이 <중송>, <중론>을 지으셨고, 중관 사상 · 무자성 사상 · 공 사상을 말씀하신 분입니다. 정말 천재적이신 분인데, 너무 복잡하고 철학적이고 사변적이어서 문제예요.
곧이어 간다라 지방에서 또 대단한 천재가 나왔는데요. 형 무착과 동생 세친입니다. 이들이 내놓은 사상이 ‘유식(唯識)’입니다. 서양의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사람인데요. 무착과 세친의 유식 사상이 프로이트가의 잠재의식·무의식 개념보다 더 깊은 내용을 말해놓았습니다. 서양철학과 서양의 심리학이 1500~2000년 뒤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무착과 세친의 유식 사상은 정말 대단한 사상입니다. 부파불교에서 진보 쪽의 대중부 불교를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한 것인데요, 그러다보니 서가모니 부처님과는 다른 해석으로까지 가게 된 것이지요. 유식사상은 안의비설신의 육근(六根)의 이면에, 7식(識)과 8식(識)이 있다는 것이지요. 프로이트가 말한 잠재의식이나 무의식과 유사한 개념이지요. 7식의 반복으로 업이 8식에 쌓이고요. 후유식(後唯識) 사상에서는 9식(識) 개념까지 만들어냅니다. 좌산 상사님은 6식이 안의비설신의 육근이고, 7식이 정신, 8식이 성품이라 설명하신 적이 있지요. ‘성품/정신/마음/뜻’으로 나누자면, 성품에서 정신이 나오고 정신에서 마음이 나오고 마음에서 뜻이 나와서 육근을 움직이지요. 이와 동시에, 육근에서부터 성품으로까지 업이 저장됩니다.
[대승불교 – 여래장 사상]
유식 사상이나 용수의 중관 사상도 너무 어렵고요. 너무 사변적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 중관 사상 · 유식 사상과 다른 계통에서 좀 더 쉬운 사상으로 나온 것이 ‘여래장(如來藏) 사상’입니다. 여래장 사상은, 우리 안에는 누구에게나 여래의 태(態)가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것을 ‘불성(佛性)’이라 합니다.
소승불교가 보기에는 부처님은 한 분이고, 나머지는 아라한일 뿐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보기에는 모두에게 불성이 있어요. 모두가 깨달으면 부처입니다. 대승은 중생 즉 부처라는 입장입니다. 겁나게 터 버린 것입니다. 누구나 부처님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뜻에서 ‘불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요.
대종사님도 ‘여래의 불성’이라는 말을 쓰고, 원불교는 ‘내가 본래 부처의 본성을 갖고 있다’는 사상이잖아요. 원불교는 대승불교를 이어받은 사상인 것이지요.
[밀교]
시 기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6세기 말엽 | 굽타 왕조 |
| 중관파와 유식파 속에 힌두교의 쉬바 신앙이 침투 |
|
750-1000 | 프라티하라 왕조 |
| 봉건적 지배제도 확립(중세) - 불교 박해 - 밀교화 |
|
730-1197 | 팔라 왕조 | 고팔라왕 다르마팔라왕 | 마가다에 오단타푸리 사원, 비크라마시라 사원 - 밀교위주의 불교학이 행해진 3대 사원 (비크라마시라 사원 - 인도불교 최후의 거점으로 티벳으로 전해져 티벳불교 형성에 큰 역할) |
|
8세기 | 산타라크시티 | 중관유가파의 산타라크시티 - <탓트바상그라하> 저술 | <탓트바상그라하> | |
파드마삼바마 | 파드마삼바마 - 인도의 탄트라 불교를 처음으로 티베트에 가져가 티벳 라마교의 실질적인 창시자 | <사자의 서> | ||
7세기 중엽~ |
|
| 힌두이즘을 받아들여 7세기 중엽 이후 급격히 밀교화 함. 밀교 특징 - 주술적인 의례의 조직화 및 신비주의적 경향 불교가 점차 힌두세계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춤. |
|
|
|
| 밀교 - 순수밀교(진언승)와 탄트라밀교(금강승, 시륜승) 순수밀교 경전(지혜와 방편 중심) - 대일경, 금강정경 탄트라 경전 - 문수사리근본의궤경, 일체여래금강삼업최상비밀대교왕경, 비밀집회탄트라 |
|
10세기- |
|
| 금강승의 분파인 시륜승이 성행 - 인도 최후 밀교 |
|
유식 사상 등으로 대승불교가 발전할 무렵, 인도에서 또 하나의 일이 벌어집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만나면서 밀교가 생긴 것입니다. 밀교는 티베트에서 가장 발전했지요. 티벳 불교를 라마교라고도 부르는데요. 티벳 불교 사원에 가면 대승불교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바신의 조각상이 있거든요. 이것은 불교의 문화가 아니라 힌두교 문화의 영향인 것이지요.
여러분 <(티베트) 사자의 서> 라는 책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파드마 삼바바라는 사람이 8세기경 쓴 책인데요. 인도 사람이었는데 티베트에 넘어가서 밀교를 전한 분입니다. 이분이 티베트에서 하는 말을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책을 쓰고는 “600년 후에 이 책을 열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언한 뒤 어느 산중에 숨겼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600년 뒤에 발견된 겁니다. 그 책 한번 읽어보십시오. 영혼이 어떠한 과정을 환생하는지 적혀있습니다. 티베트 밀교에서는 서가모니 부처님보다 더욱 숭상되는 분이 파드마 삼바바입니다. 제가 인도 북부 라다크에 갔을 때, 파드마 삼바바 동상이 크게 있더라고요. 인도에 망명 온 티베트인들의 영향때문이겠지요
[불교의 3가지 흐름 - 대승불교, 소승불교, 밀교]
불교는 크게 3가지로 나우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①소승불교 : 인도에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로 간 소승불교가 있습니다. ②대승불교 :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서 한국과 일본에까지 온 대승불교입니다. ③밀교: 인도에서 티베트로 넘어가서 중흥한 밀교입니다.
[인도에서 불교의 쇠퇴]
시 기 | 나 라 | 관련 인물 | 내 용 | 기 타 |
986년 | 구르 왕조 |
| 아프카니스탄의 투르크계 가즈니(Ghazni) 왕조는 이슬람교도로 인도 정복 전쟁 - 불교와 힌두교 성지와 사원 파괴 - 불교가 인도 본토에서 사라지는 계기. |
|
11세기 초 |
| 아티샤 | 탄트라 밀교 논사 - 티벳 불교 부흥 시킴. |
|
12세기 말~ 13세기 초 |
|
| 배타적 일신주의를 내건 이슬람 세력이 침입으로 인도에서 불교쇠망 |
|
19세기 | 스리랑카 | 다르마팔라 | 인도 문화의 르네상스가 제창되며, 인도 불교 부흥 운동 일어남.(대보리회가 중심이 됨) |
|
| 암베드카르 | 불가촉천민들의 불교부흥운동 - 사성평등의 불교 신앙 |
| |
남방불교- 스리랑카, 미얀마(양곤- 쉐다곤 파고다)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보로부두르와 사원) |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지는데요. 10세기 말 이슬람교가 인도로 쳐들어오면서, 불교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남방불교는 인도에는 없고, 스리랑카, 네팔, 부탄, 미얀마 같은 곳에 있지요. 버마의 쉐다곤 파고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어 보로부두르와 사원 같은 유적은 아주 대단하거든요. .
인도에는 불교는 없고, 힌두교만 남아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남아있지요.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인도 북부에 법륜스님이 불가촉천민을 위한 학교(수자타 아카데미)를 세웠는데요. 국가에서 학교로 인가해주지 않는데요. 우민화 정책이지요. 불가촉천민들이 똑똑해지면 안된다는 정책인 것업니다. 인도가 아직도 그러한 상황입니다.
과거에 중국, 인도, 이집트 문명이 대단했지요. 근대 초기에는 서유럽 열강이 대단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이 세계를 제패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다시 중국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다가, 미국을 거쳐 다시 동아시아로 오고 있어요.
대종사께서 ‘조선이 갱조선(更朝鮮)’이라 하셨고, ‘조선이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된다’ 하셨습니다. 제가 추측건대 곧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유럽까지 철도를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게 되면, 대종사님의 법이 세계로 가게 될 것입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에서 나시고, 공자님이 중국에서 나시고, 예수님이 중동에서 나셨지요. 과거에는 성자들이 각 지역을 맡아서 나오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교법과 성자가 나오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원불교가 세가 작지만, 앞으로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오늘 불교의 역사를 말씀드리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 100년이 된 무렵 1차 결집이 있었고, 그 후 수 차례 결집이 이루어 졌습니다. 원불교도 개교 후 100년이 지난 지금, 경전을 새롭게 바꾸어야한다든지 여러 논쟁이 있는데요. 원불교도 시대에 맞추어 적절히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인도불교 종합]
불교의 역사적 전개 | |
인도불교 | 경전 성립기 - 경전 해석기 - 밀교기 |
근본불교 불타와 그의 제자들이 생존했던 시대의 불교 | 아함경 |
원시불교 | |
부파불교 | |
소승불교 | |
대승불교 | 방등부(유마경 승만경) 반야부(반야경) 법화부(법화경) 화엄부(화엄경-중앙아시아에서 4세기경 집대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열반부(열반경) |
중관학파 | 용수(龍樹 · Nagarjuna: c.150-c.250) |
유식학파 | 무착(無着 c. 300-370) · 세친(世親:320~400경) - 제7 말라식 제8아뢰아식 |
여래장 | 일체중생 실유 불성(佛性) |
밀교 | 인도. 서장(西藏,Tibet)- 대일여래 즉신성불 |
①근본불교 : 서가모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생존했을 당시의 불교를 근본불교라 합니다.
②원시불교 : 2차 결집으로 파가 갈라지기 전까지의 불교를 원시불교라 하는데, 근본불교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근본불교를 제외한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③부파불교 : 서가모니 부처님 사후 100년 뒤 2차 결집에서 상좌부, 대중부로 나누어지는 ‘근본분열’이 있고, 두 파가 또 각종각파로 갈라지는 ‘지말분열(支末分裂)’이 있던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합니다.
④소승불교 : 상좌부 불교가 소승불교로 발전합니다.
⑤대승불교 : 대중부 불교가 대승불교로 발전했는데요, 대승불교의 경전은 5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i)방등부(유마경 승만경) : 대중이 곧 부처라는 내용입니다. (ii)반야부(반야경) : 공(空) 사상입니다. 금강경, 반야심경이 대표적 경전이지요. (iii)법화부(법화경) : 법화경은 묘법연화경의 준말인데, 아주 대단한 경전입니다. 중국의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의 근본이 되는 경전입니다. 한국에서 천태종은 법화경 계열의 중국 천태종과는 좀 다르고요. 일본에서 남묘호랑개교(나무묘호렌게쿄, 창가학회)의 근본경전이기도 합니다. 일본 천리교(텐리쿄)의 경전이기도 하고요. (iv) 화엄부(화엄경) : 화엄경은 중앙아시아에서 4세기경 집대성된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이 또한 대단한 경전이지요. 화엄(華嚴)을 통해 드디어 ‘돈각(頓覺)’ 개념이 나옵니다. ‘이법계 사법계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라는 내용도 있는데, 이중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는 ‘제법실상(諸法實相)’과 같은 말로 ‘이 모든 것이 그대로 부처님이다’는 것이지요. 원불교의 사은 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v) 열반부(열반경)이 있습니다.
인도 대승불교에서 중관학파, 유식학파, 여래장사상이 발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i)중관학파는 대승불교 용수 보살의 사상입니다. (ii)유식학파는 대승불교 무착과 세친의 사상으로, 제7 말나식(末那識),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지요. (iii)여래장 사상은 일체 중생에게 실제로 불성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⑥밀교 : 인도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접합하여 생겨났지만, 티베트로 건너가서 발전했지요. 밀교의 내용은 ‘대일여래(大日如來) 즉신성불(卽身成佛)’입니다. 내용은 대승불교와 유사하지요. 우리 몸으로 성불에 바로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니까요.
[중국불교]
중국불교 | 불전 번역기 - 선종 확립기 - 선 완성기 |
천태 | 천태(제법실상) 담연 제관 의통 지례 |
삼론 | 승랑 길장 |
화엄 | 지엄 의상 법장 징관 종밀 |
법상 | 현장(玄奘) 원측 규기 |
선 |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 오가 칠종 |
정토 | 담관 도작 선도 |
진언 | 선무외(善無畏) 금강지 불공(不空) 일행(一行) |
율 | 도선 |
중국 불교에 대해서 오늘은 간단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유교와 도교와 만나게 됩니다. 유교와 도교가 불교를 환영하지 않았었지요. 후한 시대에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넘어간 이후 엄청난 논쟁이 일어납니다. ‘홍명집(弘明集)’이라는 책을 보시면 그 논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논쟁이 400년이나 걸렸습니다.
대종사께서 서가모니 부처님께 연원을 대겠지만 유불선 삼교를 통합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중국에서 이미 유불선 삼교가 만난 적이 있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간화선(看話禪)은 도교의 영향으로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중국에서는 선종이 생겼는데요. 선종의 시초는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온 것으로 잡는데, 어느 불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달마대사는 실존인물은 아니라고 합니다. 선종에서 3조까지는 위경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4조부터 6조까지는 확실한 역사상 근거가 있습니다. 선종에서 처음에는 굉지정각이 주창한 묵조선(黙照禪)만 있었는데, 대혜종고라는 승려가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하면서, 묵조선과 간화선이 쌍벽을 이루었지요.
중국에서 불교는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크게 성행했습니다. 대혜종고가 쓴 <서장>이라는 책이 있는데, 편지 모음입니다. 당시 관리들이 ‘어디까지 수행을 했는데 여기서 막혔다’는 내용으로 대혜종고에게 편지를 쓰면, 대혜종고가 이에 답하는 쓴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묵조선과 간화선이 한국에까지 흘러 왔고, 원불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원불교는 묵조선과 간화선을 함께 하지요. 좌선할 때 처음에는 묵조선을 위주로 하다가, 막판에 잠시 의두(疑頭)를 연마하며 간화선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묵조선이 곧 간화선입니다. 묵조선에서 ‘묵(黙)’은 진공이고 ‘조(照)’는 묘유입니다. 묵조가 곧 간화(看話)인 것이지요. 또, 간화선은 ‘볼 간’, ‘화두 화’입니다. 화두를 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화두는 자성 자리입니다. 조사의 법문을 화두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성 자리가 화두거든요. 자성 자리를 보라는 것이 간화선인 것입니다. 묵조선을 통해서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자리로 가면 그 자리로 자성 (自性)자리에 갈 수 있는 것이고, 간화선을 통해서 뚫어 버리는 방법으로 자성 자리에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국 불교 학파에서 생각해볼 사람을 꼽아보겠습니다. ①천태종을 세운 지의선사입니다. 이분이 앞으로 조명을 받으실 겁니다. 젊었을 때는 선만 하다가, 막판에 깨쳐서, 경전을 해설하는 책을 쓰셨는데요. <마하지관> 등 책에 대단한 내용이 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해보고 싶은 사람은 천태종 공부를 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②삼론종의 조사 길장입니다. ③선종의 혜능입니다. 원불교 일상수행의 요법 제1~3조는 혜능이 했던 말이거든요. 혜능 이후 선종은 임제종 · 위앙종 ·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 5가로 발전하지요. 그중 조동종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크게 흥성합니다. ④화엄종의 법장입니다.
|
첫댓글 항상 신경써주신 배성해,김지원교도님께 감사드립니다.
참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