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등진 金감독이 채찍처럼 '필승봉(棒)'을 휘두르며 모질게 선수들을 몰아세우는 현장이다
22명의 선수는 金감독의 욕설이 떨어질 때마다 박차에 걷어차인 말처럼 이리저리 맹렬하게 치닫는다
이날 오후 6시30분, 하루 여섯 시간의 지옥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金감독의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일시에 종이처럼 구겨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선수들은 얼른 몸을 추스른 뒤 金감독 앞에 나란히 섰다
"셰셰, 라오스(謝謝,老師: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수들은 金감독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절대적인 복종이 배어나왔다. 고개를 숙인 선수들의 얼굴은 흑빛이었다. 그래도 金감독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金감독이 중국여자하키대표팀을 맡은 것은 2000년 1월 말이었다. 그가 팀을 맡은 뒤 채 1주일도 안돼 중국국가체육총국에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선수들의 혈액검사 결과 근육의 피로지수가 3천~5천(정상치는 50~2백)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金감독의 훈련은 그만큼 지독했다. 金감독은 우선 하루 세차례, 모두 여섯시간의 훈련을 시킨다. 金감독 부임 전 훈련시간은 고작 세시간을 넘지 않았다
여기에 1시간30분 동안 야간 웨이트 트레이닝도 추가했다. 윗몸 일으키기를 할 때엔 10㎏짜리 모래주머니를 상체에 둘러메게 했다. 꾀 부리는 선수에겐 몽둥이 찜질, 말을 못 알아듣는 선수에겐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스틱을 내던지고 합숙소를 떠나는 선수가 속출했다. 의료진들도 "근육이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내 하키 원로들도 "이러다간 선수들을 다 죽이겠다"며 金감독의 해고를 요구했다
그러나 金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방이 난리였지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협회 지도부를 찾아가 '선수 선발.관리의 전권을 준다는 계약조건을 잊었느냐'고 따졌죠. '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더군요."
다행히 선수들은 3주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곳저곳의 술렁임도 가라앉았다
마침내 金감독은 그해 9월 시드니 올림픽에 '중국 하키계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전을 거뜬하게 통과한 뒤였다. 이 때부터 10만달러의 연봉도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여자하키팀은 '金감독 훈련대로 하면 되는구나'하는 자신감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예상은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세계랭킹 10위로 본선 진출팀 중 최하위였던 중국팀이 1차전에서 세계 최강 네덜란드팀을 2-0으로 눌렀다. 중국 전역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중국 TV들은 틈만 나면 네덜란드전을 재탕.삼탕했다. 중국 인민들은 온통 여자하키 얘기뿐이었다. 월드컵 당시 우리 국민들과 흡사했다
중국팀은 올림픽에서 10개팀 중 5위를 차지했다. 중국 사회는 환호했다. 金감독도 일약 스타가 됐다. 거리에 나서면 사인공세에 묻혔고, 택시기사나 식당 주인들은 金감독을 알아본 뒤에는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신문.방송은 연일 金감독 특집기사를 실었다
도전은 계속됐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한국통신배(盃)가 열렸을 때였다. 창단 이후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한국팀을 완파했다. 예선 6-1, 결승전 1-0의 완승이었다. 경기 내용도 홈팀인 한국을 압도했다
중국 정부는 감동했다. 즉시 국가체육위를 통해 金감독에게 '종신 연구감독증'을 수여했다
중국여자 소프트볼 대표팀 감독이 수시로 金감독을 찾아 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체육위로부터 "金감독에게 가서 뭐든 배워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체육계에서 '金감독 따라 배우기'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金감독이 선수들을 무지막지하게만 다룬 것은 아니다. 훈련이 끝나면 金감독은 자상한 아빠나 오빠였다
"송아지만한 개를 몇번이나 잡았는지 모릅니다. 선수들 체력증진에는 개고기만한 게 없거든요. 도축장으로 직접 찾아가 소 도가니.꼬리.우족을 가마니 단위로 샀지요. 밤새 코치들과 함께 고기를 손질한 뒤 큰 솥에 우려내 선수들에게 먹였습니다."
눈물겨운 뒷바라지였다
또 있다. 생일을 맞은 선수들에게는 꼭 외식을 챙겨줬다
金감독의 훈련 방침은 서열과 복종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사실 '한국식'이다. 실례를 보자. 金감독은 28명의 대표선수들을 나이가 많은 순으로 세워놓고 윗사람을 무조건 '제제(姐姐.언니)'라고 부르도록 지시했다. 감독을 '자오롄(敎練)'이라고 부르는 중국식 호칭 대신 '선생님(老師)'이란 존칭을 사용토록 했다. 선수들 사이의 친소(親疏)관계를 무시하고 선수들을 '공격조'와 '수비조'로 나눠 같이 먹고, 같이 자게 만들었다
사회주의 아래 인민은 평등'이라고 믿는 중국인들에게는 먹혀들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金감독의 훈련 방식을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선생님의 열정과 정성에 선수들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 결과 선수들의 팀워크와 응집력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대표 경력 14년의 주장 황쥔샤(黃俊霞.29)의 말이다.'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이 통한다'는 선사(禪師)들의 가르침은 여기서도 오롯하다
金감독이 선수들에게 어떻게 비전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래가 보이면 모든 것을 건다는 점에서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같기 때문이다. 역시 마음이다. 金감독이 어린 선수들은 대학으로, 고참들은 코치로 미는 이유도 이런 '비전 갖기'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金감독은 외롭다. 지난해 12월 이후 딱 한차례 베이징(北京)에 있는 가족을 찾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적적함을 내비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말이 없어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선수들이 金감독을 아빠처럼, 오빠처럼 말없이 따르는 진짜 이유다
이방인을 위해 그늘 속에서 모든 것을 참아내는 또 다른 이방인, 이것처럼 가슴 저릿한 장면이 있을까. 중국여자하키대표팀이 9월 부산 아시안게임과 11월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기적은 계속된다"고 외치는 모습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