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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먹시(zoomsi) 짧은 침 긴 詩間 한국줌시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오두
- 코리안 신대륙발견 -
대금의 '쌍골대'의 어원은 만파식적의 외뿔고래에서 유래
내 나이 스무살 때 쯤 나는 취미로 대금을 배우고 있었다. 그 당시 대금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대금'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금은 아무 대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쌍골대'라는 특수한 대나무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대금으로 여겼다.
대금을 사는 것보다 내가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대금을 개인 교수를 하던 대금 스승의 조언도 있었다. 문제는 그 '쌍골대'를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쌍골대를 보기 전에는 '쌍골대'가 무슨 말인지 그저 병자호란 때 '용골대' 동생인가 하는 상상이나 하기십상이던 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금을 만드는 '쌍골대'라는 대나무는 대나무의 골이 지그재그로 홈이 파인 일반 대나무와는 다른 대나무로 대나무의 양면 모두에 작은 가지가 나오는 골이 파인 대나무를 말한다. 이런 쌍골 대나무는 대나무밭의 약 2정보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한 두 그루가 생길까 말까 하는 기형 대나무라는 것이다.
쌍골대는 쌍골죽이라고도 하는데 대금 재료로 보통대나무보다 왜 쌍골대를 선호하는가 하면 대나무를 짤랐을 때 그 단면에 보이는 구멍에 비하여 대나무의 밥(두께)이 굵어 소리도 좋고 대나무가 뒤틀리지 않아 튼튼하여 소리의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쌍골대 대나무를 한 그루 발견하면 가장 밑둥치에서 단 한 개의 대금 밖에 만들지 못했다. 대금 대나무 쌍골대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 별따기였다.
나는 그래도 여러 도시를 이곳 저곳 헤매다니다가 쌍골대를 대구에서 구했다. 아직 푸른 끼가 남아 있는 내 손에 들어온 그 대나무는 쌍골이 양쪽으로 나 있는 뿌리부분이 기형답게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대금 길이만큼 충분한 길이로 아랫부분을 잘랐다. 그래서 굽은 부분을 똑바로 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시골 사랑채 아궁이에서 불에 달구어 그 굽은 대나무를 여러 차례 힘을 주어 똑바로 폈다. 이미 다른 일반 대나무 또는 플라스틱 PVC, 때로는 속이 빈 쇠파이프 등으로 여러 차례 직접 대금을 만들어 사용해 본 솜씨로 나는 쉽게 구멍(취공과 음공 모두 7개이다)을 뚫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마디의 대나무의 구멍통 속의 마디들을 종대로 뚫어야 하는 것이 난관이었다. 입으로 부는 취공 왼편 끝의 마지막 대나무 마디는 뜷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양쪽으로 번갈아 뚫을 수가 없이 긴 대금 길이만큼의 대나무의 한쪽으로 연장을 집어넣어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러니까 대금 대나무의 아래 끝부분에서 긴 드릴을 사용해 마지막 끝의 마디 부분은 남기고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요즈음 그렇게 많은 전기 드릴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전통 수동식 '할비비'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그 종대로 대나무 구멍을 취공 끝 마지막 마디까지 뚫었다.
그렇게 하여 단오날 모아둔 갈대속을 청공에 붙이고 개폐식 쇠붙이 마개를 청공의 갈청을 보호하도록 감아 붙였다.
그 다음은 이제 대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래 심줄'을 마디와 구멍 사이마다 감는 것이다. 그 '고래 심줄'이라는 것은 사실상 그때에 이미 나온 다소 굵은 나일론 낚시줄이었다. 그 감는 기술이 좋아야 보기도 좋고 손으로 대금을 잡기에도 좋지만, 기본 기능은 대금이 건조하거나 침으로 인하여 습해지면서 뒤틀리거나 쪼개지는 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낚시줄로 마디 사이마다 감는 방법을 대금 스승에게 배웠다.
대금 마디 사이에 낚시줄 감기는 마지막 마무리 손질이 기술이다. 각각의 마지막 줄 마감은 낚시줄의 시작 부분 끝을 구부려 감아 마지막에 남은 줄 끝을 시작 줄로 만들어둔 '줄구멍' 사이로 끼워 넣어 그 줄구멍으로 만든 끈의 끝을 아래 끝에서 반대편 끝을 물어 잡은 '줄구멍'을 감아 놓은 줄들 아래로 잡아 당겨 그 시작 줄끝과 마지막 줄끝이 결과적으로 감아 놓은 줄들 아래로 끼이게 하여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대금은 아래 사진과 같다.
*내가 쌍골대를 구해 만든 대금(아래쪽).
위쪽은 코리안 인디안 합동 윷놀이 축제때 인디안 JJ씨가 선물로 준 인디안 퉁소
대나무로 만든 대금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는 대나무가 아닌 뿔로 피리를 만들 때도 그 과정이 복잡하고 특이할 것이라는 상상을 보다 긴밀히 해보기 위해서다. 오늘의 주제는 만파식적의 쌍골대가 외뿔고래의 뿔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다.
나는 2009년 10월 18일 <코리안 신대륙발견>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대나무 아닌 고래뼈 피리 라는 글에서 만파식적은 외뿔고래 뿔로 만들어졌다는 새로운 주장을 펄쳤다. 그런 뒤 2010년 2월 5일 <코리안 신대륙발견> 에밀레종은 뿔(만파식적)을 자른 외뿔고래 신을 모신 신종 및 <코리안 신대륙발견> '만파식적'의 피리소리가 된 외뿔고래의 휘파람 소리라는 글에서 에밀레종의 음통(원통)은 뿔 잘린 외뿔고래를 의미한다고 썼다.
그런데 최근에 경주의 신라 밀레니엄 공원에 세운 모조 에밀레종 음통에 대나무 모양의 '만파식적'을 꽂아둔 것을 보았다. 대나무로 만든 대금 모양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제대로 하려면 외뿔고래의 뿔로 만든 만파식적이어야 한다. 마디 있는 대나무가 아닌 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파식적 대금을 꽂은 모조 에밀레종 전체 모양은 그야말로 내가 주장한 "외
뿔고래의 외뿔"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흥미로운 것이다.
*신라 밀레니엄 공원의 모형 에밀레종의 음통.
대나무 피리가 꽂혀 있다. 뿔이어야 한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에밀레종은 뿔(만파식적)을 자른 외뿔고래 신을 모신 신종
그렇다면, 외뿔고래 뿔로 만든 그 만파식적 피리에 새겼을 문양은 대나무 마디가 아니기에 어떤 문양이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나는 에밀레종 음통 문양에서 찾아낸다. 에밀레종 음통은 "움직이는 섬의 대나무 한 그루를 잘라내고 난 외뿔고래의 잘린 뿔 자국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에밀레종 음통 문양은 외뿔고래 뿔로 만든 만파식적 뿔피리에 새긴 특별한 문양으로 새긴 것으로 그 잘려나간 외뿔고래 몸통인 에밀레종에 남아 있는 음통의 문양처럼 새겼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가능한 증거물이 되는 것이다. 그 문양을 살펴보자.
*에밀레종의 모양은 고래 몸통을 닮아 있고
전 세계에서 에밀레종에만 있는 음통은 외뿔고래 뿔잘린 모습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에밀레종은 뿔(만파식적)을 자른 외뿔고래 신을 모신 신종
*에밀레종 음통 문양. 대나무 모양이 아니다
외뿔고래 뿔에 문양을 새긴 것으로 만파식적의 뿔피리에 새긴 문양도 이러한 문양일 것이다.
필자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과연 신라인들이 고래뼈로 된 피리를 불었겠는가 의아할 것이다. 그 의문은 다른 나라들의 원시 고래잡이들도 고래뼈 피리를 불었겠는가를 살펴보면 해답이 나올 수가 있다. 원시고래토템숭배 사회의 문화는 많은 부분들이 공통적인 내용을 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고래는 그들 자신들의 교감을 위하여 '피리소리'를 내기 때문에 고래토템숭배 민족인 코리안들이 미역국을 고래따라 먹었듯이 고래 피리 흉내를 내서 고래뼈 피리를 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증거를 여기에 공개해보겠다.
오랜 고래잡이 전통을 지닌 뉴질랜드 마오리족 고래잡이들은 고래뼈로 된 특히 고래 이빨로 된 피리를 불었다. 다른 부분의 뼈를 사용해도 될텐데 이빨을 사용한 것은 범고래의 무서운 이빨이 가지는 그 경외로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특히 만파식적을 만들었던 외뿔고래의 뿔도 사실은 외뿔고래의 이빨(어금니)이 아니던가. 그 모양은 더욱 길고 신비한 무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팡이처럼 보이기도 한 그런 외뿔 '어금니'다.
그렇다면 에밀레종 음통의 문양과 마오리족의 고래뼈 피리 문양은 어떻게 비교해 볼 수는 없을까? 궁금할 것이다.
에밀레종의 음통 문양, 다시 말하여 만파식적 뿔피리 문양은 흥미롭게도 뉴질랜드 고래잡이들인 마오리족의 전통 고래뼈 피리의 문양과 상당히 닮아 있다. 아래 그림의 C가 마오리족의 고래뼈 피리인 코아우아우(Koauau)라는 피리이다.
*마오리족 고래 뿔피리들.
C의 Koauau 고래 뿔피리가 에밀레종 음통 문양을 닮아 있다는 것은
만파식적 외뿔고래 뿔 피리의 문양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신라 피리를 고래잡이들이 남태평양 마오리족의 고래잡이 지역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라기보다 고래토템숭배 민족문화는 고래뼈로 만든 피리를 유사하게 사용하고 그 의미도 고래토템 숭배라는 유사한 종교적인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는 여러 다른 공톰점이 발견된다는 면에서 신라의 만파식적이 고래뼈 피리로서 어떤 모양이었을 것인지를 대략 추측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래의 마오리 뼈피리들 특히 고래뼈로 만든 피리를 비교해 보면서 만파식적 외뿔고래 뼈피리의 문양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에밀레종 '음통'이 문양으로 만파식적 뼈피리의 문양과 같은 문양을 새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오리족의 고래뼈 피리 코아우아우(Koauau)의 하나.
One of a group of Māori musical instruments known as taonga pūoro, or singing treasures, the Kōauau is a cross-blown flute with a large musical range depending on whether it has been carved from bone, wood or stone
http://realaotearoa.co.nz/products/maori-carving/bone-kaauau/
*뉴질랜드 마오리족 뼈 피리인 '코아우아우(Koauau)' 뼈피리의 한 종류
Maori bone nose-flute with a carving of a copulating couple, New Zealand, 18th century.
*마오리족 고래뼈 피리. 코아우아우(Koauau)
http://www.jps.auckland.ac.nz/document/Volume_42_1933/Memoirs/No._10_Maori_music_with_
its_Polynesian_background,_by_Johannes_C._Andersen,_p_195-252/p1#
마오리족의 고래뼈 피리 Koauau(코아우아우)는 뼈 외에도 나무, 알바트로스라는 바다새의 날개뼈로도 만들었다. 심지어 사람이 죽으면 그 혼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 망자의 뼈로 피리를 만들기도 했다.
에밀레종을 만들 때에 어린 여자 아이가 희생물로 바쳐졌다는 전설은 범종 자체의 분석으로는 알아낼 길이 없다. 그러나 여러 원시 인간희생 문화에서 발견된다는 면에서 사실일 수도 있다. 마오리족이 그들이 숭상하는 고래 이빨로 특히 응우루(Nguru)라는 피리를 만들었다. 그것은 만파식적이 외뿔고래 뿔(어금니)로 만들었다는 필자의 주장의 방증이 된다. 고래 이빨의 길이는 긴 것은 20센티가 넘는다.
*마오리족의 고래 이빨로 만든 피리. '응우루(Nguru)'
*마오리족 고래뼈 피리. 웅우루의 하나.
*1800년대 초에 마오리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미국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오리족의 세 가지
피리. 코아우아우. 응우루, 푸토리노,
http://www.jps.auckland.ac.nz/document/Volume_54_1945/Volume_54,_No._1/
The_acoustics_of_three_Maori_flutes,_by_Ernest_S._Dodge
고래뼈로 만든 응우루(Nguru)라는 고래뼈 피리는 고래의 이빨로 만든 피리이다. 응우루 피리는 나무나 돌 그리고 진흙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응우루 피리는 한 쪽 끝은 열려 있고 그 반대편은 퉁소처럼 약간 틈새가 있다. 주로 2개의 음공 내지 4개의 음공으로 되어 있다. 응우루와 코아우아우를 비교하면 응우루는 자주 코로 부는 코피리라는 점이다.
Nguru: This small instrument (8 to 10 cm) is curved at the one end because originally this flute was made out of a whale tooth. It can be also made out of wood, stone or clay. It has one open end like the Koauau and one small opening at the curved end. It has 2 to 4 fingerholes. The difference between Nguru and Koauau is that the Nguru is often refered to as a nose flute.
http://www.uni-giessen.de/anglistik/tefl/Projects/exploring/newzealand/Alex's6.htm
마오리족의 전통 응우루(Nguru)가 고래 이빨로 만들었다고 한 것에서 신라인들의 만파식적이 외뿔고래의 뿔이라는 것은 명확히 "외뿔고래의 이빨(어금니)"라는 사실과 일치한다. 그런데 왜 왜 코로 불었을까? 아니 신문왕이 만들었다는 만파식적은 어쩌면 코로 불었을지도 모른다.
그 해답을 알기 전에 왜 외뿔고래 뿔로 다른 물건을 만들지 않고 피리를 만들었을까 하는 것부터 풀어보자.
<삼국유사> 만파식적편의 진짜 스토리인 외뿔고래의 뿔로 피리를 만들었던 이유는 문무대왕처럼 죽어서 동해의 신룡(고래)가 된다는 것에서 '조상귀신고래'를 고래뼈로 소리내어 부르기 위함이다. 붕어한 왕의 혼을 부르기 위해서는 고래를 불러야 그 고래 등을 타고 붕어한 왕의 혼이 용궁으로 가서 다시 고래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고래뼈로 피리를 만들어 부는 풍습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이 붕어할 때 부음을 알리는 소라뼈로 대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외뿔고래 뼈를 구하기가 쉽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반 고래뼈로 구멍을 내서 만들기도 쉽지 않은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마 그것은 고려시대 불교문화에서 걸러지고 다시 조선시대 유교문화에서 고래토템숭배를 숨긴 면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소라나발과 마오리족의 소라 나발 '푸타타라(Pu-tatara)')
마오리족의 '응우루' 고래이빨 피리처럼 신라시대에도 분명히 고래 이빨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나무로 만들어 대금을 만들어 불던 신라 음악문화에서 어느날 신문왕이 특별히 "바다에 떠다니는 섬 위에 대나무 한 그루"처럼 생긴 외뿔고래의 외뿔을 발견하고 그것을 잘라 와서 뿔피리를 만들었으니 신기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외뿔고래는 그때까지 고래잡이 뱃사람들에게 소문만 듣다가 직접 발견을 했을 때 바로 왕에게 보고가 되어 신문왕이 대왕암 바닷가 이견대까지 직접 행차하여 보았다는 것은 그만큼 외뿔고래에 대한 신비한 사전 인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거나 귀한 그 외뿔고래의 뿔이 도난당하지 않게 '대나무'로 위장 홍보를 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외뿔고래에 대한 그 시대의 소문은 '대금을 부는 고래 신선'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외뿔고래는 그 외뿔을 드러내고 그 어떤 소리라도 냈다면 '대금을 부는 모습'으로 여겼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외뿔고래들은 그 뿔을 서로 부딪치는 장난을 자주 하여 소리가 나기도 하고 다른 고래들처럼 따로 피리 소리와 유사한 신호음을 낸다.
더더욱 그 시대에는 듀공이나 매니티 같은 수중 동물을 '인어'로 보던 시대였으니 물 위에 목만 내밀고 길다랗게 나온 외뿔을 가진 고래가 약간의 소리를 내면서 바다의 파도 속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그야말로 신선이 피리를 부는 모습으로 보였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마오리족의 웅우루(Nguru) 뼈피리는 왜 코로 부는 코 피리(nose flute)로 사용했을까하는 대답을 해 보자. 흥미롭게도 고래가 숨쉴 때 코로 나는 소리를 흉내내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래는 바다에 있으나 사람과 같은 왕의 조상이라는 토템대상이 된 것은 땅 짐승으로 숨을 쉬면서 바다에 산다는 것에 있다.
고래토템숭배 문화에는 고래뼈로 만든 홀(笏 club)을 비롯하여 고래 갈비뼈로 서까래를 그 척추뼈로 대들보를 만든 그야말로 고래뼈로 만든 '고래등 같은 집'이 알라스카 원주민들의 전통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래 이빨로 '응우루' 피리를 만든 마오리족은 고래 갈비뼈로 만든 푸토리노(pūtōrino)라는 피리도 불었다. 그 모양이 고래 숨구멍처럼 중간에 구멍을 하나 내고 있다. 그 모양은 영락없는 고래를 닮아 있고 고래 숨구멍을 닮아 있다.
때로 한국 전통 퉁소 뒷면에도 구멍이 하나가 뚫리기도 하는 것은 마오리족의 푸토리노의 한 개의 구멍처럼 본래 고래 숨구멍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자! 여기에서 필자가 주장한 "신라 첨성대는 고래토템폴"이라는 사실이 이제 점차 가설에서 새로운 학설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코리안 신대륙발견> 첨성대는 고래뼈 피리 형상화한 신라인들의 고래토템폴에서 논할 것이다.
*마오리족 고래뼈 피리 '푸토리노(pūtōrino)
첨성대를 닮아 있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첨성대는 고래뼈 피리 형상화한 신라인들의
마오리족 고래뼈 피리인 푸토리노(putorino)는 신라의 만파식적의 또 다른 방증을 보여주고 있다. 만파식적은 '낮에는 둘로 갈라져 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는" 그런 대나무(외뿔고래 뿔)로 표현했다. 쌍골대의 의미가 마오리족에게도 있는 것일까.
마오리족 푸토리노를 만들 때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서 풀로 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중간에 뚫은 것은 청공이라는 것이다.
the Maori Putorino is carved in two sections and then glued together . The reason being that there is a belly , (sound chamber) in the middle.
http://www.woodworkforums.com/f8/native-american-flute-110440/
마오리 전통 악기의 전문가인 리차드 눈(Richrd Nunns)은 가팅겐 지역에서 비디오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나와서 마오리족 푸토리노 피리의 보관에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 이유는 푸토리노 피리가 카누의 두 부분 바닥 통(hull)으로 나뉘어진 것처럼 두 부분을 붙여 만든다는 것이다.
Richrd Nunns stated in the video documentary in Göttingen that the problem with preservation of the pūtōrino is, that they are made from two hulls like “canoe hulls” of wood.
말하자면 쪼개서 홈을 파내 둥글게 하고 다시 붙여서 풀로 붙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양은 피리의 내부를 쉽게 만드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풀로붙여 합치는 것은 피리를 소리가 언제나 잘 나도록 탄탄하게 조여주어야 한다. (둘로 나뉘어진 의미를 가지는 코리안 쌍골대 대금을 끈으로 중간에 조여주는 역할의 비밀과 연결되어 있다)
They are hollowed out and rounded and then bound and glued together, it has an interior encapsulated. The gluing and the binding need constant maintenance to stay tight, to keep it functioning as an instrument.
푸토리노 피리가 연주가 잘 되게 하려면 피리 안에 물을 부어넣어 주는 것이 권장된다. (한국 전통대금 또한 같은 치유를 하며, 때로는 연주자의 오줌을 부어넣는 전승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또 다른 권장은 쿠메테(kumete)라는 큰 대야와 사발에 물을 채워 피리를 담궈 나무가 불어 단단해지게 한 다음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There is some suggestion that water was poured in, in preparation for performance. Another suggestion was that kumete, large dishes and bowls were filled with water, and the pūtōrino submerged so that everything was corked, swollen and tight, ready for the performances that took place.
http://www.flutefocus.com/386.html
대금을 불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마오리족 푸토리노 피리가 나무일 경우 이와같은 처방은 한국 전통 대금 관리와 거의 같은 전통이라는 것임을 알 것이다.
외뿔고래의 쌍골을 동시에 피리를 만들었을 개연성도 있다. 북미 인디안들이나 아즈텍 인디안들의 피리에는 두 개의 피리를 동시에 연결한 '더블 바렐 피리(Double Barrel Flute)들이 있다.
*북미 인디안들의 쌍피리(Double Flutes)
Double Flutes have two pipes. One pipe is like a regular flute,
the second pipe plays the ground pitch, that plays paralell.
It sound as there is a second flute playing. Setup for 5 or 6 tones.
*쌍피리 (flauta doble).
울산 천전리 고래 암각화의 마름모 연속 상형이 그려진다.
고고학적 기록은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150년에 걸쳐 멕시코의 걸프만 지역에 그리고 그 반대편인 태평양 연안에서 쌍피리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대 피라미드가 있는 콜리마 지역은 초기의 쌍피리 발견지역으로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쌍피리들을 종교적인 제의에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사용하는 쌍피들은 이들 전통 방식의 쌍피리 형식이 남아진 것이다.
The archaeological record attests to significant manufacture of the fascinating double flute along the gulf coast and occidental regions of Mexico between 300 BC - 150 AD. The district of Colima, with its ancient pyramid, appears to have been an early double flute hot spot. Researchers hypothesize that the psychoacoustic sounds produced by these clay double flutes enhanced religious rituals. Today, modern Mesoamerican double flute makers are keeping this flute form alive
*멕시코 전통 쌍피리. Double Barrel Clay Pottery Flute
아래 사진은 외뿔고래 뿔의 겉면이다. 그 모양은 뿔의 겉면으로서 마디가 없다. 따라서 만파식적 뿔피리의 겉면도 대나무 마디처럼 될 수 없이 위의 에밀레종 음통처럼 문양을 뿔피리 겉면에 새겼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외뿔고래 뿔의 굵기. 대금을 충분히 만들 수가 있는 굵기이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외뿔고래 뿔을 가졌던 엘리자베스 1세와 신라의 신문왕
*외뿔고래 뿔의 단면도. 외뿔고래의 뿔은 마디가 없다.
대금을 만드는 쌍골대보다 더 '밥'이 두껍다.
대금을 만들 때에 쌍골대로 만들어야 하는 그 쌍골의 모양을 우선 아래 사진에서 보자. 필자가 직접 살아 있는 쌍골대 대나무로 만든 대금의 '쌍골 부분'을 방금 전에 찰영한 것이다. 대나무의 잔 가지가 난 골랑이 양쪽으로 나서 연결된 일종의 기형의 대나무를 말한다.
*외뿔고래 뿔의 두께가 필자가 만든 대금의 두께인 '밥'만큼 두껍다.
쌍골대인 것은 대나무가 양쪽으로 모두 골이 나 있고 마디끝까지 양쪽 모두에 골이 나있다.
보통 대나무는 한 칸 건너 골이 이어지며, 바닥의 밥에도 한쪽만이 골홈이 나 있다.
오늘의 핵심 주제는 이제부터다. 왜 쌍골대라고 했는가 하는 그 '쌍골'이라는 말이 '양쪽으로 즉 쌍으로 골이 파진 대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나무 대금'에서 사용하기 이전에 혹여..... 대금의 기원이라 할만한 만파식적의 외뿔고래 뿔로 만든 피리에서 '쌍골'이라는 말이 나왔을 수가 있다는 필자의 또 다른 희한한 추정이다.
외뿔고래는 그야말로 '외골(外骨)'이기도 하다. 뿔은 각(角)으로 표현하여 외뿔고래를 한자로 일각수(一角獸)라고도 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그야말로 대나무밭의 쌍골대처럼 아주 드물게 일각이 아닌 양각 즉 뿔을 두 개 가진 '외뿔고래(narwhal)'의 쌍뿔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쌍뿔'이라고 불렀을까? 아니다. 쌍골고래라 칭했을 것이다.
*보기드문 '쌍골고래' (Twin narwhal tusk or Double tusks narwhal)
Sealer Aron Aqqaluk Kristiansen from the settlement Kangersuatsiaq in Greenland poses with the head of a rare, double-tusked narwhal.
http://animals.howstuffworks.com/mammals/narwhal.htm/printable
*너무나 희귀하여 '쌍골고래'는 잡아서 기념사진을 찍은 이런
사냥감 밖에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Narwhals usually have one horn apiece, but this fellow has bagged a double. (AFP photo)
http://scribalterror.blogs.com/scribal_terror/2007/05/an_unusual_unic.html
*'쌍골고래'
영어로 Twin narwhal tusk'(쌍어금니 외뿔고래 의미)라고 한다.
http://www.arcticartsales.com/double_tusk2.html
과연 7세기 신라시대 신문왕은 외뿔고래를 보았을 때 '두 개의 쌍골 외뿔고래'를 보았을 것인가. <삼국유사>의 '낮에는 대나무가 둘'로 보였다가 밤에는 하나로 보였다'는 것은 낮에는 쌍뿔이 달린 외뿔고래를 보았고 밤에는 한 뿔만 가진 다른 외뿔고래를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인들도 쌍골 외뿔고래를 보면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도 남겼다. 1746년.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바다에서 '쌍골' 달린 외뿔고래를 잡은 아래의 그림은 신라인들도 쌍골 외뿔고래를 보았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동판에 새긴 '쌍골고래' 그림. 1746년.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지역. 제일 위쪽에는
외뿔달린 보통 외뿔고래. 그 아래쪽에 두 마리의 '쌍골고래' 해골과 그 쌍골이 각각 그려져 있다.
Copper engraving of twin narwhal tusk.
"News from Iceland, Greenland and the Strait of Davis by Johan Anderson, Hamburg, 1746"
*위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1746년 발행판 책 표지.
쌍골 뿔이 외뿔고래 머리에 있는 것은 특히 신비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남성 화랑들의 소골절풍으로 머리에 두 개의 깃털을 꽂는 것은 이러한 쌍골 외뿔고래의 영향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성 화랑인 원화의 경우는 '쌍골 머리빗'을 머리에 꽂았을 수가 있다.
2000년도 경주국립박물관 개발 부지에서 인골 묻힌 우물이 발굴되었고 2009년도에는 임해전지에서 인골은 없었지만, 역시 오래된 신라 우물이 발굴되었다. 신라 왕경지의 귀족들이 사용한 우물로 보이는 그 두곳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것은 토기 항아리와 두레박 그리고 두 가락으로 뻗은 여성용 머리 뒤꽂이가 여러개가 발굴되었다. 항아리와 두레박은 우물 물을 푸는 도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머리 뒤꽂이 핀은 물을 푸다가 여성들의 머리에서 떨어트렸을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머리 뒤꽂이의 모양이 그대로 외뿔고래의 쌍골 뿔을 닮아 있다고 생각된다.
*신라 왕경지 임해전지 우물에서 발굴된 머리 뒤꽂이 '쌍골 머리빗'
외뿔고래 쌍뿔을 흉내낸 신화적인 머리 삔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련글: <역사산책> 경주국립박물관 신라 우물 안의 인골은 누구였나?
신라인들이 누구더냐. 성골진골을 따지는 고래뼈 골품과 관련한 쌍골이다. 성골은 외뿔고래가 가지는 희귀한 쌍골을의미하고 진골은 외뿔고래의 흔한 외뿔을 의미하여 한급 아래로 보았을 수가 있다. 마오리족 쌍골뼈 피리는 어쩌면 신라인들의 외뿔고래 뿔로 만든 쌍골뼈 '만파식적'의 모양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합쳐졌다 갈라졌다' 하는 모습은 마오리족의 쌍골뼈 피리모양 근처의 어딘가의 모양이었을 수가 있지 않을까?
*마오리족 '쌍골뼈 피리' Double Putorino.
A.뉴질랜드 웰링턴 도미니온 박물관.
B. 영국 대영박물관
*감은사지삼층석탑 출토 청동제 사리 사각감(靑銅製四角龕) 부분
고래뼈로 된 피리를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파식적'은 이런 피리 종류일 것이다
나는 만파식적이 외뿔고래의 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미 밝혔다. 그 뿔에는 외뿔이 일반적이지만, 아주 드물게 쌍뿔을 가진 외뿔고래도 있다는 것에서 외뿔고래의 뿔(어금니)로 만든 만파식적은 '쌍골 피리'였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이제 마오리족 및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쌍피리 문화에서 유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외뿔고래의 '쌍뿔'은 골품제도를 가졌던 신라에서 뿔이라고 하지 않고 '골(骨)'이라 하여 '쌍골피리'라는 뜻으로 '쌍골대 대금'의 원형이 존재했을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라에는 뿔로 된 잔을 토기로 만든 것도 있다. 그러나 신라시대 왕실의 관위제도에서 골품제도(骨品制度)라고 하지 각품제도(角品制度)라고 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각(角)보다 골(骨)을 써서 쌍골(雙骨)이라고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외뿔고래는 한 개의 뿔(숫컷의 왼 어금니가 웃자란)이지만, 아주 드물게 코끼리 어금니처럼 왼쪽 오른쪽 모두 다 자란 숫 외뿔고래가 있다. 그럴 경우 외뿔고래보다 음양신선풍류도에서는 쌍뿔 즉 쌍골(雙骨) 고래(Twin narwhal tusk)이 더욱 신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대금' 말하자면 외뿔고래 뿔로 만든 피리로서 외뿔(불교적이다)보다는 쌍골(신선도가적이다)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나무의 쌍골대처럼 '쌍골(雙骨) 고래'는 희귀했을 것이다. 이러한 쌍골(雙骨)고래에서 지금의 대금 전통의 '쌍골대'의 '쌍골'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 오늘의 필자의 주장이다.
외뿔고래와 만파식적에 대한 앞선 글에서 필자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외뿔고래 두 마리'의 뿔들이 한 마리가 밤에는 사라져 한 개로 보였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오늘 이 글에서 또 달리 '한 마리인데 쌍골 즉 두 뿔 달린 외뿔고래가 낮에 나타났고 밤에는 한 개 뿔만 잇는 보통 숫외뿔고래를 본 것이라는 새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쌍골고래일 수도 있다는 개연성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금을 부는 모든 분들에게 신라인들의 골품과 신라의 국보로 지정되었던 만파식적이 쌍골 고래의 뿔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기 바란다.
<삼국유사>는 그랬다. "낮에 보면 두 개로 갈라졌다 밤에는 하나로 합해진다"는 그것은 무엇이었겠는가? 한 마리 뿔고래의 쌍뿔(쌍골(雙骨)을 본 것이 아니었겠느냐 말이다. (03/04/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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