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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하시는 하나님(호2:21-23)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끝까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한번 만 용서하고, 두번째는 용서하지 아니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용서하고 용서하지 아니하는 분도 아닙니다. 죄의 성격과 비중에 따라서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는 분도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용서하시되 끝까지 용서하십니다.
회개는 용서의 전제 조건입니다.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할 때에 드디어 그 사람은 의로워질 수 있게 되며 의인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가 용서의 전제 조건이라면 용서는 구원의 전제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되 완전하게 용서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가져가시고 죄를 제거하여 주십니다. 그의 용서는 시효 만료가 없이 영원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일하십니다. 고멜과도 같은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너는 내 백성이라 선언해 주시는 것도 실은 그게 다 자신의 보람을 위해섭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스스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내가 응답하리라’라고 말씀하시므로, 저주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힘 없이 하나님께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에 응답하시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저주가 사라진 가운데 하나님께서 파종하신다는 긍정적 의미의 ‘이스르엘’에게 그 심기운 것이 풍성한 열매와 같이 번영하게 하실 것이며, 긍휼하심을 받지 못하던 ‘로루하마’였던 그들을 ‘루하마’ 즉 긍휼히 여기시고, ‘로암미’였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그들을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던 이스라엘인 우리를 이제는 긍휼히 여기시며,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백성으로 삼아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우리에게도 해당 되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긍휼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용서하실 때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시고, 땅에 있는 것들은 성도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만족하게 하십니다.
저주 받은 모든 것들이 복이 되게 회복하십니다.
1.응답 하십니다.(21-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성도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날마다 새로워져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너는 내 백성이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주는 나의 하나님의 하나님이시다 고 고백하는 삶입니다. 이 은혜가 넘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있고 땅에서도 응답이 있게 됩니다
본문 21-22절에 ‘응답하다’ 라는 단어가 5회나 나옵니다./ 이는 확실하고 분명한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대답하다, 응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그 날”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하다가 해방되는 날, /궁극적으로는 신약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완전히 성취되는 여호와의 날을 말합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요구에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요한복음15장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16장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이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그 날’은 회복의 날 곧 구원의 날입니다. 이스라엘의 징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들의 회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시요 심판자시요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요 그것을 홀로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하늘의 응답을, 또 땅의 응답을 가져오고, 그것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응답을, 그리고 황폐한 온 땅의 응답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릴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이스라엘 땅은 그 백성을 위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히 생산할 것이며 그들은 필요한 것들을 풍성히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응답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이 무엇인가를 구할 때 우주 만물을 통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이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주권자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늘, 땅, 곡식, 포도주와 기름을 동원해서라도 다 응답해 주십니다.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확신을 가지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응답을 약속하셨고 보장하셨습니다.
흔히 우리는 고멜과도 같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좌절하며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보다는 불신으로 기도하며 확신보다는 요행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기대와 희망을 품고 기도해야함에도 오히려 깊은 패배주의에 빠져 기도합니다. 내가 응답하리라는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생생한 육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마치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늘이 응답했던 것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할 때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답하십니다.
시편65편2절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라고 부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소원을 아뢰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각하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과 감사를 기쁘게 들으시고 우리의 죄 고백을 듣고 용서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듣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그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일평생 하나님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기도로써 응답을 받은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특히 그가 태양이 머무르고 달이 그치기를 담대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허락하시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친히 도우심을 표명하셨습니다(수10:12-14).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도 신실한 신앙생활을 할 때 담대한 기도로써 하나님의 보고(寶庫)를 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눅11:9,10).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우리의 삶 자체를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건강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직장과 생업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고,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고, 하나님의 모든 좋은 복들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용서 하시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긍휼히 여기십니다.(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들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원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들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여기에 나오는 그는 북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는 은혜입니다. 구원과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이루어주실 것이고(BC 537년),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사실 “그들의 죄가 너무나 컸기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침공이라는 형벌을 내리셨고 혹독한 징벌 중에도 긍휼을 바지 못함으로 북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면모는 한마디로 긍휼을 받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즉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냉정하시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나 큰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긍휼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긍휼하심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회복하실 때에는 과거 긍휼을 상실하였던 그들에게 다기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긍휼, 헤아릴 수 없는 긍휼, 사람으로서는 납득도 감당도 못할 긍휼입니다. ”[옥스포드 원어 성경대전]
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음행한 이스라엘과 결혼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로루하마) 긍휼히 여기시겠다(루하마)고 하시고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로암미)에게 너는 내 백성이라(암미) 말씀하시며 호세아 자녀들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내 백성이라 삼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럽게 고백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내 백성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삶에 자리에서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하던 자들이고 백성이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은총과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알았을 때 나오게 되는 고백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나같은 자를 은총과 긍휼로 말미암아 백성이라고 일컬으신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감사와 다짐의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바알들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은 이루어집니다.
영적 간음을 저지른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말씀하셨다가 다시 말을 바꾸어 회복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호세아에서는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어서 관계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처럼, 자기 백성이 아니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어느새 긍휼을 말씀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전하십니다.
“로마서9장25-26절에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베드로전서2장10절에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으로 하나가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메시야 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왕국과 교회 시대를 예견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게 될 이방인들과 함께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이며(갈 3:7-9), 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 약속의 유업을 얻게 될 것입니다(갈 3:28,29).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를 '내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써 전적인 신뢰와 충성을 약속하게 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우상 숭배와 영적 간음을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러한 영적인 관계의 회복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로 확대됩니다(엡 1:21-23;2:20-22;골 1:15-29). “[호크마 주석]
호세아의 본문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 성도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장차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민족에게 전파되어 긍휼을 얻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긍휼을 얻은 자들이 되며 내 백성이 아니던 자들, 이방인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씀한 것이기도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소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긍휼이 여기는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내 하나님이라 하십니다.(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하던 자들이고, 백성이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은총과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알았을 때 나오게 되는 고백은,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나같은 자를 은총과 긍휼로 말미암아 백성이라고 일컬으신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런 고백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내 백성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삶에 자리에서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완성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회복이 완성이 됩니다.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실패의 깊은 구덩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면서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수 윤형주 장로님은 원래 모태신앙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가수활동을 해서 인기 절정에 올랐습니다. 참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마초 흡연 때문에 감옥엘 가게 됐습니다. 그 실패의 구덩이 속에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과 삶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죄만 가득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생활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과 사귀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특권이 있습니다.
신명기6장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유일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 가운데 운영하시는 분은 한 분 여호와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으로부터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철저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일지라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담대하며 오히려 침착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루려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큰일에도 작은일 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의 짐을 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일생을 지켜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올 한해 지금까지도 고비고비 위험과 절망 속에서 지켜주셨고, 앞으로 사랑 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남 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포함한 우주 만물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앞에 무릎을 꾾고 경배해야 합니다.
때로는 장엄하고 우렁찬 승리의 함성으로, 때로는 고요하며 따뜻한 평강의 모습으로 우리곁에 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헝클어지고 거칠어진 나라와 우리들 심령의 황무지에 하나님을 왕으로 영접하여 성령님의 비젼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찾아오십니다.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의 삶이 회복되었을 때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 입에서 나오는 신앙 고백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소망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가 체험의 종교라면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 내 가는 길을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늘 경험합니다. 나의 인생의 등불이 되신 하나님을 매일 체험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생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응답 하십니다.(21-22)
2,긍휼히 여기십니다.(23)
3.내 하나님이라 하십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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