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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영주의 성>
대본 모리스 메테를링크
초연 1907년 5월 10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2011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 / 120분 / 한글자막>
리세우 대극장 오케스트라 연주 / 스테팡 드네브 지휘 / 클라우스 구트 연출
아리안.....................................진-미셸 샤르보넷(소프라노)
푸른 수염.................................호세 반 담(바리톤)
유모........................................파트리차 바르돈
셀리세트......푸른 수염의 전처.....젬마 코마-알라베르트
이그랭느......푸른 수염의 전처.....베아트리스 히메네스
멜리상드......푸른 수염의 전처.....엘레나 코폰스
벨랑제르......푸른 수염의 전처.....살로메 할러
알라디느......푸른 수염의 전처.....알바 발다우라
농부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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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20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오페라 걸작
<마법사의 제자>로 유명한 작곡가인 폴 뒤카스는 오페라 분야에서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와 더불어 20세기 프랑스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아리안느와 푸른 수염>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와 마찬가지로 이 오페라 역시 메테를링크의 희곡에 기초하였다. 샤를르 페로의 유명한 동화를 각색한 메테를링크의 리브레토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아리안느와 자신들의 세계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다섯 여인들의 상반된 이야기를 푸른 수염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보는 2011년 바르셀로나 리세우극장에서의 실황을 담은 것으로, 정상급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의 모던하고도 상징적인 연출과, 미국 소프라노 진-미셸 샤보넷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 호세 반 담의 든든한 중량감, 젊은 마에스트로 스테팡 드네브의 다이내믹한 지휘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폴 뒤카스(1865-1935)는 20세기 전반기 프랑스 음악계를 대표하는 중요 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파리 음악원에서 후일 평생토록 절친한 관계를 맺었던 드뷔시와 함께 에르네스트 기로를 사사했으며, 1888년 모든 프랑스 작곡가들의 염원이었던 로마 대상에 도전했지만 2등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비도르의 후임으로 모교의 교수에 부임하여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제자로는 올리비에 메시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로도 상당한 창작열을 발휘했지만, 자기 비평에 혹독했던 관계로 많은 수의 작품을 스스로 파기했기에 전해지는 작품의 수는 많지 않다. 괴테의 원작을 표제적으로 표현한 <마법사의 제자>, 오페라 <아리안느와 푸른 수염>, 발레 <페리> 등이 유명하다.
3막 구성의 오페라인 <아리안느와 푸른 수염>은 1907년 5월 10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무렵 뒤카스의 선배 작곡가들이었던 포레, 댕디 등은 이 작품을 열렬히 호평하였지만,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와 더불어 20세기 전반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샤를르 페로의 유명한 동화를 각색한 메테를링크의 리브레토를 기초로 하였는데, 1911년에 완성되어 1918년에 초연되었던 버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 영주의 성> 역시 비슷한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아리안느는 수수께끼의 인물인 푸른 수염의 여섯 번째 아내로 발탁되어 자신의 유모와 함께 그의 성에 도착하였다. 푸른 수염은 그녀에게 일곱 개의 열쇠를 맡기면서, 모든 열쇠는 사용해도 좋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열쇠는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아리안느와 유모가 열쇠로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열자 갖가지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금단의 마지막 일곱 번째 문 뒤에서 그들을 기다렸던 것은...
=== 참고 자료 === <2015년 12월 2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사랑의 기억에 갇히는 건 우리 자신
동화 <푸른 수염>과 오페라 <푸른 수염 공작의 성>
1990년 3월 13일 한 아동 심리학자의 자살에 세상이 놀랐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학자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 1903~90)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베텔하임은 빈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나치 수용소에 2년간 감금되어 있다가 석방됐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자폐아 센터를 30년간 이끌었던 아동 심리 치료의 거장이었다.
베텔하임의 죽음 뒤 잇따른 의혹들
충격적이었던 건 그가 선택한 죽음의 방식이었다. 베텔하임은 약을 먹은 뒤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써서 질식을 재촉했다. 6년 전 아내가 타계한 뒤부터 우울증이 악화됐으며 3년 전 뇌졸중을 겪은 뒤로는 집필 활동을 힘겨워했다는 이야기가 그의 사후에 알려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3월 13일은 공교롭게도 독일 나치가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지 52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의 죽음은 ‘베텔하임 신화 붕괴’의 서막(序幕)이었다. 생전부터 조금씩 제기되던 의혹들이 그의 자살을 계기로 봇물 터진 듯 쏟아진 것이었다. 우선은 학위 논란이었다. 그가 빈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주제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예술사였으며, 정신분석학으로는 논문을 쓴 적이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확인 결과는 사실이었지만, 당시 빈에서 예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는 점에서 전공에 무지했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었다.
경력 부풀리기에 대한 의혹도 뒤따랐다. 시카고 대학의 자폐아 전문센터를 이끄는 동안에 완치율을 조작했으며, 나치 수용소 석방 과정에서도 적잖은 과장이 뒤섞였다는 주장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에 수용소에서 풀려났던 그는 일리노어 루스벨트 영부인과 허버트 레만 뉴욕 주지사 등이 자신의 구명에 앞장섰다고 말해왔다. 빈에 거주할 당시 프로이트와 만난 적이 있다거나 반나치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는 베텔하임의 주장도 진위 여부가 불분명했다. 자신의 삶을 과장하는 수준을 넘어 고질적인 허언증(虛言症) 환자라는 비판도 나왔다.
쏟아진 의혹 가운데 결정적인 건, 자폐아를 학대하거나 구타했다는 증언이었다. 이 센터에 입원했던 일부 환자들은 그가 상습적 체벌과 폭언을 일삼았던 폭군이었다고 폭로했다. 그의 이름에 빗대 ‘난폭한 하임(Brutalheim)’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도 했다. 평소 “따스한 보살핌과 존중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라는 치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의 지론에 비추어 볼 때, 도무지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환자들의 감정적 보복인지, 정당한 폭로인지는 불확실했지만 아동심리학의 ‘성인 반열’에 올랐던 베텔하임의 명성에 금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옛이야기의 매력』, 동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아동 심리학 분야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서를 펴냈던 그의 대표작이 1976년 저서인 『옛이야기의 매력(The Uses of Enchantment)』이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에는 오락적 기능이나 교훈 이외에도 다양한 상징이 숨어 있으며, 옛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정신적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는다는 주장이었다.
저자는 옛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언뜻 당혹스럽게 보이는 일상의 문제나 사건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용기를 얻는다고 보았다.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별도의 이름 없이 왕과 왕비,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것도 실은 아이들의 동일시를 돕기 위한 장치다. 왕자와 공주가 소년과 소녀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왕과 왕비는 부모의 문학적 변장인 것이다. 착한 요정은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이요, 나쁜 마녀는 파괴적 욕망, 모험 중에 만난 현인(賢人)은 내적 양심, 적의 눈을 빼먹는 맹수는 질투의 노여움으로 해석됐다.
옛이야기라는 ‘지표(地表)’에 정신분석학이라는 ‘탐침(探針)’을 찔러서 무의식의 거대한 ‘지층(地層)’을 드러낸 점이야말로 베텔하임의 공헌이었다. 어린이용 오락물 정도로 치부됐던 동화는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물 창고’로 한층 지위가 격상됐다. 이 책에서 베텔하임이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작가가 독일의 그림 형제(Brüder Grimm)와 프랑스의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였다.
페로는 『빨간 두건』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작품으로 ‘현대 동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하지만 태양왕 루이 14세 당대에는 궁정 관료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법학을 전공한 페로는 1654년부터 형과 함께 세금 징수관으로 일했다.
1663년부터 20년간은 중상주의를 주창했던 재무장관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의 비서로 재직했다.
페로가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1683년 콜베르의 사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였다. 그는 프랑스 사교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옛이야기들을 바탕으로 1697년 『교훈이 담긴 옛이야기 또는 콩트(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를 출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9세였다.
이 책의 출간은 구비 문학에 머물러 있던 동화가 기록 문학의 영역으로 진입한 계기로 꼽힌다. 낭만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19세기에는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의 오페라 [신데렐라]와 차이콥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페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음악 작품이 쏟아졌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페로의 동화가 크리스마스와 연말 어린이용 선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푸른 수염』의 금기, 위반과 불행으로 이어지다
페로의 동화집에 실린 『푸른 수염(Barbe-Bleue)』은 여러 명의 아내를 살해한 연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푸른 수염』은 갓 결혼한 아내에게 중요한 용무 때문에 지방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면서 성의 모든 출입문을 열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건넨다. 그는 한 가지 단서를 붙인다. 성의 모든 방에 들어가도 좋지만, 아래층 복도 끝의 방에는 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결혼한 아내들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이야기 속의 금지는 위반과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웃집 여성과 친구들이 성을 찾아와 둘러보는 동안, 신부는 출입이 금지된 방을 열어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방문을 열자 바닥은 피범벅이고, 벽에는 이전 부인들의 시신이 매달려있다. 그날 밤 성으로 돌아온 푸른 수염은 아내를 추궁한 끝에 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근위기병인 신부의 오빠들이 달려와 푸른 수염을 죽이고 여동생을 구한다.
이 이야기는 15세기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아동 살인마였던 질드레 남작(Gilles de rais, 1405~40)의 실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작은 100년 전쟁 당시 잔다르크와 함께 프랑스의 편에서 싸웠던 것으로 명망 높았지만, 악령 숭배와 남색에 빠져 수백 명의 아이를 성폭행한 뒤 살해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1440년 그는 성직자 납치 사건으로 종교 재판에 회부된 끝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화형 당했다. 그는 근대적 연쇄 살인마의 시초로 꼽히지만, 중세 마녀사냥의 무고한 희생양이었다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전통적으로 『푸른 수염』은 물질적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정략결혼이나 여성의 지나친 호기심에 대한 경계로 해석됐다. 이 이야기를 배우자의 성적(性的) 부정에 대한 의심과 집착으로 재해석한 학자 역시 베텔하임이었다. 남편의 부재와 이웃의 방문은 성적 일탈의 전제 조건이요, 잠긴 방을 여는 열쇠와 피로 흥건한 바닥은 각각 남성의 성기와 성행위의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야만의 세계 그 자체인 현실
하지만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nton, 1939~)은 자신의 저서 『고양이 대학살』에서 베텔하임의 정신 분석학적 해석에 대해 통렬한 공박을 가했다. “베텔하임은 옛이야기를 해피엔딩을 지닌 어린이용 작품에 불과하며 어느 시대에나 적용 가능한 것으로 오독(誤讀) 했다”라는 것이 단턴의 주장이었다. 옛이야기도 수 세기에 걸쳐 변화를 거듭했다는 단턴의 역사주의적 관점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수를 도외시한 채 정태적(靜態的) 분석에 머물러 있던 정신 분석학적 해석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단턴이 옛이야기에서 특히 주목했던 점은 폭력성이었다. 제 딸과 결혼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그릇된 욕망을 그린 『당나귀 가죽』, 굶주림에 지친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유기하는 『엄지 동자』처럼 우화는 강간과 근친상간, 식인과 기아(棄兒)로 넘치고 있었다. 어린이 교육용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야만의 세계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페로가 책을 발간한 17세기 후반 프랑스는 흑사병과 흉작, 기근이 겹치는 바람에 사상 최악의 인구 감소 위기를 겪었다. 길에 버린 썩은 고기를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 먹었고, 부모들이 구걸과 도둑질을 하라고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보내던 시절이었다. 양치기와 행상, 막노동꾼으로 떠돌던 민초들은 치안 부재 탓에 도처에서 살인범이나 도적들과 마주쳤다. 식인귀와 마녀는 정신분석학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마주치는 일상적 위협이었다. 단턴은 “이야기는 세상 살아가는 길의 지도를 그렸던 것이고, 잔인한 사회 질서 속에서 잔인한 것 이상을 기대하는 일의 어리석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재정의했다.
유디트와 푸른 수염의 노래로 이뤄진 단순한 오페라
헝가리의 작곡가 벨라 버르토크(Béla Bartók, 1881~1945)가 시인이자 극작가 벨라 벌라주(Bela Balazs, 1884~1949)에게서 오페라 『푸른 수염 공작의 성(The Blue-Bearded Duke's Castle)』의 대본을 건네받은 건 1910년이었다. 벌라주는 당초 작곡가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1882~1967)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지만, 막상 두 작곡가 앞에서 대본을 낭독했을 때 더 큰 관심을 나타낸 쪽은 버르토크였다. 버르토크는 1912년 신작 오페라를 공모하는 콩쿠르에 이 작품을 출품했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행동이 정적(靜的)이고 극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15년 작곡가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생전에 이 곡을 듣지는 못 할 것 같소”라고 썼다.
한 시간 안팎의 단막 오페라인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은 푸른 수염과 아내 유디트 두 명이 전부다. 이전 부인들은 대사 없이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무대 전환도 없는데다, 별다른 사건이나 행동도 없이 단둘의 노래로만 흘러간다. 콩쿠르 심사위원단이 밝혔던 낙선 사유는 사실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콩쿠르 탈락 이후 잊혀져 있던 이 오페라는 1917년 작곡가의 발레 [허수아비 왕자]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듬해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에서 비로소 빛을 보았다.
자신을 가둔 자의 고독한 내면
오페라는 페로의 원작과 얼핏 닮은 듯했지만, 실은 중대한 차이를 내포하고 있었다. 원작에 등장한 금기의 문은 하나였다. 하지만 오페라에서 문은 일곱 개로 늘어났다. 푸른 수염 공작도 성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아내 유디트의 곁에서 직접 성을 보여주면서 문을 열지 말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호기심에 사로잡힌 아내가 이 문들을 열자 고문실과 무기고, 보물창고와 화원(花園), 광대한 영지(領地)와 ‘눈물의 호수’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각각의 단계는 유디트가 남편의 내면으로 서서히 침잠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었다.
공작의 신신당부에도 아내는 마지막 일곱 번째 문마저 열고 만다. 화려한 복장에 왕관을 쓴 이전 아내 세 명이 창백한 안색으로 그 안에서 걸어 나온다. 이들은 새벽과 한낮, 황혼을 각각 상징한다. 푸른 수염은 유디트를 ‘별이 빛나는 한밤’으로 명명하고 그녀는 스스로 이전의 아내들과 함께 갇히는 길을 택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페로의 원작과 달리, 부인 유디트가 자발적으로 유폐를 택한다는 오페라의 결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했다. 이들 여인은 흡사 남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옛사랑과도 같았다. “사랑이란 남녀의 삶에 상처를 남기는 고독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말처럼 말이다. 오페라의 제목인 ‘푸른 수염 공작의 성(城)’은 사랑을 잃은 남자의 고독한 내면이며, 어쩌면 그 안에 유폐된 건 부인들이 아니라 ‘푸른 수염’ 자신인지도 몰랐다. 사랑을 잃고서 영원히 괴로워하는 우리들 자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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