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자의 말 한마디, 나라의 품격 - 좋은 말, 포악한 말, 사악한 말
“왕이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좋은 말로 대답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열왕기상 12:7)
말은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성경은 말이 곧 생명이라고 선언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있다"(잠 18:21)
한마디 말이 사람을 살리고, 또 한마디 말이 관계를 무너뜨린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역사를 움직이고, 나라의 운명을 갈라 놓는다.
열왕기상 12장은 그 대표적인 장면이다.
르호보암은 새 왕으로 즉위하자 백성의 호소를 받았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으니, 이제 그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이는 세금과 부역, 그리고 억눌린 정치 제도에 대한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때 원로들은 조언했다. “왕이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좋은 말로 대답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젊은 자들의 조언을 따랐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자문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젖소가 마시면 생명을 살리는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어 뿜어내듯, 자문하는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이 곧 결과를 바꾼다.
주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많으냐,
아니면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를 신봉하며 세속적 가치에 젖은 이들이 많으냐에 따라
지도자의 판단은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간다.
르호보암은 경륜 있는 원로들의 말을 버리고, 자기 세대의 권력 감각과 젊은 오만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는 선언했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그 한마디 포악한 말이 나라를 두 동강 냈다.
1. 좋은 말 : 하나님 마음을 담은 언어
‘좋은 말’은 단순히 부드러운 말이 아니다. ‘토브’는 ‘하나님의 선함’을 뜻하고, ‘다바르’는 ‘말, 선언, 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좋은 말’이란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담긴 말, 즉 생명을 세우고 관계를 살리는 언어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먼저 듣는다. 그는 말하기 전에 기도하며, 감정보다 진리를 우선한다.
그의 말에는 힘보다 은혜가 있고, 논쟁보다 공감이 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일으키느니라"(잠언 15:1)
좋은 말은 사람을 설득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다.
이런 사람의 언어는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고, 온유하지만 진리로 가득하다.
2. 포악한 말: 불안이 낳은 교만의 언어
르호보암의 말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지도자의 불안 속에서 권위를 증명하려 했다.
내면의 불안은 곧 교만의 언어로 드러났다.
“전갈로 징계하겠다”는 말은 백성을 통제하고 겁주는 통치의 철학이었다.
포악한 말은 언제나 통제 욕구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흔들릴까 두려워, 강한 어조와 거친 표현으로 자신을 세운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잠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라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잃게 만든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언 16:32)
포악한 사람은 힘으로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지만, 진정한 리더는 말로가 아닌 마음으로 통치한다.
포악한 말은 일시적 복종을 얻지만, 좋은 말은 영원한 신뢰를 세운다.
포악한 말은 또 공감이 사라진 언어이다.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고, 말의 목적이 위로가 아닌 지배이다.
그는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의 방식이 폭력적이다.
‘옳은 말’이 ‘좋은 말’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감이 빠진 진리는 칼처럼 예리하고, 사랑이 빠진 교훈은 독처럼 쓰다.
3. 사악한 말: 하나님을 대적하는 언어
포악한 말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이라면, 사악한 말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언어이다.
히브리어 라아(רָע)는 ‘하나님의 선함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사악한 말은 진리를 교묘히 왜곡하고, 불신을 심으며,
결국 하나님 중심이 아닌 욕망 중심의 언어로 변질된다.
“그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고, 혀 밑에는 해악과 악독이 있나이다"(시편 10:7)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한 언어가 바로 사악한 말이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창세기 3:1)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이 섞인 그 말은 결국 인류의 불순종을 낳았다.
사악한 말은 단순한 험담이나 욕설이 아니라, 진리를 교란시키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다.
4. 결론: 지도자의 말 한마디, 나라의 품격
오늘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면, ‘르호보암의 언어’가 얼마나 익숙한지 놀랍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흔들고, 국회의원의 거친 언사가 국정감사장의 품격을 무너뜨린다.
법사위와 과방위의 회의장에서 오가는 말들은 더 이상 국민의 삶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상대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포악한 언어 전쟁으로 변해버렸다.
권력의 언어가 거칠어질수록, 사회의 도덕은 메말라 간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품격 없는 비판은 폭력이다.
견제를 하되 모욕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하되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의 교양이다.
“왕의 혀에는 생사(生死)의 권세가 있다"(잠언 18:21)
말은 곧 권력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권력을 통해 나라를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말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다.
지도자의 언어가 진리와 겸손을 잃을 때, 나라는 분열로 향하고, 공동체는 상처 받는다.
교회와 가정, 사회 모두 마찬가지다.
목회자의 말, 부모의 말, 교사의 말, 정치인의 말이 모두 누군가의 마음을 세우거나 무너뜨린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세상의 언어가 아닌 복음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5. 마무리
오늘 우리의 입술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좋은 말은 하나님을 닮은 말이고, 포악한 말은 불안의 언어이며, 사악한 말은 하나님을 잊은 언어다.
“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로새서 4:6)
-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191] / 말 한 마디가 세운다 -
▲최원호 박사(Ph.D)
심리학자·칼럼니스트
심리학 박사로 서울 한영신대와 고려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
- 크리스천투데이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