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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의 제목이 아내가 결혼했다입니다.
김현욱의 동명 소설 제목을 따온 듯합니다. 손예진, 김주혁이 주연인 영화로도 제작되었었지요.
(참고로 김현욱님은 열혈 탁구 동호인입니다.)
테무진to the칸(7) 아내가 결혼했다
은혜도 빚이지만, 원한도 빚이다. 초원에서 복수는 습격과 약탈의 좋은 핑계다. 예수게이는 메르키트족에 시집가던 헐룬을 납치해 테무진을 낳았다. 그런 메르키트족의 귀에 테무진이 신혼생활을 한다는 뉴스가 들어갔다.
"예수게이의 아들놈이 색시랑 재밌게 살고 있다며?"
"허허… 나 참 어이가 없네, 씨바."
그래선 안 되었다. 불한당(예수게이 일당)에게 납치된 채 멀어져가는 연인을 처절하게 바라보던 칠레두의 모습은 1편(클릭)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부족의 일원에게 그런 슬픔을, 부족 전체한테는 치욕을 안겨준 놈… 그놈이 저지른 범죄행위의 결과물인 자식놈한테, 왕년의 헐룬만큼이나 예쁜 색시가 있다 이거지.
메르키트족은 주저할 것 없이 복수를 결심한다. 테무진이 옹 칸의 후원을 받든 말든 상관없었다. 메르키트족도 커레이트족 못지 않게 강성했다. 남의 눈치 안 봐도 될 만큼의 실력은 있었다.
메르키트족은 세 개의 대형 씨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이 세 씨족명과 인명에 한해 유원수 역주본의 <몽골비사>의 발음과 표기법을 따르도록 함.).
1)오도이드 메르키트
'톡토아 베키'라는 인물이 씨족장을 하고 있었다. '베키'란 이름이 아니라 칭호다. 말 그대로는 흰 옷, 즉 풀어 설명하면 '흰 옷을 입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을 뜻한다. 조상 잘 만난 전통의 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도 이 '베키'란 칭호가 붙은 인물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2)오와스 메르키트
'다이르 오손'이라는 인물이 씨족장이었다.
3)카아드 메르키트
'카아타이 다르말라'가 씨족장이었다.
이들 세 씨족장들은 다른 원시적인 부족(혹은 씨족) 연맹체처럼 서로 권력을 나누어 함께 부족을 이끌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칸을 맡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그중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을 꼽자면, 톡토아 베키였다.
세 씨족장은 복수를 결의했다. 메르키트족 병사들이 테무진 가족이 야영을 하고 있던 케를렌 강 최상류를 향해 출동했다.
새벽녘이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 테무진 집안에서 일하고 있던 '코아그친' 노파도 마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미세하게 땅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몽골사람들은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해있다. 인구밀도(뿐만 아니라 '동물밀도'도)가 적고 사방이 뻥 뚫린 초원의 사람들은 시력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촉각도 먼 곳의 상황을 느끼는 데 특화되어 있다.
코아그친이 감각을 집중해보니, 말발굽 소리였다. 말을 탄 무리가 게르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직 날도 밝기 전이었다. 습격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헐룬을 깨웠다.
"마님! 빨리 일어나요!"
"아… 무슨 일이죠?"
"땅이 흔들리고 말발굽 소리가 들려요. 타이치우드 놈들인 것 같아요!"
테무진 가족은 타이치우드족에 한 번 크게 당한 적이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했을 법도 하다. 헐룬은 재빨리 일어나 식구들을 깨웠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게르와 살림살이 따위 챙길 여유도 없었다. 어서 말을 타고 튀어야 한다. 그런데 씨바, 어찌나 가난한지 말이 부족했다!
당시 테무진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의 구성원을 세 보자 : 1)어머니 헐룬 2)테무진 본인 3)남동생 카사르 4)남동생 카쥰 5)남동생 테무게 6)막내여동생 테물린 7)계모 소치겔 8)배다른 동생 벨구테이 9)아내 보르테 10)동료 보르추 11)젤메 12)코아그친
이렇게 딱 12명이 있었다. 그런데 옛날처럼 말은 9마리가 전부였다. 잃어버린 말 8마리를 찾자고 보르추와 모험을 했던 테무진(한 마리는 그가 타고 있었다.). 그새 말 한 마리도 추가로 못 번 거다. 보르추가 집을 떠나올 때 타고 온 말까지 합치면, 오히려 한 마리가 준 셈이다.
헐룬과 테무진은 누구를 버려야 할 지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 결국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이런 위급상황에서는 '전투력'을 보존하는 게 초원의 상식이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빼앗긴 것을 다시 찾으려면 일단 최대한 많은 전력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 남자가 말을 차지해야 했다. 여자들을 지키려고 했다간 모두 죽고, 그러면 키야트 혈족은 멸망한다.
물론 헐룬은 예외다. 그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고(최소한 테무진과 공동가장 노릇을 한 게 분명하다.), 테무진의 입장에서도 가장 소중한 여자였다. 보르테를 아무리 사랑한들, 그 고생을 하며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에 비할 수는 없었다. 헐룬은 자기가 탄 말에 체중이 덜 나가는 막내딸 테물린도 옵션으로 앉혔다.
보르테, 코아그친, 소치겔은 훗날을 기약하며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족이 아닌 보르추와 원칙상 집안의 노예인 젤메는 말을 탔다. 남은 말 한 마리는 예비마로 끌고갔다.
말을 탄 일행은 가장 가까운 산인 부르칸 칼둔으로 도망갔다. 평지에서 추격전을 벌이면, 예비마가 부족한 쪽이 불리하니까. 한편, 남은 사람들 중에는 소치겔이 가장 먼저 붙잡혔다. 보르테와 단 둘이 남은 코아그친은 머리를 써서, 보르테를 검은 수레에 태워 숨겼다. 보르테가 시집올 때 타고 온 수레다. 신부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은 동서고금에 흔한 관습. 수레는 내부가 밀폐되어 있었다.
코아그친은 테무진이 타이치우드 족 야영지에서 탈출한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려고 했다. 그녀는 소가 수레를 끌게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소를 몰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연기를 했다. 이윽고 메르키트 병사들이 다가와 코아그친을 둘러쌌다.
"테무진은 어디 있는가? 그놈의 집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어이구 나는 양털을 깎아갖고 오는 길인디… 테무진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나는 다른 게르에서 나오는 길이라갖고 뭐 아는게 없으… 에고 허리야…"
연기가 먹혔다. 병사들이 떠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위험했다. 코아그친은 빨리 도망가려고 소를 마구 채찍질했다. 그런데, 소가 빨리 움직이자 수레의 바퀴축이 뚝 하고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사실 초원 사람들이 제조한 물건은 무척이나 조잡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필 이럴 때 망가지다니…
코아그친과 보르테는 급한 대로 작전을 짰다.
"수레에서 내려서, 둘이 손 잡고 가능한 한 빨리 숲으로 뛰어들어가 숨자!"
하지만 메르키트 병사들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저기 아까 그 노인네 말야. 왜 새벽에 잠 안자고 양털을 옮기고 있지?"
"그리고 아까 그 수레, 결혼할 때 신부가 타는 수레 아닌가? 그걸로 양털을 옮기기도 하나?"
"…"
"…"
"야! 그 할멈 다시 잡아!"
하필 보르테가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에 다시 병사들이 몰려왔다.
"이 수레 안에 뭘 실었다구?"
"양털을 실었대니껜…"
고참 병사 하나가 쫄다구에게 명령했다.
"야, 너 내려서 저 수레 함 열어봐."
수레 문을 여니 양털은 웬걸. 보르테가 앉아있었다. 결국 코아그친과 보르테도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테무진을 잡을 차례였다.
메르키트 병사들은 말발굽에 풀이 밟힌 자국을 따라 테무진 일행을 추격했다. 테무진은 꼬리를 밟힌 모양이지만,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며" 잘도 병사들을 피해다녔다. 부르칼 칼둔의 빽빽한 수풀 덕분이었다. 일행은 적을 피해 더 깊은 안쪽으로 숨어들어갔다.
메르키트 전사들은 힘들게 추격전을 벌이느니, 그냥 산을 포위해서 편안하게 테무진을 잡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기어 나와야 하니까, 그때 잡으면 된다. 메르키트 전사들은 부르칸 칼둔을 무려 3중으로 에워쌌다. 산 하나를 3중으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출동했는지 알 수 있다. 단단히 벼른 거다.
그러나 참는 거야말로 테무진의 장기였다. 테무진 일행은 산 속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결국엔 메르키트 병사들이 먼저 지치고 말았다.
"저기 근데 우리는 여자를 뺏긴 걸 복수하려고 온 거잖아. 이미 복수는 다 했는데…"
"그래… 이만하면 됐지. 솔직히 테무진이란 놈, 죽이지 않아도 별 문제 없는 놈이잖아?"
"그치? 이만 접고 집에 가자."
메르키트족 전사들이 떠났다. 하지만 테무진은 섣불리 산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자기를 유인하려는 술책인지, 또다른 매복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와 젤메, <사서 고생>의 권위자인 부잣집 아들 보르추를 보내 메르키트 전사들을 추적하게 했다. 세 사람은 며칠 동안 소리없이 적들을 쫓아가며 관찰했다.
동료들이 돌아와 적들이 완전히 떠나갔다고 하자, 테무진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약탈자들의 먹잇감으로 남겨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을 때렸다. 그는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코아그친 할머니는 잠귀가 밝아서 우리 모두를 살렸는데, 나는 혼자 살겠다고 그분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그러면서 테무진은 자신을 벌레에 비유한다.
"… 이 벼룩같은 목숨을 건지자고 혼자 도망쳤다 … 신성한 부르칸 칼둔에게 이 귀뚜라미같은 목숨을 보호받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비겁함을 솔직히 인정했다. 더 훌륭한 건 코아그친에 대한 태도다. 코아그친은 하인인데다 오갈 데 없는 노파였지만, 테무진의 태도엔 계급적인 면이 전혀 없다. 코아그친은 그를 살렸고, 그는 코아그친을 버렸다. 그게 전부다. 테무진 자신의 기준에 따르면, 그는 부끄럽고 죄 지은 인간이었다.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에 두려움을 느낀다. 몽골인들은 원래 산을 신성시하는데다가, 부르칸 칼둔은 산 중에서도 비범한 산에 속했다. 타이치우드 족을 피해 테르구네 산에 숨었을 때는 결국 붙잡혔다. 하지만 부르칸 칼둔에 숨었을 때는 괜찮았다. 자신을 보호해 준 산이다. 이토록 고맙고 신성한 산은 분명 코아그친을 버린 자신의 비겁함을 똑똑히 목격했을 것이다.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과 코아그친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또한 용서를 빌기 위해 몽골의 전통 무속신앙에서 예(禮)를 올리는 행동을 한다. 그는 허리띠를 풀고 모자를 벗었다. 허리띠는 씨름선수의 샅바처럼, 남자의 힘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또 몽골인들은 모자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허리띠와 모자를 벗어 자신을 낮춘 테무진은 태양이 있는 방향으로 아홉 번 절을 하고, 하늘을 향해 가축의 젖을 뿌렸다.
이후 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을 자신의 토템이자 수호신으로 섬긴다.
메르키트족의 야영지로 끌려간 보르테의 운명은 뻔했다. 헐룬이 약탈혼(여성을 약탈해 아내로 삼는 결혼)을 당했으니, 이번엔 보르테가 약탈혼을 당할 차례였다. 원칙대로라면 헐룬을 빼앗겼던 칠레두가 보르테를 차지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보르테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낳은 아들의 아내>다. 그게 어색해서였을까. 보르테는 칠레두의 동생인 '칠게르'에게 넘겨졌다(어쩌면 칠레두가 어떤 일로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칠게르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아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르테는 첩의 신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칠게르의 이름 뒤에는 '장사'라는 별칭이 붙는다. 힘센 씨름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몽골의 씨름선수
이 상황에서 보르테는 테무진과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칠게르에게 겁탈당했다. 테무진도 애는 아니었다. 보르테가 어떻게 될 지 모를리가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렇게 메르키트족의 야영지에 살게 된 보르테…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삶이 처참히 부서진 테무진은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과연 어떤 종류의 괴로움이었을까.
많은 작가들은, 테무진이 정복한 땅의 넓이만큼이나 그를 마초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도 마초적으로 접근한다. 아내를 빼앗긴 남자의 굴욕. 이 수치를 되갚기 위해 역시 남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와신상담을 하는 영웅의 모습 등등.
하지만 남아있는 사료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결론은 확실해진다. 테무진은 그저 아내인 보르테를 사랑했기 때문에 괴로워했다. 단지 아내가 '필요'했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초원사회는 엉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자 몇 명이서 힘을 합치면 여자 하나쯤 약탈하는 짓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테무진과 보르테는 각각 아홉 살과 열 살 때 평생 함께하기를 약속한 사람이었다. 결혼적령기가 지날 때까지 자신을 기다려주었으며, 가난하고 초라한 남자에게 기꺼이 시집을 와주었다. 기나긴 고통 끝에 마침내 사람답게 사는 행복을 준 사람이었다. 테무진은 오직 보르테를 원했다.
관련서적과 자료를 읽다보면, 테무진의 일생에 관한 수많은 논란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놀랄 정도로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메르키트족의 습격이 테무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보르테를 되찾는 과정에서 군사지도자가 되고, 결국 가공할 정복자가 된다. 메르키트족은 세계사에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초원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자 초원과 중국, 고려,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에 사상 초유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메르키트족뿐만 아니라 테무진 자신도 보르테 납치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보르테를 되찾기로 결심했을 때엔 말이다.
메르키트족_니네가_한_짓을_봐.GIF
(몽골제국 확장도)
outro
테무진의 일생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즉 테무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들은 아직은, 결코 <인류의 유산>이나 공짜 소스가 아니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현재 살아있는 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작업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참고문헌을 기재하고 필요한 항목마다 각주(혹은 미주)를 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당연한 양심이다. 그런데 재미와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이 작업을 방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 거다. 그러잖아도 참고문헌을 소개해달라는 독자분의 메일도 받았다. 당연한 요구다.
각주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타르쿠타이가 이런 대사를 치는 내용을 썼었다.
"아쭈, 이 새끼들이 다 자랐군?* 제 형도 죽이고 말야…"
여기에 이런 각주를 붙여야 마땅하다.
* <몽골비사>에는 이런 대사들이 시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원래의 문장은 이렇다. : "병아리들이 털을 갈았다 / 두 살바기 양들이 질금거린다"(유원수 역, 사계절 출판사, 2008, 3쇄)
이 문장은 '다 자랐다'라는 뜻의 중세 몽골어 관용어구다.
1. 털을 갈았다는 것은 성체의 깃털과 색을 지니기 시작했다는 뜻. 2. 양은 생후 2년부터 발정을 시작하며, 생후 2~3년이 처음 새끼를 갖는 연령이다. 따라서 질금거린다는 표현은 발정에 의한 성기의 분비물을 뜻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해서 어떤 해석을 거쳐서, 무슨 근거로 대사 속의 일상어문이 가능해지는지를 하나하나 밝혀주어야 한다. 물론 "아 씨바…"나 "흐미", "헐…" 이런 거에 해당하는 사료의 문장은 당연히 없다. 이런 표현들은 당시 실존인물들의 기분과 입장 등을 고려하여 넣은 양념들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내용이 포함된 모든 문장들은 모두 사료에 근거하고 있고, 내용을 뺐으면 뺐지 추가한 적은 없다. 자의적으로 추가하면 오류가 되기 때문이다. 자의적으로 추가하는 표현들은 모두 특정한 내용이 없어야 한다. : 이를 테면 "씨바", "아놔…" 같은 것들.
각주까지는 당장 불가능하지만, 시리즈가 더 이상 계속되기 전에 참고문헌 정도는 정리해주는 게 예의라고 본다.
1차 : (문헌을 포함한) 사료
- <몽골비사> 유원수 역주, 사계절, 2008
- (몽골비사의 또다른 역주본, 영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Urgene Onon 역주, Cambridge Univ, 1987
- (몽골비사의 또다른 역주본, 영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A Mongolian Epic Chronicle of the Thirteenth Century, Igor de Rachewiltz, Igor de Rachewiltz 역주, Brill Academic Pub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칭기스칸기'>,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라시드 앗 딘, <집사 중 '부족지'>, 김호동 역주, 사계절, 2003
- William of Rubruck, Mission of Friar William of Rubruck: His Journey to the Court of the Great Khan Monke 1253-1255, Peter Jackson 역, David Morgan 주해, Hackett Pub Co Inc, 2009
-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김호동 역해, 사계절, 2000
익명의 저자가 쓴 몽골비사는, 어쩌면 칭기스칸의 아들이자 2대 대칸인 우구데이가 썼을 수도 있다. 물론 '어쩌면'이다. 이 역사서는 매우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행간을 파악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몽골비사는 누구의 역주본으로 읽을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 김호동 교수님과 함께 몽골 및 중앙아시아 역사/문화에 가장 정통한
우르게네 오논은 몽골인이다. 이분은 본문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각주를 집필했는데,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Igor de Rachewiltz는 <몽골비사>학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학자다. 세 대학자의 각주를 비교분석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 줄 모르겠다.
라시드 앗 딘은 인류 최초의 <세계사>를 쓴 인물. 저 위에 소개된 세 책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만, 같은 인물과 시대상, 배경이 계속 중언부언되고 있다. 다른 내용도 자주 등장하는데, 한 인물이 쓴 것이므로 서로 모순된다기보다는 상호보완관계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라시드 앗 딘은 당시 세계 최고의 지식인답게 연도, 상황설명 등 자료와 근거가 매우 자세하고 엄밀하다. 다만… 중동에 살던 이슬람교도였던 그는 테무진에 대해 몇 가지 왜곡을 저질렀다. <여자들에게 얼마나 권위적인 남자였는지>, <얼마나 엄하게(가혹하게) 패배자를 다스리는 위대한 군주였는지>를 쓸데없이 꾸며서 설명하고 있다. 테무진은 그런 마초가 아니었다. 심지어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이 자무카에게 당한 두 번의 패배도 왜곡하고 있다. 하나는 아예 안 썼고, 하나는 테무진이 이긴 걸로 고쳐 썼다. 아마 정복자의 후손들 눈치를 봤거나, 아니면 정복자에 대한 예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몽골비사에서 알 수 있듯, 정작 몽골인들은 테무진의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라시드 앗 딘은 확실히 좀 오바한 것 같다.
루브룩은 13세기에 몽골을 방문한 기독교 사제인데, 당시 몽골 사회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편견 없는 내용을 기록한 지식인이다. 그의 엄밀한 통찰과 객관적 시각은 "통일몽골"을 이해하는 데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다. 갓 블레스 윌리엄!
마르코 폴로는 오랫동안 뻥쟁이로 오해되어 온 인물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다시 인정받기 시작됐지만, 뻥쟁이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동방견문록>엔 뻥도 있으나, 이 뻥은 그가 꾸며낸 뻥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뻥이다. 그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다. 동방견문록 자체가 그의 작업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책 자체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2차 : 문헌 I
- 헨리 율/앙리 꼬르디에, <중국으로 가는 길(Cathey and the Way Thither)>, 정수일 역주, 사계절, 2002
- 라츠네프스키, <칭기스칸>, 김호동 역, 지식산업사, 1992
-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역, 사계절, 2010
- 잭 웨더포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정영목 역, 사계절, 2004
- Weatherford, Jack(위의 '잭 웨더포드'와 동일인),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 How the Daughters of Genghis Khan Rescued His Empire, Hackett Pub Co Inc, 2009
- 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2010
- Timoty May, The Art of Mongol Warfare : Chinggis Khan and the Mongol Military System, Westholme Publishing, 2007
- Stephen Tumbull/Wayne Reynolds, Mongol Warrior 1200-1350, Osprey Publishing, 2003
- 장폴 루,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 : 정복과 관용의 두 얼굴>, 김소라 역, 시공사, 2008
<중국으로 가는 길>은 중국학의 전범이자, 최초의 문명교류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업물이다. 헨리 율이 쓰고, 헨리 율 사후에 앙리 꼬르디에가 각주를 달았다. 여기에 한국어판 역자인 정수일 교수가 방대한 미주를 달아 완성했다. 한국 독자들은 1세기 이상을 관통하는, 장장 세 명의 대학자가 참여한 위대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라츠네프스키는 현재의 <칭기스칸>학의 주도자 중 하나이다. 반면 르네 그루쎄는 말하자면 구조주의적인 작업을 하는 학자로서, 몽골을 포함한 기마민족들의 역사를 하나의 패턴과 맥락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루쎄의 작업물은 다소 오류가 있지만, 통찰력과 시야는 가장 인정받는다.
한편 잭 웨더포드는 테무진 해석에 있어 가장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는 학자이며, 가장 급진적이다.
김호동 교수님은 보다 조감하여, 몽골제국의 의의와 영향력을 세계를 기준으로,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티모시 메이의 작품과 그 밑의 책은 몽골군의 전술에 관한 책이다. 참고로 티모시 메이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모르고 비싼 돈 주고 영문본을 샀다. 값도 비싸고 읽기도 어렵고… 번역서들, 제발 원제 좀 그대로 가져다 쓰자. 한국어판 제목인 <칭기스칸의 세계화 전략>은 뭔가… 딱 2류 자기계발서처럼 보인다. 참고로 본인이 판단하건데 이 책엔 오류가 많은 편이다.
3차 : 문헌 II
-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2001
-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 고대 ~ 1600>, 신성곤 역, 까치, 2006
- 정수일, <씰크로드학>, 창작과비평사, 2005
- 사세이키, <유럽중심사관에 도전한다>, 손승철 외 역, 지성의 샘, 1997
- 앤 팔루던, <중국 황제>, 이동진/윤미경 역, 갑인공방, 2004
- 조르주 뒤비, <지도로 보는 세계사>, 채인택 역, 생각의 나무, 2010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박규태 역주, 한겨레출판사, 2003
- 대구 MBC, <몽골>, 이른아침, 2008
- 체렌소드놈, <몽골의 민간신화>, 이평래 역, 대원사, 2001
- 김호동,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까치, 2002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송영조 역, 책세상, 2009
- 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이효숙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5
정수일 교수님은 진리다. 깐수 만쉐이!
대만계 일본인인 사세이키의 저 책은 학부 교양과목 교재로 인기가 높다. 사세이키는 유럽중심사관에도 반대하지만, '정주문명중심사관'에도 반대한다. 유목제국들이 발생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진리다. 프레이저 만세! 민속학 만세!
몽골 학자인 체렌소드놈, 이분은 곧 한국 방문해서 세미나를 가질 예정인데 함 찾아가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유원수, 김호동, 정수일 세 학자분들께 큰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4차 : 위키피디아(http://www.wikipedia.org))
집단지성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위키피디아가 없었다면 본 기자는 결코 <테무진to the칸> 시리즈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지 항목을 모두 기재하는 게 원칙에 맞겠으나, 그게 백 개가 넘는다는 게 문제. 그래서 생략한다. 언제 딴지가 그렇게 정도를 따졌다구…
참고로 위에 소개한 저자들 중에 잭 웨더포드가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테무진과 몽골 관련 항목을 가장 열성적으로 채우는 것 같다. 물론 순전히 본인의 예상에 불과하다.
5차 : 미참고 문헌 – 1차 사료에 국한함
참고해야 함이 마땅하나, 부끄럽게도 본 기자의 태만과 실력부족으로 아직 접하고 있지 못한 1차 사료 문헌들은 다음과 같다. 참고한 지식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미참고 문헌도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원사(元史)>
중국의 24대 정사(正史)에 포함된 공식 역사서이다.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고려사가 정리된 것처럼, 새로운 왕조는 언제나 이전의 역사를 갈무리하려 한다. 이 책은 명나라 개국 초기에 조정에서 추진하고 주자학자이자 관리인 '송연(宋濂)'이 감수하여 편찬한 책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원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 그래서 오류가 많지만,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기록의 전문가들이다.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많다고 한다. 아직 유럽어로도 완전히 번역되지 않았고, 한국어본도 없다. 현재 본 기자가 참고하려면 한자를 직접 읽는 수밖에 없다. 씨바… 가능하면 테무진을 다룬 부분인 <1권 – 태조본기>라도 입수하여 옥편 놓고 씨름해볼 생각이다. 아우 토나와.
<성무친정록(聖武親征錄)>
성무친정록과 테무진의 관계는 용비어천가와 이성계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기본적으로 테무진에 대한 거대한 아부의 기록이다. 애널써킹은 언제나 도가 지나치는 법이다. 이 책은 테무진이 겪은 실패와 군사적 패배를 왜곡하거나 생략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료에 없는 내용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용으로 필수적인 사료라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어본이 없지만 다행히도 영문본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노브고로드 1차 연대기: 1016~1471>
노브고로드는 중세 유럽 국가로, 러시아 민족(슬라브족)의 중심국가였다. 이 책은 노브고로드의 사서(史書)이다. 1016년부터 1471년까지의 역사를 담은 <노브고로드 1차 연대기>는 테무진과 몽골군에 대한 분노와 적의,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테무진은 지옥에서 3분전에 올라온 악마다. 러시아인들이 당한 걸 생각해보면 이해할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과장을 걷으면, 마땅히 참고할 만한 진실들이 솔찬이 발견되는 사료다.
죠반니 까르피니(1182~1252), <몽골에 대한 기록>
까르피니는 기독교 사제로서, 공식적으로 몽골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교황 이노센트 4세의 특명을 받고 몽골을 방문했다. 당시 교황은 몽골이 기독교국가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몽골제국 전체가 교황과 로마카톨릭 교단을 받들어 모실 것과, 동서 양측에서 협공하여 이슬람 세계를 파괴하는 정교전쟁에 가담케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참으로 순진무구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뻰찌먹었다. 까르피니는 그러나 여행중에 몽골사회의 몽골인들의 삶 등에 대해 기록했고, 유럽에 돌아온 후 자신의 글을 정리했다.
알라딘 아타-말릭 주베이니(1226~1283), <세계 정복자의 역사>
이 양반, 이름이 무려 알라딘이다. '세계 정복자'란 물론 테무진과 그의 후손들, 장군들을 말한다. 몽골에 정복당한 호라즘 제국의 관리였으나, 워낙 능력이 뛰어나 호라즘 멸망 후 몽골제국에 중용되었다. 몽골제국에서 현대의 국회에 해당하는 국가대회의, 즉 '쿠릴타이' 소집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다. 주베이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권이었던 아랍에서 지적으로 정점을 친 인물이다. 주베이니는 몽골의 세계정복이 가지는 의의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세계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는 전제 하에, 불멸의 역사서를 쓰기로 작정한다. 이 일생의 작업을 위해 몽골제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을 두 번이나 방문한 노력파다.
자자, 그래서 테무진은 다음편에서 아내를 찾으러 간다는 얘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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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고서적으로 절반이 채워졌네요.그랬으니, 바로 다음편 올려주세요 ^^
작가님 글 쓰시는게 파워블러거였던 '만쭈리'님 느낌이 납니다.
꿀 잼~~
엄지척요..잘 보고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