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거론되던 KBS 월화드라마 <상어>.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2005년 KBS <부활>, 2007년 KBS <마왕>으로 연이어 호평 받은 박찬홍 감독-김지우 작가콤비의 이른바 '복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데다, 김남길의 제대 후 복귀작에 드라마 출연이 잦지 않은 손예진의 가세까지, 값비싼 재료들이 한 접시에 놓였지만 정작 그 맛은 영 기대에 못 미치는 요리 같다.
가장 먼저 지나친 기시감이 <상어>의 발목을 잡았다. 박찬홍-김지우의 복수극이라 기다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복수극이라서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 큰 것. 두 사람이 전작을 통해 보여준 이야기들은 가혹한 운명과 마주한 주인공이 공들여 복수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권선징악을 긍정하는 복수극 자체의 태생적 매력뿐만 아니라, 권력에 맞서는 사회적 약자의 전복적 탈주로 인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까지 제공했다.
▲ KBS2 드라마 <상어>. ⓒKBS
<상어> 역시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정의롭고 반듯한 소년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 역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악독한 일을 저지른 이는 소년이 가장 사랑하고 믿는 소녀의 가족이다. 더군다나 사건의 배후에는 위선의 가면을 쓴 추악한 진실이 숨어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소년이 12년 동안 날카롭게 갈아 온 복수의 칼날은 적의 중심부로 향하지만 각인된 첫사랑의 기억이 그의 질주를 머뭇거리게 한다.
흥미로운 플롯이지만 신선하진 않다. <부활>과 <마왕>에 열광했던 만큼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고대했지만, 동시에 닮은 음식을 세 번째 먹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익숙함이 미각을 둔하게 한다.
하지만 책임을 묻는다면 더 큰 지분을 차지할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도 같다. <상어>는 익숙하긴 하지만 그만큼 친숙하고, 베테랑 제작진답게 개연성에서 큰 허점도 없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억지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뭔가 껄끄럽고 어색하다. 한마디로, 느끼하다.
그 이유로 먼저, <상어>의 초반부를 장식한 소위 <겨울연가> 식 '첫사랑 신화'를 들 수 있다. 주인공을 파멸시킨 주체가 첫사랑의 가족이라는 딜레마가 <상어>의 핵심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소년과 소녀는 미래의 슬픈 운명을 위한 장치처럼 너무 빤하게 사랑에 빠지고 흔한 투 샷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와 연결되어 과하게 아름답고 아련한 영상이야말로 지금 <상어>의 답답한 호흡을 위협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어>의 영상은 화려한 기교를 부려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어>는 시대착오적일만큼 고전적인 연출이 잦다. 바람에 날리는 해우(손예진)의 스카프에 손을 뻗는 이수(김남길)의 모습을 비롯해, 특히 멜로를 보여주는 방식은 종종 낯 뜨거울 만큼 예스럽다. 무엇보다 필터와 색 보정의 힘을 받아 시종일관 화사하거나 아련한 화면은 서늘한 복수극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공들여 서사를 쌓아가고 있고 영상은 영상대로 멋지고 예쁜 장면을 이어가고 있는데, 각자 열심히 돌아갈 뿐 맞물리지 못해 덜그럭거리는 톱니바퀴 같다고나 할까. 오히려 멜로 라인의 촌스러움이 뽀얀 화면 속에서 그 허점을 더욱 과시하곤 한다.
▲ KBS2 드라마 <상어>. ⓒKBS
배우들의 외양과 표현 방식 역시 아쉽다. 검사라고 판에 박힌 검정 수트 차림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해우의 스타일링은 "호텔 물려받을 생각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밤낮없이 일하는 형사부 검사보다는 재벌 자제이자 호텔 후계자에 더 어울린다. 잠자리에 든 순간에도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세팅된 준영(하석진)의 헤어스타일은 작품에 인공적인 느낌을 더한다. 복수를 위해 위장한 포커페이스임을 감안해도 늘 침잠된 표정과 눈빛으로 일관하는 이수는 <상어>를 자주 느끼하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는 '보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굳이 지적하는 건, 우리가 뛰어난 영상 미학을 보여주는 드라마에 대해 흔히 '영화 같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드라마에서 이야기 자체에 비해 영상은 다소 부수적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컷과 앵글의 다양성, 미장센 등 근본적인 부분에서 영화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속에서도 드라마 영상 미학은 꾸준히 발전했고,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작품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좋은 드라마는 이야기와 영상이 멋진 체형과 이에 어울리는 옷의 관계처럼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이것이 어려운 과제임을 감안하더라도, 영상이 이야기와 상관없이 과하게 존재를 과시하면서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를 최근 연이어 목격하고 있다.
<상어>를 보면서 떠올리는 드라마는 전작 <부활>이나 <마왕>보다 오히려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 중 오랜만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송혜교, 조인성 등 배우들에게도 관심이 쏟아졌던 이 작품이 <상어>와 비슷한 이유로 불편했다. 이야기의 느끼함을 중화시키기보다 부각시켰던 과하게 아름다운 영상 때문이었다. 모델처럼 걸어 다니는 조인성과 인형처럼 예쁜 송혜교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피사체였지만,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클로즈업과 화사하게 탈색된 영상 안에서 가혹한 운명과 사랑 앞에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원작인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이 특유의 서늘한 영상미로설정의 작위성을 중화해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웠다.
▲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SBS
그동안 상대적으로 무심했던 드라마 영상 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에 부응하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 하고 제작 지원을 받은 해외촬영지의 홍보 영상에 최고의 기여를 하는, 예쁘기만 한 영상으로만 흐르는 것은 걱정된다. 이것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나 <상어>만의 유난한 문제는 아니다. 드물게 뚝심과 색깔을 겸비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그래서 믿고 보는 제작진들의 작품에 대한 기대라는 게 있다 보니 더 높은 기준을 들이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허무맹랑하거나 천박하거나 폭력적인 순간이 범람하는 드라마들 속에서 김지우-박찬홍, 노희경-김규태의 작품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사람으로서, 이들의 작품을 느끼함에 몸을 배배 꼬며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