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령(斷髮令)
석청 김재교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는 고령김씨 집성촌이 세 곳이 있다.
600여년 전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지내신 3세(世) 휘 사신(士信)의 아들 영자구자(盈九) 이신 비인 현감을 계시다. 관직에서 월영(越齡)으로 전주부 훈련원 봉사(全州府訓練院奉事)이신 아들 휘 수자인자(守仁)님 따라 완주군 고산현 율곡리 (외율) 부락에 고산 현에 오시었다. 어우리 (어우정) 부락 서봉리 소남동 신덕 부락에 후손들이 번창하여 현재 많은 터를 닦아 570여년 간 이 고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서울에 사시는(21세) 손 남재님이 우리 고장을 방문하실 때 단발령(斷髮令)의 년 도와 당시의 자료 수집을 부탁했다. 년 전에 보내 주셨다. 그러나 생각이 부족해서 이제나마 글로 쓴다.
이 이야기는
일제시대 학자의 가혹(苛酷)한 항쟁. 단발령(斷髮令)에 반대하면서 후손(後孫)들에게 국가와 가문(家門)의 효(孝) 정신을 키워 오신 휘(諱) 길현(吉顯) 제 당숙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구전(口傳)과 모든 행적, 업적은 잊고 살아진다. 어른들이 계실 때 모아 놓은 자료를 정리하고자 한다.
김길현 (金吉顯)님은 고령김씨 사신(士信)파 십구세손(拾九世孫)이시고
자-건(健晦)
고종 (高宗辛丑 (1901~乙未1955)
부(父) 휘 동환(東煥)이며 字는 치덕(致德)이시고. 고종 계묘(1903)년에 서사(筮仕)로 홍릉(弘陵參奉)이 되시고. 익년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오르셨다.
조부(祖父) 휘 억수(億洙)요.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이셨고. 증조부(曾祖父) 휘 선지(善智)께서는 가선대부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使)를 지낸 온 양반 유학자(儒學者) 집안이다.
당시 전주부(全州府)를 기점으로 유학자(儒學者) 중 남(南)으로는 최 학자. 북(北)으로는 김길현 학자. 서(西)로는 송 학자. 동(東)으로는 이 학자라. 별칭(別稱)을 하였단다.
이분은 선조 님의 애국(愛國) 애족정신(愛族精神)을 이어받아 학문(學文)에 진력(盡力)하시면서 후손(後孫)들에게 효(孝) 정신을 몸소 솔선(率先)하여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큰집 밖 사랑채를 서당(書堂)으로 만들고 동생 국현(國顯)과 함께 후손들과 이웃들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고찰하시고 예법(禮法)과 제례법(祭禮法)을 가르쳤다. 우리 집안 제례법(祭禮法)은 전국 어느 문중보다 예(禮)와 법규(法規)가 완벽하다고 전국 유학자 (學者)들이 감탄(感歎)을 하였다고 한다.
부모님이 작고하신 후에는 3년간 묘(墓) 옆에서 여막(廬幕)을 치시고 시묘(侍墓)살이를 몸소 하신 분이시다.
이런 일화가 있다.
후에 장자인 재옥(在玉)이 중국에서 일본. 한국. 삼국 붓글씨대회에서 2등을 하시고 머리를 깎고 집에 오니
부모가 물려준 신체발부(身體髮膚)를 훼손(毁損)하였다고 하여 멍석 마리를 하는 중에 집안 어른들 사정으로 서울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이즈음 고산현(高山縣)도 단발령(斷髮令)에 사는 남자는 예외 없이 모두 상투를 짤랐다. 그런데 이분만은 일본 순사와 2년간을 대립(對立)하며 싸웠다고한다. 옛날에는 주제소 (지서)에서
삭발 (削髮)을 하였는데. 소장이 날마다 순사를 보내 상투를 자르자. 하면 온 자에게 내 목을 치고 깎아라. 마당에서 벼락같은 소리를 쳤단다. 순사들이 슬슬 뒷거름으로 도망(逃亡)가고. 다음 날부터는 일본(日本) 왜놈 소장이 이분을 날마다 주재 소로 불려 고산 주재소(高山駐在所)마당에서 날마다 싸우는 구경거리였으며 장날에는 5개 면 면민 (面民) 들이 일본 순사와 대립하는 모습의 구경거리 였 단다. 왜놈 순사에 무기(武器)도 없이 삭발(削髮令)에 반발(反撥)하여 눈이 오면 눈 맞고 소나기 오면 소나기 맞으며
10리를 종중(宗中) 젊은 형제, 조카들을 10여 명씩 대동하고 나뭇게(나무를 파 만든신) 신을 신으시고 날마다 맞서 싸웠단다.
그 싸움이 무장 없는 항일 투쟁이었다. 여러 증거에 의하면 김 학자님과 전주 남문 밖 최 학자와의 음어 엽서 서찰을 보면 동립운동 일환의 음어였다.
조상님이 물려준 머리카락을 어떻게 함부로 벨 수 있느냐? 내 목을 치고 베라 하니 소장(所長)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고 또 부르면 가서 반항(反抗)하였단다.
다음 해 마침내 일본 소장이 기가 눌려 전주 부 (全州府))에 가서 단발령 (斷髮令) 해지증(解止證)을 받아오면 면할 수 있다고 해서. 이분이 전주부 (지금전주 경찰서)까지 이곳에서 5십여 리다. 걸어 전주 교화 주사(敎化主事)를 만나 내 식솔이 27명인데 억지로 깎아라. 하면 모두 다리고 와서 당신 앞에서 죽이고 깍겠다고 고함치니
교화 주사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단발령(斷髮令) 해지증(解止證)을 받은 전라북도, 일반인은 오직 이 한분 밖에 없다고 한다.
이 해지증을 고산 주재 소 소장에게 전하니, 주재 소 소장이 대단한 분이라며 감탄하였으며, 이웃 주민들에게도 존경(尊敬)의 인물(人物) 이 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전주 부에서는 고산현 북문 밖 김 학자(金學者) 하면 왜놈들도 혀를 내 둘렸다고 한다.
이런 윗대 어른들이 노력한 국가와 애족 효(孝)를, 후손들이 이 정신을 본보기 삼아 후학을 위하여 헌신적인 자녀교육과 효(孝) 정신이 지금이 더욱 필요한 시대다.
우리 가문은 소리 없는 양반 가문이다. 가문을 입증하는 증거는 집안에 효자, 효부들이 상당히 많다. 휘(諱) 전 종친회 회장님도 고산향교(高山鄕校)와 명륜회 (明倫會) 등 여러 곳에서 효자상 (孝子賞)을 받았으며, 어우리 김상호 모친도 효부상을 ,
현재 대종 총무인 김재교의 부인(婦人)도 고산면(高山面) 효부상을 대종중에서도 효부상(孝婦賞)을 완주교육감 효부상도 받았고 현재 대종회 이사 김재왕 님도 고산향교(高山鄕校)에서 효자상(孝子賞)을 받았다.
우리 가문(家門)에는 20년 안에 효부, 효자가 탄생(誕生)되는 소문난 가문이다. 옛날에는 시집. 장가는 고령김씨 손이라면 물어보지 않고 성혼(成婚)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가정마다. 편리(便利)한 데로 여러 종교(宗敎)가 나누어져 있다. 자기(自己)가 믿는 교가 나의 핏줄인 조상과 낳으신 부모님을 멀리하는 세대로 가고 있다 보니, 나의 선조(先祖) 님이 누구시며 나라에 무엇을 했으며 산소(山所)는 어느 산에 계시는지도 모르는 현실(現實)이 되었다. 나만의 삶이라면 조상님이 점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그리고 가문과 이웃에 필요한 싹이 되기에 세상에 태여 낳게 했을 것이다.
지금 현 사회는 참, 아쉬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가문의 핏속에는 선조(先祖)들의 얼이 서려 있고 정의(正義)에는 몸을 받치는 용기(勇氣)가 있는 가문의 후손임을 가슴과 뼈에 새기고 이 가문을 스스로 가꾸는 후손이 되시길 빌며 선조님께 욕되는 행동과 언행을 삼가 하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2025년 6월 중 종친회 회장 신인 김재교 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