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현대시』 2008년 4월호
* 이 시에서 시인은 “콩꼬투리”, “콩알”, “콩밭”, “콩새” 등 콩과 관련된 소재와 관련하여 가을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1연에서는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을 장끼와 관련시켜, 2연에서는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을 노루와 관련시켜 가을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멧돼지 무리”와 관련시켜, 4연에서는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고 하는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과 관련시켜 가을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그가 만드는 가을의 풍경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만이 아니라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고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느냐고 지청구를 먹는 콩새까지 가을이라는 자연공동체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시인이다.(이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