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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2(합 2:1-4)
지난 주일에 로마서 1:16,17절을 통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16절). 2)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17절). 3)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17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함께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말씀은 하박국선지자가 증거하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박국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 말기, 그야말로 영적·도덕적 암흑기였습니다. 안으로는 죄악과 불의가 가득했고, 밖으로는 바벨론이라는 강력한 제국이 침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박국은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정의가 굽어지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만 계십니까?” 이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는데 왜 고난은 끝나지 않는지, 왜 세상은 갈수록 험악해지는지 우리는 묻곤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깊은 탄식의 골짜기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어떻게 오직 믿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가 세 가지 영적 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무슨 말씀을 하실런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1).
본문 1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결연한 의지를 보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런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런지 보리라 하였더니" 하박국선지자는 절박한 환경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시기의 유대 사회는 철저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불의, 약탈과 폭력, 다툼과 시비가 그치지 않았고, 율법은 해이해지고 공의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이 의인들을 협박하고 정의는 무너졌습니다(1:2-4).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선지자에게 바벨론사람들을 채찍으로 삼아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선지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백성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보다 더 악하고 무도한 나라, 자기들의 힘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를 들어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무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하여 노략하는 사람들을 왜 그냥 두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찾아가 불평하거나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파수하는 곳’, 즉 ‘성루’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루’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가장 높은 초소입니다. 하박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듣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려면 반드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지식의 판단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코메디언 조혜련 집사의 간증이야기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집사님 집안은 어렸을 때 일본의 남묘호렌게쿄(창가학회)를 믿으면 복받고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가족들이 열심히 믿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 있어서 그 종교의 근원지인 일본에까지 가서 간증하며 7년간 일본에서 열심히 활동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많은 인지도를 얻었지만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너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벼랑끝으로 내몰았던 삶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그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던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같은 코메디언이었던 이성미집사였습니다. 생명책노트에 200명의 이름을 적어놓고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서 기도하는 데 조혜련은 7번째였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까지 했는데 어느날 너무 힘들어서 벼랑끝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낄 때 우연히 연예인 연합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예배자를 찾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써있는 글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너를 기다렸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순간 괴로웠던 일본 활동이 떠오르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한 사람의 예배자로 세우기 위해 기다리셨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그 한 사람의 예배자가 제가 되겠습니다."고 고백하며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 매일 5장씩 성경을 녹음하여 가족카톡방에 올려는데 언니들도 성경을 같이 읽었다고 합니다. 친언니는 레위기를 읽다가 '차라리 한국 제사가 더 쉽다.'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지만, 시편을 읽다가 울고, 예레미야에서 울고,
요한복음 21장에서는 오열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단톡방을 확장했는데 16개나 되었고, 그렇게 성경을 읽다보니 2년에 성경전체를 20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때 연예인 백지영, 신애라 등 여러 연예인들이 성경통독방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또 그때 그의 어머니 나이가 77세 때였는데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는데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여덟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자녀를 낳은 후에는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허리가 많이 상해서 여섯 번의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습니다. 또 방광염이 생겨서 평생 소변줄을 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 엄마가 미국 간증집회에 그냥 따라갔다가 어느 선교사님의 전도를 받고 한인 교회에서 바로 영접기도를 하시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77세된 어머니가 시간이 너무 없다고 발을 동동거리며 우셔서, 엄마는 절대 늦은 것 아니라고 위로했습니다. 귀국후 눈이 나쁜 엄마를 위해 큰글자성경을 사드렸습니다. 엄마는 성경책을 매일 10시간을 읽어서 55일 만에 1독을 하셨습니다. 5년 3개월만에 성경을 56독째 읽으셨습니다. 82세가 된 어머니는, 언제 죽을지 몰라도 말씀을 읽어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나라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늘 푸념과 투덜대던 엄마가 성경을 읽으면서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성경 4독에 소변줄을 떼어내고, 지금은 휠체어도 안 타고 끌대를 밀고 다닙니다. 그렇게 버티던 남동생이 엄마의 변한 모습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이 믿음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매번 참여하는 다니엘기도회의 다니엘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민족의 암담한 미래를 놓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 21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10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단 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다니엘이 기도의 성루에 엎드리는 순간, 이미 하늘에서는 응답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치열할 뿐입니다. 하박국은 그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바라보겠다’고 말합니다. 시 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다리고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사모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자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질문을 던져놓고 무례하게 돌아선 것이 아니라,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즉시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기다리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나서 즉시 열매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씨앗이 자라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만약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땅을 계속 파본다면 씨앗은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시기 위해 기다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기다림의 시간 가운데 계십니까?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지십니까? 그 자리가 바로 믿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더욱 깊은 믿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지혜요 믿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단순히 요구사항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성루에 올라가 있지 않기에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기도의 성루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거기서부터 회복은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은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2-3).
하박국의 기다림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응답하셨습니다. 2,3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은 먼저 그 말씀을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마음판에서 흐릿해졌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그들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 행사에는 꼭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이 노래의 제목인 아니마밈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믿는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그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되어 불리워진 노래입니다. 6백만명의 유대인을 무참히 죽인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죽음을 앞에 놓고 고생하던 유대사람들이 거기에서 부르며 위로를 받았던 노래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하여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믿는다.' 이 간단한 가사를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 자신의 동료들이 그대로 끌려서 가스실로 나가는 것을 봅니다. 죽음을 향해서 끌려가는 그 모습을 볼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들은 이 찬송 뒤에 한 절을 더 넣어서 불렀다고 합니다. 추가된 가사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한 외과의사는 절대로 그 마지막 가사를 부르지 않았답니다. 그는 확실히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늘 단정히 행하고 죽음을 앞둔 시간이지만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해가면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끝까지 버티고 견디고 믿음으로 섰습니다. 마침내 그는 죽지 아니하고 수용소 문을 나오게 됩니다. 나오면서 그는 마지막 절을 고쳐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너무 서둘러서 믿음을 포기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는 자가 많다'라고 불렀답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입니까? 물질로 삽니까? 물질주도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만 떡으로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이 좀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어쩌다가 돈이 떨어져서 가난하고 어려워지면 마치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슬퍼하며 절망합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완전히 물질의 소유에 의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물질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고 깨닫고 공부하고 그것을 큰 기쁨으로 알고 그리고 무엇을 좀 더 알았을 때 그는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할 뿐 아니라 지식적으로 자기만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취미로 삽니다. "저것도 모르고, 무식한 것" 하면서 자랑해보지만,
그것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기분으로 삽니다. 자기 생각이 가는 대로 삽니다. 요즘 tv드라마를 보면 한결같이 막장 드라마입니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고 선택합니다. 자기 생각에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부인데 자기 생각대로 안되면 절망하고 좌절하며 주저앉습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 세상은 자기가 전부인 시대입니다. 자기 생각이 충돌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로 사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 상황을 훌쩍 넘어서서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특별히 성경은 말합니다. 정한 때가 있나니,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초조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무조건 사줄 수가 없습니다. 줄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기다려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때에 가서야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있는 것이지 아무 때나 달란다고 아무거나 줄 수 없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정한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오차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지체되지 않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도, 그리고 장차 오실 재림의 소망도 모두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이루어집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눈앞에 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고 기도의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분의 계획을 완성해가고 계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은 포기하지 말라는 위로입니다. 기다림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바로 그 사람을 연단시키고 온전하게 세워주십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언제이든 때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기다린다고 하는 믿음, 신실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경륜을 간절히 믿고 온유와 겸손하게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4).
드디어 오늘 말씀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4절에 도달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하십니다. 하나는 바벨론 사람들과 같이 마음이 교만하여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잠시 흥왕하는 것 같으나 결국 파멸합니다. 반면, 또 다른 부류는 ‘의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옳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구원받는 수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삶의 태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견디는 힘입니다. 관계의 연속성입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끈을 놓지 않는 성실함을 뜻합니다. 상황이 나빠져도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훗날 사도 바울에 의해 로마서 1장 17절에서 다시 선포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이후의 삶은 내 노력과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시작도 믿음이요, 과정도 믿음이며, 마지막 완성도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눈앞의 환경이나 감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성품을 신뢰하며 걷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돈이 있어야 산다, 실력이 있어야 산다, 인맥이 있어야 산다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요즘 묵상하는 사무엘상에 나오는 다윗을 생각해보십시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앞에 서서 이스라엘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봅니다. 283cm미터의 거대한 장수, 온 몸에 갑옷을 두르고 큰 창을 가지고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보자 이스라엘군대는 다 심히 두려워하며 숨고 도망갑니다.
그 때 마침 다윗이 그곳을 방문하여 골리앗을 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의분을 품고 골리앗과 대결하기로 작정합니다. 골리앗앞에서 선 다윗,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이 볼 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그 위에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가 이겼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담은 그릇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무엇을 염려하고 계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 성공 중에도 교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위에 단단한 기초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물질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힘만 믿고 사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는 처음에 "어찌하여"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난 후, 그의 질문은 "찬양"으로 바뀝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합 3:17-18).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습니까? 환경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벨론의 침공은 여전했고 상황은 여전히 암울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그의 중심에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확신,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약속이 그를 살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기도의 성루로 올라가십시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는 정확합니다. 믿음을 선택하십시오. 내 기분과 감정이 아니라,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지금 내가 하나님께 묻고 있지만 아직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2.“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한다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3. 나는 현실(물질, 감정, 환경)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기 위해 오늘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