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37,1-14; 마태 22,34-40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입니다. 성인의 본래 이름은 ‘쥬세뻬 멜키오레 싸르또’인데요, ‘쥬세뻬’는 요셉의 이탈리아어 이름입니다. 한편, 성은 ‘싸르또’이신데요, 이 단어는 ‘재봉사’라는 뜻입니다. 아마 조상 중에 그런 일을 하신 분이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성인께서는 생전에 ‘성인 같은 교황’이라 불릴 정도로 평판이 좋았는데요, 이탈리아어로 ‘성인’을 뜻하는 ‘싼또’santo라고 부르면, 성인께서는 “저는 싼또가 아니라, 싸르또sarto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재 개그는 많은 성인들의 공통된 특성인 것 같습니다.
비오 성인께서는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835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성인은 사제가 되신 후 17년 동안 본당 사제로 사목하셨고, 신학교 영성 지도 신부로 계시다가 주교품을 받으셨고 추기경으로 임명되셨습니다. 1903년 레오 13세 교황님이 선종하시자 제257대 교황님으로 선출되셔서, 11년간 교황직을 수행하시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에 선종하셨습니다.
비오 10세 성인을 대표하는 별명은 ‘교리교육의 교황’과 ‘성체의 교황’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첫영성체할 수 있는 나이를 낮추셨고,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의 중심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비오 성인 이전에는 열심한 신자도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성체를 영할 수 없었고, 많은 이가 대축일 때만 영성체를 했습니다. 비오 교황님은 이러한 관습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셨고, 성체를 더 자주 영해야 한다고 권장하심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평일 미사 때에도 성체를 영할 수 있는 기틀을 놓으셨습니다. 비오 성인께서는 이처럼 하느님 사랑이 관념이나 말에 머물지 않고, 성체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서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희망을 노래합니다. 에제키엘이 본 환시에서 바빌론 유배로 망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가 마른 뼈에 비유됩니다. 당시에는 뼈 안에 생명이 잔재가 남아 있다고 보았는데, 뼈가 말랐다는 것은 다시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이 ‘숨’은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불어 넣어 주신 ‘숨’과 같은 단어입니다. 분부하신 대로 하자,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살아나서 일어서게 됩니다.
이는 바빌론 유배로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재건되리라는 예언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장차 일어날 부활에 대한 희망을 이 말씀 안에서 발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유다 지도자들과 네 차례 논쟁을 벌이시는데, 오늘은 그중 세 번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계속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랍비들의 계산에 의하면 모세오경에는 613개의 계명이 있습니다. 이 중 무엇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묻습니다. 그중 어떤 계명을 대답하더라도 ‘왜 다른 계명들을 무시하느냐’면서 고발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시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심으로써, 이 논쟁이 단순히 계명 간의 우선 순위에 대한 판단의 차원을 넘어 종교적, 공동체적 삶의 모든 국면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로 이어지도록 대답하십니다. 또한, 첫째 계명뿐만 아니라 둘째 계명까지 말씀하심으로써 두 계명이 상호보완적으로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하도록 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신명기에서 인용하신 이 말씀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리고 ‘하느님만 사랑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인용한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심으로써 올바른 하느님 사랑이 어떤 열매를 보이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계명은 따로따로 여러 차례 강조되어 온 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계명을 하나로 묶어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시편 15장은 열한 개의 원리로, 이사야서 33장(15-16절)은 여섯 개로, 미카서(6장 8절)는 세 개로, 이사야서 56장(1절)은 두 개로, 아모스서 (5장 4절ㄴ)와 하바꾹서(2장 4절ㄴ)는 하나의 원리로 계명을 종합하려 시도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장 권위 있던 모세오경에서 인용하신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가장 관심 있으신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것은 ‘나의 이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을 합니다. 그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에 대해 어떤 분들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시고, 또 바빠서, 나이가 많아서, 몸이 아파서 신앙의 실천을 잘 못하노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단 두 가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준비하면서도 단 두 가지 질문에 비추어 성찰하면 됩니다. ‘하느님 사랑 어떻게 했나’, ‘이웃 사랑 어떻게 했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하게 요약하신 것을 다시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그것을 실천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독서 중이신 비오 10세 성인, 앞에 있는 것은 요한 비안네 성인상
출처: Pope Pius X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