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레지던트 4년차가 되었을 때, "무의촌 파견" 이라는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전공의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벌렸던 1기수여서 그런지
제일 중요한 시기, 4년차에 오르자마자 무의촌으로 가게 되었다.
김천도립병원으로 파견되어 근무중,
이시형 교수님이 파견된 의사들을 위로(?)겸, 감시(?)겸 오셨다.
그 날 저녁 신경외과 송선생과 같이 이시형 교수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이때 이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이렇게 공개를 할까 하는데
이교수님이 화를 내지는 않으실까 걱정이 되지만
선배님께서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라 믿습니다.
이시형 교수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셔서 이죽내 교수님과 같이
한국의 정신과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서울 지리에 어두운 두분이 숙소를 정한곳이 하필 서울역 앞 "양동" 의
어느 여관이었습니다.
여관집 주인이 건장한 남자 두사람을 관찰하여 보니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어디엔가 나갔다가 밤이 되면 두분이 들어와서 이것저것 한국어로
또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여관 주인은 문득 간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낮에 가만히 두분의 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뒤져 보다가
책을 들여다 보니 무슨 책이 그림은 하나도 없고 ( 정신과 책이므로 )
영어로만 씌여있지를 않나,
주인은 간첩의 난수표로 의심을 하여 몰래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경찰도 수상하다고 생각하였겠지요!
전문의 시험을 치르는 날 새벽에
무장한 경찰이 총검을 지참하고 여관방을 급습하여
두분의 목을 군화로 꽉 밟고 있는데
교수님 왈 " 목을 밟히니 힘도 못쓰겠고,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절망과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목을 밟지 말아달라 애원하고
" 나는 간첩이 아니고 예일대 교수요.. 미국 시민권이 있습니다. " 하니
경찰들 왈 " 원래 간첩들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다 그런다!"
하면서 목을 더 힘주어 밟아 숨통이 막혔답니다.
간신히 빌고 애원하여 또 이리저리 연락이 되어서 간첩의 누명은 벗고
황급히 시험장에 도착하여 시험은 치루었답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되고 있을 때
식당 옆방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기자라는 분들이 술병을 들고 들어와서는
" 선생님들의 말씀이 너무 재미가 있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만 용서하시고
이야기를 계속 하시지요"
하면서 술을 권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 이야기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술도 많이 하셨고 명강의로 이름이 나신 선배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만
실명으로 공개하여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惠諒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이시영 박사님의 새로운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뒷 이야기가 더 재미날 것 같은데 아쉽네요.
희망가족부부상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