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에 도전하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아내의
성화에 두 손을 들었다. 지인의 소개를 받아 아코디언학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나흘, 오후 1시부터 6시 사이 내게 맞는 시간에 나가 원장의
지도를 받는다. 악기는 시간을 두고 알아본 뒤 구매하기로 하고 우선은 서 회장의 아코디언으로 연습했다. 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열두어
평 되는 교습소에 60, 70대 남녀 15∼6명이 배우고 있다. 제각기 진도에 따라 연주하니 소란스럽기는 하나, 자신의 악보에 집중하느라
시끄러운 줄도 모른다. 여성 회원은 네댓 명 되는데, 상당한 수준이었다. 어느 70대 할머니는 연습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중년의 효녀가 찾아와 모셔갔다. 보행이 불편한지….
나는
왕초보다. 악보는 어느 정도 읽는 수준이라 크게 염려치 않는다. 손가락이 얼마나 유연할지가 문제다. 교습소 벽에는 회원들의 연주 사진들이
붙어있고, ‘사랑, 봉사, 행복’이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다. 출입문 쪽에는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오늘은 만족, 내일은 감동을
드립니다.’고 격문이 붙어있다. 원장의 1ː1 맞춤 레슨을 받으며 외로운 도전을 계속한다.
처음
배운 악보는 ‘나비노래’였고, 이어서 ‘똑같아요’, ‘자전거’ 등 동요를 익혔다. 사나흘이 지나면서 ‘클레멘타인’ ‘역마차’로 옮겼다. 집에
와서는 아내가 사둔 재즈 피아노 건반을 익히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악기점 사장에게 아코디언 ‘유포니아 80’을 부탁했다. 백만 원 정도 든다는 악기 값은 아내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골프연습장에
처음 나갔을 때 뭐든 배우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해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들어갈 돈은 어쩔 수 없다. 아코디언을 배우도록 인도해준
사람들이 고맙다.
초보가
겪는 어려움은 각오했다. 붓글씨를 배우면서 단련한 터라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서먹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이든 배우기는 쉽지 않으니, 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불편한 심기를 다스려야 한다.
집에서
한 손으로 피아노를 쳐보니, 아내는 많이 늘었다고 칭찬한다. 그런대로 배울 것 같아 안심이다. 오래전 현직에 있을 때 아내의 주선으로 드럼을
반년 동안 배우다 말았는데, 여건이 좋지 못했다. 이제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다.
오후
3시가 지나면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다. 의문점도 이때 풀어본다.
‘원장님처럼
연주를 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게 화제다. ‘한 20년쯤….’ ‘아니 이 생(生)에선 불가능하지.’ ‘그래 좋은 시간 보낸다 생각하고
해야지.’ 그 말에 모두 긍정했다.
파크골프를
치며 운동을 하고, 악기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수필을 쓰는 노후는 그런대로 괜찮지 않은가 싶다. 더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무리일 테고,
이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시작한다는
용기와 즐거움이 나를 젊게 한다. 잘해도 좋고 못 해도 괜찮다. 배우는 즐거움을 맛보면 그만이다. 어차피 뛰어난 아코디언 연주가를 꿈꾸지는
않는다. 음악과 가까워지는 삶을 희망할 뿐이다. 훗날, 자녀나 손자 손녀가 음악과 악기의 소중함을 깨달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아코디언은
리드 오르간을 휴대용으로 작게 만든 악기다. 발 대신 양손으로 바람통을 개폐하여 송풍하면 금속제 리드가 붙은 구멍을 통과하면서 소리가 난다.
1852년 파리의 부톤이 오른쪽 키를 피아노 건반으로 개량하여 오늘날의 아코디언이 되었다고 한다.
오르간은
한 번 배울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셨던 이세연 선생님이 가르쳐주시기로 약속했었다. 다만, 1학기 말 성적이 전 학년 몇 등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나는 꿈에 부풀었다. 호롱불을 밝히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했다. ‘애가 달라졌다.’고 모두 놀라워하셨다.
기말고사는
자신 있게 치렀고 선생님과 약속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해 여름방학은 오르간을 배우려는 기대로 부풀었다. 그런데 내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해 여름 군에 입대하셨다. 그 뒤 악기를 배울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았다.
내
팔자에 무슨 오르간이며, 기타일까 싶어 악기와는 담을 쌓았다. 클래식 기타 소리가 매력이 있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젊을 때는
노래를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는데, 이제 목소리도 갈리고 노래방도 멀어졌다.
악기사
사장에게 부탁한 ‘유포니아’를 저렴하게 샀다. 윤이 나는 검은색 아코디언이 마음에 쏙 들었다. 평생을 아끼며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아코디언을
배우면서 나의 우뇌가 발달하리라 믿는다. 그동안 좌뇌 중심의 활동을 많이 하여 불균형을 가져왔는데, 이제 우뇌 활동이 보완되어 감정적이고
직감적, 창조적인 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이것은 수필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느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일흔이 지난 나이에 악기공부를 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내가 딱 그 나이라 안심했다.
(2017.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