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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강좌 -19 [전국비구니회관(법룡사)]
第四 菩薩品 6. 선덕과 법 보시
6. 선덕과 법 보시
佛告長者子善德(불고장자자선덕)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善德(선덕)이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憶念(억념)하니 我昔(아석)에
自於父舍(자어부사)에 設大施會(설대시회)하여
供養一切沙門婆羅門(공양일체사문바라문)과
及諸外道(급제외도)와 貧窮下賤(빈궁하천)과
孤獨乞人(고독걸인)하되 期滿七日(기만칠일)이러니
時(시)에 維摩詰(유마힐)이 來入會中(내입회중)하야
謂我言(위아언)하되 長者子(장자자)여 夫大施會(부대시회)는
不當如汝所設(부당여여소설)이니
當爲法施之會(당위법시지회)어늘
何用是財施會爲(하용시재시회위)오 我言居士(아언거사)여
何謂法施之會(하위법시지회)닛고
答曰 法施會者(답왈법시회자)는 無前無後(무전무후)로
一時供養一切衆生(일시공양일체중생)이
是名法施之會(시명법시지회)니라 曰何謂也(왈하위야)오
謂以菩提(위이보리)로 起於慈心(기어자심)하며
以救衆生(이구중생)으로 起大悲心(기대비심)하며
以持正法(이지정법)으로 起於喜心(기어희심)하며
以攝智慧(이섭지혜)로 行於捨心(행어사심)하며
以攝慳貪(이섭간탐)으로 起檀波羅蜜(기단바라밀)하며
以化犯戒(이화범계)로 起尸羅波羅蜜(기시라바라밀)하며
以無我法(이무아법)으로 起羼提波羅蜜(기찬제바라밀)하며
以離身心相(이이신심상)으로
起毘離耶波羅蜜(기비리야바라밀)하며
以菩提相(이보리상)으로 起禪波羅蜜(기선바라밀)하며
以一切智(이일체지)로 起般若波羅蜜(기반야바라밀)하며
敎化衆生(교화중생)하되 而起於空(이기어공)하며
不捨有爲法(불사유위법)하고 而起無相(이기무상)하며
示現衆生(시현중생)으로 而起無作(이기무작)하며
護持正法(호지정법)으로 起方便力(기방편력)하며
以度衆生(이도중생)으로 起四攝法(기사섭법)하며
以敬事一切(이경사일체)로 起除慢法(기제만법)하며
於身命財(어신명재)에 起三堅法(기삼견법)하며
於六念中(어육념중)에 起思念法(기사념법)하며
於六和敬(어육화경)에 起質直心(기질직심)하며
正行善法(정행선법)으로 起於淨命(기어정명)하며
心淨歡喜(심정환희)로 起近賢聖(기근현성)하며
不憎惡人(불증오인)으로 起調伏心(기조복심)하며
以出家法(이출가법)으로 起於深心(기어심심)하며
以如說行(이여설행)으로 起於多聞(기어다문)하며
以無諍法(이무쟁법)으로 起空閑處(기공한처)하며
趣向佛慧(취향불혜)로 起於宴坐(기어연좌)하며
解衆生縛(해중생박)으로 起修行地(기수행지)하며
以具相好(이구상호)와 及淨佛土(급정불토)로
起福德業(기복덕업)하며 知一切衆生心念(지일체중생심념)하야
如應說法(여응설법)으로 起於智業(기어지업)하며
知一切法(지일체법)이 不取不捨(불취불사)하야
入一相門(입일상문)으로 起於慧業(기어혜업)하며
斷一切煩惱(단일체번뇌)와 一切障碍(일체장애)과
一切不善法(일체불선법)하고 起一切善業(기일체선업)하며
以得一切智慧(이득일체지혜)와 一切善法(일체선법)으로
起於一切助佛道法(기어일체조불도법)이니 如是(여시)하야
善男子(선남자)여 是爲法施之會(시위법시지회)니
若菩薩(약보살)이 住是法施會者(주시법시회자)는
爲大施主(위대시주)며
亦爲一切世間福田(역위일체세간복전)이니라
世尊(세존)이시여 維摩詰(유마힐)이 說是法時(설시법시)에
婆羅門衆中二百人(바라문중중이백인)이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
我時(아시)에 心得淸淨(심득청정)하야 歎未曾有(탄미증유)하야
稽首禮維摩詰足(계수예유마힐족)하고
卽解瓔珞價直百千(즉해영락가치백천)하야 以上之(이상지)하니
不肯取(불긍취)어늘 我言居士(아언거사)여
願必納受(원필납수)하야 隨意所與(수의소여)하소서
維摩詰(유마힐)이 乃受瓔珞(내수영락)하야
分作二分(분작이분)하고 持一分(지일분)하야
施此會中一最下乞人(시차회중일최하걸인)하고
持一分(지일분)하야 奉彼難勝如來(봉피난승여래)하니
一切衆會(일체중회)가 皆見光明國土(개견광명국토)의
難勝如來(난승여래)하며 又見珠瓔(우견주영)이
在彼佛上(재피불상)하여 變成四柱寶臺(변성사주보대)하고
四面嚴飾(사면엄식)하되 不相障蔽(불상장폐)러라 時(시)에도
維摩詰(유마힐)이 現神變已(현신변이)하고
又作是言(우작시언)하되 若施主(약시주)가 等心(등심)으로
施一最下乞人(시일최하걸인)하면
猶如如來福田之相(유여여래복전지상)하야
無所分別(무소분별)하며 等於大悲(등어대비)하고
不求果報(불구과보)하면
是則名曰具足法施(시즉명왈구족법시)니라
城中一最下乞人(성중일최하걸인)이 見是神力(견시신력)하며
聞其所說(문기소설)하고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하나이다
如是諸菩薩(여시제보살)이 各各向佛(각각향불)하야
說其本緣(설기본연)하며 稱述維摩詰所言(칭술유마힐소언)하고
皆曰不任詣彼問疾(개왈불임예피문질)이라하니라
佛告長者子善德(불고장자자선덕)하사대, 장자의 아들 선덕에게 고하기를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善德(선덕)이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저도 감히 그분에게 가서 문병할 수가 없습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왜냐하면 憶念(억념)하니 我昔(아석)에,
기억하건데 저도 옛날에 自於父舍(자어부사)에 設大施會(설대시회)하여, 스스로 아버지 집에서 大施會를 열었었습니다. 법 보시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하려고 하는 겁니다. 大施會. 크게, 無遮施會(무차시회)라고 할까요? 온갖 것을 다 베풀고, 먹을 것ㆍ입을 것ㆍ그런 것을 베푸는 공양 이야기지요. 그래서
供養一切沙門과 婆羅門(공양일체사문바라문)과 及諸外道(급제외도)와, 그리고 여러 외도들과 貧窮下賤(빈궁하천)과, 빈궁한 사람ㆍ하천한 사람.
孤獨乞人(고독걸인)하되, 고독한 사람들ㆍ걸인들 이런 사람들에게 공양을 했었습니다. 期滿七日(기만칠일)이러니, 일주일동안 했다는 겁니다. 일주일동안... 옛날에 심청이가 아버지 찾기 위해서 궁중에서 일주일간 맹인들 잔치를 연 것하고 똑 같네요. 기간을 일주일을, 7일을 채웠더니
時(시)에 그 때 維摩詰(유마힐)이 來入會中(내입회중)하야,
그 대회에, 말하자면 공양 베푸는 거기에 떡 오셔가지고
謂我言(위아언)하되,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長者子(장자자)여, 장자의 아들이여 夫大施會(부대시회)는,
대저 大施會라고 하는 것은 不當如汝所設(부당여여소설)이니,
마땅히 당신이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베푸는 것이 아니야,
當爲法施之會(당위법시지회)어늘, 마땅히 법을 베푸는 것이 되어야 한다.
何用是財施會爲(하용시재시회위)오? 어찌하여 財施會를 여느냐?
재물로써 施會를 여느냐? 재물을 사용해서 施會를 여느냐?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재물하고 비교도 안 되는 그런 아주 어마어마한 재산이고, 보배 중에는 더 이상 값으로 칠 수 없는 그런 보배를 놔두고, 왜? 재산을, 물론 재산은 그 재산을 베푸는 대로 좋습니다.
제가 늘, 급식활동하고ㆍ봉사활동하고 하는 그런데 우리불자들이 하는 것은 항상 거기다가 불법을 얹어서 같이 줘라. 밥 한 그릇에도 불법 얹어서 줘라.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간에 불법과 인연을 맺어줄 수 있는 그런 어떤 기회가 돼야지, 그냥 밥만 주고ㆍ그냥 돈만 주고ㆍ무슨 노인잔치하고 그러면 그것 별 의미 없다. 다른 종교에서도 한다. 아니 명품 종교에서, 다른 저급한 종교에서 하듯이 그렇게 하느냐? 또 그것은 복지부에서도 하는 일 아니냐?
불교에서는 정말 불교답게 뭔가 세상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늘 그런 말을 합니다만, 여기 유마거사도 그와 같은 생각이지요. 그것도 물론 좋아요. 좋지만 그것을 인연으로 정말 진리의 가르침과 인연을 맺어준다면 정말 금상첨화가 아닌가? 그런 생각입니다.
我言居士(아언거사)여, 제가 말하기를 거사여
何謂法施之會(하위법시지회)닛고? 무엇을 가지고 法施之會.
법을 베푸는 것이라고 합니까? 答曰 法施會者(답왈법시회자)는, 법을 베푸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無前無後(무전무후)로 一時供養一切衆生(일시공양일체중생)이 是名法施之會(시명법시지회)다. 앞도 없고 뒤도 없어, 일시에 일체중생들을 다 공양하는 도리가 있어. 이것이 법보시다 이 말입니다.
曰何謂也(왈하위야)오? 무엇을 가지고 말 하는가 하면, 이를 테면
謂以菩提(위이보리)로, 起於慈心(기어자심)하며,
보리로써 慈心을 일으켜.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그래서 자심하고 보리심하고 티벳불교 같은 데는 같이 쓰더라고요. 자심하고 보리심을 같이 써요. 자비심을 일으키며,
以救衆生(이구중생)으로 起大悲心(기대비심)하며,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으로써 大悲心을 일으키며, 또
以持正法(이지정법)으로 起於喜心(기어희심)하며,
정법을 가짐으로써 喜心을 일으키며,
以攝智慧(이섭지혜)로 行於捨心(행어사심)하며,
지혜를 섭수함으로써 捨心을, 차별을 버리는 마음을 일으키며, 또
以攝慳貪(이섭간탐)으로 起檀波羅蜜(기단바라밀)하며,
慳貪을 섭수하는 것으로써 檀波羅蜜. 보시바라밀을 일으키며, 이제 사무량심이 끝나고 육바라밀이 나오지요.
以化犯戒(이화범계)로써 起尸羅波羅蜜(기시라바라밀)하며,
계 범하는 사람을 교화하는 것으로써 지계바라밀을 일으키며,
以無我法(이무아법)으로 起羼提波羅蜜(기찬제바라밀)하며,
無我法으로써 인욕바라밀을, 忍辱(인욕)과 무아는 유마경에서는 계속 같이 다닙니다. 사실은 무아가 되어야 그것이 제대로 된 인욕이라는 뜻이지요. 무아법으로써 인욕바라밀을 일으키며,
以離身心相(이이신심상)으로 起毘離耶波羅蜜(기비리야바라밀)하며,
身心相을 떠난 것으로써 찬제바라밀, 毘離耶波羅蜜,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며,
以菩提相(이보리상)으로 起禪波羅蜜(기선바라밀)하며,
菩提相으로써 선정바라밀을 일으키며,
以一切智(이일체지)로 起般若波羅蜜(기반야바라밀)하며,
일체지혜로써 반야바라밀을 일으키며,
敎化衆生(교화중생)하되 而起於空(이기어공)하며.
중생을 교화하되 공에서 일어나야 된다. 그래요. 弘經三軌(홍경삼궤). 또는 홍법삼궤 라고 해서 법을 펴는데 라든지, 경을 펴는데 라든지 불법을 전하는데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하지요. 慈室(자실)ㆍ忍衣(인의)ㆍ空座(공좌). 그럽니다. 자비의 집과 인욕의 옷과, 자비의 집에서 인욕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되는데, 그것은 空座라고 그랬어요. 일체법이 공한 그런 철학이 밑에 깔린 그 위에서 비로소 법을 설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아니하고는 그것이 쉽게 제대로 설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如來座(여래좌)라고 하는 것은 空座입니다. 공의 이치. 그래서 공에서 일어나야 된다.
不捨有爲法(불사유위법)하고 而起無相(이기무상)하며,
유위법을 버리지 아니하고 무상을 일으키며
示現衆生(시현중생)으로 而起無作(이기무작)하며,
중생을 示現하는 것으로써 無作을 일으키며
護持正法(호지정법)으로 起方便力(기방편력)하며,
정법을 호지하는 것으로써 方便力을 일으키며
以度衆生(이도중생)으로 起四攝法(기사섭법)하며,
중생제도 하는 것으로써 四攝法을 일으키며
以敬事一切(이경사일체)로 起除慢法(기제만법)하며,
일체 사람들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으로써 除慢法, 교만을 제거하는 법을 일으키며,
於身命財(어신명재)에 起三堅法(기삼견법)하며,
身ㆍ命ㆍ財. 몸과 목숨과 재물에 있어서 三堅法을 일으켜, 세 가지 견고한 법. 身ㆍ命ㆍ財는 견고 않은 것인데, 오히려 그것을 반대로 견고한 법을 일으킨다.
於六念中(어육념중)에 起思念法(기사념법)하며,
여섯 가지 六念中에 思念法을 일으키며,
於六和敬(어육화경)에서 起質直心(기질직심)하며,
六和敬에서 質直心을. 곧은 마음을 일으키며,
正行善法(정행선법)으로 起於淨命(기어정명)하며,
善法을 바로 행함으로써 淨命을 일으키며,
心淨歡喜(심정환희)로 起近賢聖(기근현성)하며,
마음이 청정해서 환희함으로써 賢聖 가까이함을 일으키며,
不憎惡人(불증오인)으로 起調伏心(기조복심)하며,
사람을 증오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調伏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以出家法(이출가법)으로 起於深心(기어심심)하며,
출가 법으로써 深心을 일으키며,
以如說行(이여설행)으로 起於多聞(기어다문)하며,
설법하는 대로 행함으로써 多聞을 일으키며,
以無諍法(이무쟁법)으로 起空閑處(기공한처)하며,
갈등이 없고 다툼이 없는 법으로써 空閑處를 일으키며, 空閑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텅 자리지요. 그래서 누구하고도 어떤 문제하고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趣向佛慧(취향불혜)로 起於宴坐(기어연좌)하며,
부처님 지혜에 趣向하는 것으로써 宴坐를 일으키며, 편안히 앉아있는, 그냥 앉아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한 그런 앉음이지요.
解衆生縛(해중생박)으로 起修行地(기수행지)하며,
중생의 속박을 풀음으로 해서 修行을 일으키며,
以具相好(이구상호)와 及淨佛土(급정불토)로 起福德業(기복덕업)하며, 상호를 갖추는 것ㆍ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것. 이런 것으로써 福德業을 일으킨다. 그것이 다 복덕 업이 되는 겁니다. 모양을 갖추는 것ㆍ세상을 정화하는 것ㆍ세상에 뭔가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 淨佛土 아닙니까?
그것으로써 福德業을 일으키며,
知一切衆生心念(지일체중생심념)하야 如應說法(여응설법)으로 起於智業(기어지업)하며, 일체 중생의 心念을 알아서 應說法이라. 딱 맞춰서, 그들에게 맞추어가지고서 설법하는 것으로써 智業을 일으킨다. 이것이 지혜의 업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지요. 그야말로 일방통행 하는 것입니다. 일방통행... 대개 어디서 포교하고 설법하고 하는 것이 잘못 하면 그럴 수가 있습니다. 지혜로써 관찰을 잘 하고 해서 조금 한 단계 올려주고ㆍ한 단계 올려줘야지 얼토당토않은 것 가지고, 그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 가지고 그냥 이야기해서 헛세월 보내는 그런 것은 참 고려해야할 바입니다.
知一切法(지일체법)이 不取不捨(불취불사)해서,
일체 법이 취할 것도 아니고 버릴 것도 아닌 줄 알아가지고서
入一相門(입일상문)으로 起於慧業(기어혜업)하며,
一相門에 들어가는 것으로써 慧業을 일으키며, 智業ㆍ慧業 ←이것을 나눠서 쓰지요.
斷一切煩惱(단일체번뇌)와 一切障碍(일체장애)와 一切不善法(일체불선법)하고 起一切善業(기일체선업)하며,
일체 번뇌와 일체 장애와 일체 不善法을 끊어 버리고, 一切善業을 일으키며,
以得一切智慧(이득일체지혜)와 一切善法(일체선법)으로 起於一切助佛道法(기어일체조불도법)이니, 일체 지혜와 일체 선법을 얻음으로써 一切助佛道法. 불도를 도우는 법을 일으키며,
如是(여시)하야 善男子(선남자)여 是爲法施之會(시위법시지회)니,
이와 같이 해야 선남자야, 이것이 法施. 법을 베푸는 모임이다.
若菩薩(약보살)이 住是法施會者(주시법시회자)는,
만약 보살이 이러한 法施會에 머무는 사람은 그것이야말로
爲大施主(위대시주)다. 부처님 스스로도 “나는 대시주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뭘 시주한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시주한 것이 뭐가 있어요? 법을 시주했기 때문에 비로소 “나는 대시주다. 중생의 대시주다.” 참 근사한 말이지요. 여기도 이렇게 나왔네요. 법을 베풀어야 그 사람이야말로 대시주다. 亦爲一切世間福田(역위일체세간복전)이여.
또한 “일체 세간의 복전이 된다.” 라고 합디다.
世尊(세존)이시여 維摩詰(유마힐)이 說是法時(설시법시)에,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할 때에 婆羅門衆中二百人(바라문중중이백인)이, 바라문 대중 가운데 200명이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 모두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습니다.
我時(아시)에, 저는 그때에 心得淸淨(심득청정)하야, 마음에 청정함을 얻어서
歎未曾有(탄미증유)하야, 未曾有를 찬탄해서, 그래서
稽首禮維摩詰足(계수예유마힐족)하고, 유마힐의 발에다가 稽首예배하고,
卽解瓔珞價直百千(즉해영락가치백천)하야 以上之(이상지)하니,
곧 가치가 백 천 냥이나 나가는 그런 瓔珞보주를 풀어가지고서 그에게 바쳤더니, 그 분이 不肯取(불긍취)어늘, 기꺼이 안 받아, 그래서
我言居士(아언거사)여 願必納受(원필납수)하야,
제가 말하기를, 거사여 원컨대 納受하소서. 좀 받아주십시오. 저의 정성입니다. 隨意所與(수의소여)하소서. 그리고는 당신이 받아서 마음대로 쓰십시오.
던지든 버리든지 누굴 주든지 알아서하십시오. 隨意所與하소서.
維摩詰(유마힐)이 乃受瓔珞(내수영락)하야,
바로 영락보주를 받아가지고서, 分作二分(분작이분)이라. 둘로 떡~ 나눠가지고
持一分(지일분)하야 施此會中一最下乞人(시차회중일최하걸인)하고,
모인 사람 중에 제일 가난한 걸인에게다 하나는 주고
持一分(지일분)하야, 또 하나는 奉彼難勝如來(봉피난승여래).
難勝如來에게 바쳤다. 아주 중요한ㆍ재미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나옵니다. 難勝如來에게다 바쳤다. 여래에게 바치고, 하나는 最下乞人. 제일 못난 걸인에게다 바쳤다. 그러니까 一切衆會(일체중회)가, 거기 있던 모든
衆會들이 다 皆見光明國土(개견광명국토)의 難勝如來(난승여래)하며,
광명국토에 계시는 난승 여래를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又見珠瓔(우견주영)이, 또 보니 보주영락이, 珠瓔이
在彼佛上(재피불상)하여, 저 부처님위에서
變成四柱寶臺(변성사주보대)라. 네 기둥으로 된 그 어떤 臺가, 누대가 떡~ 만들어져 가지고서 四面이 嚴飾(사면엄식)하되, 아주 장엄이 잘 되었더라. 그리고 不相障蔽(불상장폐)러라. 서로서로 가리는 것이 없이 다 투명하게 환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어떤 네 기둥으로 된 보배누각이 떡~ 되었더라.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難勝如來도 보고, 보배대가 된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時(시)에도, 그 때에 維摩詰(유마힐)이
現神變已(현신변이)하고, 신통변화를 나타내마치고서
又作是言(우작시언)하되, 또 이런 말을 하되
若施主(약시주)가 等心(등심)으로, 만약에 시주가 평등한 마음으로
施一最下乞人(시일최하걸인)하면, 한 분의 最下乞人에게 베풀 것 같으면 猶如如來福田之相(유여여래복전지상)이라. 마치 여래 福田의 모양과 똑 같아서 無所分別(무소분별)이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제일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여래에게 주어서 그 복을 얻는 모습하고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야~! 이것 참,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못하지요?
無所分別 =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等於大悲(등어대비)하고, 평등하게 대비 심으로써
不求果報(불구과보)하면, 과보를 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是則名曰具足法施(시즉명왈구족법시)니라. 이것이 제대로 완전한 법보시가 된다. 라고 하니, 城中一最下乞人(성중일최하걸인)이 見是神力(견시신력)하며 聞其所說(문기소설)하고, 城中 한 最下乞人이 그 신력을 보고, 그 설하신 바를 듣고는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일세, 모두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 했을세. 아~! 이것 참, 무서운 소리지요. 걸인에게 베푼 것 하고 부처님에게 준 것 하고 그 복이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 無所分別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실을 안 사람들은 다 보리심을 발 했을세.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하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그 분에게 나아가서 문병할 수가 없습니다.
如是諸菩薩(여시제보살)이 各各向佛(각각향불)하야,
이와 같이 모든 보살이 각각 向佛하야, 부처님을 향해서
說其本緣(설기본연)하며, 그 본래의 인연을 설하며
稱述維摩詰所言(칭술유마힐소언)하고, 유마힐이 말한 바를 稱述해.
“아~ 유마힐은 이런 분입니다. 이런 분입니다.” 하고 모두ㆍ모두 자기가 유마힐을 만나서 있었던 그런 사연들을 쭉~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皆曰不任詣彼問疾(개왈불임예피문질)이라하니라.
모두ㆍ모두 저는 도저히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참 길기도 길지요? 10대 제자, 그리고 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만 500명의 제자. 그리고 또 보살들, 보살들도 여기에 등장한 보살 말고도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如是諸菩薩 했습니다. 많은 보살들도 다 이렇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정말 유마경에서, 그 당시 유마경이 편집될 시기까지의 모든 불교를 종합해가지고 이 유마경에다 다 실었습니다. 여러 번 반복 되고, 또 중복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조목ㆍ조목 다 여기에 실어가지고 이 한 편의 유마경으로 불교 전체를 다 꿰뚫도록 해놨습니다. 사실 여기서 법수라든지 중요한 낱말 같은 것. 시간 관계상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만, 그것을 다 낱낱이 분석하고 교리에 꿰어 맞춰서 해석하기로 하면, 그대로 불교 총수가 됩니다. 하나도 안 빠뜨리고 불교 총수가 다 됩니다. 이것은 그와 같이 짜여져 있습니다. 제자 품과 보살 품. 그 두 편만 가지고도 그런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계획을 3권까지 생각 했는데, 생략을 많이 하니까 예상보다 진도가 많이 나가네요. 이야기가 상당히 장황하게 진행 되어 왔지만, 그 안에 우리가 눈을 떠야 하고, 느끼고 깨달아야 할 점들이 너무 많이 사이사이 보석처럼 박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