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hoid Mary 1】
【Typhoid Mary】 영국 웹스터사전에는 Typhoid Mary란 뜻이 '남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짓이나 해악을 끼친 사람'으로 풀이...
찰스 엘리엇 워런 씨의 부인은 1906년 8월에 요리사를 해고했다.
여름이 끝나려면 몇 주가 남은 터여서 요리사가 필요했다.
당시 미국에는 가사 노동자가 남아돌았다.
어림잡아 230만 명쯤 되었다.
하지만 워런 부인처럼 까다로운 고용주들은 좋은 가사 노동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고용주에게 좋은 가사 노동자란 곧 특정한 인종과 민족과 종교인을 의미했다.
워런 부인은 직업소개소에 요리사 하나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했다.
직업소개소에서는 평범한 음식을 잘하는 Mary Mallon이란 요리사를 소개했다.
워런 부인은 새로운 요리사에 대해 만족했다.
메리 맬런이 일했던 집들 가운데 뉴욕 시에서 내로라하는 사회 지도층 가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가 받는 월급은 45달러(요즘으로 치면 1,180달러)였다.
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받는 급료보다 두 배 많았다.
당시 메리는 37세의 미혼이었고, 가족도 자식도 없었으며, 단 하루도 앓아누운 적이 없을 만큼 건강했다.
훌륭한 추천서도 두둑했다.
한집에서 일한 기간이 기껏해야 1,2년 정도로 짧긴 했지만 그거야 여느 가사 노동자와 견주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메리 맬런은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였다.
당시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태생의 여성 가운데 80% 이상이 가사 노동자로 억척스럽게 일했다.
많은 고용주도 대부분 아일랜드 노동자를 칭찬했다.
메린 맬런은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로 갔다.
메리는 새 일터에 적응해 갔다.
그동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말수도 적은 메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메리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똑똑하지만’‘대화에 통 끼지 않는’여자라고 했다.
성미가 괄괄하고 ‘늘 보는 눈빛만으로’ 끽소리도 못 하게 할 여자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 메리는 자신의 사생활이나 과거 얘기가 나올라치면 입을 아주 다물어 버렸다.
주로 혼자 지냈고, 다른 사람 일에 상관하지 않았으며, 그저 자신이 맡은 부엌일에만 신경 썼다.
고용주에 관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고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은 그 집에 묻어 두는 축이었다.
한마디로 좋은 가사 노동자의 특성을 두루 지니고 있었다.
메리는 부지런했다.
항상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청소를 다하고 요리 준비를 했다.
이 집에 온 지 3주쯤 지난 어느 일요일이었다.
메리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고 그릇에 따로따로 담아서 워런 가족에게 내다 주었다.
8월이 끝나 가던 어느 날
아홉 살 된 마거릿 워런이 무척 피곤해하고 빌빌거렸다.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급기야 고열이 나고 설사까지 했다.
워런 부인은 처음에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당시 여름철에 어린아이들이 설사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마거릿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열은 40.5도까지 오르더니 헛소리까지 했다.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오고 냄새가 지독했다.
워런 부인은 곧바로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확진 판정을 내렸다.
마거릿이 장티푸스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1906년에는 장티푸스를 예방할 면역법이 없었다.
백신은 1911년에 발명됐고,항생물질은 1942년,장티푸스 치료제로 쓰이는 클로로마이세틴은 1949년에야 발명됐다.
일주일 만에 다섯 사람이 더 발병했다.
장티푸스의 가장 흔한 원인은 오염된 식수이다.
워런 부부도 식수가 오염됐다고 확신하고 서둘러 안전한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사는 집은 맨해튼의 부촌 지역에 있었다.
메리는 워런 가족의 집에는 따라가지 않았다.
9월이 다 가도록 오이스터베이의 집은 비어 있었다.
9월 말에 집주인인 톰슨 부부가 오이스터베이로 돌아왔다.
톰슨 부부는 ‘뉴욕 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못 본 것이 분명했다.
1906년 9월 11일 자 1면에 워런 가족에 관한 기사가 실렸던 것이다.
‘한 집에서 다섯 명이 발병하다’라는 제목으로.
여름이 끝났으니 워런 가족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톰슨 부부는 자기네 집이 장티푸스 전염병의 진원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원사도 그 병에 걸렸다.
톰슨 부부는 충격을 받았다.
장티푸스는 부자촌 오이스터베이에서는 흔한 질병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아는 한 장티푸스라면 불결한 환경이나,용변 및 위생 습광이 철저하지 못한 빈민층과 관련이 있었다.
워런 가족이 그럴 리 없었다.
자기네 집에 장티푸스의 근원지라는 오명이 붙으면 어찌 될지 뻔했다.
톰슨 씨는 곧바로 지역 보건소에 연락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