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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역습(逆襲)-3 별동대의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혈방의 외벽을 넘어와 무차별 도살을 시작 할 수 있었고, 상대의 대항도 약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도적패가 여염집을 강탈한 것처럼 쉽게 일은 진행됐다. 그러나 모용혜와 악중악이 넋을 잃고 정문에 모여 있던 호위무사들을 전멸시키고 혈방의 총 단 안에 들어온 시점부터 상황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 건물에서 칼을 찬 혈방의 무인들이 꾸역꾸역 나오면서 일방적인 도살의 행진은 멈추고 말았다. "크아악!" "죽어라!" 사방이 칼부림이었고 피가 튀며 죽어 가는 자들로 넘쳐날 정도로 곳곳이 격전의 현장이었 다. 피가 내를 이루고 시신이 쌓여갔지만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혈투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연무장에서 시작된 격전은 혈방 전체로 번져갔다. "처절하구나." "그렇군요." "악 각주. 예상보다 혈방의 방어력이 두텁군요." "강북 흑도를 지배하는 혈방입니다. 아무리 정예가 빠졌다 해도 이 정도의 저력은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 아닙니까." "흥! 썩어도 준치라 이건가." 모용혜는 싸늘하게 비웃으며 사방에 펼쳐진 격전의 현장을 노려보았다. 별동대가 우세한 싸움을 펼치고 있었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적의 진영에는 제대로 된 고수급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홍면금살군이 이렇게 어리석은지 몰랐어. 아무리 장강 전선이 중요하다지만 제대로 된 고 수 하나 남기지 않고 싹쓸이로 끌고 가 제집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그만큼 혈방의 위세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마 혈방의 총단을 치겠냐는 방심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이지요." "호호호, 그렇기는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나중에 제 집이 이렇게 된 줄 안다면 과연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붉은 얼굴이 더 붉어지거나 하얗게 변하지 않겠습니까." 악중악과 모용혜는 처절한 격전장 앞에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당장 눈앞에서 한 생명이 목 이 잘려 비참하게 사라졌는데 희희낙락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서 혈방 총단의 내부도 쓸어버릴 수 있겠군." "그렇습니... 헉!" 갑자기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자 악중악은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고 고개를 돌렸다. 뜻 밖에도 별동대가 넘어간 외벽 위에 흑포(黑布)로 온 몸을 감싼 검은 복면의 괴인들이 서 있 었다. 거의 일백에 가까운 괴인들을 확인한 악중악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저자들은?" "선자불래(善者不來)라 했듯 좋은 뜻을 가진 자는 아니겠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괴인들이 일제히 담장에서 몸을 날려 착지하자 모용혜와 악중악은 긴장했다. 괴인들이 착 지할 때 일체의 소음도 없이 깨끗한 자세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전원 고수급의 실력자라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수들이군." "저들보다 정문 위에 남아 있는 자가 더 큰 문제인 것 같군요." 악중악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황금 가면을 쓴 괴인이 버티고 있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 만 섬뜩해 보이는 기세 속에는 엄청난 힘이 내재한 것처럼 보여 악중악과 모용혜는 숨이 막 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오악맹의 다섯 맹주 중에 하나인 금면객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정체를 밝히시오." 악중악이 외쳤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괴인들은 격전장을 향해 걸어가 기 시작했다. 그런데 괴인들의 절반은 오른발을 나머지 절반은 왼발을 일제히 내밀었을 뿐 아니라 올라가는 발의 높이와 모든 행동이 똑같아 기괴하게 보였다. 정 중앙에서 절반을 나눈다면 그들은 마치 거울을 보고 행동하는 그림자와 같았다. "백혼(百魂)?" 괴인들의 왼쪽 흉부에 금박으로 박혀 있는 글자였다. "저들을 부르는 이름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저들을 막아야 한다는 것인데..." 백혼의 위세에 질린 모용혜는 자신감이 떨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 손놓고 구경할 수는 없었다. 모용혜와 악중악은 내력을 모으며 각자의 병기를 꺼냈다. 그러나 괴 인들은 두 사람을 일체 무시하는 듯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너무 무시하는군." 악중악은 괴인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격분해 한빙열화공을 극한까지 운용해 양손바닥이 터질 정도로 진력을 집중시켰다. 음양팔반장을 사용해 괴인들에게 오만한 행동 을 한 값을 치르게 해주려는 것이다. 휙. 그러나 악중악의 계획은 금면객이 날아오르는 순간 깨져버렸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금면객 은 새카만 감산도를 뽑더니 악중악과 모용혜를 향했고 백혼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 기 엄청난 속도로 격전장을 향했다. 백혼이 달려가는 모습은 마치 검은 해일과 같았다. 악중악과 모용혜는 양옆으로 괴인들이 검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달려갔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허공에서 자신들을 향해 내리 꽂는 금면객의 기세가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검은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졌고 오직 금면객에게 신경을 집 중해야 했다. 쿠아앙~. "커억!" "허억~." 금면객이 감산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자 지옥의 마수가 포효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 왔고 악중악과 모용혜는 일시에 오장육부가 뒤틀려 버렸다. 콰쾅. 금면객의 감산도가 대지를 후려치자 강력한 폭풍과 함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제기랄... 이, 이건 뭐야?" 악중악과 모용혜는 포효하는 도명(刀鳴)을 듣는 순간 내장이 뒤틀리면서 내공이 흐트러져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를 막을 방법이 없어 뇌려타곤을 펼쳐 피신했다. 뇌려타곤을 사용한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수치스러움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단 일격에 천지가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땅바닥에 근 사, 오장 넓이의 웅덩이가 생 긴 것을 보고는 모골이 송연해져 수치심 따위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금면객이 사용한 도법의 이름은 모용혜의 얼을 빼놓았다. "귀곡도(鬼哭刀)!" 금면객의 도법은 강호칠대금지무공 중에 하나인 귀곡도였다. "그, 그런..." 악중악은 소름이 끼쳐 말을 잇지 못했다. 귀곡도가 나타난 것도 문제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금면객의 경지였다. 금면객이 무려 4단계의 극한에 도달한 귀곡도를 펼친 것이다. 강 호칠대금지무공은 각 단계별로 올라갈 때마다 그 역량이 2배에서 3배로 증가한다. 게다가 3단계의 경지부터 나타나는 가공할 위력과 폐해가 강호에서 일곱 가지 무공을 습득 을 엄금시켰던 것이다. 강호칠대금지무공을 5단계에 도달한 자가 나타난 세 차례를 칼을 찬 무인들이라면 누구든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면객이 4단계 경지의 귀곡도 를 선보였으니 악중악의 두려움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군요."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 선 악중악은 주변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군요." 모용혜는 귀곡도를 펼칠 때 발생한 굉음이 만들어 낸 참경에 치를 떨었다. 귀곡도의 끔직 한 위력은 금면객을 중심으로 반원 십장 이내에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생명체 는 귀에서 푸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게다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주변상황을 바꾸어버렸다. 굉음을 듣고 살아 남았더라도 평형감각을 잃거나 내공이 순간적으로 단절을 당했고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자들은 기절 해버렸다. 백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대 도살을 감행해 일대참극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가깝게 있었던 모용혜는 나부파의 비전지학인 명공강 덕분에 내상을 입은 정도 로 끝났고, 악중악은 한빙열화공의 이원진기가 순환하는 힘으로 겨우 버텨냈다. 그러나 그 들이 목숨을 연명한 이유는 금면객이 재차 공격하지 않아서였다. 악중악과 모용혜는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더 이상 공격할 의사가 없는지 석탑처럼 서 있는 금면객의 태도는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듯해 두 사람이 모멸감에 빠지게 만 드는데 충분했다. "으드득. 순간의 방심으로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다니..." 모용혜는 이를 갈며 통한의 외침을 터트렸다. 그러나 금면객이 귀곡도를 사용할 때까지 멍 청하게 기다린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이상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나마 명공강 덕분에 엄 중한 내상을 피했고 절반이나마 되는 내공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너희들은 살려주겠다. 어서 떠나도록 해라." 금면객의 음성은 쇠를 긁어내리는 소리처럼 갈라진 탁성(濁聲)이었다. "허! 뭐라고..." 악중악과 모용혜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주변을 보아라.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오직 너희만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금면객이 가리킨 곳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악중악과 모용혜를 스치고 지나간 백혼 은 혈방과 별동대를 가리지 않고 도살하고 있었다. 대부분 단 일격에 혈방과 별동대의 무 사를 양단시키고는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유령처럼 움직이는 백혼은 검은 야수와 같았다. "쌍방을 모두 도살하다니..." "제 삼의 적이군." 악중악과 모용혜는 백혼의 정체가 사뭇 궁금해졌다. 그들이 알아낸 것은 백혼의 절반은 좌 수도(左手刀)를 남은 반은 우수도(右手刀)를 사용하며 무척 강하고 잔인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눈앞에 있는 황금가면의 남자이며 귀곡도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금면객과 대화해 정보와 함께 시간을 벌기로 했다.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파악하 면서 동시에 내상을 안정시키고 내력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악중악은 정중한 말투로 질문을 했지만 금면객은 단 한마디의 대꾸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만 보았다. "우리를 왜 살려주는 것이죠?" 모용혜는 나름대로 고도의 계산을 깔고 침묵을 고수하는 금면객에게 질문을 했다. 대답의 내용에 따라 금면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 나 금면객은 모용혜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대답했다. "목숨을 구걸 받아도 그 이유는 알아야 마음이 편하겠군요."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현실에 모용혜는 말투가 거칠어졌다. "가라." 금면객은 모용혜의 기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간단하게 말했다. 게다가 단 한 구절 의 말은 두 사람을 격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하하하, 아무리 이런 상황에 빠졌다지만 너무 심하구려." "흥! 또다시 이런 무시를 당해야 할지 몰랐구나. 모용혜야. 모용혜야. 너는 참으로 불쌍하구 나..." 악중악과 모용혜는 참기 어려운 수치심에 전신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러나 금면객은 두 사람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는지 시선을 격전장을 향해 돌려버렸다. "흐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엄습하자 악중악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게다가 금면객의 시선이 향 한 격전장의 상황도 참담한 심정을 부추겼다. 정예가 빠진 혈방의 무인들은 그렇다 치더라 도 팔마당에서 추려낸 별동대조차 백혼의 손에 무참하게 유린을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 영대와 구청림의 활약이 없다면 벌써 몰살을 당했을 것이다. 그만큼 백혼은 강했다. "도대체 저런 고수들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진 걸까..." 모용혜는 비밀리에 키운 고수들과 마영대를 가지고 노는 백혼의 역량에 질려 팔다리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저들이 사용하는 도법은 쾌속함과 신랄함을 동시에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도법을 분명히 처음 봤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군요." 악중악은 백혼이 사용하는 도법을 보면 볼수록 익숙하다고 느껴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들의 도법은 오직 빠름만을 추구하는 산서쾌도문의 도법과 달리 신랄한 변화와 강력한 힘까지 갖추었어요. 나는 단 한 번도 저런 도법을 본 적이 없어요." 모용혜는 백혼이 사용하는 도법이 익숙하다는 악중악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백혼의 도법은 그 운용방식은 고사하고 명칭조차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익숙하다는 말이 나왔는지 의아한 것이다. "저도 이해할 수 없지만..." "크크크..." 금면객이 갑자기 살기를 내뿜으며 소름끼치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자 악중악은 말을 중간 에 멈추었다. "서, 설마..." "이, 이런..." 금면객의 두 눈동자에 핏빛이 가득해지면서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쏟아지자 모용혜와 악 중악의 뇌리에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귀곡도의 5단계 경지." "그렇다면 살육에 미쳐버려 모든 생명을 도륙(屠戮)한다는..." 악중악과 모용혜는 아찔해졌다. 강호칠대금지무공이 5단계에 도달한 자를 만나면 무공의 강 약을 떠나 그 살기와 광기에 눌려 공포에 빠져버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떠올리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그러나 천지사방에 메운 금면객의 살기와 광기가 두 사람의 전신을 옥죄여 숨쉬기조차 거북 한 상태였다. 도망갈 길은 고사하고 별동대에게 후퇴하라는 명령조차 낼 수 없는 모용혜 의 심정은 참담 그 자체였다. "이런 빌어먹을..." 악중악과 모용혜는 금면객이 걸어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며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 이지도 못했다. 이제는 수치심이나 모멸감은 바람 속에 사라진 먼지와 같았고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뱀의 살기에 눌린 개구리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목숨을 받쳐야 하는 신 세를 벗어날 방법을 강구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크크크, 모두 죽이리라." 살기와 광기가 가득한 나지막한 목소리. 등골이 서늘해지는 음성을 듣고도 암담한 현실 속 에 허우적대야 하는 두 사람. 서서히 올라가는 칼. 두 사람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조종(弔鐘)같은 칼 울림. 그 긴박한 순간,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또 다른 공간이 형성된 그 순간, 갑자기 금면객 의 등뒤에 유령처럼 모용수린이 나타났다. 혈염공을 극한까지 운용해 양 손바닥엔 선혈처 럼 붉은 화염과 광채를 뿜어내면서... 휙. 바람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광기에 젖어 이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금면객이 어떻게 모용수 린의 등장을 알아챘는지 순식간에 회전했다.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번개보다 더 빠르게 돌 면서 칼을 휘두른 것이다. 얼마나 빨랐는지 모든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돌아가던 모용혜와 악중악의 눈에도 금면객의 정면과 칼을 휘두른 뒷모습, 단 두 장면만 보였다. "수, 수린아!" 살의와 광기가 만들어낸 가위가 유리처럼 깨져버렸다. 모용혜는 애타게 모용수린의 이름을 불렀지만 모든 것은 늦은 뒤였다. 금면객의 일격은 모용수린의 허리를 두 동강낸 뒤였다. 퍽. 모용수린의 상체가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내장과 선혈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땅바닥에 쏟아져버렸다. 그리고 모용수린의 하체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아아악~." 모용혜의 비명이 하늘을 갈랐다. 금면객은 모용혜의 비명에 반응을 했는지 몸을 돌렸다. "죽어라." "안 됩니다." 모용혜가 흥분해 달려나가려 하자 악중악이 급히 말렸다. "어서 놔. 빨리 놓으란 말이야!" "팔 당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피투성이가 된 구청림이 어느새 모용혜에게 다가와 말리고 있는 악중악을 도왔다. "어서 놓으란 말이다." 모용혜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금면객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향해 걸어가려고 했 다. 그런데 하체가 잘려진 모용수린이 어느새 금면객의 다리를 두 팔로 붙잡고 있었다. "오, 오라버니... 어서 도망가세..." 퍽. 모용수린의 힘겨운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금면객이 붙잡히지 않은 다리로 모용수린의 머 리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모용수린의 두개골은 수박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으스러져 버리 고 말았다. "으아아악~." 모용혜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악중악은 이대로 나두면 큰일이라고 생각 해 모용혜의 목 뒤에 있는 아문혈( 門穴)을 가격해 일단 기절시켰다. "구 대주. 일단 피합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용혜의 양팔을 잡은 채 금면객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금면객은 그들에게 시 선조차 돌리지 않고 모용수린의 잔해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정신을 찾았는지 더 이상 살기나 광기도 보이지 않았다. "갑시다." 이때가 마지막 남은 기회라 생각한 악중악은 구청림과 함께 모용혜를 부축한 채 바로 도주 해버렸다. 그런데 금면객은 그들이 도망가는 것에는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멍 하니 모용수린의 잔해만 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백혼의 인물 중에 한 사람이 금면객에게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괜찮네. 좌조(坐組) 조장."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이제 한 일년 정도... 아니 반년일 수도 있겠군." "부동심결과 만심진광으로도 어려운 겁니까?" 백혼의 좌조 조장이 뜻밖에도 환객3호가 갈운영에게 조심스럽게 전해준 칠대금지무공의 폐 해를 막을 수 있는 두 가지 수련법을 언급했다. "4단계까지는 문제가 없었네. 그러나 5단계는 통제불능이었네. 그나마 부동심결과 만심진광 덕분에 잠시 올라간 5단계를 4단계로 낮출 수 있었네." "행운이었군요. 그러나 그런 행운이 다시 올리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이 아이도 모용가의 인물이 맞는가?" 금면객은 모용수린의 잔해를 가리키며 질문하자 백혼의 조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런가..." 탄식하는 금면객의 모습에서 잔혹함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용가와 어떤 연관이 있음 을 암시하는 듯 모용수린의 잔해를 바라보는 금면객의 두 눈에 쓸쓸함이 나타나 있었다. "반 각 후면 모든 일이 끝날 겁니다." "그럼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 금면객의 시선은 또다시 격전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별동대나 혈방의 인물들은 거의 참살 을 당해 있었고 남은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감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혼은 용서 가 없었다. 하나 하나 쫓아가 숨통을 끊어주었다. 혈방 총단의 연무장은 더 이상 격전장이 아니었다. 도살장이었다. 운문상단의 상선은 대운하를 타고 남하하고 있었다. 얼마 후면 장강을 눈앞에 두고 있어 상선 내부는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선원들과 달리 편안히 차를 즐기는 남녀가 상선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상선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척씨 부녀였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 "이렇게 하릴없이 차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그건 무슨 말이냐?" 척신명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척금방을 바라보았다. "지금 하북성이 난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강남을 향하고 있으니 그렇죠." "푸른 늑대조각 때문이냐?" "당연하죠." "하하하." "왜 웃으세요?" 척금방은 갑자기 웃는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네 뜻은 그 난장판에 우리가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냐?" "당연하죠. 어떻게 하든 우리가 독차지해야지요." "흥! 어리석구나." "아니요. 전혀 아니에요. 물론 천장별부를 열려면 푸른 늑대조각이 세 개가 모여야 하고 동 시에 열쇠라 할 수 있는 오행도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알아요."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 불 속을 향한단 말이냐?" 척신명의 말투에는 질책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척금방은 오히려 척신명을 딱하 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큰일이 치르려면 그만큼 위험부담을 안아야해요. 분명히 지금 푸른 늑대조각을 얻는다면 많은 위험을 치를 거예요. 그러나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어요." "허허! 어리석다." "어째서요?" "푸른 늑대조각이 나타난 시기와 불같이 퍼지는 소문이 이상하지 않더냐?" "누군가 불을 지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하북성 전역이 난장판이 되지는 않았 겠지요. 아니 어차피 난장판은 되더라도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척금방은 푸른 늑대조각을 이용해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원의 신녀가 푸른 늑대조각을 강호에 흘린 인물이다. 물론 소문을 퍼트리고 사건을 확대 시키고 있는 자들은 신녀의 명령을 받은 구류방의 인물들이지." "이원의 신녀라고요!" "그렇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중요한 건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니다. 과연 이원의 신녀는 무엇을 노리고 푸른 늑대조각을 강호에 흘렸느냐가 문제다." 척신명은 핵심을 찍었다. 척금방은 눈동자를 굴리며 사색했다. 뜨겁던 차가 차갑게 식었을 때 척금방은 이원의 신녀가 노리는 요점을 추론했다. "신녀는 세 가지를 노렸어요. 허어... 포전인옥의 계책을 사용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려 했 어요. 과연 이원의 신녀답군요." "신녀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라 여겨지느냐?" "첫째 강호를 뒤흔들어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에요. 혼수막어의 계책이죠. 두 번째는 푸른 늑대조각을 이용해 시선을 돌렸어요. 아마도 시선을 돌려야할 조직을 노리기 위한 조치겠죠. 마지막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다른 조각을 이 소문을 통해 찾아내려는 거예요." "잘 봤다. 지금 푸른 늑대조각 주변에는 이원의 세력말고도 다른 세력이 웅크리고 있다." 척신명이 말한 내용은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었다. "다른 세력이요?" 척금방을 궁금증을 자극시킨 것은 이원을 제외한 다른 세력이었다. "나도 그 세력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정확하지 않다면 대충 심증이나 짐작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군요." 척금방의 방긋 미소지으며 척신명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 있다면 토해내 라는 뜻이 담긴 미소와 눈빛이었다. "금면객의 세력이라 추정하고 있다." "네! 금면객이라고요!" 척금방은 깜짝 놀라버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척금방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금면객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라고 들었어요." "그렇다.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도대체 그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더구나." "그렇다면 푸른 늑대조각은 금면객 손에 들어간다고 봐야 하잖아요." "음핫하하..." "왜 웃으세요?" 척신명이 대소를 터트리자 척금방은 심통난 사춘기 소녀처럼 행동했다. "너는 지금 푸른 늑대조각에 너무나 욕심을 내고 있구나." "그, 그건..." "좋아. 좋아.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마." "비밀이요?" 뜬금없이 웬 비밀인가. 척금방은 뜨악했지만 혹시나 하며 부친을 바라보았다. "지금 하북성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푸른 늑대조각을 신녀에게 준 사람이 바로 나다." "네~에!"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실 앞에 척금방은 어이가 없었다. "네가 악삼 일행과 함께 이원에 가기 전에 나는 이원의 신녀와 별도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 다. 그때 푸른 늑대조각을 전해 주었지." "왜요?" 척금방의 질문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돼 있었다. 푸른 늑대조각을 왜 주었는가. 이원의 신녀를 왜 만났는가를 비롯해 많은 의미와 질문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허어! 그건 그렇지만...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중요한 물품을 싣고 북경에 간다고 하셨죠." 악삼 일행과 같이 경항항로를 운항했던 상선에 실려 있다던 중요한 물건의 정체가 푸른 늑 대조각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그래. 그때 싣고 간 물건이 현재 하북성을 요절내고 있지." "허!" 척금방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언제까지 부친의 손에서 놀아나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이 암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아~." 척금방은 자신도 모르게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시퍼런 강가로 시선을 돌렸다. 강은 묵 묵히 흐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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