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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금지하소(今至何所)-2
용개 풍시종의 합류는 복수혈의 무인들의 사기를 고양(高揚)시켰다. 팽가적은 고무된 분위
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적운도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당산의 저력은 대단하군요. 소림사의 십팔나한과 개방의 방주님을 비롯해 팔걸사까지 초
빙하다니 정말로 놀랐습니다."
"아니올시다. 이 모든 건 강호의 해악을 처단해 정의를 추구하자는 대의(大義)의 발현(發顯)
이 아니겠습니까."
"옳습니다... 그런데 남은 분들은 모두 무당의 문인입니까?"
팽가적의 질문은 집요하게 느껴질 만도 한데 적운도장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외다. 본 파는 이번 거사에 빈도를 포함해 모두 50명을 투입했소이다."
"그럼 저 세 젊은이는 무당파가 아니라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있다니요?"
"저들은 이번에 큰공을 세운 공령문의 제자들입니다."
적운 도장의 공령문의 제자들을 지적하며 대답해 주었다. 공령문의 세 제자는 적운도장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자 곧바로 팽가적에게 다가왔다.
"언가 삼형제가 팽 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오~, 그대들이 공령문의 제자들이오."
"그렇습니다. 저는 언백이라 하고, 이 두 사람은 제 동생으로 언중, 언계라고 합니다."
뜻밖에도 그들의 정체는 언봉운의 조카인 언가 삼형제였다.
"하하하. 내 그동안 공령문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이번에 사해방의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소. 그런데 자네 형제들을 보니 다시 한 번 공령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겠다
고 생각하게 됐소."
"저희 형제가 불민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자네 형제들 같은 인재를 키울 수 있는 문파라면 능히 명문이라 안 부를 수 있겠는가?"
"과찬이십니다."
언가 삼형제는 본 모습을 숨기고 겸손하게 행동했다. 물론 도적들의 문파인 공령문은 그동
안 본업인 도둑질과 정보상인으로 악명을 떨쳐 정도를 표방하는 문파나 가문들에게 사파의
무리로 불리며 많은 억압을 당했다.
사해방의 정보를 전달한 공으로 복수혈에 속한 문파와 가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얻고는 있
지만 강호 전체에서 보면 아직도 악의 무리 중에 하나로 분류되고 있었다. 언가 삼형제는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행동과 언변에 주의하고 있었다.
"언 형제."
"말씀하십시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아는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사항이라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백의 겸손한 말투는 팽가적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말고 듣기 바라네. 나는 공령문이 사해방의 정보를 넘겨줬을 뿐 아
니라 자네들까지 거사에 동참시킨 이유를 알고 싶네."
"의심하는 건 당연합니다. 사실 본 문이 과거에 보여준 모습과 달라 의아해 하실 겁니다. 그
러나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본 문이 그동안 걸었던 사도(邪道)를 버리고 정도(正道)로
탈바꿈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언백의 당당한 선언은 높은 호응을 일으켰다.
"아미타불. 선재로다. 선재. 이 모든 것은 부처님의 은덕이라 아니 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공령문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참회하고 정도로 귀화한 것을 보니 선악은 마
음에 달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일우대사와 풍시종은 공령문의 행동에 감동했다. 팽가적도 감탄했는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탄성을 질렀다.
"훌륭하네. 정말 훌륭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삼형제 사사로운 뜻을 품고 왔으니 찬
사를 받을 만한 것도 아닙니다."
"사사로운 뜻이라... 그건 무엇인가?"
"저희 형제들 역시 원한을 갚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언백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원한이라? 사해방과 공령문 사이에 발생한 원한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인가?"
"무명소졸에 불과한 저희들이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그럼 문파간의 문제로군."
"그렇습니다. 저희는 사백의 원한을 갚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사백이라면 혹시 강동오괴의 한 사람인 무영수 진삼 선배를 말하는 것인가?"
팽가적은 언백이 말하는 사백이 누구냐고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각 파의 수장들은 언백의 대답을 듣고 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공령문이 호의적으
로 나온 것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언백의 설명으로 모두 풀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령문
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풀리자 언가 삼형제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언가 삼형제에 대한 문제마저 해결되자 각 파의 수장들은 각각 일우 대사와 용개에게 몰려
가 앞으로 사해방과 치를 격전에 대해 논의를 벌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회의
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의 설전을 치르며 각 파의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최대쟁점은 사해방을 기습하느냐, 아니면 정정당당하게 통보를 하고 싸울 것인가, 이 두 가
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치열한 설전 끝에 야밤에 기습공격을 감행 결정을 내리자 회의
분위기는 파장(罷場)하는 듯 했다.
"여러분. 오늘 회의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소이다. 하나 하나가 충실했고 만족할 내용이었
지만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오. 하지만 모든 것이 결정된 이상 더 이상의 사견이나 분
란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계획한 대로 진행할 길밖에 없소이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의 설전이나 회의는 시간 낭비입니다. 결정한 대로 내일 밤 자시에 사
해방을 공격하면 되는 겁니다."
적운도장의 논평이 끝나기 무섭게 절강여가의 가주인 여진평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옳소이다."
각 파의 수장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한 가지 사실을 밝혀야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맹주님."
"사해방은 몇 개의 가문이 연합한 거대 세력입니다.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
금력과 무력도 필요하지만 뛰어난 정보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정보망
을 뚫고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문파가 전력을 다해 공작을 벌인 덕분입니다."
적운도장의 발언을 들은 각 파의 수장들은 얼음보다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 부운 느낌이었
다. 그들은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했기에 무사히 집결지에 도착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사고 없이 모인 것까지는 좋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남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가 됐다
는 불쾌함과 그런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
"풍 방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적운도장은 풍시종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각 파의 수장들 얼굴은 기묘하게 변해
버렸다. 그 이유는 풍시종에게 있었다. 각 파의 수장들과 풍시종의 나이는 별 차이가 없었
다. 그러나 명성과 능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각 파의 수장들은 위급한 상황이라 풍시종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마음은 열등감
과 질투가 숨어 있었다. 게다가 도움을 받았는데 그 사실을 모르다 못해 기밀 유지를 훌륭
하게 해냈다고 생각한 자신들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본 방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여러분들이 기밀유지를 철저히 지켰기 때
문이다. 또한 사해방의 시선이 파양호 전투에 쏠린 덕분입니다."
풍시종은 겸손한 말투로 공을 돌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각 파의 수장들 얼굴은 비참하게
변해갔다.
"풍 방주의 흉금이 넓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시 허언이 아니었소이다. 빈도는 다시 한번 풍
방주에게 감탄했습니다."
각 파의 수장들은 적운 도장의 칭찬을 경청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황혼이 지고 어둠이 깔리자 회의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각 파의 수장들은
제각각 임시로 거처할 장소로 이동했다.
풍시종은 적당한 장소를 골라 터를 잡았다. 계절은 늦은 봄이지만 절강성은 한 여름이나
다름없어 임시로 거처할 장소를 특별히 만들 필요는 없었다. 바닥을 대충 쓸고 잎이 무성
한 나뭇가지 몇 개를 대충 엮어 지붕을 만들면 끝이었다.
"사부님. 질문이 있습니다."
팔걸사 중에 한 명이 풍시종에게 질문했다.
"무엇이냐?"
"사해방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북해방주의 부탁이 있었다."
"네! 그럴 리가..."
"믿기 힘드냐?"
팔걸사는 어리둥절하다가 풍시종의 질문을 받자 일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개방의 최정예라 불리는 팔걸사는 뜻밖에도 전원 모두 풍시종의 제자들이었다.
"그렇겠지. 아니 미치지 않은 이상 자기 본거지를 공격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사해방의 내분이 극대화됐기 때문입니다."
팔걸사 중에 다른 한 명이 중간에 끼어 들었다.
"정확하다."
"그렇다면 저들의 내분에 우리 개방이 낄 이유는 더욱 없지 않습니까?"
풍시종의 칭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처음 질문을 던진 제자는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다. 우리는 이번에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동참해야 한다. 북해방주는 황충을 넘기는
대가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동창까지 동원해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적당한 수준
에서 밀약을 체결했지만 그 굴욕을 잊을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그때의 굴욕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풍시종과 팔걸사의 눈동자에 시퍼런 광채가 번뜩였다.
"북해방주의 요청대로 사해방을 공격하겠다. 아니 총력을 기울여 멸망시켜 버리겠다. 그리고
북해방마저 멸망시키고 말리라."
풍시종은 북해방을 향한 증오심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화월영은 악삼을 찾기 시작했다. 악삼이 매복한 장소를 정확히 몰라도
어느 근방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동이각의 총력을 다해 악삼이 이동하는 경로를 추적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악삼이 잠복한 야산은 수풀로 가득해 쉽게 찾기는 힘들었다.
"정말... 지겹군. 산 속에 숨어 있는 건 확실한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반나절을 헤맸지만 산토끼나 노루조차 구경하지 못한 화월영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러다가는 몇날며칠을 헤매도 악삼의 옷자락도 구경할 수 없겠군. 머리를 쓰자. 머리를..."
화월영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내가 악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화월영이 찾아낸 방법은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래... 눈앞에 적의 소굴이 있고 나는 혼자다. 그러나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악삼이 먼저
할 행동은 정보를 얻는 것이야. 그렇다면 총단의 전경이 보이고 잠복이 가능한 장소로군."
화월영은 악삼이 숨어 있을 장소를 차근차근 추리해 갔다.
"이 산에 그런 장소는 모두 다섯 곳이지만 그 중 세 곳은 초소가 있지. 그렇다면 그 두 군
데 중에 한 곳에 있겠군."
화월영의 시선이 남단의 봉우리와 북단에 있는 절벽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화월영의
뇌리에 벼락처럼 영감(靈感)이 스쳐 지나갔다.
"저곳이야!"
화월영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북단에 있는 절벽이었다.
"악삼은 뛰어난 경공을 가지고 있었지. 그렇다면 설령 들키더라도 탈주가 용이한 장소에 잠
복해 있을 거야. 저곳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겐 험악한 지형이지만 악삼에겐 별 무리가 없을
거야. 오히려 그 지형 때문에 포위의 위험도 없고 탈주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
화월영은 독백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북단에 있는 절벽의 뒷부분을 올라
갈 수 있는 작은 길이었다. 화월영이 절벽에 도착하는데 무려 두 시진이나 걸려야 했다.
우회로인 작은 길은 구곡양장인 듯 끝없이 꼬불꼬불했고 하나같이 험난했기 때문이다.
두 시진동안 난리를 치고 올라온 덕분에 시장기를 느낀 화월영은 들고 온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에는 만두와 구운 오리, 그리고 술 한 병이 들어 있었다. 화월영은 절벽 끝에 음식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젠장... 점심시간이 지나다 못해 저녁시간이 가까워졌군... 내참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이런
야산이나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세라니..."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 절벽 위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다면 누구든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절벽 근처에서 매복을 하고 있던 악삼의 눈에도 화월영은 이상한 여인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여인이 안면이 있고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라면 더욱 이상한 일이다. 악삼은 찰
향적의 기공을 극한까지 사용해 주변을 파악했다. 근처에는 화월영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악삼은 화월영을 노려보며 고민을 하다가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하염없이 사해방 총단을 구경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
다. 악삼은 망량을 사용해 화월영의 등뒤에 나타났다. 마치 유령처럼...
"술을 나누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헉!"
등뒤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나오자 화월영은 깜짝 놀래버렸다.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
를 빠르게 돌려 등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순간 화월영의 입가에 나온 것은 안도의 한숨이
었다.
"소주에서 기루를 운영하신다는 분이 이 험악한 곳에는 어인 일입니까?"
"망했거든요."
"기녀원도 망합니까?"
"당연하죠. 달도 기울면 차는데 한낮 기루가 영원하기를 빌겠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자살이라도 할 요량으로 올라온 겁니까?"
악삼의 싸늘한 말투에도 화월영은 방글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아니에요. 기루는 망했지만 밥벌이를 못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오히려 지금이 더 좋다
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악 대협을 만나러 왔지요."
화월영은 생글거리며 손가락으로 악삼을 가리켰다.
"설마 아직도 오행도를 얻으려는 겁니까?"
"호호호, 아니에요. 그보다 미천한 저를 악 대협께서 기억하고 있는 게 놀랍군요."
"소주의 객잔에서 너무 인상적인 만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호! 그럼 천녀의 이름도 기억하시겠군요."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하십시오. 월. 영."
악삼이 자기 이름을 짧게 끊어 부르자 화월영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뭇 남성의 마음
을 한순간에 뒤흔들 만큼 황홀한 미소를 받았지만 악삼의 표정은 한치의 흔들림이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용건을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역시 악 대협은 재미가 없어요."
화월영은 교태가 넘치게 행동했다. 그러나 악삼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흐응~, 내 비록 악 대협보다 나이가 많지만 아직 볼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어요."
두 눈동자에 슬픔을 은은하게 깔며 동정을 호소했지만 그 역시 악삼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후우~, 정말 지독하군요. 좋아요. 제 용건은 악 대협에게 이것을 주기 위해 왔어요."
화월영이 가리킨 것은 술과 안주였다. 악삼의 표정은 그때서야 바뀌었다.
"장난은 그만 하십시오. 장 총사가 내게 주라고 한 물건을 내놓으십시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군요. 아니면 머리가 좋은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내가
사해방에 투신했다는 정보를 구한 건가요?"
"누가 사해방에 투신했든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장 총사의 밀지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화월영은 궁금했다. 자신이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려고 온 쥐라는 사실과 장소군이 모략
을 세운 거라는 것을 악삼이 눈치챘는지.
"사람이나 짐승을 잡을 때 덫은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미끼는 다릅니다. 사람을 덫으로 유
인하려면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미끼를 풀어야합니다."
"호! 그럼 내가 미끼라..."
악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확실한 미끼가 되기로 하죠."
"장 총사가 보낸 미끼나 어서 푸십시오."
"아까도 말했듯이 장 총사가 보낸 것은 저거예요."
화월영은 다시 한번 술과 음식을 지적했다. 악삼은 화월영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더
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군요."
악삼은 술과 음식을 쳐다보았다. 평범한 술과 만두, 그리고 오리구이였다. 그런데 깔려 있
는 보자기가 평범하지 않았다. 보자기에는 사해방 총단의 평면도와 사해방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 있었다. 악삼은 음식을 치우고 보자기 안에 있는 내용을 바라보았다.
"장 총사는 상당히 재미있는 여인이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악 대협."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오호! 총명한 악 대협도 모르는 게 있었군요."
화월영의 말투에 빈정거림이 가득했지만 악삼은 일말의 표정변화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
려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실려 있지 않은 눈으로 화월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악삼의
시선은 화월영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장 총사는 무엇 때문에 집법원을 붕괴시키려고 하는 것이오?"
"집법원을 붕괴시키다니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분명 보자기에는 내 원수인 환객이 지금 어느 장소에 있는지 적혀 있소. 그러나 환객을 죽
이려면 집법원 전체와 싸워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악삼은 짧은 시간에 보자기가 전해주는 정보를 파악했던 것이다. 그것도 숨어있는 의미까
지...
"놀랍군요. 정말로 놀라워요... 하긴 생각해 보니 소주에서 악 대협을 처음 대면했을 때 전혀
강호초출답지 않게 움직여서 나를 놀라게 했지요."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것이 아닙니다."
"좋아요. 내가 항복하죠. 사실 장 총사는 사해방을 재구성하고 싶어해요."
"그렇다면 북해방과 서해방, 남해방을 정리하지 어째서 애꿎은 집법원을 없애려는 겁니까?"
장소군이 집법원마저 없애려는 이유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글쎄요? 내가 장 총사가 아니라서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게다가 나는 동해방에 투신한
지 얼마 안 돼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군요."
"알았습니다."
악삼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장소군이 집법원을 잡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잡으려는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
만 기호지세(騎虎之勢)의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 감행해야겠다.'
악삼은 사해방 총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에 의해 사해
방 총단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석양이 무척 아름답군요."
"천하의 악 대협도 감상적인 면모가 있으시군요."
악삼은 고개를 돌려 화월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으로 허공
을 빠르게 일곱 번 찔렀다. 태을지의 요결 중에 점의 기법이었다.
"컥!"
순식간에 일곱 군데 혈도가 봉쇄되자 화월영은 낮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녀는 나무토막
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혀마저 굳었는지 말 한 마디는 고
사하고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내공이 봉쇄 당해 해혈(解穴)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정확하게 하루가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럼 인연이 있다면 다음에 또 만나리라
믿고 이만 가겠습니다."
망부석으로 변해버린 화월영을 뒤로하고 악삼은 절벽 끝에 섰다. 절벽의 높이는 무려 사십
여장에 달했고 땅바닥은 기암괴석이 가득했다. 제아무리 경공의 달인이라 해도 함부로 몸
을 날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휙.
그러나 악삼은 가볍게 몸을 던졌다. 악삼은 낙화유수(落花流水)처럼 밑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절벽 중간마다 자라난 나무와 튀어나온 바위를 디딤돌처럼 이용해 부드럽
게 착지했다. 족히 한 시진은 달려야할 거리를 악삼은 단 한번의 도약으로 해결한 셈이다.
"지금부터 시작이군."
황혼이 지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사해방 총단을 악삼은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바람처럼 달
려갔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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