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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2025년 10월 2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전시합니다.
✺ 별 헤는 밤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이런 시인詩人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尹東柱), 「별 헤는 밤」, 1941. 11. 5. (유작)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들의 일이니...》로 유명하며 한국에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함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언급되는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프랑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 <말테의 수기>로 유명한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문학가. 독일어권 문학가 중에서 으뜸으로 평가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한국 시인 백석, 김춘수와 윤동주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이를 차용한 윤동주의 시인 '별 헤는 밤'에도 이름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한국 서정시에서 그의 비중은 상당히 크며 해외 시인 중에서도 인기가 좋다. 릴케의 묘비명: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말테의 수기」 요약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말테의 수기』는 덴마크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가 파리에서 쓴 일기 형식의 내적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28세의 말테는 시인이 되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도시의 현실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가난과 질병, 죽음의 그림자가 도처에 드리워진 파리에서 그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말테는 생 제르맹 거리의 초라한 하숙집에서 지내며 매일같이 파리의 거리를 방황한다. 그는 도시의 소음, 냄새, 군중들 속에서 극도의 감각적 예민함을 보이며, 타인들의 고통과 절망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낀다. 특히 병원과 영안실 근처를 지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거리의 걸인들과 병자들을 보며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절감한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있다"고 말하며, 도시에서의 이러한 경험들이 그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준다고 여긴다.
말테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자신만의 죽음"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의 몰개성적 죽음이다. 그는 병원에서 일률적으로 처리되는 죽음들을 보며, 진정한 개인적 죽음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할아버지 브라헤 백작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간에 죽었으며, 이것이 말테에게는 이상적인 죽음의 모델이 된다.
파리에서의 현재와 평행하게, 말테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한다. 덴마크와 독일의 성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귀족 가문의 전통과 몰락, 가족들의 기괴한 이야기들이 파편적으로 되살아난다. 특히 울스가드 성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령을 보고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했으며, 이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연결된다.
말테의 가족사는 몰락하는 귀족 문화의 상징이다. 그의 아버지 사이드 브리게는 덴마크 군인이었지만 일찍 죽었고, 어머니 역시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말테는 이러한 상실감 속에서 자라며, 외로움과 고립감을 내면화했다. 가족의 오래된 초상화들과 유물들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몰락을 대비시키며, 시간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말테는 역사적 인물들과 문학적 인물들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그는 도서관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과거의 인물들, 특히 강렬하게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포르투갈의 수녀 마리아나 알코포라도, 루이즈 라베, 가스파라 스탐파 등의 여성들이 보여준 절대적 사랑에 대해 탐구하며,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분석한다.
특히 말테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연인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대상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이다. 이는 릴케 특유의 사랑 철학으로, 개인의 내적 성장과 예술적 창조를 위한 사랑의 개념이다.
말테는 또한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한다. 그들이 보여준 절대적 헌신과 영적 고양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자신 역시 그러한 절대적 경험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종교적 신앙을 갖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괴로워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말테는 "탕자의 비유"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다. 성경의 탕자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용서를 받지만, 말테가 그리는 탕자는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떠난 사람이다. 이 탕자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이 베푸는 사랑조차 거부하고 다시 떠나려 한다. 이는 말테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타인의 사랑이나 인정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소설은 명확한 결말 없이 끝난다. 말테의 수기는 미완성으로 남겨진 채, 그의 내적 여정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독자는 말테가 과연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영적 성취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니면 파리의 절망적 현실에 굴복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실존적 탐구의 지속성과 인간 조건의 근본적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릴케의 의도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의 꿈을 이룬 영광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오기까지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독립운동가, 강제 징용 노동자, 학도병, 위안부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손장섭의 작품, 강순애 할머니의 비극적 개인사를 매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어낸 김인순의 작품, 군함도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과 죽음을 다룬 김정헌의 작품, 마지막으로 1919년 일본에 대한 영원한 혈전을 결의한 조선청년독립당의 「2.8 독립선언서」를 현대 국제 사회의 맥락으로 확장한 히카루 후지이(藤井光)의 작품을 전시한다.
광복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서울시립미술관은 광복80주년을 맞이하여 광복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주요 소장품과 가나아트컬렉션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가나아트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중미술 및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광복 이후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남북분단을 직접 겪었던 세대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이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95%는 광복 이후에 출생하였으며, 이들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서 광복 전후 일련의 근현대사를 접하고 배웠다. 이번 전시는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담론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사회, 정치, 역사적인 맥락과 개인의 서사를 살펴봄으로써 시대적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전시는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고난과 희생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어지는 두 번째 파트에서는 6.25전쟁의 참혹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루며, 세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 이후 지속된 분단이 초래한 비극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성찰한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공존을 그려낸 작품들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1940-50년대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 의지를 담은 시를 작품과 함께 구성하여, 시대적 울림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 죽음이 드리운 전쟁의 잔인함, 이념 대립으로 갈라진 남북의 현실에 대한 슬픔 등이 시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던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1919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선포한 「2.8 독립선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우리 겨레는 일찍부터 뛰어난 문화와 반만년 국가생활의 경험을 갖고 있다. 비록 많은 세월 전제정치의 해악과 경우의 불행이 우리 겨레를 오늘로 이르게 했지만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선진국의 전범을 따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뒤에는 문화, 정의,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반드시 세계평화와 인류문화에 공헌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는 앞선 세대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용기로 이루어낸 자유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이번 전시는 광복80주년을 계기로 광복의 가치를 되새기며, 평화와 화해의 미래를 여는 서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14점과 가나아트컬렉션 7점을 함께 선보입니다.
○이응노, <인간군상>, 1983.
이응노(1904-1989)는 1920년대에 사군자 중에서도 묵죽(墨竹)에 탁월한 서화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58년 도불한 후, 1970년대 파리에서 무용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발레나 현대무용, 동양 고전무용 등의 다양한 공연을 접하며 무용단이 열을 맞추어 춤을 추는 동작을 스케치로 남겼다. 무대 위에서 다수가 하나로 균형감 있게 어우러지며 통일된 장관을 만들어내는 군무는 그에게 있어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을 것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매진한 <군상> 시리즈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한 아픔과 상흔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마치 글씨를 쓰듯이 드로잉으로 표현된 사람의 형상은 이 작업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다양한 대형으로 춤을 추고 있는 인간 형상들은 두세 개의 간결한 획으로 그려졌지만 그 속에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 깃들어 있다.
○손장섭, 조선총독부,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127.5×158cm.
손장섭(1941-2021)은 “예술은 시대의식의 소산”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삶의 역사가 배어있는 풍경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린 동명의 시리즈 중 하나로, 근대기 한국사회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면 왼쪽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기시키는 조선총독부가, 가운데에는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벗어나 완전한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독립문(1897년 준공)과 수많은 시신들이, 그 오른쪽에는 일장기를 상기시키는 핏빛의 원과 죽은 이들이 엉켜있다. 회색 바탕에 그려진 손발이 결박된 조선인들과 일본 순사로 추정되는 인물, 이미 목숨이 끊어진 듯 보이는 사람들의 형상은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처참함을 시각화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독특한 화면 재구성을 통해 우리의 식민 역사를 소환하며 여전히 미해결된 식민지 잔재 청산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시킨다.
○김인순, '울음', 1996, 종이에 아크릴릭, 85×127cm.
김인순(1941-)은 여성미술을 개척하고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행동주의 미술의 초석을 다진 작가다.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순애 할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강 할머니는 199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대한 국제공청회에 나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다. 이때 김인순은 일본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용기 내어 고발하며 눈물 흘렸던 할머니와 현장의 인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였다. 화면 속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산의 굴곡진 능선과 겹쳐지고 그 너머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 풍경은 할머니 고향인 마산 무학산에서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마산에 살다가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강 할머니는 고초를 겪다가 5년 후 돌아왔지만, 이웃과 가족에게 상처받고 다시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위안부 피해 여성이 고국에 돌아온 후에 겪은 삶에 주목하였다.
○김정현, '달의 중력으로 군함도를 격파하라', 캔버스에 아크릴릭, 72.5×90.8cm.
김정헌(1946-)은 민중미술의 대표 주자로 1980년대 초반부터 문물, 도시화, 분단 조국의 상황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하시마섬(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역사를 다룬다. 하시마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탄광으로 온도가 45도를 넘고 수시로 해수가 쏟아져 들어오며 유독가스가 분출되는 환경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질식, 폭발사고,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 등으로 사망하기도 하였다. 화면의 중앙에는 욱일기 모양의 잿빛 하늘 아래 군함도가 있고, 칠흑 같은 바다 아래에는 탄광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위로는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동그라미 패턴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군함도를 격파하는 달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과거 주권 없는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시각적 장치이다.
○히카루 후지이, <2·8 독립선언-일본어로 낭독하기>, 2019.
일본에서 출생하여 도쿄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이자 영화제작자 히카루 후지이(藤井光, 1976-)는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 설치 작업을 한다. 특히 후지이는 주제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현장조사를 통해 과거의 사건을 동시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 작품은 1919년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를 오늘날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이 낭독하도록 한 것이다. 작가는 베트남 역시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인민의 요구서를 제출했지만 신한청년당의 요구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과 현대 일본 사회에서 베트남인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에 주목하여 베트남인 유학생들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도쿄 변두리에 거주하며 일을 병행하고 있는 학생들로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일본어 실력은 서툴지만, 이들이 읽어 나가는 독립선언서의 문장들은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로 공명한다.
파트 2.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초토의 시·8-적군묘지 앞에서」 /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초토(焦土)의 시(詩)』, 대구: 청구출판사, 1956.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안긴 비극적 사건이다. 군인 피해는 한국군,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을 모두 합쳐 322만 명에 달했으며, 민간인 피해는 남북한 총 249만 명이었다. 6.25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한 민족이 이념을 이유로 서로에게 총을 겨눈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휴전 이후에도 지속되어, 전쟁고아와 이산가족 발생, 전후 세대의 교육 기회 박탈, 남북 이념 대립에 따른 사회적 불신과 갈등의 고착화와 같은 사회적 피해를 남겼으며, 국토의 황폐화와 농업 기반 파괴로 인한 식량난 발생 등 경제적 피해도 초래하였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예술로 승화한 권순철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불안한 시대를 보낸 경험이 반영된 송창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권순철, '넔', 1988, 캔버스애 유채, 129×96cm.
권순철(1944-)은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거친 붓칠, 두꺼운 마티에르, 뭉개진 형상, 어둡고 탁한 색조를 통해 표현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주로 ‘산’과 ‘얼굴’, 그리고 ‘넋’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삶의 애환을 표현하였는데, 이 세 가지 주제는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넋> 시리즈는 신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의 유년 시절 6.25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물감을 반복적으로 덧발라 매우 거칠고 두꺼운 마티에르를 표현하였으며 어두운색과 밝은색을 대조적으로 처리하여 비물질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넋’의 존재를 감각적이고 강렬하게 형상화하였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역사와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보편적인 정서로서 대중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송창, '무명용사고지(상사리고개)', 1986, 캔버스애 유채, 181.8×227cm.
송창(1952-)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일찍이 한국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가졌다. 1982년에 창립한 소집단 ‘임술년’의 동인으로 활동한 그는 시대가 처한 진실을 그림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1984년부터는 우리 민족의 분단 현실을 작업에 담아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겪으며 자랐던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이 작품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백마고지의 철책선을 표현한 것이다. 백마고지는 6.25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로 한국군과 미군이 중국 인민 지원군과 싸워 승리한 곳이다. 작가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철책과 기대어 있는 해골을 통해 분단과 죽음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철책에 붙어있는 “먼저 보고 먼저 쏘자” 표지판은 당시의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파트 3.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휴전선(休戰線)」 / 박봉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건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조선일보』, 1956.1.1.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한반도의 비극은 지속되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풀어낸 작품들을 살펴본다.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손장섭과 신학철의 회화, 탈북민과 실향민의 개인적 서사를 풀어낸 신미정과 임흥순의 영상, 휴전상황에서 초래된 한반도의 여러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한 노순택, 노재운, 류인, 이용백, 함경아의 작품, 마지막으로 1990년대 비무장지대 문화운동을 주도하며 행동한 이반의 예술 포스터인 판화 작품을 포함한다.
○노재운, <세 개의 개방>, 2001
한국 초기 웹아트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노재운(1971-)은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위성사진 등을 수집, 분석, 결합하여 웹영화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후 제작된 것으로,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영상 <공장>은 인터넷에서 찾은 북한의 핵시설로 추정되는 장소의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하여 북한을 방문했던 당시 남한 측 정부 인사들이 북한의 공장들을 방문하는 내용을 담은 남한의 TV 뉴스 소리가 오버랩 된다. 두 번째 영상 <산불>은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산불에 대한 내용으로 작가는 이 산불을 누가 진압할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세 번째 영상 <E-3 조기경보기>는 미군의 최첨단 정보수집기계인 공중조기경보관제기(AWACS )의 모습과 “해빙기”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남한의 한 TV 프로그램인 <북한말 한마디>의 소리가 겹쳐지고 있다.
○임흥순, <북한산>, 2015.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1969-)은 개인과 사회의 서사를 담은 영상을 통해 여성 노동자, 제주 4.3사건, 탈북민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소외되어 온 주제를 다뤄왔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이주해 온 여성 김복주의 이야기이다. 새벽부터 김복주가 한복을 입고 북한산을 오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향 풍경, 친구들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 아버지가 들려준 인어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 남한에서 자신의 생활, 통일에 대한 의견으로 이어진다. 원효봉에 도달하자 남한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복주는 <임진강>을 부르는데,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애달픈 마음이 담겨있다. 남한의 사람들은 북한을 여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을 낯설고 멀게 느끼는데, 작가는 이러한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일상 속에서 친근하게 접하는 북한산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하였다.
○신미정, <자신의 경로>, 2016.
신미정(1983-)은 강대국의 개입이나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장소를 상실한 사람들과 그들이 여전히 되찾지 못한 공간에 대해 다뤄왔다. 특히, 광복과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록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된 개인의 삶에 주목해 왔다. 이 작품은 속초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1세대인 권문국 할아버지의 삶을 다뤘다. 작품의 제목 “자신의 경로”는 6.25전쟁 당시 22살 북한군 출신 청년이었던 권 할아버지가 직접 쓴 일기장의 제목이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 죽음을 면하기 위해 탈영하여 남한의 군에 입대한 뒤 다시 북한으로 귀환하지 못하였다. 통일이 되면 바로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속초에 자리를 잡았던 할아버지와 실향민들은 7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발이 묶여있다. 작가는 실향민들의 고향상실에 대한 슬픔을 권 할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를 통해 풀어내었다.
○신학철, '이 한 몸 죽어서라도', 1988, 캔버스애 유채, 26×34cm.
신학철(1943-)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한 주요인물 중 한분이다.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시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개인의 고통과 마주하고자 한다. 관념적인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로서 민족의 수난사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실향민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회화 작품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을 상징하고, 흙에서 솟아오른 노인의 손 하나가 그 철조망을 애타게 어루만지며 죽어서라도 고향에 이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철조망 너머에는 꽃이 피어있는 푸른 초원과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멀리 분홍치마를 입은 여인이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전쟁 통에 생이별을 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손창섭, '시골길', 1988, 캔버스애 수채, 53×57cm.
손장섭(1941-2021)은 전라도 완도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영향으로 자연을 터전으로 하는 소박한 삶을 그렸는데, 이러한 풍경화는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 마을의 모습이 아니라 그곳에 서려있는 삶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 작품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시골길 위에 엄마와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손장섭의 작품에 등장하는 길은 항상 북으로 뻗어있는데, 이는 통일에 대한 작가의 염원이자 의지를 보여준다. 길 위에 있는 엄마와 아이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현실과 꿋꿋하게 맞서는 민중을 상징한다. 하늘과 나무 등의 자연풍경은 평면적 질감과 짧은 터치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작업 초기부터 관심을 두었던 추상에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편 작가는 수채화에 흰색 물감을 섞어 탁하지만 부드러운 자신만의 색을 내었는데, 차분한 색을 사용하여 내적 진실에 다가서게 만드는 것은 그의 작품의 주요 특징이다.
○함경아, ‘나가사끼, 히로시마 버섯 구름’, 2009-2010, 북한 손자수, 면사 위 실크사, 중간자, 밀수, 뇌물, 긴장감, 불안감, 검열, 이데올로기, 나무 프레임, 약 2,200시간/4명.
함경아(1966-)는 자수 공예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탐구해 왔다. 특히 남북한의 이념 갈등, 권력 구조, 전쟁과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며, 남북한을 잇는 협업을 통한 소통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북한자수회화’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손자수로 재현한 것이다. 2008년 집 마당으로 날아든 북한 ‘삐라’에서 착안한 작가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로 도안을 제작해 천에 인쇄한 뒤, 이를 중국을 거쳐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완성된 작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안과 작업 지시서는 또 다른 형태의 ‘삐라’가 된다. 디지털 이미지가 노동집약적 수공예로 변환되는 과정은 남북한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검열과 압수 등의 난관 속에서도 이루어진 협업은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예술적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반, '비무장지대를 민족공원으로 만들자', 1988, 종이에 속판, 89×68.5cm.
이반(1940-)은 월북자의 아들로서 연좌제로 인한 고통을 겪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분단의 아픔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70-80년대 단색회화를 기반으로 캔버스에 구멍을 뚫거나 밀어 올리고 찢고 구기는 등 신체적 개입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내었다. 이 작품은 88 서울올림픽 공식 예술 포스터 판화로 제작되었다. 화면 중앙에는 X자 형태로 교차하는 횃불이 있으며, 배경에는 작가가 자필로 써 내려간 휴전협정문, DMZ를 평화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구상, 작가 가족의 계보, 작품 기획 단계에서 그린 드로잉과 작성한 메모 등이 적혀있다. 횃불의 기둥은 인간의 대퇴골을 형상화한 것으로, 6.25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상징한다. 작가는 서울올림픽이 분단을 초래한 국가들이 모여 평화를 기리는 축제라는 모순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작품에 담았다.
○이용택, 엔'젤 솔저-사진 01', 2004-2007, 디지털 C-프린터, 225×180cm.
이용택(1966-)은 미디어아트,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인간 존재와 사회적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왔다. 이 사진 작품은 ‘군인이 천사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엔젤 솔저> 시리즈에 속한다. 언뜻 작품을 보면 화려한 인조 꽃들로 화면이 가득 차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으로 위장한 군복을 입고 총부리를 겨눈 채 전진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무리 꽃으로 군복을 장식한다 해도 군인이 천사일 수는 없다. 언뜻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남한의 일상 속에서도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핵 문제 등 다양한 위협이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작가는 세상이 꽃밭이라면 군복도 꽃무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노순택, '얄웃한 공 시리즈, 2004-2007',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60×90cm(×4).
노순택(1971-)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을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가이다. 그는 한국의 분단 체제가 만들어낸 정치적 폭력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며,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시각적 은유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조명한다. 이 시리즈는 평택 대추리 황새울 들녘의 공 모양 구조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작업이다. 이 구조물은 물탱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의 군사시설 레이돔(Radome)이다. 레이돔은 미군의 첩보 수집에 사용되는 돔형 레이더로, 한국 안보를 둘러싼 미국의 존재를 암시한다. 미군 기지 확장으로 대추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국가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익숙했던 구조물이 사실은 그들을 밀어내는 거대한 힘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삶이 충돌하는 장면을 포착하였다. 작가는 공을 달이나 골프공처럼 연출해 촬영하였는데, 이러한 유희적 방식은 현실의 부조리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류인, '부활-궤도수정', 1993, 철, 176×50×50cm.
류인(1956-1999)은 주로 근육이 강조된 남성의 육체를 조각으로 재현하면서도, 이를 압축, 절단, 왜곡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억압된 심리나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한 작가이다. 작가는 “조각은 보는 이와 함께 숨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인간의 양면성이나 인간 존재의 불안과 같은 삶 그 자체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입방체 모양의 철근 구조 안에 군모를 쓴 남성의 두상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속 머리만 남은 무기력한 표정의 남성은 6.25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헛된 죽음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반영하는 듯하다. 류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입방체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의 구조를 의미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입방체가 선만 남도록 해체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극복과 변혁에 대한 희망을 암시한다.
파트 4. 먼저 온 미래 : 마지막 파트에서는 예술이 정치적, 이념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먼저 온 미래’는 탈북민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번 파트에 전시된 전소정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확장될 수 있는 반핵, 반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이응노의 한국화, 빛나는 하나의 한반도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조각에 투영한 박희선의 조각, 남북한의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에 그려낸 이세현의 회화, 남한과 북한의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음악을 작곡하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온 전소정의 작품을 통해 화합과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기대해 본다.
○박희선, ‘한반도-빛’, 1995, 동, 67×124×10cm.
박희선(1956-1997)은 한국 리얼리즘 2세대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조각으로 풀어내었다. 작가는 산, 씨앗, 한복 입은 여인, 자물쇠, 매통 등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조형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작품 내용 면에서도 한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하였다. 특히 분단을 주제로 한 작품과 함께 산의 형상을 한 인체 조각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박희선의 작품들 중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1991년 유럽 여행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한 <한반도> 시리즈 중 하나다. 금속을 재료로 두 팔을 벌린 사람과 같은 형상을 만든 것으로, 중심에서 발원한 빛이 퍼지는 모양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빛’이라는 긍정과 희망의 주제를 선택한 것은 한반도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응노, ‘반전평화’, 1986, 한지에 수묵, 206.5×136.5cm.
이응노(1904-1989)는 도불 이후 1970년대의 <문자추상>을 거쳐 1980년대의 <군상> 시리즈까지 서예의 필치와 공간구성을 기반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이 작품은 문자추상과 결합된 <군상> 시리즈 중 하나로 무수히 많은 사람의 형상을 군집되게끔 ‘그려서’ 문자를 ‘쓰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일제시기와 해방, 도불과 동백림 사건으로 인한 1년 6개월간의 옥중생활 등 대한민국의 격동기와 함께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응노의 관심사는 언제나 민중의 애환과 평화였다. <군상> 시리즈는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후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럼으로써 ‘반전’, ‘반핵’ 등의 국제적인 이슈를 포용하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세현, '붉은 산수 70', 2008, 리넨에 유채, 162×130cm.
이세현(1967-)은 전통 산수화의 형식과 서양화의 묘사 기법을 결합하여 현실과 관념이 교차하는 풍경화를 창조한다. <붉은 산수> 시리즈는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본 비무장지대(DMZ)의 붉은색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비무장지대는 민족 분단의 비극적 상징이지만, 보존된 자연환경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모순을 느꼈다. 작가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남한과 북한의 풍경을 콜라주 하듯이 배치하여 하나의 산수화를 완성함으로써 분단의 아픔을 넘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시리즈의 초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백두대간에서 굽이굽이 뻗어 나오는 산맥과 사이에 위치한 농지와 농가, 강가의 정자, 등대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전소정, <먼저 온 미래>, 2015.
전소정(1982-)은 영상, 설치,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비선형적인 시공간을 구축해 왔다. 이 작품은 ‘이념적 대립을 예술로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작가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을 초대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음악적 대화를 통해 하나의 곡을 완성하도록 제안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곡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처럼 두 음악가가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이 곡은 북한 민요 <용강기나리>와 남한 동요 <엄마야 누나야>의 선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두 연주자가 작곡 과정에서 나눈 대화와 악보가 영상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2025년 여름 뮤지엄나이트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계 영화 <동주> 상영회
2025년 7월 4일 저녁, 서울시립미술관 뮤지엄나이트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계 영화 <동주> 상영회'가 열립니다. 올여름 서울시립미술관 뮤지엄나이트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로 준비하여, 광복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전시 관람과 영화 <동주> 상영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인생을 담은 흑백영화로 여름 속 녹아있던 몸과 마음을 고요히 밝히는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일시 : 2025. 7. 4. (금) 18 ~ 21시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동 1층 로비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드레스코드 : 블랙 & 화이트
(18 ~ 19시) 윤동주시인의 시 필사, 흑백사진 촬영, 전시기획자와 함께하는 전시 관람/ (19 ~ 21시) 영화 <동주> 관람.
○<동주> 영상 시집
https://tv.kakao.com/v/74021294
●영화 「동주」 줄거리 :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 시대.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암흑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윤동주를 기독교에 가두는 것은, 예수를 시멘트 교회 건물에 가두는 것과 유사하다. 윤동주는 ‘예수’ 그 본질을 따르려 했다. 예언자의 징표인 “종소리도 울리지 않는”* 교회에 실망하여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행복한 예수의 길을 따르는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갈 가능성도 컸다. 판결문으로 시작하는 <동주>는 첫 장면부터 성찰을 자극한다. 이제까지 존재를 몰랐던 송몽규의 등장도 중요한 선택이었다. 몇 가지 디테일에 아쉬움이 있지만 흑백영화로 만든 귀하고도 겸손한 영상은 한국영화사에, 특히 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사에 빼 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6년 제13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김응교) 이준익 감독의 최신 작품으로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다. 한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인 윤동주와 송몽규.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시인이 될 수 없었던 청춘. 영화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윤동주와 송몽규가 겪어야 했던 가혹한 현실 속에서 꿈을 찾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윤동주의 시를 통해 한 시인의 마음을, 한 청년의 마음과 시대의 정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윤동주 시인 서거 71주기, 윤동주의 반짝이는 시만큼이나 찬란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흑백 화면으로 차분히 풀어냈다. 최근 떠오르는 신예 배우 강하늘과 박정민의 케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2016년 제4회 무주산골영화제)
◆핵폭발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안전할까?
photo 게티이미지
올해 8월은 일본의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80주년이 되는 달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 당시 승기를 잡은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일은 현재까지 실전에 핵무기를 투입한 최초이자 마지막 사건이다.
당시 폭격 중심지 근처의 온도는 열복사(물체에서 열에너지가 전자기파로 방출되는 현상)로 약 3000~4000도가 넘었다. 중심지는 태양의 표면 온도인 약 6000도에 달했다. 이로 인해 히로시마에서는 7만여명, 나가사키에서는 3만5000여명이 즉사 또는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증발해버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일본 정부가 작성한 ‘원폭 사몰자 명부’의 기록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히로시마 32만8929명, 나가사키 18만9163명 등 총 51만8092명이 원자폭탄 투하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폭발에도 불구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사선 피폭으로 설사, 피부병, 백혈병, 암 같은 각종 병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음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에게까지 피폭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덮치는 것은 빛과 열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핵무기의 위험성을 확인한 인류는 핵감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2년 6월 연례 보고서를 통해 각국이 군사 전략상 핵무기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SIPRI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보유 중인 핵탄두는 약 1만2200여개다.
2024년 1월 기준 핵탄두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방대한 핵탄두를 축적했다. 다음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으로 막강한 핵무기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어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순이다.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며 핵무기 개발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핵탄두 보유량은 국가의 군사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러시아와 미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을 대거 보유 중이다. ICBM은 5500㎞ 이상의 사거리를 자랑하며, 미국의 전략 폭격기는 86t임에도 시속 1530㎞로 날아간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이란에서 발발한 최근의 전쟁 사태를 보면서 혹시 히로시마의 핵전쟁이 재현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핵미사일 4발로 미국 동부와 남부를 쓸어버릴 수 있다’며 핵무기를 협박 수단으로 활용한 바 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 내가 사는 이 땅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최근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얼럿(Science Alert)은 핵폭탄의 원리를 바탕으로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답했다. 핵폭발 이후 살아남을 수 있는 키워드는 시간, 거리, 최소 지하 60m 이상의 깊은 대피소 등 총 3가지다. 폭발 지점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오랫동안 대피소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생존 방법이라는 것이다.
단, 전제조건은 핵폭탄의 피해를 추정할 정확한 방법은 없다는 게 매체의 설명이다. 핵폭탄이 투하되는 날의 날씨, 폭발 시간, 핵폭탄이 떨어지는 지리적 위치, 그리고 핵폭탄이 지상에서 터지는지 공중에서 터지는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핵폭탄 폭발 시 생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단계들이 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보다 80배 크지만 현대 핵무기보다는 훨씬 작은 1메가톤의 폭탄이 폭발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가장 먼저 우리를 덮치는 것은 빛과 열이다. 빛의 속도로 열복사가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핵폭발로 인한 에너지의 약 35%가 폭발 10초 후 열복사의 형태로 방출된다. 핵폭발은 원자의 핵이 분열 또는 융합하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 현상이다.
이때의 빛만으로도 ‘섬광 실명’이라는 시력 상실을 일으킬 수 있다. 섬광 실명은 몇 분 동안 지속되는 일시적인 시력 상실이다. 1메가톤 크기의 폭탄이라면 맑은 날에는 최대 21㎞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섬광 실명을 경험하고, 최대 85㎞ 떨어져 있어도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시력 상실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85㎞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한다.
폭발 지점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열기가 문제다. 가벼운 1도 화상은 최대 11㎞ 떨어진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보다 가까운 8㎞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피부 조직을 파괴하고 물집을 형성하는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신체의 24% 이상을 덮는 3도 화상은 즉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폭발 현장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인체가 탄소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원소로 즉시 분해되었을 것이다.
○방사선 피폭 피하려면 무조건 멀리 있어야
핵폭발이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폭발파(폭풍)다. 핵폭발은 폭발 지점의 공기를 밀어내 급격한 기압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폭발파를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1메가톤의 핵폭탄이 터질 경우 폭발 지점 반경 6㎞ 내에서는 2층 건물 벽에 180t의 힘이 가해지고, 풍속이 시속 255㎞에 달해 건물이 쉽게 무너진다.
반경 1㎞ 내에서는 그 기압이 4배, 풍속은 시속 756㎞에 달해 생존이 불가능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그 정도의 압력에 인체가 견딜 수 있지만, 무너진 건물에 눌려 죽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여기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방사선 피폭이 뒤따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황폐화시킨 폭발은 폭탄이 도시 상공 수백 미터에서 공중 폭발했다. 그 때문에 지표의 물질이 공중으로 적게 확산되었다. 만약 폭탄이 지상에서 폭발했다면 지표면의 대량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흩날리면서 바람을 타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을 것이다.
핵폭발 주변에서 낙진에 포함된 600rem(렘·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단위)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24시간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낙진은 핵폭발에 의해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먼지, 눈, 비 따위에 섞여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방사선 피폭을 피하려면 군사시설이나 인구 밀집지역, 산업중심지 등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사이언스얼럿은 전했다. [출처 : 주간조선 2025년 7월 8일 IT/과학(김형자 기자,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및 참고자료: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정보, SeMA e-뉴스레터 225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