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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쿠사 여행4 - 오르티자 섬에서 아레투사 샘과 유구한 시라쿠사 성을 보다!
시칠리아 남동부 시라쿠사 에서 다리를 건너 오르티자 섬 에 들어가 구시가지를 걸어
아르키메데스 기념관과 대성당을 보고 골목길을 지나 아레투사의 샘 을 찾아간다.
아레투사의 셈 Fonte Aretusa 은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시녀이자
님프 아레투사 가 모습을 바꾼 것이라 전해지는 데......
제주도의 용천수 처럼 물이 솟아 오르니 예로부터 시라쿠사 주민 들의 중요한
식수원 이었으니 로마와의 오랜 전쟁에도 버틸수 있었던가 본다.
오늘 나무가 무성한 샘을 내려다 보노라니 샘에는 파피루스 나무 가 무성하고
오리떼가 한가롭게 노는 모습을 보자니
평화스럽기 그지없는 데.... 연인들의 키스씬은 참 진하기도 하지?
그러고는 더 걸어서 섬의 꼬리쪽에 축성된 유서깊은 시라쿠사 성 Siracusa Castelo 을
보는데 오늘은 시간이 늦은지 개방하지 않아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는게 아쉽다.
되돌아서서 골목길을 빠져나와 해변에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는
커피와 맥주 한잔에 안주로는 프랜치 프라이 French Fries 를 시키니 얼른 못알아 듣네....
해서 프라이드 포테이토 Fried Potato, 베이커드 포테이토 Baked Potatoes 라고
고쳐 말하니 그제사 알아듣고 웃는 데.....
내 콩글리쉬 발음이 나빴던 탓일러나? 차라리“칩”이라고 말할걸 그랬나?
이 감자 튀김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으니...
2,003년에 미국이 핵이나 화생방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
했을 때 프랑스 정부 가 이 전쟁을 반대하자....
미국 하원 은 의사당내 카페테리아의 메뉴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 로 바꾼 일이 있다.
그러자 미국내 상당수 식당에서 동조하여 반 프랑스 열풍 이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는 데...
하지만 막상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샅샅이 수색했는데도
대량 살상무기가 전혀 나오지 않자 슬그머니 원래대로 “프렌치 프라이”로 바뀌었던 것이라!
몇 년 전에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의 유니폼 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중국산 이라고 해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으니.....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속옷을 입고 개막식에 입장하는 일이 있더래도
중국산 유니폼은 벗어서 모두 불질러 버리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럼 미국 선수단이 입고 있는 그 속옷은 중국산 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
지금 미국인들이 입는 의류중 불과 5% 만이 미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을....
더욱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은 미국업체 랄프로렌이 디자인해 올림픽에서 계속 입었던 것을!
바다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2,200여년 전에 카르타고와 시라쿠사 동맹군 을 향하여
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이 섬을 공격해 오던 로마의 대함대 가 보이는 듯도 하다!
BC 260년 메시나 서쪽 밀라초에서 벌어진 1차 해전은 로마가 승리했으며,
BC 257년에는 카르타고군의 근거지 팔레르모에서 행해진 2차 해전에도 로마군이 승리한다.
그리스와 더불어 지중해를 주름잡았던 양대 해양국가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카르타고 해군 이 해군의 전통이란 전혀 없는 육지국가 로마에 패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후 로마는 다시 외항 오스티아와 나폴리, 메시나등에서 새 함선을 건조하여
BC 256년 230척의 로마 함대가 출항해 시라쿠사의 항복을 받은후 카르타고를 향해 항진한다.
전투선에 승선한 인원만 해도 무려 12만명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대군이었으니
바로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있는 시라쿠사의 동맹국이었던 카르타고 본국을 향한 것이다.
카르타고를 향하는 로마군이 여기 시라쿠사를 거쳐 서남쪽 아그리젠토
인근 리카타 앞바다에 이르렀을때
로마군 앞에 5단층 갤리선 250척으로 구성된 카르타고 함대가 나타난다.
로마 해군 은 수송선과 제3함대를 뒤에 배치하고 집정관 레굴루스와
불소가 각기 80척의 함대를 지휘해
삼각형의 두변을 맡아 꼭지점은 카르타고군을 향해 급속 진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승전한 로마군은 북아프리카 튀니지 카르타고 외곽에 상륙하니 카르타고 운명은 풍전등화라!
황급히 스파르타 출신 용병대장 크산포스 를 고용해 총사령관에 임명한다.
BC 255년 봄 용병대장 크산포스가 지휘하는 카르타고군은
모두 외국인 용병으로 보병 1만 2천에 기병 4천명 그리고 코끼리 100마리 규모였다.
집정관 레굴루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은 중무장 보병 1만명에 기병 500명으로
크산포스가 활약한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패해
8천명이나 전사하고 집정관은 포로가 되었으나.... 곧 후임 집정관 2명이 로마에서 도착한다.
해서 카르타고 앞바다 헤르마이움 곶 앞바다에서 제4차 해전이 벌어지니
이번에도 해전은 로마군이 승리하였으니 고립된 로마군을 구해서는 시칠리아로 철수한다.
230척의 로마 함대는 철수 도중에 태풍을 만나 육지로 접근했다가 180척이나 난파되니
얼마전에 굴복해 로마와 강화를 맺었던 도시 시라쿠사 항구 에 도착한 배는 80척이었다던가?
이 해난사고로 6만명이나 잃은 로마가 의기소침해지자 카르타고는 포로로 잡은
전집정관 레굴루스를 로마에 평화사절로 보냈는데 그는 뜻밖에 "강화 대신에 전쟁" 을 주장한다!
254년 봄에 카르타고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전투가 재개되자
로마는 220척의 배를 새로 진수해 300척의 함대는 시칠리아 북서 해안으로 떠난다.
시라쿠사가 움직이지 않는 것 을 확인한 로마군은 서쪽으로 진격해
체팔루를 함락한후 팔레르모로 진격하니 도시는 카르타고군 근거지라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팔레르모 원주민은 양파로 갈라졌으니 친로마파 2만 5천명이 로마군에 성문을
열어주자 친 카르타고파 1만 4천명 중에 무려 1만 3천명은 노예 로 팔렸다고 한다.
이제 시칠리아 섬에서 카르타고군에 남은 도시는
남부의 헤라클레아와 셀리누스 그리고 서부의 마르살라 와 드레파눔(트레파니) 뿐이었다.
BC 253년 마르살라의 카르타고군은 150마리의 코끼리로 팔레르모로 진격하자
집정관 메텔루스는 평원 전투를 포기하고 팔레르모 성벽 밖에 해자를 깊게 파 승리한다.
포에니 전쟁 16년째인 BC 249년 로마 집정관 풀크루스는 220척의 함대를 이끌고 트리파니를
공격하자 아드해발 이 지휘하는 카르타고 함대는 기동작전으로 로마 함대를 격파 한다.
로마군은 93척이 카르타고군에 나포되고 30척이 침몰했으며
2만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바다속으로 사라졌으니 최초로 패배 한 것이다.
BC 248년에는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 이 로마군 참패를 한 기회를 이용하는 대신에
아무 조건없이 동맹 조약을 갱신 해준 것이 로마군의 최대의 위안거리였다.
해전등의 참패는 5년마다 실시하는 BC 247년의 로마 국세 조사에서
성인남자의 인구가 17% 나 감소하니 로마도 재정이 소진되었다.
이 해에 하밀카르 바르카스 (훗날 한니발의 부친) 는 시칠리아에 파견되어
2개군단의 소규모 병력으로 팔레르모가 내려다보이는 펠리그리노 산에 진영을 세웠다.
BC 247년에는 카르타고군은 트라파니로 부터 보급대를 운영하며 때때로 군대를 이끌고
마르살라를 포위하고 있는 로마군의 배후를 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BC 242년 로마는 전시국채를 발행해 200척의 5단 갤리선을 건조하여
집정관 카툴루스가 이끌고 시칠리아 서부 마르살라 항구를 점령한다.
BC 241년 카르타고 보급함대가 트라파니로 향하자 로마 집정관 카툴루스는
마르살라에서 북상해 카르타고 함대를 공격하여
50척을 격침하고 70척을 나포하자 패한 카르타고 함대는 본국으로 도망친다.
하밀카르는 강화를 제의하니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서 철수하고
로마의 동맹국이 된 시라쿠사에 싸움을 걸지 않으며
포로 교환을 하고 배상금을 지불하여 파란만장했던 1차 포에니 전쟁은 끝난다.
그리스인 주민들이 사는 시칠리아를 다스림에 있어 참주 히에론이 통치하는 시라쿠사 는
15년마다 갱신되는 조약으로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으며 밀을 우선적으로 로마에 팔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휩쓸자 동맹국 로마를 버리고...
다시 카르타고 편에 가담한 시라쿠사 는
한니발을 몰아낸 로마가 공격해오자 아르키메데스의 분전에도 결국 로마에 굴복했던 것이다!
성채 쪽에 예술학교가 있는듯 여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보며 일어서는 데,
여기 해변 도로에는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 처럼 달리기 하는 사람들로 내내 붐빈다.
요트며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며 해변 길을 걸어
아르키메데스 광장 Piazza Arcimedes 옆을 지나 육지와 연결된 다리에 올라선다.
광장 건너편 골목에는 재래 시장이 열리는데 각종 과일과 물고기며 꽃소라등
해산물도 풍부하다지만 오늘은 시간때가 맞지 않은지 보이지는 않네?
배들이 정박해 있는 다리 양쪽의 두 항구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AD 59년에 사도 바울 이
동방에서 로마로 압송될 때 여기 수라구사 에서 사흘간 마물렀다는 얘기가 떠오르네?
그는 3차례에 걸쳐 소아시아와 그리스 여행을 통해 갈라디아 전서등
13통의 편지가 신약성경에 실렸 있는 데,
팔레스타인에서 체포되었으나 로마 시민권자라 재판 을 위해 압송 중이었다.
도중에 풍랑을 만나 몰타에 표류했다가 다시 이 도시 시라쿠사 를 거쳐
메시나 맞은편 육지쪽에 있는 레기온으로 압송된후 로마에 도착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여행" 이니....
얼마전에 전 KBS 인기 아나운서 였던
손미나씨가 사직을 하고 여행작가가 된 사연을 강연했다는 데....
“월화수목금금금” 지겨운 생활에 지쳐갈 즈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다가 작가의 말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북소리 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먼 북소리에서“가진 것을 내려놓고 떠나길 권했다”나?
사람들은 기득권 을 갖게되면 이에 집착해 더욱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
손미나씨는 “글의 힘은 위대하니 글을 읽는 습관을 가질 때는
친구가 없거나 외로울 때면.....
늘 친구이자 스승이 되며 큰 힘을 준다” 고 했는데 여행길에서 곱씹어 보는 것이네?
Ponte Umbertino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갑자기 울 마눌이
내 소매를 끄집어 당기기에
쳐다 보니 서양 아주머니가 손에 비닐봉지 같은 것을 들고오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여기 근처에 슈퍼 가 있다는 뜻인 데?
히어링은 나보다 낫지만 소심한 탓에 스피치가 안되는 와이프가 대신 물어보라는 말이렷다?
마트 위치를 물어 두어블록 구부러져서 위치한 슈퍼를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데,
울 마눌은 슈퍼 특히 재래시장 을 보면 갑자기 눈에 생기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라....
계란과 양파, 감자와 1L 짜리 물을 샀는데도 가격은 불과 3유로에 불과하니
물가가 매우 비싼 유럽에서 채소며 빵등 생필품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싸다!
민박집 같은 호텔 B&B Le Grand Bleu Siracusa Hotel 에 돌아오니
아침에는 우리 뿐이었는데 이제는 방마다 손님이 찼으니 다들 어찌 알고 찾아오는 것일러나?
시장 본 것으로는 주방에서 조리기구를 사용해 반찬을 만들고,
방안에서는 휴대한 전기 남비로 밥을해서 먹자니 문득 들은 얘기가 생각나는 데....
인근 내륙에 라구사와 노토 등 바로크풍 도시가 있는데,
노토 Noto 의 바로크식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가 모니카 비티를
주연으로 영화 “정사” 를 촬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스무날이라는 짧은 일정에 시칠리아 섬을 한바퀴 돌고
이탈리아 남부의 농촌과 어촌을 일주한 후에는...
아드리아해를 건너 크로아티아 까지 보아야 하니 일정상 가보지 못하는게 아쉽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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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기다리시는 분이 다 계시다니.....
너무나도 고마운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