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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금지하소(今至何所)-3
사해방 총단의 외벽은 근 이 장의 높이였다. 차라리 성벽이라고 할 높이였지만 악삼에게는
싸리나무로 얼키설키 엮은 여염집 담벼락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악삼은 바람소리조차 내
지 않고 외벽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저기로군."
악삼의 시선이 간 곳은 넓은 연무장 너머에 있는 두 채의 건물 사이였다. 두 건물 사이에
난 작은 길은 미로처럼 꼬여 있지만 안전하게 집법원까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사
해방의 시비나 하인들이 이용하는 길이라 들킬 위험도 적었다.
악삼은 소로를 향하기 전에 다시 한번 보자기에 그려져 있던 평면도를 떠올렸다. 일단 작
은 길로 침투를 시작하면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악삼은 머릿속으로 한 번 더 평면
도를 검색한 뒤 주위를 훑어보았다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주변에 인기척도 없고 달마저 구름 속에 숨었군. 하늘이 나를 도와주려는 것인가."
악삼은 싸늘하게 미소를 짓다가 작은 길을 향해 날아갔다. 연무장은 거의 사십여장에 달했
지만 한 번 도약할 때마다 십 장씩 날아가는 악삼에게는 긴 거리도 아니었다. 작은 길에
도착하기 위해 땅바닥을 밟은 수는 단 네 번에 불과했다.
악삼은 작은 길에 들어가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렸다. 구곡양장을 방불케 하는 미로가 끝없
이 나타났지만 멈추지도 않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 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악삼의 눈에 지금까지 보아온 담장과 다른 외벽이 나타났다. 검은 벽돌로 쌓여진 담장은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악삼의 눈동자에 강렬한 광채가 번뜩였다. 검은 담장은 집법원의 외벽이었던 것이다. 악삼
은 담장 앞에 서서 눈을 감더니 찰향적을 사용했다. 집법원 앞에 펼쳐져 있는 정원 전체
가 악삼의 가청거리 안에 들어왔다.
"벽 너머에 두 놈이 있군."
벽을 사이에 두고 악삼과 집법원 소속의 무사 두 사람이 서있었다. 두 무사는 경비업무를
하고 있는지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왕복하고 있었다. 악삼은 두 사람이 교
차하리라 예상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두 무사가 교차하는 순간 악삼은 손가락으로 벽면을 향해 두 번 가격했다. 무형의 기류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벽을 투과해 버렸다.
팟. 팟.
"흐윽!"
"헉."
벽 너머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악삼은 상대를 격살시키면서도 중간에 가로막
은 물체에 한 치의 손상을 주지 않는 상승 기법을 사용했다. 태을지의 투결이었다.
휙.
악삼은 가볍게 담을 넘었다. 눈앞에 두 구의 시체가 나타났지만 일말의 표정변화도 없었다.
"시체를 숨길 장소를 찾아야겠군."
악삼은 주위를 훑어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넓은 정원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침입자
를 곧바로 찾을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원이었다. 이대로 시체를 나
두고 움직였다가는 곧바로 들킬 위험이 있었다.
환객을 찾아낼 때까지 들키며 곤란했다. 악삼은 시체를 숨겨둘 장소를 물색했다. 땅에 파
묻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려 그동안 들킬 수 있었기에 한동안 눈에 띄지 않을 장소면 충분했
다. 이리저리 장소를 찾던 악삼은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건물의 하부였다. 더운 날씨를 가진 강남의 건축물은 북방계 건축물과 달리 바닥이
지면보다 높았다. 지열의 차단과 통풍, 그리고 쥐나 뱀, 벌레등의 접근을 막는다는 계획으
로 구성된 건축형식이었다.
악삼은 시체 두 구를 건물 하부에다 숨기고는 집법원의 본전을 향해 쏜살같이 움직였다.
그동안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달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이지는 않아도
집법원 주변에는 매복을 한 무인들이 가득했고 경비를 서고 있는 자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기도를 유지해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들키지 않지만 밝은 달빛 속에서 모습
을 숨길 수는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이 모습
을 드러내며 정원을 환하게 비추었을 때 악삼은 벌써 집법원의 본전에 잠입을 끝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본전 안에는 정원이나 외벽에 깔려 있는 매복과 경비보
다 숫자는 적어도 삼엄한 방어가 구축돼 있었다. 악삼은 무영수 진삼이 남긴 귀영종에 수
록돼 있는 무중행(霧中行)과 접지보(接地步)를 떠올렸다.
무영수 진삼은 공령문의 무중행과 접지보를 발전시켜 최상승의 신법으로 재창조했다. 그
위력은 이매망량을 방불케 하는 악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소리도 없고 흔적도 남기지 않
으며 설령 눈앞에 나타나도 환영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무중행을 사용해 벽에 붙으면 벽체의 일부분으로 느끼게 만들고 바닥에 엎드리면 바닥의 일
부분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신법이라기 보다 환술에 가까웠고, 접지보는 일체의 소음을 내지
않아 청각기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악삼이 기나긴 복도를 부유(浮遊)하는 유령처럼 돌아다녔지만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오히려 벽이나 천장에 매복이 악삼에게 걸려들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태을지의 투결에 당해
영문도 모르고 저승으로 직행했다.
"저기로군."
악삼의 시건이 향한 곳은 근 십장 길이의 복도 끝에 있는 검은 색 문이었다. 검은 색 창호
지로 도배를 한 쌍여닫이문은 섬뜩한 느낌을 선사했다. 게다가 문 안쪽에서 희미한 신음소
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
저승에서나 들어봄직한 신음소리였다. 게다가 문 앞까지 펼쳐진 복도는 벽과 바닥은 물론
천장까지 온통 검은 색으로 도배돼 있었다. 게다가 벽과 천장, 바닥에 나 있는 작은 구멍들
은 기괴한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유발시켰다.
"인기척은 없는데..."
감각이 위험신호를 맹렬히 보내자 악삼은 등에 매고 있던 한 자 길이의 통을 풀었다. 통
안에는 서문종에게 선물 받은 구룡편이 들어있었다.
차착.
허공에서 구룡편을 펼치자 차가운 금속성이 울렸다.
위잉.
악삼은 복도를 향해 구룡편을 휘둘렀다.
파바박.
구룡편이 원의 궤적을 그리며 복도를 지나가자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서 족히 백 수십
발은 될법한 양의 작은 화살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기관이군. 그것도 매우 정밀한 기관이야."
쏟아진 화살들은 복도 전체의 삼분지 일의 공간에 빽빽이 박혀 있었다. 기관은 삼등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관이 작동하면서 경보가 울렸는지 집법원 내부가 소란
스러워 졌다.
"돌파해야겠군."
악삼은 구룡편을 들고 있는 손목을 기묘하게 회전하더니 밀었다.
찰칵. 착.
구룡편이 허공에서 일렬로 늘어지더니 금속성을 내며 구 척 길이의 창으로 돌변했다. 악삼
은 구룡편으로 문을 겨누더니 망량을 사용해 복도를 가로질렀다.
파바박.
엄청난 양의 화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어떤 화살도 악삼의 옷깃하나 스치지 못
했다. 기관이 작동해 화살을 발사하기 전에 악삼은 벌써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콰쾅.
쌍여닫이문은 구룡편의 칼날에서 쏟아져 나온 강기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렸다.
악삼은 문을 부셔버리고 내부로 들어왔다. 그런데 내부는 온통 검은 색으로 도배돼 있었고
창 하나 없었다. 단지 장명등이 하나가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매복도 없군."
악삼은 차갑게 내뱉었다.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있으리라 생각하던 환객은 보이지 않고 구
석에는 한 괴인이 쪼그려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검은 색 의상의 괴인은 간헐적으로 신음
성을 내고 있었다.
"으아아..."
괴인의 신음소리만 하염없이 울리는 검은 색의 실내는 악삼은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환객이 지금 있는 장소라고... 하하, 내가 속았군."
악삼은 보자기를 꺼내 쳐다보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팍.
화르륵.
악삼의 손에서 발출한 삼매진화는 보자기를 일순간에 태워버렸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화염
은 악삼이 표현하는 분노의 형상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
악삼은 집법원을 제 손 안 대고 남의 힘으로 없애려는 장소군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기 위
해 잠행을 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제 악삼에게 남은 길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
는 방법이었다. 바로 장소군이 노린 술수였다.
장소군은 보자기에 집법원을 가는 비밀통로와 자세한 정보를 밝혀놓았다. 모든 내용이 하
나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정보였다. 단 하나 틀린 곳이 있다면 환객이 있다고 명시된 밀실
이었다.
"사람을 속이려면 십중구는 진실을 논하고 마지막 일에 거짓을 푼다고 했지...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이런 곤란한 일을 당해도 할 말이 없군."
박살난 문을 통해 복도 끝에 모인 집법원 소속의 무인들을 보며 악삼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집법원 무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악삼은 구룡편을 잡더니 투지를 불태
웠다. 더 이상 잡념에 빠져 있기보다 눈앞의 적을 상대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응!"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자 악삼은 고개를 돌렸다. 악삼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괴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괴인이 않아 있는 곳의 천장에 인기척이 들렸던 것이다. 의문의 중년 남
자가 천장의 일부를 열더니 실내로 뛰어내렸다.
"원주님. 괜찮으십니까?"
중년 남자는 악삼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신음을 흘리던 남자에게 집
중했다. 악삼은 중년 남자의 행동을 처음에 봤을 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괴인의 정체가
집법원주라는 사실을 듣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괴인은 삼엄한 밀실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었고 중년 남자가 은밀하게 들어와서는 다른 쪽
에는 일체의 신경을 안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장 총사가 어째서 이 장소로 자신을
몰려고 했는지 악삼은 알 수 있었다. 장소군은 악삼과 집법원의 공멸을 원했던 것이다.
"네놈은 누군데 감히 지엄한..."
중년 남자는 집법원주가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악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중
년 남자는 삭막한 표정을 짓고 악삼에게 큰소리치다가 갑자기 경악하더니 말을 흐렸다.
"너, 너는 악삼!"
중년 남자는 뜻밖에도 악삼을 쉽게 알아봤다.
"나를 안다? 그것도 희미한 장명등 아래에 잘 보이지도 않는 나를 보자마자 알아낸다..."
"네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느냐?"
중년 남자는 악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악삼은 중년 남
자의 질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뇌리 속에 떠오른 의문의 해답을 구했다.
"그렇군. 너는 1호군. 태을궁에 황 노사의 탈을 쓰고 들어와 사부님을 해친 그자로구나."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악삼은 집법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 리 없으며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을궁에 황충의 인피면구를 이용해 변장한 환객1호만이 악삼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나마 악삼의 얼굴을 초상화로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보는 즉시 알아챌 수는 없었다.
또한 태을궁을 공격했던 자들 중에 생존자라 하더라도 그 당시 악삼을 유심히 쳐다본 사람
은 드물었다. 그 뒤로도 악삼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니 일개 무명의 강호인에 불과해
주목의 대상도 아니었으니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환객1호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으하하... 이곳에서 너를 만나게 됐으니 장 총사가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이 아니게 되는군."
"그건 무슨 말이냐?"
"알 필요 없다.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으면 끝이다."
악삼은 싸늘한 말투로 통보했다. 그러나 환객1호는 육공도(六孔刀)를 뽑으며 음흉하게 웃었
다. 환객1호가 보기에 악삼은 무공이 강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흥, 어리석은 놈. 그래 내가 악풍을 죽였다.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고 온 것이냐?"
악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크크크, 네가 비록 무공이 강한 것은 안다. 그러나 나보다 강하지는 않지. 게다가 이곳은
집법원이다. 그야말로 너는 덫에 걸린 늑대에 불과하단 말이다."
환객1호는 악삼을 비웃으며 밀실의 입구를 슬쩍 쳐다보았다. 어느새 집법원의 무사들이 가
까이 몰려와 있었다. 그러나 악삼은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고만 있었다.
"죽어라!"
입구에 도착한 집법원 무사들이 일제히 병기를 들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악삼은 빠른 속도
로 몸을 돌렸다. 가히 환상적인 속도였다. 그러나 악삼이 집법원 무사들을 향해 소매를 휘
두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콰콰쾅.
악삼의 소매와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온 투명한 강기가 구름과 벼락의 형상이 되어 집법원
무사들을 휩쓸어버렸다. 뇌성벽력이 친 것 같은 굉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참혹한 현장만이
남아버렸다. 검은 색의 복도 전체가 붉은 선혈과 무참하게 박살난 고깃덩이들이 가득했다.
"허억!"
환객1호는 한순간에 얼어버렸다. 악삼의 무위가 자신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한 단계에 있
었고 살아 생전 처음 보는 잔인한 무공에 얼이 빠져버렸다.
땡강.
육공도가 환객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그, 그게 무슨 무공이냐?"
"뇌운십팔타."
악삼은 짧게 대답했다. 환객1호는 넋이 나간 듯 뇌운십팔타를 하염없이 암송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들어보는 무공이었다. 벽력수 오기가 만든 최후의 무공을 알아 볼
수는 없었다. 태을선천강기를 이용한 뇌운십팔타는 악마의 무공, 그 자체였다.
"크르르... 피... 피..."
그 동안 신음성을 내며 쪼그려 앉아 있던 집법원주는 실내에 가득한 혈향에 취했는지 이상
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워, 원주님..."
환객1호는 고개를 돌렸다.
퍼억.
"커억! 워, 원주님, 왜..."
환객1호의 복부에서 회백색으로 빛나는 손이 튀어 나왔다. 그 손의 주인은 집법원주였다.
"너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
환객1호가 곧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자 악삼은 구룡편으로 찌르기를 감행했다.
퍽.
한순간에 공간을 압축한 듯 이동한 악삼은 구룡편으로 환객1호의 이마를 뚫어버렸다. 악삼
은 구룡편에 태을진력을 투입해 환객1호의 머리를 통째로 폭파시켜 버렸다.
"이게 창술의 세 가지 기본삼법 중에 하나인 찰이다. 사부님께 첫 번째로 배운 기술로 너를
죽이는 게 내 소원이었다."
악삼은 머리가 사라진 환객1호의 시체를 향해 차갑게 내뱉고는 구룡편을 거두었다. 그러나
환객1호의 시체는 멀쩡하게 서있었다. 집법원주의 손이 복부를 관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큭큭... 피... 죽음...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죽이리라."
집법원주는 피와 살육에 갈증을 느끼며 광기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환객1호의 복부를 관
통한 손이 반회전하더니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상태로 바뀌었다. 집법원주는 손을 그대로
올려버렸다.
푸악.
환객1호의 척추가 산산조각이 나는 기괴한 음향과 함께 상체가 종으로 갈라져 버리면서 피
가 솟구쳐 밀실의 천장과 벽을 붉게 채색해버렸다.
"크하하... 피다. 피야."
"완전히 미쳤군."
사방에 튄 환객1호의 선혈은 짙은 혈향을 썩은 냄새를 풍기며 얼기 시작했다.
"음시조를 익혔군. 게다가 저 정도로 미쳤다면... 4단계이군."
악삼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강호7대금지무공을 4단계에 이른 자라면 결코 쉽게 볼 상대
가 아니었다.
"너도 죽어라."
집법원주는 악삼을 향해 돌진했다. 두 눈동자에는 핏빛광기를 가득 채우고서...
"타!"
그러나 악삼은 쉽게 쓰러질 인물이 아니었다. 양손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달려오는 집법원
주를 향해 뇌운십팔타를 연속으로 후려 갈겼다.
따따당.
콰쾅.
강렬한 폭음과 격타음이 밀실을 진동시켰다.
"쿠아악..."
뇌운십팔타의 가공할 파괴력과 음시조의 공력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생성된 힘은 밀실 전체
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악삼과 집법원주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오히려 폭발적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음시조의 궤적이 지나간 벽이나 바닥, 천장은 움푹 파여 버렸고 뇌운십팔타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공간은 모조리 분쇄되었다. 밀실은 두 사람의 공격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울부짖
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은 고사하고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드디어 견디지 못한 밀실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둥이 무너지더니 벽과 천장이
함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아예 좁
은 장소를 버리고 넓은 곳에서 싸우려는 듯 천장을 뚫고 나가버렸다.
퍼억.
두 사람의 힘에 의해 지붕이 뚫려버리자 사방으로 기와가 날아갔다. 악삼은 좁은 밀실에서
벗어나자 곧바로 창술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창의 한계점인 공간의 운용이 걸려 사용하
지 못했던 병기의 장점은 사방이 트인 지붕에서는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었다.
악삼이 창을 휘두르자 지금까지 밀리지 않던 집법원주는 점점 불리한 상황에 빠지기 시작했
다. 제아무리 강력한 음시조라 해도 툭툭 찌르는 창을 방어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게다가
구룡편은 악삼이 인정할 정도로 강한 재질을 가진 병기였고 태을진기까지 보호하고 있어 음
시조의 내력으로도 손상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격전이 집법원 건물을 반파(半破)할 정도가 됐을 때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있었다. 하나같이 집법원 소속의 인물들이었지만 악삼과 집법원주의 격전에 대
해서는 영문조차 몰라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장로님. 소인도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집법원의 장로였다. 그는 집법원 적씨 일가를 대대로 봉행(奉行)한
가문 출신으로 충성심이 남달랐다.
"저 자가 누구인데 원주님을 공격하는 것이냐?"
집법원의 장로가 안절부절하며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갑
자기 굉음이 울리더니 본전이 무너지자 모두 밖으로 나왔다가 지붕 위에서 두 사람이 처절
한 격전을 펼치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다. 아닌 밤중에 도깨비 방망이를 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총사!"
갑자기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장로는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장소군이 하얗게 질린 얼
굴로 서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지붕 위에서 적 원주님과 싸우는 자는 누구인가요?"
장소군은 자기가 불러온 재앙을 모른 척하는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장로는 장소군의 가증
스런 연기를 알 도리가 없었다.
"모르겠소이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인데다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소이다."
"보아하니 외인인 것 같은데... 본 방에서도 중지인 이곳에 침입자가 나타났는데 아무도 모
른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 그게... 허억! 원주님."
장로는 말끝을 흐리다 집법원주가 악삼의 일격에 허공으로 날아가자 사색이 돼버렸다. 집
법원주는 지붕에서 날아가 땅바닥으로 추락했지만 곧바로 일어섰다. 그러나 놀란 장로는
한달음에 뛰어갔다.
"원주님. 괜찮습니까?"
집법원주는 장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장로의 가슴을 가격해버렸다.
퍽.
"커억!"
장로는 피를 토하며 무려 이장이나 뒤로 날아가 버렸다.
"장로님."
집법원 무사들이 일제히 장로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수십여명이 몰려오자 집법원주는
광소를 터트리더니 그들을 향해 음시조를 사용했다. 그들은 상관의 공격에 방어할 생각조
차 못하고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다.
"허억! 서, 설마... 음시조가 4단계까지 올랐단 말인가?"
쓰러진 채 그 장면을 목격한 장로는 집법원주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파악했
다. 장로는 참담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신음소리를 냈다. 자신이 다친 고통이 주는 아픔보
다 더 심한 아픔 때문에 안색은 참혹하게 변해버렸다.
"크카카. 모두, 모두 죽이리라."
집법원주는 장로의 참담한 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도살을 감행했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어느새 장로에게 가까이 온 장소군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질문을 던졌다. 집법원
주가 미쳐 날뛰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었고, 참혹한 도살의 현장은 여인의 눈
으로 멀쩡하게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주님. 그래서 제가 말리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음시조를 수련하신 겁니까. 그자가 미치지
않고 음시조 4단계에 오른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런 참혹한 일을 생
길지 모르셨단 말입니까..."
장로는 장소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울부짖었다.
"음시조! 강호7대금지무공의 그 음시조를 말하는 건가요?"
장로의 대답은 넋두리로 충분했다. 장소군은 그제 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집법원주
가 왜 미쳐 날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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