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단 덧글. 개봉 팔일 만에 누적 관객 176만 명인 영화를 내리자는 것도 우습지만 내린다고 해도...랄까? 내린다고 해도 큰 의미 있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 영화 봤는데 논란이 일 만한 게 있었나 싶던데?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형 언도 사건이 생각나던데 그런 걸로 찔리는 자들이 내리자고 아우성 치는 게 아닐까 싶더만요?
스파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영국의 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일까요? 아니면 전전 일본에서 활동했던 소련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일까요?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한국 유학 중 한국 정부로부터 "북(조선) 스파이"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 판결이 확정된 재일 한국인 3명을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그린 논픽션입니다.
왜 재일 한국인이었을까요? 조선인의 다수 거주 지역에서는 좁은 지역에 조선총련계와 민단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합니다. 재일 유학생들에게 조선총련 사람들과의 접점은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재일 유학생들의 "스파이 혐의"를 날조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당국의 가혹한 고문 끝에 유학생들은 "자백"했습니다.
왜 1970년대 "스파이" 사건이 빈발했을까요? 계기는 베트남 통일이었습니다. 1975년 봄, 북베트남군이 베트남 무력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위기감을 강화하고 스파이 사건을 빈번히 검거하여 한국 국내의 단속을 꾀했습니다.
분단의 희생양.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국은 포츠담 선언을 일본에 내밀었습니다(1945년 7월 26일). 일본 정치 지도부는 천황제의 존속을 놓고 주저하다가 결국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것이 8월 14일입니다.
그 3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8월 6일, 미군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8월 9일, 소련군은 만주 국경을 넘어 조선의 북반부를 점령했습니다. 같은 9일 미군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조선 분단은 미소에 큰 책임이 있지만, 일본의 책임도 작지 않습니다. 그러한 조선 분단을 배경으로, 박정희 정권은 정권 연명의 희생양으로 재일 한국인 유학생들을 선택했습니다.
민주화가 사형수들의 생환을 촉진했습니다. 1987년 한국에서는 민주화가 선언되어, 날조된 "북 스파이"들은 석방되고 재심에서 무죄를 쟁취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실정을 그렸지만, 일본에서는 하카마다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형사소송법은 다이쇼 시대 그대로입니다. 한편 스파이 방지법이 정치 과정에 오르고 있습니다. 스파이는 쉽게 "날조"될 수 있음을 한국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파이로 몰린 청년들 대부분은 필자와 동세대입니다. 그들의 가혹한 청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