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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금지하소(今至何所)-4
악삼은 지붕 위에서 집법원주의 행동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법원주의 손에 무수한 생명
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악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너희들은 무고한 생명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 값을 받고 있는 것이다."
거의 삼백에 달하는 집법원의 무사들이 순한 양이라면 미쳐 날뛰는 집법원주는 굶주린 늑대
였다. 일 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백에 가까운 숫자가 저승을 향했고 남은 이백명도 살
아있다고 표현하기 힘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제 주인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오히려 죽음을 당하기만
했다. 남은 자들은 살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의 손길에 몸
을 맡겨야했다. 공포에 질렸는지 일부분 도주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씩 늘어나더니 모두 집법원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살아있는 자는 오직 장소
군과 장로뿐이었다. 그리고 연무장과 정원에는 널브러진 이백여구의 시신과 악취를 풍기며
얼어버린 피였다. 집법원주는 장소군과 장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집법원이 초토화 된 것을 확인한 악삼은 사해방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집법원주가 노리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피를 토하며 절망한 노인과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여인을 보는
순간 악삼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았다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겠지만 두 사람이 처한 지경을 보는 순간
동정심이 생긴 것이다. 어느새 장소군과 장로 앞에서 선 집법원주는 미친 듯이 웃으며 양
손가락을 구부려 응조의 형태를 만들었다. 일격에 두 생명의 머리를 으깨버릴 요량이었다.
장소군은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어째서 내가 이곳에 왔느냐며 후회했다. 그리고 도망갈
시간이 있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은 자신의 한심함에 통탄했다. 그러나 가장 큰 감정은 죽음
에 대한 공포였다.
집법원주가 응조를 만들어 내리치는 순간 장소군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이 일시에 눈앞
에 펼쳐졌다. 장소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악삼은 허공에서 장소군의 눈물을
목격했다. 그 순간 악삼의 손을 떠난 구룡편은 집법원주의 목 뒤편을 향해 날아갔다.
푹.
구룡편은 집법원주의 목 뒤편을 뚫고 들어가 흉부에서 튀어나왔다. 집법원주는 신음소리도
비명도 지르지 않고 구룡편의 칼날을 잡았다. 구룡편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구룡편은 요
지부동이었다. 어느새 구룡편의 끝에 선 악삼이 태을진기를 사용해 집법원주의 행동을 막
아버린 것이다.
"크윽..."
구룡편을 통해 분출하는 태을진기는 음시조의 내력을 한순간에 뒤흔들었다. 그덕분에 집법
원주는 잃어버렸던 고통과 제정신을 일시간에 되찾았다.
"워, 원주님..."
"내가 일을 저질렀구려... 장로."
"그렇습니다."
"허허허... 적등영아. 적등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워, 원주님... 원주님~."
장로는 집법원주가 숨이 끊어지자 오열했다. 그런데 집법원주를 안고 울음을 터트리던 장
로는 갑자기 이상한 움직임이 느꼈다. 죽었던 집법원주 적등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
이다. 장로는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주님. 이게 어떻게..."
퍽.
집법원주는 장로의 두개골을 일격에 박살내버렸다.
"시신마저 움직이다니 과연 강호7대금지무공이군."
악삼은 구룡편 끝에서 집법원주의 머리를 향해 내려갔다.
퍽.
악삼의 왼발이 집법원주의 머리끝에 닫는 순간 뼈가 부셔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각
(震脚)을 사용해 집법원주의 두개골을 박살내 버린 것이다. 악삼이 구룡편을 뽑았지만 머리
가 사라진 집법원주의 몸통은 그대로 서있었다.
"끔찍하군... 이게 강호7대금지무공을 익힌 자에게 돌아가는 저주인가. 이건 꼬리가 잘린 도
마뱀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악삼은 집법원주의 비참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안식을 취하시오."
악삼은 집법원주를 오른 발로 후려쳐 버렸다.
퍽.
뇌운십팔타에 유일한 퇴법인 뇌정각(雷霆脚)의 위력은 가공했다. 집법원주의 시신은 무려
십장이나 날아가 벽과 충동해버렸다. 뇌정각의 일격으로 분해직전까지 간 집법원주의 시신
은 벽에 부딪치자마자 산산이 터져 버렸다.
악삼은 구하려던 두 사람 중에 노인은 죽었지만 여인이라도 구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
소군은 악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장로의 두개골이 터지면서 흘
러내린 뇌수와 피가 입고 있던 백의를 더럽히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았고 눈앞에 창날이 불쑥 튀어나오고 피가 흘러나와도
버텼지만 죽었던 집법원주가 되살아나자 극도의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장로의 뇌수와 피
가 그동안 참아온 공포를 폭발시켜 장소군을 연약한 여자로 되돌려버렸던 것이다.
"쯧쯧. 이런 참혹한 장면을 봤으니 연약한 여자가 어떻게 견디겠나..."
악삼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존귀한 신분은 아니지만 하녀나 시비도 아닌 것 같군... 그런데 어쩐다."
악삼은 여자를 구하기는 했지만 기절해 버린 상태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난감했다.
적지 한복판에 여자를 데리고 움직일 수도 없었고 방치할 수도 없었다. 악삼은 한동안 난
감한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구해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지."
악삼은 장소군을 어깨에 들쳐 맸다.
"이상하군. 이 정도 난리가 났으면 벌써 몰려와도 오랜 전에 몰려왔을 텐데..."
악삼의 의문은 당연했다. 그러나 원한을 갚은 이상 사해방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악삼은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참혹한 도살의 장을 목격한 뒤라 더 이
상의 살육을 보고 싶지 않았고, 사해방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다.
장소군은 악삼이 집법원을 향하면 바로 눈치를 챌 수 있도록 작은 경보장치를 비밀통로에
설치해 두었다. 경보장치에서 신호가 들리자 장소군은 그동안 세웠던 계획을 실행했다. 살
막의 암영대와 자객들, 동해방의 고수들을 총동원해 사해방 총단에 퍼져 있는 북해방과 남
해방, 서해방의 인물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장소군은 암살을 희부성에게 맡기고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건 양패구
상이 됐을 거라고 예상한 악삼과 집법원을 끝장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려 이백명이나 되
는 궁수와 백명의 노수(弩手), 해룡단의 천지2대를 이끌고 집법원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예상도록 움직인다면 기뻐하던 장소군은 집법원에 도착한 순간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집법원주와 악삼의 격돌은 상상 이상이었고 집법원의 무사들은 대부분 무사한
상태였다. 장소군은 병력을 대기시키고 직접 집법원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얼마 후 그녀는 참담한 자책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게다가 집법원에 들어가기 전에 명령이 있기 전까지 병력을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는 그녀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장소군이 악삼의 어깨에 들쳐 매인 채 사라진 뒤 집법원에 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그는
뜻밖에도 혁무강이었고, 반파된 집법원 본전을 향해 움직였다. 폐가(廢家)라고 말하기 보다
철거 직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한 집법원 본전을 혁무강은 철저히 뒤졌다.
혁무강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일 각이 지나고 이 각이 지났지만 혁무강이
찾는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혁무강은 무너져 내린 기둥에 앉아 탄식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혁 대주. 이것을 찾는 건가?"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혁무강은 경악했다. 혁무강은 무공의 오할 이상을 숨
기면서도 사해방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얼마나 강할 지는 오직
혁무강 자신밖에 몰랐다. 그런 자신의 청력을 속인 인물이 등장했으니 혁무강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순간 혁무강의 놀라
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방주..."
"그렇다네."
나타난 인물의 정체는 사해방의 대방주인 동해방주였다. 게다가 동해방주의 손에는 혁무강
이 찾고 있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건 음시조의 비급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계시는 겁니까?"
"자네에게 이것을 주려고 왔네."
동해방주는 음시조의 비급을 혁무강에게 던졌다. 음시조의 비급은 혁무강을 향해 일직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갔다. 비급을 노려보는 혁무강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시험을 하는 겁니까?"
혁무강의 말투는 정중하면서도 차가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느리게 날아가는 비급에는 엄
청난 내력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혁무강은 그 동안 숨겼던 무공을 펼쳐야할 시기가 왔음
을 알았다. 음시조를 운용한 오른 손으로 비급을 받았다.
"헉!"
혁무강은 뒤로 칠, 팔보나 주르륵 밀려나갔다. 비급을 잡은 손도 수전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단하군. 전 공력을 담았거늘 자네는 쉽게 잡아내는군."
"이렇게 밀려났는데 쉽게 잡은 것으로 보입니까?"
"내 전력을 담았네. 천하에서 그걸 잡아낼 인물이 과연 몇이겠는가?"
"흥! 좋습니다. 그보다 음시조의 비급을 대방주께서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제게 선뜻 준 이유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혁무강은 동해방주에게 질문했다.
"음시조의 비급은 자네보다 내가 먼저 발견했을 뿐이네. 그리고 자네에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무엇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건가?"
"첫째, 저보다 비급을 먼저 발견했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악삼이 집법원주와 겨루는 장면부터 목격한 혁무강이었다.
"내가 음시조를 얻은 것은 오늘이 아니네. 몇 개월 전이었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음시조는 자네 가문의 무공이 아닌가. 아니 강호7대금지무공 전부가 자네 가문, 즉 칠리산
당의 것이지 않은가."
혁무강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 장가는 천하를 노리는 가문일세.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동해방주가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혁무강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혁무
강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과연 장씨 가문은 대단하군요."
"나는 우리 가문보다 한림사가(閑林四家)의 핏줄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높게 치고 있네."
"한림사가도 알고 계십니까?"
"내가 아는 건 자네 가문인 칠리산당 혁가와 살막 희가일세. 남은 두 가문은 이름조차 모르
네. 물론 혁가와 희가, 두 가문에 대해서 아는 것도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지."
동해방주가 강호 최대의 비밀 중에 하나를 알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충격을 혁무강에게 주
었다. 사해방에 투신한 자신을 동해방주가 선뜻 받아준 이유를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혁무강은 동해방주가 예측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가슴 깊은 곳에 각인시켰다.
"저희 가문은 한림사가에 들어가 있지만 두 가문에 대해서만 알고 있습니다. 대방주님께서
모르는 가문은 벽안루(碧眼樓) 임가입니다."
"벽안루 임가?"
"쾌도 임백령의 가문입니다."
"임백령!"
동해방주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잘 아십니까?"
"물론이네. 아니 너무도 잘 알고 있지..."
동해방주는 참담한 과거를 떠올렸다. 임백령이 펼치는 단 십도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
었던 치욕스런 과거가 어제 일처럼 기억났다.
"내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한림사가의 한 가문인 임씨 가문이 어째서 하찮은 모용가의 하인이 됐는가?"
"과거 임씨 가문이 어느 가문의 공격을 받아 전멸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임가의
유일한 생존자를 구해준 사람이 모용가였습니다. 물론 모용가는 겨우 십여세에 불과한 소년
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누가 임가를 공격한 건가?"
동해방주는 임가를 공격한 세력이 궁금했다. 임백령의 초인적인 무위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벽안루의 세력이 유지된 상황이었다면 최소한 임백령의 수준에 도달한 고수가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 벽안루를 전멸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세력이라면 자기 가문에
게도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릅니다. 단지 한림사가의 마지막 가문. 알려지지 않은 가문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임백령이겠군."
"그건 오직 임백령만 알고 있을 겁니다. 그 가문의 정체를 알던지. 아니면 모르든지."
"그렇겠군... 자세한 것을 알려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혁무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동해방주는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더
니 혁무강에게 던져주었다.
"감사의 표시이네."
"이건 흑성장."
"그렇다네. 우리 가문이 보관하고 있던 비급이지."
동해방주의 행동은 갈수록 혁무강을 오리무중에 빠트렸다. 흑성장은 단순하게 감사의 뜻으
로 주기에는 너무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의아해할 필요는 없네. 어차피 자네 가문의 무공은 다른 사람에겐 독에 불과하네.
그리고 나는 내 후손이 적등영처럼 참혹해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네. 그리고 강호를 어지럽
히는 가문의 절학을 회수하겠다는 자네의 의협심에 감탄한 것도 포함돼 있다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혁무강은 두 비급을 펼쳐 보지도 않고 삼매진화를 일으켜 태워버렸다.
"확인도 안 하는가?"
"대방주께서 저를 속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과연 자네답군."
동해방주는 혁무강의 호쾌한 태도와 기상에 감탄했다. 그러나 혁무강 역시 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해방주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남은 비급들이 모두 회수될 때까지 천하를 방랑할 생각입니다."
"북해방과 남해방, 서해방에도 각각 한 권씩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혁무강이 사해방에 투신한 이유는 다섯 권의 비급을 회수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느 곳부터 방문할 건가?"
"가까운 곳부터 찾아갈 생각입니다."
"그런가. 그럼 자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겠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세."
동해방주가 밖으로 걸어나가자 혁무강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동해방주는 혁무강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폐허로 변해버린 집법원을 나선 동해방주 앞에 희부성이 나타났다.
"사돈어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신가?"
"소림사와 무당산이 육문칠가의 몇 가문과 연합한 세력이 지금 사해방 총단을 공격하기 시
작했습니다."
"내우외환이군. 하필 이 시점에 그들이 공격을 했단 말인가..."
동해방주는 탄식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허! 그거 참..."
"그들이 들어온 시간은 청소가 모두 끝난 뒤라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그렇겠지. 지휘나 책임자가 없어졌으니 모두 오합지졸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군."
복수혈의 기습시간은 너무나 절묘했다. 집법원이 초토화되어 사해방의 무사들의 신경이 내
부로 쏠리고, 동해방과 살막의 암살로 인해 지휘부가 마비됐을 때 복수혈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뒤에서 농간이라도 부린 것처럼...
"그것도 문제지만 저들의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특히 용개 풍시종을 막아야 합니다."
"용개 풍시종. 그자까지 왔단 말인가?"
희부성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해방주는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용개 풍시종의 등장으로 알 수 있었다.
"허!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이럴 때 정파의 공격이라니..."
동해방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격전지는 사
해방 총단의 입구에 펼쳐져 있는 연무장이었다.
사해방의 무사들이 무공을 수련하던 장소는 피와 죽음이 만연한 격전의 현장으로 변해 있었
다. 복수혈의 무인들이 맹수처럼 날뛰고 있는데 사해방의 무인들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
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동해방주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무엇들 하느냐. 저들을 막아라."
"대방주님이시다."
"우와와~."
사해방 무인들은 사자후를 듣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사기가 일순간에 올랐는지 사해방 무
인들은 복수혈의 무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적 앞에서는 더 이상 동서남북의 네
세력이 내분을 일으키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해방과 복수혈의 진정한 격돌은 동해방주가 등장한 순간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두 세력
은 최강의 전력을 앞세우고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맞부딪쳤다. 각 파의 정예가 모인
복수혈을 상대하는 사해방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백년의 세월동안 축적한 무력은 결코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수혈의
최정예인 소림사의 십팔나한은 상상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십팔나한이 펼치는
소나한진은 강호무림의 최대절진인 백팔나한진에 비해 육분지 일에 불과하지만 불패의 위력
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해방의 최정예인 해룡단마저 십팔나한 앞에서는 바람앞의 촛불에 불과했다. 게다가 무당
산에서 온 49인의 도사들도 결코 십팔나한에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무당칠성검진을 펼쳐
사해방 무인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북두칠성의 형상을 한 검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온통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었고 피
가 흘러 내가 될 지경이었다. 무당산이 자랑하는 칠성검진은 소림사의 나한진처럼 대소양
진으로 구성돼 있었다.
7인이 펼치는 소칠성검진에 비해 49인이 펼치는 대칠성검진의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게다
가 무당칠성검진을 펼치는 무당의 도사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고수였다. 그들은 장로급에
해당하는 노도사 일곱명과 무당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중, 장년층이 마흔두명이었다.
무당산은 사해방 공격에 최정예를 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해방주의 시선을 끈 것은 오
십대 나이의 거지였다. 그 거지의 정체는 용개 풍시종이었다. 용개 풍시종은 강호제일의
장법고수로 알려진 명성대로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용개 풍시종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풍시종."
동해방주의 사자후는 강력했다. 주변에 있던 무인들은 하나같이 귀를 막고 땅바닥을 굴러
야했다. 고막이 파열되는 충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동해방주?"
"그렇다."
동해방주는 바람같이 달려가 용개 풍시종 앞에 섰다.
"당신이 사해방의 대방주인 동해방주 장 공이시오."
"개방의 방주라 귀가 넓구나."
"흥. 천하의 동해방주를 누가 모르겠소. 게다가 당신의 건곤팔장(乾坤八掌)과 내가 익힌 용
음십이수(龍吟十二手)가 장법에 있어서 천하의 양대절학이라는 말을 들었소.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고 싶었소."
용개 풍시종은 동해방주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일장씩 날리던 예전과 달리 한순간에 삼
십육장을 날렸고 손바닥에서 새파란 청광이 쏟아져 나오면서 뇌성벽력 같은 굉음이 터져 나
왔다. 하나같이 맹렬한 위력이었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해방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용음십이수를 구경만 하지 않았다. 성명절학인 건곤팔장
을 펼쳤다. 일장을 쏟아낼 때마다 노을 빛 홍광이 작렬했고 숨이 막히는 압력이 쏟아졌다.
두 사람의 내력이 담긴 장력은 허공에서 격돌했다.
콰콰쾅.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과 함께 강력한 폭풍이 일어났다. 세상 모르고 그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십여 명은 장파열을 당하거나 고막이 파열돼 땅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과연 용개 풍시종이군."
"동해방주도 그 명성 그대로였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한 듯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용개는 동해방주가 자기보다 한 수
위의 고수라는 사실을 단 한 번의 겨룸으로 느끼고 있었다. 용개 풍시종은 두 내력의 격돌
후에 발생한 여파에 밀려 뒤로 삼 보나 밀려났지만 동해방주는 한 치도 밀려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군... 동해방주의 무위는 삼대이인과 별 차이가 없다는 북해방주의 말이 하나
도 틀리지 않았어... 그러나 내게는 용음십이수에 못지 않은 또 다른 절학이 있다.'
용개 풍시종은 개방의 비전절학인 몽환포영(夢幻泡影)을 믿고 있었다. 비록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환상이라고 불리는 보법의 극치였다. 부족한 내력은 몽환포영으로 충분히 대
체할 수 있다는 것이 용개 풍시종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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